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은 2탄 격으로 '연대감'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대감이 낮을 때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 생각해 봐야 합니다.
1. 자율성도 낮은 경우 : LLL, LLM, LLH 유형
2. 자율성은 높은 경우 : HLL, HLM, HLH 유형
1번 경우는 낮은 자율성을 내버려둔 채 연대감만 향상시킬 수 없기 때문에 자율성 증진이 우선입니다. 자율성이 안정권으로 향상된 이후에 연대감 발달을 고민해야 합니다. 자율성 미발달 상태를 그대로 둔 채 연대감만 상승하는 경우 LHL, LHM, LHH 계열로 발달해 의존성만 강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번 경우처럼 자율성은 충분히 발달했는데 연대감 발달이 지연된 경우여야 비로소 연대감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자율성 증진이 먼저, 그 다음이 연대감입니다.
자율성이 높은 수준으로 발달한 경우만 말씀드렸지만 medium 수준으로 발달한 MLL, MLM, MLH 유형도 마찬가지입니다. 연대감이 low level로 낮은 수준이라면 역시나 건강한 성격이 아니어서 결국은 연대감을 발달시켜야 합니다. 자율성, 연대감은 모두 최소 medium level(백분위 30% 이상)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기억하시면 됩니다.
발달 지연된 하위차원이 무엇이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공감(역지사지 능력) 수준을 높이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roly playing을 통해 끊임없이 상대방 입장 생각하기를 연습하는 게 중요합니다. 왜 공감 하위차원이 핵심이냐 하면 의도적인 노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상대적으로 가장 손쉬운 영역이고 공감이 어려우면 다른 하위차원을 변화시키는 것도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이타성이 낮은 경우에는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사정의 이해와 함께 의도적인 이타적 행동 시도하기 등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특히 이는 HLL, HLM, MLL 계열의 내담자에게 효과적인데 일단 이타적 행동을 시도하고 나면 이기적인 성격과 인지 부조화를 일으키기 마련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미 저지른 행동은 취소할 수 없으므로 인지 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해 마음을 조작함으로써 자신을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서서히 믿게 됩니다. 물론 이를 가속화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이 필요하죠. 저는 상담할 때 이타성이 낮은 내담자에게 가벼운 부탁과 고마움을 끊임없이 표현해서 계속 인지 부조화 상태를 만들었습니다.
타인수용, 관대함, 공평 발달 지연은 보통 욕구 좌절, 특히 원 가족 내 애착 외상, 차별 대우, sibling rivalry 등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충분한 타당화와 이해, 수용이 우선입니다. 타당화 없이 섣불리 향상시키려고 하면 역효과가 나게 됩니다. 특히 자율성이 낮으면서 타인수용, 관대함, 공평까지 낮은 수준일 때는 타당화가 생각보다 더 긴 시간동안 진행되어야 합니다.
각 하위차원에 대한 설명만 드렸지만 연대감 하위차원도 다양한 조합으로 나타나는데다 기질, 성격 유형도 고려해서 해석해야 하기 때문에 감을 잡기 위해 참고만 하시는 게 좋습니다.
태그 -
HLH,
HLL,
HLM,
LLH,
LLL,
LLM,
MLH,
MLL,
MLM,
TCI,
공감,
공평,
관대함,
연대감,
이타성,
자율성,
타인수용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5332
큰 틀에서 보자면 내담자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해 본 상담자일수록 내담자를 더 잘 도울 수 있을까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결혼을 해 본(결혼을 유지하고 있거나 이혼을 한 상태이든 간에) 상담자가 부부 상담을 덜 잘할까요?
자녀가 있는 상담자가 아동/청소년 상담을 더 잘할까요?
도박을 해 본 상담자가 도박 중독 상담을 더 잘할까요?
('도박 중독 치료자는 반드시 도박의 고수여야만 하는가')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훨씬 더 불리할 수 있습니다.
아동/청소년 내담자의 경우를 한번 생각해보죠. 부모, 담임 교사, 학원 선생, 친구처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아동/청소년을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을까요.
부모, 담임 교사, 학원 선생은 모두 알게 모르게 자신의 욕망을 관계에 투영하기 때문에 아동/청소년 내담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없습니다. 친구는 이보다 덜하지만 대신 아동/청소년과 비슷한 발달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시야가 좁은 문제가 있죠.
상담자의 입장도 얼핏 보면 주변 사람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담자와 전혀 상관없는(?) 사이이기 때문에 객관적 관찰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분석할 수 있고 충분히 잘 훈련되었다면 온전히 내담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담자에게 자녀가 있다면, 특히 지금 만나고 있는 아동/청소년과 같은 또래의 자녀가 있다면 객관적 관찰자의 입장에서 공감하기 어렵게 됩니다. 자신의 부모-자녀 관계 역동이 알게 모르게 투사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히려 개인적인 경험은 객관적인 시야를 확보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결혼을 해 본(부부 갈등이 진행중이라면 더더욱) 상담자는 부부 상담을 할 때 더욱 주의해야 하고 도박을 좋아하는 상담자는 도박 중독 상담을 할 때 자신의 역동을 투영하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해야 합니다.
상담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내담자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경험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시각으로 내담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함께 바라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경험을 많이 한 상담자가 오히려 더 불리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당연히 이는 전이-역전이 분석을 꼼꼼히 해야 하는 이유와도 연결됩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5624
기질 차원에서 '사회적 민감성'을 제외한 나머지 기질은 하위 차원의 동질성이 강한 편이어서 방향성이 비슷합니다(다 같이 높거나 다 같이 낮은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 그래서 분석하는 게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처음 보는 생경한 용어가 많다보니 익히는 데 시간이 좀 걸리지만 말이죠. 그래서 기질 차원은 울면서 들어가서 웃으며 나오는 영역입니다.
