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Rapport)가 상담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건 상담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 라포가 없거나 약하다면 그 상담의 결과는 결코 희망적일 수 없는거지요. 상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만큼 상담자와 내담자의 치료적 신뢰 관계는 아무리 그 중요성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상담자는 내담자와 공고한 라포를 맺는데 총력을 기울입니다. 저는 필요하다면 전체 상담 회기의 절반을 사용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라포를 중요시하고 있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라포가 잘 형성되었는지, 튼튼한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전의 저도 한 때 그런 착각을 했지만 상담자와 내담자의 사이가 화기애애하면, 내담자가 저항을 그치고 상담에 몰입하게 되면 라포가 형성되었다고 믿는 상담자가 많습니다. 내담자가 상담자의 말을 경청하고, 치료적 조언을 그대로 따르면 라포가 튼튼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라포는 단순히 상담자가 내담자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게 아닙니다. 많은 내담자들이 기본적인 신뢰감이 약해진 상태에서 상담을 받으러 오고, 가끔은 재애착을 해야 할 정도로 무너진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상담 장면은 신뢰를 재구축하는 일종의 인큐베이터와 같습니다. 어머니의 자궁처럼 안전하고 전적으로 보호받는 환경 속에서 누군가를 믿는 것을 재경험하는거지요.
그렇다면 그런 신뢰는 어떻게 공고해 질 수 있을까요?
바로 갈등 상황을 통과해봐야 비로소 그 정도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아니 갈등 상황을 피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상황 자체가 바로 라포의 시험대입니다.
내담자가 상담자의 마음에 드는 말만 하고, 상담자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건 역설적으로 상담자를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담자의 언행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자신의 유일한 지지자인 상담자에게 버림받을까봐, 그것이 너무 두렵기 때문에 뒤로 감추고 겉보기에 좋은 가면만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라포는 상담 장면에서 상담자와 내담자의 갈등이 불거졌을 때 검증받게 됩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자가 내담자를 비난하지 않고, 역전이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내담자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때, 내담자는 상담자로부터 버림받을거라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상담자가 자신의 편에 설거라는 확신을 가지게 될 때 우리는 드디어 탄탄한 라포가 형성되었구나 하고 한시름 놓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꽤 많은 회기를 거치면서 상담자와 내담자 모두 서로를 좋아하게 되고, 상담이 기대되고, 이야기를 할 때는 분위기도 좋고,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한번 들으면 척 아는 수준까지 진행이 되었어도 회기를 돌이켜 보면 맨날 같은 이야기만 하는 것 같고 이건 상담이 아닌 친한 친구와의 수다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면 라포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 라포의 강도를 확인하는 게 두려운 나머지 변죽만 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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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대학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가르치는 교육학 박사인 히가시야마 히로히사 교수가 쓴 책입니다.
지인으로부터 선물받아 읽게 되었는데 사실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받았더랬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의 임상심리학 분야 책들이 어떤 스타일로 나오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만 해도 '듣기의 달인에게 배우는 24가지 듣기 기술 트레이닝'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상담을 이런 식의 테크닉 익히기로 접근하는 책을 경계하는 편이거든요.
목차에서부터 이런 경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1. 듣기의 달인은 전략적으로 말을 하지 않는 인간이다.
2. 듣기의 달인이 전략적으로 말하는 방법
3. 듣기의 달인이 되는 듣기 기술 - 기초
4. 듣기의 달인이 되는 듣기 기술 - 고급
5. 듣기는 관계의 예술이다.
처럼 그야말로 듣기(상담의 용어로 바꾸면 경청이라고 할 수 있겠죠)를 전략적으로 익히는 기술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양한 맞장구 기술을 구사한다', '견해가 아니라 사실만을 대답한다', '들을 때는 반론이나 부정 접속사를 구사하지 않는다', '절대 발설하지 않는다', '침묵과 사이두기를 잘 활용한다' 처럼 상담을 할 때 실제로 활용하거나 상담자라면 잘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을 다룬 부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내용의 초점이 상담자가 되려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듣기의 기술을 익혀 대인관계에서 활용하고자 하는 일반인에게 맞춰져 있어 임상/상담 전공자(특히 대학원생)에게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중에 전문가가 되고 난 이후에 한번쯤 가볍게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또 한 가지, 이 책은 전문 번역가가 번역을 하는 바람에 현장에서는 '내담자'라고 부르는 용어를 '상담자'로, '상담자'를 '카운슬러'로 번역하고 있어 읽을 때 헷갈릴 정도는 아니지만 꽤 거슬리더군요.
