과거 MMPI 같은 경우는 채점 프로그램을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검사지에 비용이 부과되는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복사 엄금이었죠. K-WAIS 지능검사의 검사지와 같은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달리 MMPI-2/A나 TCI/JTCI는 채점 프로그램이 (주) 마음사랑의 서버에 있기 때문에 채점을 위한 크레딧이 실질적으로 구매하는 상품입니다.
물론 1 검사지 1 크레딧으로 매칭되어 있기 때문에 크레딧으로 채점을 하고 나면 당연히 검사지는 폐기해야겠지요. 답안지도 사용되었으니 재사용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검사지를 가져가서 답안지만 복사하고 검사지를 그대로 가져오는 수검자도 있습니다(저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인지 모르겠지만). 이 때 1:1 원칙에 따르면 멀쩡한 검사지를 폐기해야 하는데 그렇게 자원낭비하는 검사자는 아마 없지 않을까요?
이런 식으로 검사지가 남으면 크레딧을 구매할 때 저처럼 검사지 배송을 원치 않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기관 자격이 아닌 개인 평가자는 많아야 30부 정도, 제 경우는 대략 20부 정도의 소량 구매를 하거든요.
TCI는 부 당 2,500원이기 때문에 10부를 구매한다면 25,000원이 됩니다. 그런데 15만 원이 넘지 않으면 배송료 2,500원을 구매자가 부담해야 하니 총 구매액의 10%를 배송료로 부담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배송료를 부담하지 않으려면 60부 이상을 구매해야 하는데 그 정도 수량이라면 개인적으로 소진하는데 몇 년은 걸릴겁니다.
크레딧만 구매하고 싶다고 하면 검사지도 배송받으라고 연락이 옵니다. 원칙이니까요. 1 검사지 1 크레딧 원칙이 틀렸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융통성도 어느 정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재미있는 건 기관 사용자의 경우 수검자가 검사지를 가져갔다가 안 가져오면 크레딧은 남아 있는데 검사지가 부족하게 되는데 그 때는 소정의 비용을 내고 크레딧 없이 검사지만 구매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1 검사지 1 크레딧 원칙이 그렇게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지요. 그 검사지들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추가 인쇄를 한 것은 아닐테니 저처럼 크레딧만 구매한 구매자의 검사지를 모아서 판매한 것은 아닐까요?
검사지 배송 정책과 관련하여 해외 저작권자에게 이런 사정을 전달할 수 없냐고 물으니 그럴 계획이 없답니다. 원칙이 중요하니 검사지 소량 구매자는 검사지가 남아 있더라도(원칙적으로는 검사지가 남아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니) 구매자가 배송료를 부담하면서 검사지를 배송받으라는거지요.
검사지가 실질적인 상품인 MMPI와 달리 크레딧이 실질적으로 판매되는 상품인 MMPI-2/A, TCI/JTCI라면 검사지/답안지 복사를 허용해도 되지 않을까요? 온라인 채점을 하는 시대에 종이에 저작권을 걸어 구매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을 계속 지속하는게 과연 합리적일까요?
저는 검사지 20부를 구매하기 위해 써야 하는 배송료도 아깝거니와 상담 기록지를 절약하려고 상담 시간에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터라 솔직히 낭비되는 종이도 만만치 않게 아깝네요.
얼핏 배송료 정책을 손 보겠다고 들은 것 같은데 저 같은 사람은 배송료를 무료로 해 준다고 해도 불필요한 검사지는 배송받고 싶지 않습니다.
아마도 마음사랑측과 제 생각이 엇갈리는 부분은 융통성 발휘가 원칙을 훼손한다고 믿느냐 아니냐인 것 같습니다.
원칙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융통성이 발휘될 여지를 주지 않는 원칙은 가끔 사람을 답답하게 만드네요.
덧. 제가 하도 까다롭게 구니 이번은 검사지를 배송하지 않고 크레딧만 구매할 수 있도록 마음사랑 측에서 편의를 봐 주셨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융통성을 발휘한 것이 아닙니다. 융통성은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모두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지 특정인에게만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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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자가 공해를 많이 유발하는 직업은 아닙니다만 불필요한 종이 사용량은 의외로 굉장히 많습니다. 심리검사를 실시하면서 사용하는 검사지, supervision을 받거나 자료 보관을 위해 사용하는 복사지, 상담 일지, 연구를 위해 사용하는 자기 보고형 질문지 등등.
그래서 소소하지만 자원 낭비를 막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을 시작합니다.
지금도 하고 있지만
앞으로 모든 상담 기록은 아이패드와 전자펜을 이용해 전자 관리하겠습니다. 저는 하루에 평균 3~4건의 상담을 하고 있는데 A4 용지 기준으로 5~6장이 소모되더군요. 한 달만 모아도 엄청난 양이 되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다음으로
제게 supervision을 받는 선생님들께서는 제게 보여주실 자료를 준비할 때 최소한 문서 파일로 작성하는 심리평가보고서와 상담 관련 정보 파일은 문서로 출력하지 말고 이메일로 미리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무겁더라도 매일 아이패드를 지참하고 다니겠습니다. 한번 보고 버려지는(그것도 개인 정보 노출 때문에 이면지나 폐지로 활용할 수도 없는) 종이가 너무 아깝네요.
조금 더 노력을 하실 선생님들께서는 검사 원자료도 스캔해서 이미지 파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분들은 이미지 파일들을 하나로 합쳐서 PDF 파일로 보내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이것은 스스로의 다짐일 뿐 강요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자연 환경에 미치는 좋지 않은 영향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다는 취지에 공감하는 분들의 많은 동참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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