이와 반대로 성격 차원은 용어가 그다지 낯설지 않아서 처음에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느껴지지만 방향이 반대로 갈리는 하위 차원들이 많기 때문에 분석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경우의 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격 차원은 웃으며 들어가서 울면서 나오는 영역입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성격의 하위차원은 해석에 있어 워낙 경우의 수가 많다보니 모든 걸 다 다룰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자주 볼 수 있고 꼭 알아야 하는 조합을 중심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 자율성 성격
: 상담실을 방문하는 내담자 중 자율성 하위차원이 낮은 경우가 많고 다른 성격 차원에 비해 하위차원의 동질성이 강한 편이라 해석이 어렵지 않은 편이지만 다음의 조합은 주의해서 해석해야 합니다. 다른 하위차원은 모두 -1SD 이하로 낮은데 '책임감' 하위차원만 낮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는 부모의 기대로 인해 과도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봐야 합니다. 보통 MMPI-2에서 Re 척도가 함께 상승하거나 GM, GF 척도가 상승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 연대감 성격
: 연대감 성격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조합은 '공감', '이타성' 하위차원은 높은데 '타인 수용'만 유의미하게 낮은 경우입니다. 얼핏 봐도 좀 이상한 모습이죠. 역지사지 능력도 괜찮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도 잘 하는데 자신과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걸 못한다니 말이죠. 이건 그러한 공감 능력과 배려가 자신과 같은 in-group에 속한 사람들에 한정된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러니 outsider들에게는 오히려 더 가혹한 모습을 보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런 조합이 나타나는 이유는 제대로 된 연대감이 발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이런 선택적인 배려심을 발달시킬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 자기초월 성격
: 자기초월 성격에서 많이 나타나는 조합 중 하나는
다른 하위차원에 비해 '창조적 자기망각' 하위차원만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나는 경우입니다. 이건
'TCI 탐색적 흥분, 창조적 자기망각 하위 차원의 동시 상승이 의미하는 것'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예체능 적성의 소유자일 가능성이 있어서입니다. '우주 만물과의 일체감'이나 '영성 수용'까지 함께 상승하는 경우와 달리 '창조적 자기망각'만 유의미하게 상승할 때는 진로 적성에 초점을 맞춰 탐색하는 게 좋습니다. 또 다른 조합은
'우주 만물과의 일체감'만 유의미하게 저하되는 경우입니다. 특히 원 점수가 0점 수준으로 낮게 나올 때가 많은데
'TCI 자기 초월 성격 중 우주만물과의 일체감 차원이 낮은 것은 어떤 의미인가' 포스팅에서 다룬 것처럼
애착 외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탐색해 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창조적 자기망각' 하위차원은 낮은데('자의식' 하위차원이 높다는 이야기), '영성 수용' 하위 차원이 +1SD 이상으로 높게 나타나는 경우로 종교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신앙심의 발로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자의식' 하위차원은 '회계사' 모드를 반영하기 때문에 종교 생활 등의 목적이 신앙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기복 신앙이거나 이민 사회 적응을 위해 한인 타운에 있는 교회에 출석하는 등, 현실적인 목적에 기반한 종교 생활을 하고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태그 -
TCI,
공감,
성격,
연대감,
영성 수용,
우주 만물과의 일체감,
이타성,
자기초월,
자율성,
창조적 자기망각,
책임감,
하위차원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5090
예전에
'증상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수검자의 TCI 프로파일'이라는 글에서 F, F(B), F1, F2와 같이 faking-bad 경향을 반영하는 척도들이 과도하게 상승할 때 TCI에서 경계선 성격 장애처럼 보이는 프로파일이 나타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경계선 성격 장애 내담자들도 가끔은 지나치게 고통감을 호소하는 나머지 타당도에서 F척도군이 상승할 수 있기 때문에 증상 과장 경향만 갖고 TCI에서 경계선 성격 장애 프로파일이 나온 걸 구분하는 게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확인하는 또 다른 방법은 하위차원 분석을 해 보는 겁니다.
경계선 성격 장애가 맞다면 각 기질/성격의 하위차원들의 방향성이 일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증상을 과장하는 수검자들은 하위차원에서도 이와 상반된 모습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 자극추구 기질에서 증상을 과장하는 수검자는 '탐색적 흥분' 하위차원만 원 점수가 표본 평균 이하로 낮을 수 있는데 이는 자극추구 기질의 네 하위차원 중 탐색적 흥분만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답변할 수 있는 보호 요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전형적인 경계선 성격 장애라면 그런 눈가림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모든 하위차원이 평균 이상으로 상승하는 모습을 보일 겁니다.
또 다른 예로는 연대감 성격의 하위차원 중 '공감', '이타성'만 점수가 표본 평균보다 높게 나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faking-bad 응답 경향을 보이는 수검자들은 힘들다는 것을 과장하고 싶은 것 뿐이지, 자신이 나쁜 사람처럼 보이는 걸 원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둔감', '이기성'이 높게 나오지 않게끔 자신도 모르게 응답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점수가 높거나 낮다는 게 1표준편차 이상/이하로 유의미하게 높거나 낮은 정도는 아니고 단순히 평균값보다 높거나 낮은 정도이기 때문에 얼핏보면 구분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증상 과장 경향이 있는 수검자는 경계선 성격 장애와 달리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를 어필하는 쪽으로 응답 방향이 맞춰져 있어 각 기질/성격의 하위차원의 방향을 고려하면(특히 하위차원들의 방향이 갈릴 때) 어느 정도 구분이 됩니다.
그러니 MMPI-2/A의 F척도군의 과도한 상승만으로는 경계선 성격 장애를 변별하는 게 어려운 선생님들은 하위차원을 면밀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덧. 이 포스팅에서 '경계선 성격 장애'라고 지칭한 건 HHL 기질에 미성숙한 성격 유형을 말하는 것으로 빠른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한 예시일 뿐으로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가 아닙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http://walden3.kr/5013, http://walden3.kr/4347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태그 -
F,
F(B),
F1,
F2,
Faking-bad,
TCI,
경계선 성격 장애,
공감,
기질,
성격,
수검자,
이타성,
탐색적 흥분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4859
TCI의 사회적 민감성 기질에는 '정서적 감수성' 하위 차원이 있고 연대감 성격에는 '공감/둔감' 하위 차원이 있습니다.
이 두 하위 차원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시는 선생님들이 많아 이 참에 정리를 한번 해 보려고 합니다.
* 정서적 감수성 : 사회적 민감성 기질의 하위 차원
* 공감/둔감 : 연대감 성격의 하위 차원
naming만 보면 왠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 같고 둘 다 높거나 둘 다 낮은 '정적 상관'이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공감을 잘하려면 정서적 감수성 수준이 높아야 하지 않나?', '정서적 감수성 수준이 낮으면 공감이 안 되지 않나?' 하는 식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둘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릅니다.
정서적 감수성은 기질이고 일종의 타고난 '레이더' 같은 겁니다. 정서적 감수성 수준이 높게 태어난 사람은 성능이 뛰어난, 민감한 레이더를 장착한 것이고 낮게 태어난 사람은 성능이 나쁜 둔감한 레이더를 장착한 것이죠.
이 레이더는 상대방의 감정을 감지하는 기능을 합니다. 정서적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은 상대방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자신도 모르게) 귀신같이 압니다. 머리를 굴려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감지하는 것에 가깝죠. 정서적 감수성은 기질 차원이기 때문에 훈련한다고 (좀처럼) 높아지지 않습니다.