이 책을 읽으면 좋은 대상은 대인 관계에서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싶은 일반인입니다. 임상/상담 전공자라면 전문가가 되고 난 이후에 읽어보세요.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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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심리치료 supervision을 하다보면 상담 회기에 자신이 내담자에게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다고 자책하는 상담자를 굉장히 자주 만나게 됩니다. 제가 볼 땐 충분히 공감하고 경청한 것 같은데 말이죠.
많은 상담자들이 자신이 내담자의 치유와 회복에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상담은 오히려 상담자가 아직 준비가 덜 된 내담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기 때문에 혹은 주려고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문제가 되곤 합니다.
비유를 들자면, 상담을 받고자 하는 내담자는 무언가를 잘못 먹어서 탈이 난 사람과 비슷합니다. 과식이나 상한 음식을 먹어 배탈이 난 사람에게 필요한 건 영양가 풍부한 다른 음식이나 건강보조식품이 아닙니다. 속을 게워내고 비운 뒤 금식을 통해 독소를 해독하고 속을 보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지나치게 기름지고 영양이 넘치는 음식을 억지로 먹이면 더 큰 탈이 날 수 있습니다.
상담도 이와 비슷해서 내담자가 심리적 고통과 어려움을 충분히 토로해서 마음을 비우고 다시금 회복의 기운을 채울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마칠 때까지 상담자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합니다.
마음이 조급한 나머지 겉으로만 보이는 내담자의 증상에 집착해서 이런 저런 프로그램, worksheet, 과제를 부여하는 건 내담자에게 도리어 해로울 수도 있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내담자의 마음 '속'이 편안해질 때까지 충분히 털어낼 수 있도록 들어주세요.
특히 마음이 조급한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빠른 처방과 조언을 요구할 때가 더더욱 들어야 할 때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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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 나왔으니 15년이 넘은 케케묵은 구닥다리 책 아니냐고 우습게 보시면 곤란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읽은 임상/상담 수련 과정을 위한 교과서 중 감히 최고라고 평가하는 책입니다.
최근에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걸 대학원 때나 수련 1년차 때 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에 배가 아플 정도였으니까요.
캐나다 Manitoba 대학 교수들을 주요 집필진으로 해서 David Martin과 Allan Moore가 엮었는데 그야말로 임상/상담 영역에서 다루어야 할 모든 것을 집대성 해 놓았습니다. 그것도 아주 상세하면서도 친절하게요.
내용을 간략하게 함께 살펴보죠.
이 책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1. Foundations
2. Phases of Therapy
3. Client Populations
4. Contexts
5. Therapists' Considerations
1부는 두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1장에서는 empathy와 sympathy의 차이, 경청, 현존 같은 아주 기초적인 개념을 설명하고 있고 2장에서는 치료 관계, 라포 형성하기, 전이와 역전이 등 관계에 대한 issue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2부에서는 심리치료의 국면에 대한 내용을 5개의 장에 할애하고 있는데 3장에서는 초기 면접에 대해서, 4장에서는 심리평가, 5장에서는 초보 상담자가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운 상황들, 6장에서는 자살 위험성 평가와 개입, 7장에서는 종결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3부 역시 5개의 장을 포함하고 있는데 주요 내담자를 유형 별로 다루고 있습니다. 8장에서는 아동, 9장에서는 청소년, 10장에서는 성폭력 피해자들, 11장에서는 신체적 장애가 있는 내담자들, 12장에서는 비자발적인 내담자들을 어떻게 상담하는지 알려줍니다.
4부도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4부에서는 현장 및 치료의 유형 별로 임상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죠. 13장에서는 학교 상담실, 14장에서는 가족 치료에 대해서, 15장에서는 집단 치료, 16장은 법적, 윤리적 문제, 17장은 비교 문화적 상담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 5부에도 5개의 장이 있는데 임상가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다양한 사안들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18장에서는 임상 수련에서 살아남는 방법, 19장에서는 수퍼비전과 관련된 모든 것들, 20장에서는 심리평가보고서를 비롯한 각종 보고서 쓰기, 21장은 심신의 안녕과 관련된 이슈들, 마지막으로 22장은 임상 수련 모델의 시조가 되는 임상가들을 리뷰하고 있죠.