공감/둔감은 성격이고 일종의 '역지사지 능력' 같은 겁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쉽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잘 이해합니다. 반대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상대방의 생각, 감정에 둔하기 때문에 관심도 별로 없고 배려도 못합니다. 공감/둔감 성격은 능력이기 때문에 부단한 노력과 훈련을 통해 배양할 수 있죠.
둘의 차이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정서적 감수성 : 기질, 타고난 레이더, 향상 불가, aware
* 공감 : 성격, 역지사지 능력, 향상 가능, understand
정서적 감수성과 공감 능력이 둘 다 높은 수준이거나 둘 다 낮은 수준이라면 수검자를 이해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겁니다. 실제로 건강한 부모로부터 좋은 기질을 물려받고 태어나서 충분히 사랑받고 자랐다면 둘 다 높은 것이 정상적입니다. 하지만 많은 임상가 선생님들이 곤혹스러워하는 상황은 다음과 같은 경우입니다.
1. 정서적 감수성 高 / 공감 低
: 정서적 감수성이 높은데 공감 능력이 낮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기분과 감정을 귀신같이 알아차릴 수 있는 뛰어난 성능의 레이더를 장착하고 태어났지만 이러한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배려하는 데 쓰지 않고 자신을 위해서만 (이기적으로) 사용하게 자란 겁니다. 즉, 그럴 수 밖에 없는 환경적 영향이 있었다는 걸 암시하는데 많은 경우 형제자매들 중에서 차별 대우를 받았거나,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거나, 부모가 너무 바빠서 care를 받지 못했거나, 심성이 차가운 분들이라서 제대로 된 관심을 못 받고 큰 경우입니다.
애정 욕구가 지속적으로 좌절되거나 박탈된 분들이 많죠.
2. 정서적 감수성 低 / 공감 高
: 정서적 감수성이 낮은데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선천적으로 타인의 기분과 감정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후천적인 노력으로 이를 극복한 경우인데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받고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역지사지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한 경우와 이와 반대로
그렇게 보여야만 하는 상황적 압력이 강한 환경에서 성장한 경우로 나눌 수 있습니다. 동생들을 위해 부모의 빈자리를 채우고 희생할 것을 강요받은 장자/장녀가 대표적인 예인데 상담을 받으러 오는 내담자는 불행하게도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다만 이 경우는 MMPI-2의 GM, GF, Es, LSE 등 관련 척도 점수를 확인하는 교차 검증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정서적 감수성 기질과 공감 성격이 같은 방향으로 나타나지 않을 때는 우선 그런 차이를 야기한 환경적 영향이 무엇인지를 가정 환경과 부모-자녀 관계로부터 찾아보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4654
TCI의 하위 차원 분석 시리즈 중 여섯 번째 포스팅입니다.
앞서 포스팅한 자율성이 '가까운 환경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자율적 인간으로 이해하고 동일시하는 정도라면
연대감은 범위를 좀 더 넓혀 '다른 사람들(사회, 인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통합적인 한 부분으로 지각하고 이해하는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포스팅 할 자기 초월 성격은 이 범위를 훨씬 더 넓혀 '우주 만물과의 관계'까지 확장한거지요.
그렇다면
연대감이 높은 사람은 어떤 특성을 보이느냐 하면 한마디로 공존, 상생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래서 연대감이 높은 사람을 '마음이 부드러운', '공감하는',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자비로운', '공정한' 등의 용어로 특징지을 수 있는거지요.
반대로 연대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투쟁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앞선 포스팅에서 자율성이 낮은 사람들이 상담을 받으러 내방하는 비율이 높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그런 분들 중에서도 연대감은 낮을 수도 있고 중간 수준일 수도, 또는 꽤 높을 수도 있습니다. 이를 유형 별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연대감이 낮은 수준 : LLL(침울한), LLM(미성숙한), LLH(비조직화된)
연대감이 중간 수준 : LML(모방하는), LMM(자율성이 낮은), LMH(비논리적인)
연대감이 높은 수준 : LHL(의존적인), LHM(복종적인), LHH(감정적인)
자율성이 낮고 연대감도 낮은 경우는 부적응이 심하기 때문에 다른 임상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고 공존 장애로 고통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찌보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상담자와 라포를 형성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서 조기 종결이 되는 비율도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MMPI-2/A와 같은 구조화된 검사 결과를 세심하게 살펴봐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심리검사의 추가 실시도 고려하는게 좋죠.
지적 제한 문제가 함께 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세요.
자율성이 낮아도 연대감이 중간 수준인 내담자는 취약하기는 해도 어느 정도 지지망을 구축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
상담자와 라포를 형성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용이하며 비교적 성실하게 상담을 받으러 옵니다.
다만 역기능적인 관계 유지 패턴이 익숙하게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상담자는 이러한 패턴이 성장 과정의 부모-자녀 관계에 기인하지 않는지 꼼꼼히 탐색해봐야 하고 이를 변화시키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상담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율성이 낮지만 연대감이 높은 내담자는 자율성이 낮아서 생긴 문제를 주변의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회피하거나 방치하고 있기 때문에 내담자가 의존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찾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 대상의 상당수는 내담자와 정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거나 power를 갖고 내담자를 휘두르고 때로는 착취하기도 하는 사람이라서 내담자가 겪고 있는 고통의 원천이 그 사람이라는 걸 내담자가 알고 있다고 해도 구속되어 있어 이 틀을 깨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임상적인 문제가 동반되기 쉬운 'LL?' 유형들과 또 다른 의미로 상담이 장기화됩니다.
연대감은 자율성과 함께 기질을 조절하는 핵심 부품이기는 하나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그 안에서도 자율성이 낮아서 생긴 문제를 외부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는 우회로와 같은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율성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는 하지만 연대감까지 낮으면 자율성을 높이는 것 자체가 요원하기 때문에
연대감이 낮은 경우는 상담자와 라포 형성에 각별히 공을 들이고 내담자를 지원할 수 있는 정서적인 지지망을 구축하거나 수리하는데도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자율성이 높아질 때까지 내담자가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럼 연대감의 하위 차원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연대감 차원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하위 차원으로 구성됩니다.
* C1 : 타인수용
* C2 : 공감 / 둔감
* C3 : 이타성 / 이기성
* C4 : 관대함 / 복수심
* C5 : 공평 / 편파
C1(타인수용) 차원이 높은 사람은 자신과 다른 외양, 행동, 가치관을 가진 사람에게도 관대하고 우호적입니다. 소위
'다문화 사회'에서 살기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죠. C1 차원이 낮은 사람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같은 인간을 연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C2(공감/둔감) 차원이 높은 사람은
역지사지를 잘 합니다. 자신의 판단을 보류한 채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C2 차원이 낮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둔감하고 관심 자체가 별로 없어서 무심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기 쉽습니다.
C3(이타성/이기성) 차원이 높은 사람은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걸 즐기며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걸 즐깁니다. 이에 비해 C3 차원이 낮으면 이기적이라서 자신이 열매를 독차지하려고 혼자 일하는 걸 선호하죠.
C4(관대함/복수심) 차원이 높으면 자비심이 많고
쉽게 용서를 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상처를 받아도 건설적인 방향으로 해결하려고 애쓰는데 이와 반대로 C4 차원이 낮으면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공공연하게(또는 위장된 형태로) 복수하려고 하기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C5(공평/편파) 차원이 높은 사람은 양심적이라서
자신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공평한 것이 중요하지만 C5 차원이 낮은 사람은 기회주의적이고 타인을 공정하게 대우하지 않으며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종하거나 속임수를 씁니다.
연대감 차원이 낮을 때 다섯 가지 하위 차원 중 무엇이 특히 낮은 수준인지 살펴보면 이 수검자가 자신의 주변 환경(또는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어떠한 문제가 생기는지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C1이 낮은 사람은 다양성이 필요한 환경에 적응하기 어렵고 겉돌기 쉬우며 C2가 낮은 사람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해 답답해 할 가능성이 크고, C3가 낮은 사람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기적이라는 평판 하에 따돌림을 당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C4가 낮은 사람은 자신에게 손해를 끼친(그것이 사실이든 수검자의 착각이든 간에) 상대방에게 반드시 복수를 하려 하기 때문에 갈등이 격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C5가 낮은 사람은 cheating을 쉽게 하기 때문에 머리가 좋거나 해서 이를 교묘하게 감추지 못하면 역시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쁜 평판을 받을 가능성이 크고 C3까지 함께 낮으면 이미 주변 사람들의 블랙 리스트에 올라 있을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연대감은 자율성 만큼은 아니지만 자율성을 높이기 위한 시간을 벌어주는데 꼭 필요한 부품이기 때문에 손상된 관계를 치유하거나 환경을 재구축하기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 살펴보면 유용합니다.
* 관련글- TCI의 하위 차원 분석 : 자극추구 기질- TCI의 하위 차원 분석 : 위험회피 기질- TCI의 하위 차원 분석 : 사회적 민감성 기질- TCI의 하위 차원 분석 : 인내력 기질
- TCI의 하위 차원 분석 : 자율성 성격
태그 -
TCI,
공감,
공평,
관대함,
기질,
내담자,
둔감,
라포,
복수심,
상담,
상담자,
성격,
연대감,
이기성,
이타성,
타인수용,
편파,
하위 차원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4567
★★★☆☆
이미지 출처 : YES24
제러미 리프킨의 저작은 월덴 3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엔트로피'는 빠졌지만 '소유의 종말(2000)'과 '유러피언 드림(2004)', 그리고 '3차 산업혁명(2011)'도요. 모두 제 기준으로 별 4개 이상으로 평가한 좋은 책들이었죠.
나중에 알고 보니 3차 산업혁명 전에 오늘 소개할 공감의 시대가 먼저 나왔더군요.
그런데 이 책은 838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지금까지 읽었던 리프킨의 책 중 가장 평범한 수준이었습니다. 사실은 살짝 실망했다고나 할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리프킨 답지않게 중언부언하는 대목이 많습니다. 전작인 유러피언 드림의 내용과도 상당 부분 중첩되고 나중에 출판될 3차 산업혁명의 정리되지 않은 내용도 많이 섞여 있습니다. 이 책의 주 내용이 리프킨의 핵심 분야가 아니어서 그런지 방대한 자료로 빈틈을 메우려는 듯 정신이 좀 없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주 내용이 공감이라서 그런지 지나치게 심리학에 기반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심리학에서 차용한 내용 대부분이 제게는 어느 정도 익숙하고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기 때문에 흥미가 반감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무리하게 차용한 듯 설득력이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혹시나 싶어 그 두꺼운 양장본을 매일 들고 다니면서 끝까지 읽었습니다만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제러미 리프킨의 책 중 처음으로 시간이 아깝다고 느꼈던 책이었습니다. 제러미 리프킨의 팬이 아니라면 굳이 이 책까지는 안 읽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특히 심리학도들에게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십중팔구 다소 식상하다는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공감의 시대의 도래 필요성에 대해서는 십분 동감하지만 가능성에 대해서는 매우 비관적입니다. 헬게이트가 먼저 열리고 세계 경제가 바닥에 추락한 뒤에 언제나 공감의 시대가 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공감의 시대는 커녕 도리어 원시와 야만의 시대가 오지 않을까 싶어 심히 두렵거든요.
덧. 이 책은 국민도서관에서 대여해 읽은 책이므로 북 크로싱하지 않습니다. 국민도서관을 이용해주세요~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4123
공감은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자 상담자에게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 능력으로 간주됩니다.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상담 및 심리치료적 접근 방법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이죠. 그만큼 상담에서는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 수련 과정에서 공감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애도 많이 쓰고 공감을 잘 하는 상담자는 실제 상담에서 유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공감이 잘 안되는 상담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제가 그렇습니다.
지금도 좀 그런 편이지만 제가 처음 상담을 하던 당시에도 저는 내담자가 하는 말을 들으면 내담자가 갈등을 겪은 상황이 정확하게 머리에 그려지고 왜 힘이 든건지 감이 오지만 공감만큼은 도무지 잘 되지를 않았습니다.
공감이 잘 안 되니 아무래도 내담자의 말에 반응하는 것이 서툴게 됩니다. 상담이 종결된 이후에 내담자가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한번도 안 해 주시더라는 불평 아닌 불평을 듣게 되기도 하고, 2년 이상 상담을 하고 있는 내담자가 오늘은 선생님이 제 마음을 알아주시는 것 같아서 기쁘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듣게 되기도 합니다(사실은 아직도 좀 당혹스러워요;;;).
내담자에게 공감을 잘 못하는 건 상담자에게 큰 결함이라고 배웠기에 고민을 많이 했더랬습니다. 어떻게 하면 공감을 잘 할 수 있을까.... 나도 상담을 받아 봐야 하나, 예술을 자주 접하면 마음이 좀 열릴까(실제로 이건 효과가 좀 있습니다~) 등등.
많은 내담자들이 자신의 장점을 보지 못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성격, 습관, 대인 관계 기술, 외모 등을 고치려고 집착하는 것처럼 저 또한 공감을 못하는 제 자신만을 탓하면서 많은 시간을 낭비했죠.