각 부분을 좀 더 심도있게 공부하려면 당연히 세부 전문 서적을 따로 읽어야 하겠지만 임상 수련 과정의 전체적인 그림을 파악하기 위해서 이 책 한권만 읽어도 충분할 정도로 내용이 아주 좋습니다.
게다가 총 50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을 22개의 장으로 잘게 쪼개 놓았기 때문에 나눠서 읽기에 별로 부담이 안 되는 수준입니다.
제가 특히 마음에 드는 이 책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아주 쉬운 영어로 쓰여져 있다는 겁니다. 제가 지금까지 읽은 원서 중 이해가 잘 되는 순서로만 따져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겁니다. 이 정도의 원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심리학도라면 앞으로 공부하는데 애로가 꽃필거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 책을 꼭 읽으셨으면 하는 추천 대상은 임상/상담 대학원생 등 임상/상담 수련을 앞둔 분들입니다. 1년차들도 꼭 읽으세요. 두 번 읽으세요.
강력 추천합니다.
덧. 아마존에서 2월 말까지 무료 배송(35불 이상인 경우)하고 있으니 45.55$이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돈값은 확실히 하는 책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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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내담자는 대체로 자신의 정서 상태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상담자가 내담자의 정서 상태를 알아채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동/청소년 내담자의 경우에는 정서 분화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거나 어휘력의 부족으로 인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제대로 표현하는 게 결코 쉽지 않죠.
내담자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인색(?)하다보니 상담자도 자연스럽게 밖으로 드러나는 내담자의 행동에 치중하게 되고 숙련된 상담자도 인지와 사고 내용만을 중심으로 상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아동/청소년이라고 해도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담자가 상담 중 사용하는 감정 단어를 그냥 흘려 듣지 않도록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아동/청소년(특히 청소년) 내담자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감정 단어는 '죽겠다'인데 보통 두 가지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실제로 심적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입니다. '힘들어 죽겠다'. '괴로워 죽겠다', '민망해 죽겠다'라고 구체적인 감정과 연결해 사용되면 그나마 알아듣기 편하지만 앞의 내용은 생략되고 그냥 '죽겠다'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내담자가 심적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죽겠다'를 사용할 때는
앞에 생략된 감정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상담자의 정서적 지지를 원할 때입니다. 구체적인 감정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내담자와 라포를 형성하는데 중요하기 때문에 지나치지 말고 공감, 경청, 반영 등으로 다뤄야 합니다. 게다가 상담을 받으러 오는 대부분의 아동/청소년은 가정이나 학교에서 충분한 정서적 지지를 받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담자는 내담자의 affection need를 충족시켜주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내담자가 상담 중 '죽겠다'는 감정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 우선 실제로 심적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인지 먼저 확인하고 그게 아니라면 상담자의 정서적 지지를 원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에 따라 대응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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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하면서 메모를 하는 문제로 고민하는 상담자가 의외로 많습니다. 메모를 하지 않자니 내담자의 말을 따라가기 벅차고, 혹시라도 핵심을 놓치지 않았을까 두려워 복기하자니 메모를 해야 한다는 불안이 있고, 그렇다고 대놓고 메모를 하자니 내담자가 취조받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신경이 쓰입니다.
메모를 하는 동안은 짧은 찰나의 순간이기는 해도 눈맞춤이 끊어지고 내담자에게서 나오는 비언어적인 정보를 놓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을 겁니다.
초보 상담자일수록 메모를 하는 문제로 고민을 많이 하는데 예전에 ...라는 글에서 메모는 최소한으로 하라는 조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모를 포기할 수 없다면 상담자만 메모를 할거냐 말거냐로 고민하지 말고 좀 더 전향적으로 내담자도 필요하면 메모를 하도록 허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실제로 상담자의 말을 적어가고 싶거나 뭔가 통찰을 얻었을 때 곧바로 메모를 하고 싶어하는 내담자가 적지 않으나 상담 장면에서는 상담자만 메모를 할 수 있는 걸로 생각하고 메모를 해도 되냐고 물어보지조차 못하는 내담자가 많습니다.