그러다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공감이 그렇게 안 되는데 왜 나는 내담자의 입장과 갈등의 이유, 의사 결정의 중요도와 우선 순위가 도표를 그리듯이 자동적으로 번호가 매겨지면서 정리가 되는건지.... 왜 어떤 내담자가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말끔하게 정리되고 혼란이 가라앉아서 좋아요 라고 말한 건 놓치고 있었던 것인지...
상담에는 머리와 마음이 모두 필요하지만 머리가 더 발달한 상담자가 있고, 마음이 더 발달한 상담자도 있는거지요. 머리가 발달했다고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그랬다면 상담자가 되지도 못했을 겁니다)
결정적으로 저는 제 TCI 결과표를 보고 나서 왜 공감이 잘 안 되는지, 그런데도 왜 상담자의 일을 하고 있을 수 있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 TCI 기질 유형은 LLL유형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Schizoid 유형이죠. 점수대가 39-38-35T이니 점수도 꽤 극단적인 편입니다. LLL 유형의 특성 상 다른 사람에게 별 관심이 없으니 그 사람에게 진정한 공감을 하는 게 어려운 겁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어떻게 상담이란 걸 하고 있느냐 하면 제 성격 유형이 HMH 유형이거든요. 연대감 차원의 백분위 점수가 65.4 정도 되니 관계 맺기가 어느 정도 되는 것이죠. 게다가 성격의 기질 조절 기능이 잘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Schizoid 기질이 병리적인 방향으로 활성화되지도 않고 잘 통제되고 있고요.
그래서 저는 제가 머리 80, 마음 20 정도로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담자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예 공감이 안 되지는 않으니 부족한 공감 능력은 부족한대로 인정하고 그보다 특화된 분석 능력을 강점으로 활용하는 상담자가 되어 내담자를 돕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제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인정하다보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이야기가 길었습니다만 이 포스팅에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머리와 마음을 자유자재로 잘 사용하는 균형잡힌 상담자는 그리 많지 않으니 본인이 공감을 잘 못하는 상담자라며 자책만 마시고 강점 영역을 잘 찾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내담자를 도울 수 있다는 겁니다.
저처럼 공감에 서투른 상담자 선생님들, 화이팅입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978
남성은 이성, 여성은 감성의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고들 합니다. 남자는 입장과 처지를 이해받는 게 중요하고, 여자는 마음을 알아주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그것이 생각이든, 마음이든 간에 어쨌거나 나를 알아주는 것, 내가 받아들여지는 것,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원하죠.
이걸 상담에서 흔히 사용하는 개념인 공감에 포함된 중요한 내용이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공감이란 게 정작 말처럼 쉽지는 않아서 현장에서 일하는 상담자도 개념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병상련도 아니고 단순한 측은지심도 아니면서 동정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죠.
사설이 길었는데 오늘은 상담 현장에서 사용하는 공감 말고 흔히 우리가 말하는 공감(위에서 이야기 한 나를 알아주는 것과 유사한 의미의)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모든 대인 관계에서 내가 받아들여지는 것, 나를 알아주는 것이 중요하지만 부부 관계를 포함한 친밀한 쌍방 관계에서는 더더욱 중요하죠.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전업주부인 아내가 가사와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당신은 잘 모르는 것 같다며 남편에게 불만을 토로합니다. 당연히 남편은 그게 얼마나 힘든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면서 위로하려고 애를 쓰죠. 하지만 아내는 당신은 머리로만 이해를 하지 내 감정을 마음으로 아는 것 같지 않다면서 쏘아 붙입니다.
위의 예에서 아내는 남편이 자신의 고통을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할 뿐, 마음으로 느끼지 못한다고 불평하지만 제가 볼 때 이 문제의 핵심은 이해냐 감정이냐가 아닙니다.
아내가 자신의 고통과 힘겨움을 남편이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남편의 이해가 행동으로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공감은 행동을 기반으로 작동하거든요.
말로는 혼자서 살림하고 애보느라 얼마나 힘드냐며 위로하지만 정작 퇴근하면 나 몰라라 자신만 씻고, 밥 먹고, TV 보고, 일찍 자고, 새벽에 아이가 울어도 모른 척하고, 주말에는 일 핑계를 대면서 휴일 근무를 나가거나 라인 관리를 해야 한다며 골프나 등산을 가면서도 정작 아내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을 한 것이 없기 때문에 당사자가 공감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겁니다.
일반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지만 상담에서도 사실 마찬가지입니다. 상담자가 내담자의 말에 진심으로 공감한다면 알게 모르게 자연스레 행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내담자의 고통에 공감이 되면 감정의 흔들림을 느끼게 되고 공명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내담자가 고통을 이겨낼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동원해 탐색하게 됩니다.
'네가 왜 힘든 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한 고통의 원인으로는 A와 B, 그리고 C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B인 것 같고 나머지 두 개의 이유는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같으니 환경 개선을 통해 이들의 영향력을 최소화시키고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온전히 직관할 수 있도록 자동적 사고를 교정할 필요가 있겠다'
이처럼 머리에 기반한 상담자의 문제 이해는 공감에 이르는데 턱없이 부족합니다.
공감을 한다면 말이 아닌 행동을 하게 되고 행동을 하다 보면 더 깊은 공감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니 진정한 공감을 하고 싶으면 먼저 행동이라도 하세요. 하루라도 혼자서 아이를 돌보면서 모든 집안 일을 해 보면 아내의 고통이 어떤 수준인지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 이후에 공감을 더 깊게 하게 만드는 다른 바람직한 행동으로 이어질 지, 공감을 방해하고 차단하는 회피 행동으로 이어질 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행동을 해야 공감의 가능성이 생깁니다.
태그 -
감성,
고통,
공감,
내담자,
동병상련,
동정,
마음,
부부 관계,
상담,
상담자,
이성,
측은지심,
행동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878
상담/심리치료 supervision을 하다보면 상담 회기에 자신이 내담자에게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다고 자책하는 상담자를 굉장히 자주 만나게 됩니다. 제가 볼 땐 충분히 공감하고 경청한 것 같은데 말이죠.
많은 상담자들이 자신이 내담자의 치유와 회복에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상담은 오히려 상담자가 아직 준비가 덜 된 내담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기 때문에 혹은 주려고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문제가 되곤 합니다.
비유를 들자면, 상담을 받고자 하는 내담자는 무언가를 잘못 먹어서 탈이 난 사람과 비슷합니다. 과식이나 상한 음식을 먹어 배탈이 난 사람에게 필요한 건 영양가 풍부한 다른 음식이나 건강보조식품이 아닙니다. 속을 게워내고 비운 뒤 금식을 통해 독소를 해독하고 속을 보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지나치게 기름지고 영양이 넘치는 음식을 억지로 먹이면 더 큰 탈이 날 수 있습니다.