훈련받은 상담자도 상담 시간에 나왔던 이야기의 흐름을 경청으로 따라가면서 요점을 파악하고 요약해서 반영하고, 공감하는게 쉬운 일이 아닌데 내담자가 그걸 기억하고 일상에서 활용하고 연습하고 일상에서 깨달은 걸 다음 상담 때 정리해서 가져오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한 기대입니다.
그래서 저는 내담자에게 언제나 메모지와 필기구를 가까이 두고 뭔가 이야기 할거리가 생각나면 메모를 해서 상담 시간에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필요하면 상담 시간에도 자유롭게 메모를 하라고 허용하는 편입니다.
그렇게 하면 상담자가 메모하는 동안에 끊어지는 상호작용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내담자의 눈치를 더 이상 살피지 않아도 됩니다.
메모를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지엽적인 문제로 고민하기보다는 좀 더 핵심적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내담자에게도 메모를 허용하는 것이 더 치유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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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안남 선생님은 현장에서 상담을 하는 practitioner이면서 동시에 심리학 책으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책을 내는 심리학자가 그다지 많지 않은 우리나라 실정에서 꽤 많이 읽히는 좋은 책을 쓰는 작가이고요.
그런데 작년에 월덴 3를 통해 소개한
'괜찮아, 괜찮아, 괜찮을거야(2010)'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여전히 본인의 내공을 기존 심리학 연구 결과에 기대는 느낌입니다. 이게 본인의 생각인지 출판사의 전략인지 모르겠지만 일반인은 몰라도 심리학도에게 어필하는 글쓰기는 확실히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책이 심리학도가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서 큰 문제는 아닙니다. 그저 심리학도의 한 사람으로서 갖는 개인적인 아쉬움일 뿐이죠.
하지만 워낙 다작을 하는 분이라서 그런지 점점 깊이가 떨어지는 느낌인데 이건 좀 문제라고 봅니다. 제가 읽은 책이야 '괜찮아, 괜찮아, 괜찮을거야(2010)'가 유일하지만 그 책에 비해서도 내공 수위가 많이 약해졌습니다.
2011년만 해도 이 책 외에 '한밤중에 초콜릿 먹는 여자들', '나를 사랑해야 치유된다', '스크린에서 마음을 읽다'까지 무려 3권의 책을 더 내놓았습니다. 물론 각기 다른 주제이기 때문에 제가 항상 우려하는 사골 국물 우려내듯이 후닥닥 쓴 책은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다작을 하다보면 본인의 경험과 깊은 사유에서 충분히 숙성된 내용을 담아내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이 책은 '자존감'이라는 너무나 중요하면서도 핵심적인 개념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추천할 수준입니다. 자존감이 자존심이나 우월감과 어떻게 다른지 구분하고 있는 것도 적절(
'자존심이 세다?' 참조)했고 자존감의 정도 뿐 아니라 안정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도 아주 좋았습니다.
자존감이 행복감을 느끼는데 결정적인 요소라는 저자의 통찰에도 전적으로 동의하고요. 다만 낮은 자존감을 올리는 요소로 제시한 것들 중 '친밀감', '경청', '가족' 등 관계 지향적인 접근 방식과 '자기애', '자기 수용' 등 자신만의 수용과 인정 기준을 수립하는 접근 방식을 함께 사용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자존감을 증진하는 근본적인 방법'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자존감을 근본적으로 높이려면 관계 지향적인 방식의 노력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여전히 사람에 대한 무한 애정과 공감이 담겨 있는 책이라서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충분히 좋은 책이지만 앞으로 제가 계속 선안남 선생님의 책을 읽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더는 실망하기 싫거든요. 개인적인 바램은 한 2~3년에 한 권 정도씩 현장의 노하우와 정수를 담아서 책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만 출판사에서 가만 내버려둘 것 같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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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에서 상담자가 내담자가 하는 말을 분석하고 어떻게 개입을 해야 할 지 방법과 시점을 찾아내는 것은 당연히 중요합니다. 상담은 단순한 수다가 아니니까요. 제대로 된 도움을 주기 위해 상담자는 항상 최대 속도로 두뇌를 회전시켜야 합니다.
거기에 내담자가 하는 말에 공감을 하려면 내담자의 감정선을 잘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오감을 곤두세우고 초집중하여 내담자의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그래서 흔히들 공감과 경청이 한 몸처럼 붙어 다닌다고 합니다.