상담도 이와 비슷해서 내담자가 심리적 고통과 어려움을 충분히 토로해서 마음을 비우고 다시금 회복의 기운을 채울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마칠 때까지 상담자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합니다.
마음이 조급한 나머지 겉으로만 보이는 내담자의 증상에 집착해서 이런 저런 프로그램, worksheet, 과제를 부여하는 건 내담자에게 도리어 해로울 수도 있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내담자의 마음 '속'이 편안해질 때까지 충분히 털어낼 수 있도록 들어주세요.
특히 마음이 조급한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빠른 처방과 조언을 요구할 때가 더더욱 들어야 할 때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614
상담에서 상담자가 많이 활용하는 자기 노출(Self Disclosure)은 매우 기본적이면서도 효과적인 기법이기는 하나 유의할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자기 노출은 공감을 돕기 위해 많이 사용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공감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만 엄격하게 제한해 사용해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게 만들 수 있는데 내담자는 그러기 위해 상담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라포 형성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내담자의 자기 탐색을 촉진하는 범위 내에서만 상담자의 자기 노출을 활용하는 게 좋습니다.
또한 상담자의 자기 노출은 내담자가 모델링을 통해 대안적인 대처 방법에 대한 정보와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상담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게 될 위험성에도 유의해야 합니다. 상담자가 자기 도취에 빠져 내담자에게 자랑하듯이 자신의 극복 사례를 이야기할수록 그 위험성이 더욱 커집니다. 특히 개인적인 고난을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깨달음을 얻은 경험이 있는 상담자의 경우에는 이 점을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상담자의 자기 노출 후에 내담자의 자기 탐색이 촉진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자기 노출의 수준입니다. 그러려면 상담자가 자기 노출을 할 때 그 사안의 객관적인 내용이나 결과보다는 동반되는 생각, 감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 노출 기법을 제대로 사용하는 건 의외로 쉽지 않으니 충분히 사전 연습하는 것이 좋고 무엇보다 상담자가 자기 분석을 통해 자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작업을 평소에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608
★★★★★
이미지 출처 : YES24
이 책의 제목인 '겐샤이'는 고대 힌디어로 누군가를 대할 때 그가 스스로를 작고 하찮은 존재로 느끼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 걸인을 보고 무심코 동전을 던져 주었다면 겐샤이를 실천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무릎을 꿇어 걸인과 눈높이를 맞춘 상태에서 그의 손에 동전을 조심스레 올려 놓음으로써 순수하고 무조건적인 형제애를 보여 준다면 겐샤이를 실천한 것이 될 수 있는거지요.
한 단어에 깃들어 있는 의미가 놀랍지 않습니까? 이 책에는 우리가 무심코 흘려들었던 단어들에 숨겨진 놀라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으로 유명한 스티븐 코비와 함께 자기 계발 교육 기관인 프랭클린 퀘스트사를 이끌었던 작가이자 자기 계발 강사인 케빈 홀이 썼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우연히 만난 천 파는 가게의 인도인 주인으로부터 배운 단어의 힘을 깨닫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 난 뒤 그는 이런 단어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그 결과를 이 책으로 엮었다고 하네요.
이 책에 나오는 단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겐샤이 : 작은 존재로 대하지 않기
* 길잡이 : 길을 발견하는 사람
* 나마스테 : 당신 안의 신에게 절합니다.
* 열정 : 기꺼이 고통받다
* 사페레 베데레 : 보는 법을 아는 것
* 겸손 : 비옥한 흙
* 영감 : 숨을 불어넣다
* 공감 : 다른 사람의 길을 걸어 보기
* 코치 : 사람들을 데려다 주기
* 올린 : 온 심장을 다해 행동하기
* 진실성 : 온전하고 손상을 입지 않은
제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의 책이어서 꽤 인상 깊었습니다. 케빈 홀이 각 단어에 대해 설명하면서 곁들인 이야기는 자기 계발 강사들이 하던 방식과 크게 다를 바 없었습니다만 이 책에 포함된 단어에 포함된 내용들이 참으로 마음에 와 닿더군요.
제가 얼마전에 소개한 영화 'Invictus(굴하지 않는다)'에도 나오는 영국 시인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시 구절이 이 책에도 나와서 더욱 좋았습니다.
상관하지 않으리라. 문이 아무리 좁고
온갖 형벌이 나를 기다릴지라도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내 영혼의 선장
흔한 자기 계발 서적에 질린 분들께 일독을 권하는 책입니다. 단어의 숨겨진 힘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특히 즐겁고 유익한 독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닫기
* 겐샤이는 누군가를 대할 때 그가 스스로를 작고 하찮은 존재로 느끼도록 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어느 누구도 작은 존재로 대해선 안 된다. 자기 자신을 포함해, 나 자신을 대하는 방식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그대로 반영된다.
* 나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는다. 나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볼 뿐이다.
* '믿는다(believe)'는 것은 '사랑한다(be love)'는 의미이다. 내가 나 자신을 믿을 때, 나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 우리의 가장 깊은 두려움은 우리가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가장 깊은 두려움은 우리에게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이 있다는 것이다.
*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알아보는 것은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 느낌은 더없이 행복하고, 자연스러우며, 분명하다. 그 느낌이 흘러넘칠 것이므로 당신은 알 것이다.
* 우리는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위대함에 경의를 표하기 전에, 먼저 우리 안의 위대함에 경의를 표할 필요가 있다.
* 어떤 것을 무보수로도 할 수 있다고 느낄 때, 그때가 바로 자신이 진정한 길을 가고 있는 때이다. 그리고 그때가 자신의 천성에 맞는 일과 연결되어 있을 때이다.
* 사람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지 않는 것이다.
* 열정이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는 자신이 가치 있게 여기는 일을 위해 기꺼이 고통받는 것이었다.
* 애정을 담고 자신을 기다리는 인간 존재나, 아직 마치지 못한 일에 대한 책임을 자각하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삶을 던져 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며, 그것을 이루기 위한 어떤 방법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 빛을 비추는 존재는 반드시 불에 타는 과정을 견뎌야 한다 - 빅터 프랭클
* 시작하는 것은 쉬운 부분이다. 어려운 부분은 끝까지 하는 것이다. 끝까지 마치는 것, 그것이 열정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한다.
* 가슴이 무엇을 믿을지를 머리가 결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 - 마일즈 먼로
* 문제는 '내가 어떻게 보일 것인가?'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느낄 것인가?'였습니다. 그것이 더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됩니다.