그런데 내담자가 하는 말을 분석하는 것과 공감을 위해 내담자의 감정 흐름을 따라가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물론 둘 다 중요합니다. 숙련된 상담자는 이 두 가지 새를 모두 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background에서는 내담자가 하는 말의 내용을 분석하면서 동시에 내담자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죠. 하지만 이 경우에도 감정에 대한 공감이 먼저입니다. 즉 background에서 감정에 공감하고 전면에서 인지적으로 내용 분석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앞에 앉은 상담자가 자신의 말을 분석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내담자도 자신이 하는 말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검열하게 됩니다. 그러면 진정한 소통이 일어나지 않고 상담자가 내담자와 전략 싸움을 하게 됩니다. 소모적인 밀고 당기기의 시작이죠.
특히 분석과 공감을 한꺼번에 할 수 없는 초보 상담자는 분석보다는 공감에 더 치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초보 상담자는 자신감이 부족한 상태에서 내담자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걸 줘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분석만 하려고 애씁니다. 상담 경험이 부족한 초보 상담자가 분석에만 치중하게 되면 나타나는 전형적인 결과는 임의 탈락입니다.
그러니 분석과 공감을 한꺼번에 하는 것이 어려울 땐 공감만 붙잡으세요. 경험이 쌓이면 분석은 자연스럽게 하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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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장애로 인해 낙제를 거듭하여 대학을 두 번이나 옮겼고 천신만고 끝에 박사 학위를 받고 촉망받는 심리학자로 탄탄대로를 막 걸어가려던 무렵 33세의 젊은 나이에 불의의 교통 사고로 척수 손상을 입어 전신 마비가 된 사람, 그 이후 이혼과 지독한 우울증, 자녀들의 방황, 아내, 누나, 부모님의 죽음을 차례로 경험한데다 둘째 딸이 낳은 유일한 손자가 자폐증 판정을 받은 사람, 그가 바로 이 책을 쓴 대니얼 고틀립 박사입니다.
이 책은 그가 자신의 마지막 책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쓴 책으로 자신의 투병 생활에서 느낀 점과 임상가로서 현장에서 경험한 인생의 지혜들을 담담하게 풀어놓은 책입니다.
이 책은 절망을 딛고 일어선 사람만이 말 할 수 있는 소중한 내용들로 가득한데 결코 투쟁기나 성공담이 아닌 그야말로 내려놓기를 몸소 실천한 한 임상가의 솔직한, 그러면서도 친절하고 따뜻한 자기 고백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모든 실패와 좌절을 겪어본 사람의 자기 고백이기에 그만큼 더 절실하고 마음을 울리며 다가옵니다.
절망의 나락에서 '수용(acceptance)'과 '내려놓기'를 그야말로 몸으로 체득한 사람의 말이기 때문에 그런 소중한 지식을 너무나 쉽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좋다기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듭니다.
사랑, 후회, 연민, 죽음, 불안, 평가, 분노, 연민, 마음, 경청, 평화, 적응, 미래, 인생, 외로움, 영혼, 상처, 사색, 치유...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시선과 유머가 마음을 울리는 책, '마음에게 말걸기'
모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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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써 놓고도 제목이 영 낚시스럽네요. 쩝...
저는 상담자의 진정한 내공이 바로 자신보다 나이가 (상당히) 많은 남자 내담자를 끌고 갈 수 있느냐로 발휘된다고 봅니다.
물론 내담자의 특성과 상담의 목적에 따라 분명 차이가 있을테니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상담 상황에서 말이죠.
전반적으로 여성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상담을 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원래 대부분의 여성들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다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는데도 거리낌이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일단 상담 장면에 들어오면 그야말로 도움을 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임하는 경우가 많죠. 여성 내담자의 경우는 상담자가 공감과 경청만 충실히 해도 끌고 나가는 것이 한결 쉽습니다.
그 다음, 남자 아동 및 청소년의 경우에도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부모에 의해 억지로 끌려 오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때로는 협조가 잘 되지 않고 상담 초기에 말문을 열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남자 어른 만큼 어렵지는 않습니다. 공통 분모만 잘 찾아내서 상담자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만 하면 오히려 다른 어떤 유형의 내담자보다도 상담의 효과가 금방 나타나는 내담자군입니다.