* 우리가 스스로 영향을 받지 않고서는 결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없다. 우리가 변하지 않고서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 가르치는 것은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것은 남에게 가르칠 수 없다. 내가 가지 않은 곳을 다른 사람에게 안내할 수 없다. 그리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둘 수 없다.
* 근육처럼 재능도 쓰지 않으면 약해진다.
* '영감을 주다'는 말의 어원은 '안으로 숨을 불어넣다'에 있다. 그리고 '용기를 주다'의 어원은 '심장에 무엇을 보태다'이다.
* "나는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을 잊을 것이고 당신이 한 행동도 잊을 것이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어떻게 느끼게 했는가는 결코 잊지 못한다는 것을" - 마야 엔젤루(미국 시인)
* 우리는 영적인 경험을 하는 인간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인간의 경험을 하는 영적 존재이다 - 테야르 드 샤르댕(프랑스의 철학자이자 가톨릭 예수회 신부)
* 행동은 두려움이라는 사자를 평정이라는 개미로 바꿀 수 있다.
* 의미 있고 중요한 삶에서 우리가 원하고 추구하는 많은 것들은 바로 우리의 쾌적 범위 경계선 너머에 있다.
* 약물 남용이나 중독, 비만, 부채는 스스로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극복할 수 없다. 한 번에 조금씩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온 힘을 다해서 해야만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일단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결정했다면 온 심장을, 온 힘을, 온 정신을 쏟아야 한다.
* 무력감과 좌절감의 주문을 깨는 데 필요한 전부는 이것이다. 실패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행동하라.
* 너희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으로 살게 된다.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울고 소리쳐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 자기 자신이 되라. 다른 사람의 자리는 이미 다 찼다 - 오스카 와일드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태그 -
겐샤이,
겸손,
공감,
길잡이,
나마스테,
단어,
마야 엔젤루,
마일즈 먼로,
사페레 베데레,
스티븐 코비,
열정,
영감,
오스카 와일드,
올린,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
자기 계발,
진실성,
케빈 홀,
코치,
테야르 드 샤르댕,
프랭클린 퀘스트,
힌디어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576
★★★★★
이미지 출처 :
YES24
경제학자이면서 동시에 미래학자로 이름이 높은(경제학과 국제관계학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적도 없지만) 세계적 석학, 제러미 리프킨의 2004년 작입니다.
2011년에 나온
'3차 산업혁명'을 먼저 읽었으니 조금은 뒷북 독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3차 산업혁명에서 본격적으로 다룬 수소 에너지에 대한 기대를 이 책에서도 살짝 엿볼 수 있더군요. 물론 두 책의 핵심 내용은 다르기 때문에 순서 상관없이 읽으셔도 됩니다.
이 책은 경제 성장, 개인의 부, 자율성, 독립을 중시하는 아메리칸 드림이 점차 쇠퇴하고 지속 가능한 개발, 삶의 질, 상호 의존 관계, 여가 활동, 심오한 놀이(deep play)를 중시하는 유러피안 드림의 세계가 오고 있음을 증명(?)하는 책입니다.
실제로 GDP, 생산성, 삶의 질, 교육과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EU가 미국을 넘어서고 있다는 걸 다양한 source를 통해 호소력있게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EU가 추구하는 바가 옳은 길이라고 생각하기에 유러피언 드림을 달성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이 책의 뒷부분에 동아시아의 행보에 대한 예상이 있는데 역시나 EU의 길을 따랐으면 좋겠습니다.
민음사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애독서라는 마케팅 전략을 사용하던데 굳이 안 그래도 좋은 책입니다. 제레미 리프킨의 책은 모두 한 번쯤 읽어봐야 할 만큼 좋은 책들이죠. 개인적으로
'소유의 종말(2000)'도 추천합니다. 공감의 시대는 저도 아직 못 봤는데 조만간 읽어볼 예정입니다.
닫기
*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모더니즘의 이념적 벽을 허물어 그 속의 포로들을 해방시키긴 했지만 그 해방된 포로들이 갈 만한 장소를 마련해 주는 데는 실패했다. 그 결과 우리는 존재론적 방랑자가 되어 무엇인가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을 애타게 찾으며 경계 없는 세계를 방황하게 됐다.
* 유럽인들에게 놀라운 점은 미국인들이 성서를 문자 그대로 믿는다는 점이다.
* 미국인들은 선과 악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그 기준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종교적 확신이 있기 때문에 이 세계를 선과 악이 끊임없이 싸우는 전장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전쟁의 명분을 국민들에게 설득할 때 미국 정부는 언제나 선과 악의 대결 개념을 설파해 왔다.
* 대부분의 경우 미국인들이 영원한 낙관론자인 것은 선민 의식 때문이다.
* '즉시 성공'의 욕구는 미국 문화 전체에 스며들고 있다. 그래서 사회 비평가들은 대다수 미국인들이 실제로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메리칸 드림이 아니라 '아메리칸 백일몽'이라고 주장한다.
* 미국은 언제나 '기회 균등'의 나라였지 '결과 균등'의 나라가 아니었다. 미국의 격언처럼 '가라앉지 않으려면 헤엄을 쳐야 한다'는 것이다.
* 부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어서 미국과 유럽의 접근 방식이 확연히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가족과 관련된 복지 혜택이다. 여성 또는 남성의 출산 및 육아 휴가를 의무로 규정하지 않는 선진국 세 나라 가운데 하나가 미국이다.
* 유럽 전체의 평균 휴가 기간은 연 6주이며 대다수의 유럽 국가에서 연방법으로 휴가를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고용주가 직원에게 휴가를 제공하는 것이 법적 의무가 아니다.
* 미국인들에게 남은 것은 종교적 열정뿐이다. 과거 종교적 열정이 개인의 성공과 통합되었을 때는 선민 의식이 미국인들의 지위 상승과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 미국인들이 유럽을 생각할 때는 문화나 역사적인 배경을 떠올린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무역이나 정치를 생각할 때는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개별 국가로 사고의 틀이 바뀐다. 무역과 정치를 유럽의 개별 국가와 연관짓는 이런 옛 사고방식은 대륙 전체로서 하나의 수퍼 파워가 된 유럽의 새로운 현실과 모순된다.
* GDP의 단점은 국민들의 생활 수준을 실제로 향상시키는 경제 활동과 그렇지 않은 경제 활동을 구분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 삶의 질을 결정하는 기준이라면 경제 전반이 관련이 있지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교육, 건강, 자녀 양육, 치안 등이다. 이런 기준 대부분에서 EU는 이미 미국을 앞섰다.
* 선진국 가운데서 모든 국민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나라는 미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뿐이다.
* 미국에서는 자율, 이동성, 자유, 이 세 가지가 늘 함께 붙어 다닌다.