남자 어르신(노인)의 경우는 내담자가 걸어온 길을 긍정하고 삶의 지혜를 인정하는 마음만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다면 오히려 더 마음 편하게 상담에 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담자가 섣불리 어르신을 교육하려고 억지 부리지만 않는다면 역시 그리 어렵지 않게 상담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담자에 비해 10년 이상 나이가 많은 남자 내담자는 무엇 하나도 녹록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장유유서 정신이 살아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상담자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면 일단 자신의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네가 인생을 알아? 분위기)에 학력이나 학벌, 자격증과 같은 부수적인 도구가 필요하기도 합니다(개인적으로 아주 싫어합니다만 확실히 효과가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겠군요). 게다가 입 싼 남자를 경멸하는 사회 분위기 상 자신의 문제를 미주왈 고주왈 늘어놓는 남자 어른이 별로 많지 않고 그러다 보니 상담을 받으러 와도 자신의 문제를 조리있게 잘 표현하는 내담자가 없어요. 그래서 내담자의 문제를 파악하는 것도, 상담의 목표를 정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런 내담자와 빠른 시간에 라포(Rapport)를 형성하고 상담자를 신뢰하는 분위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할 수 있도록 내담자를 이끄는 상담자는 고수임에 틀림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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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나 상담에 있어서 '경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경청은 말처럼 쉽지않습니다. 상담자의 주의를 분산시키거나 방해하는 요인이 수두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대화를 할 때에도 흔히 그러듯이 상담자도 상담 과정에서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잘못된 경청을 하게 됩니다. 이런 잘못된 경청 유형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여과된 경청
우리가 사회화 과정을 통해 알게 모르게 습득한 문화적 여과장치들이 다양한 형태의 편견을 주입시켜 경청을 왜곡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상담자도 일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성, 인종, 성별, 국적, 사회적 신분, 종교, 정치 성향, 생활 양식에 따라 내담자들을 분류하기 쉽습니다. 따라서 상담자가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상담자가 자신을 파악하면 경청을 왜곡시키는 편향이나 편견을 찾기 쉬울 겁니다.
평가적 경청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방의 말을 주의깊게 경청한다고 하더라도 평가적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말해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 상대방의 말이 좋다/나쁘다, 맞다/틀리다고 판단하기 쉽습니다. 이러한 평가적인 경청을 할 때에는 쉽게 충고를 하게 됩니다. 상담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내담자의 말을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그 다음 필요하다면 이를 깨닫게 하여 극복시키거나 내담자로 하여금 자기 스스로 도전하게 해야 합니다. 충고를 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되는 평가적 경청은 내담자를 의기소침하게 만듭니다.
정형화된 경청
임상심리전문가들은 수련 과정에서 환자 내지는 내담자들을 다양한 범주에 따라 분류하는 것을 훈련합니다. 정형화된 경청은 이렇게 붙여놓은 라벨이 공감적 이해를 방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상담자가 때때로 내담자에게 붙이는 라벨이 내담자에 대한 이해라기보다는 해석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죠.
인간 중심이 아닌 사실 중심의 경청
어떤 상담자는 내담자에 대한 사실만 충분히 수집되면 마치 치료가 되는 듯이 정보 수집을 위한 질문 공세를 퍼붓습니다. 이러한 질문은 사실을 수집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을 잃게 만듭니다.
동정적 경청
동정심이 넘치다 보면 내담자가 하는 이야기를 왜곡하기 쉽습니다. 동정은 분명히 사람들 간의 의사거래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인정머리 없다는 말을 들을지 몰라도 상담에서는 동정을 자제해야 합니다. 어떤 의미로 볼 떄, 상대방을 동정하게 되면 공범자가 되고 맙니다. 가령 내담자가 자기 남편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할 때 동정하게 되면, 내담자가 하는 말을 다 듣지 못하고 그의 편이 되고 맙니다. 동정심을 표현하는 것은 내담자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연민을 더욱 강화시키게 됩니다. 자기 연민은 문제 대처 행동을 하는데 장애로 작용하게 됩니다.
가로막기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해야 할 중요한 말이 있다고 해서 가로막고 나서면 공감적 경청에 해롭습니다. 물론 상담자가 부드러운 제스처와 더불어 "여러 관점을 제시하셨군요. 그런데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궁금하군요"라고 말하면서 개입할 때는 경우가 다릅니다.
출처 : 유능한 상담자(Gerard Egan) 중 발췌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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