* 원근법은 인간의 의식을 수평적으로 바꿔 현세를 중시하고 각자가 속세의 삶에서 스스로의 주인이 되도록 만들어 놓았다.
* 미국인들은 효율성을 정말 좋아한다. 효율성은 미국인들의 특질이 되었고 인간으로서의 존재 자체에 각인되어 있다.
* 유럽인들은 종종 왜 미국인들이 살기 위해 일하기보다 일하기 위해 살까 하고 궁금해한다. 그 대답은 효율성에 대한 미국인들의 깊은 애착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인들은 효율성이 높을수록 더욱 하나님께 가까워진다고 믿는다.
* 미국인들은 일을 함으로써 행복을 구한다. 반면 유럽인들은 존재함으로써 행복을 구한다. 미국인들에게 행복이란 개인적 성취, 물질적 성공과 결부되어 있다. 반면 유럽인들에게 행복은 서로간의 돈독한 관계 및 공동체 유대감과 결부되어 있다.
* 미국인들은 겉보기에 상반되는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생활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 하나는 존 윈스럽이 설파한 종교적 열의와 영구 구원에 대한 믿음이 특징이고, 다른 하나는 벤저민 프랭클린이 강조한 실용적 세속주의, 합리적 행동, 물질적 발전에 대한 믿음이 특징이다. 개혁신학과 계몽주의 철학이 어우러질 수 있었던 것은 둘 다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 중요한 것은 사유 재산 제도로 인해 현대 시장이 형성된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 사유 재산권의 신성함에 기초한 사회라는 개념은 유럽 특유의 산물이다.
* 사유 재산을 자유와 동격시하는 유럽의 계몽 사상을 가장 순수하게 따른 사람들이 결국 미국인들이었다.
* 자본주의 무대가 손상되면 아메리칸 드림은 타격을 받는다.
* 사이버 공간을 통해 모두가 연결되어 있고 정보가 광속으로 교환되는 세계에서는 물질이 아니라 시간이 가장 귀한 자산이다.
* 네트워크 모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상호 호혜와 신뢰가 필수적이다. 네트워크 관계의 핵심은 신뢰다. '위험 부담은 구매자가 진다'는 개념이 '파트너십에 의해 발생하는 취약점을 누구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개념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 네트워크 모델로의 전환이 필요한 궁극적인 이유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 지금까지 EU가 반대자들을 좌절시키고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하고 심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 조직 모델이 지난 반세기 동안 '과정 지향적'이었기 때문이다.
* 전통적인 민족국가는 국경 내부의 다양한 이해 관계들을 통합하고 동화하며 통일시키는 목적을 갖고 있지만 EU는 그런 임무를 갖고 있지 않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EU의 역할은 일반적인 민족국가들의 역할과 정반대다. EU의 정치적 특징은 다양한 활동과 이해 관계의 흐름을 촉진하고 거기서 일어나는 갈등을 조정하는 데 있다.
* 문화란 과거나 현재나 시장과 정부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시장과 정부가 문화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시장과 정부는 부차적인 존재다. 시장과 정부는 문화가 만들며 문화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 신세대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조직을 시민사회기구(CSO : Civil Society Organization)'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또 그들은 문화를 개발하고 재생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들의 활동을 자원 봉사가 아니라 서비스로 규정한다.
* 유러피언 드림의 가장 어려운 시험은 이민 문제가 될 것이다. 문화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말로 부르짖기는 쉽지만 외부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해 자신들의 공간과 부를 나눠 갖기는 결코 쉽지 않다.
* 지금 이 순간의 삶의 질과 개인적 변화가 먼 미래의 후손들을 위한 희생보다 중시되는 포스트 모던 세계에서 유럽인들이 후손들에게 혜택이 가도록 자신들의 현재 이익을 포기할 수 있을까? 유러피언 드림의 성패는 주로 유럽의 현 세대가 출산율과 이민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중세에 기독교적 영구 구원의 꿈을 활성화시킨 사회적 접착제는 신앙이었다. 근대에 와서는 물질적 진보를 위해 누구나 추구한 것이 이성이었다. 그러나 지금 도래하고 있는 새로운 시대에는 공통된 취약성을 보호하고 세계화 의식을 갖기 위한 수단이 바로 공감이다.
* 이타심은 공감만큼 깊지 않다. 따라서 이타심으로는 인간 의식의 변화를 이끌어내기에 역부족이다.
* 세계 전체 국가의 절반 이상이 다중 국적을 허용한다.
* 또다시 진보적인 민주당 대통령이 선출된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유럽의 안보에 대해 궁극적인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을 포함해서 패권주의 외교 정책에서 크게 벗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 과거나 지금이나 민족국가의 목표는 경제 성장과 재산 축적이다.
* 초국경 평화 공원들은 자연의 경계가 국경을 비롯한 모든 정치적 경계를 초월하며, 하나의 온전한 시스템으로서 재결합될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각국 정부들이 인정한다는 증거다.
* 실제로 중국에는 '개인주의'라는 단어가 없다. 그것과 의미가 가장 가까운 단어는 '이기주의'다.
* 보편적 인권은 개인의 도덕성과 윤리가 보편화되어야만 제대로 확립될 수 있다.
*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이의 80퍼센트가 곡물 생산이 남아도는 나라에 살고 있다.
* 결국 인간의 반응은 다음 두 가지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특정 활동이 가져오는 시스템 전체에 대한 해로운 결과가 인간 서로간 또는 지구에 대한 취약성과 책임의 공동 인식으로 이어지는 것이 그 첫째다. 둘째는 재앙이 불러오는 두려움으로 피포위 의식과 생존 전쟁에서 자신만 보호하려는 사고방식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둘째의 경우는 그런 악순환이 반복됨으로써 인류와 세계 전체에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 미국인들은 아메리칸 드림이 목숨을 바칠 가치가 있는 꿈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은 삶을 추구할 가치가 있게 해 주는 꿈이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태그 -
3차 산업혁명,
Deep Play,
GDP,
The European Dream,
경제 성장,
경제학자,
공감,
공감의 시대,
국제관계학,
노무현,
독립,
미래학자,
민음사,
보편적 인권,
부,
삶의 질,
상호 의존 관계,
생산성,
심오한 놀이,
아메리칸 드림,
여가,
유러피언 드림,
이타심,
자율성,
제러미 리프킨,
지속 가능한 개발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549
성인 내담자는 대체로 자신의 정서 상태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상담자가 내담자의 정서 상태를 알아채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동/청소년 내담자의 경우에는 정서 분화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거나 어휘력의 부족으로 인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제대로 표현하는 게 결코 쉽지 않죠.
내담자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인색(?)하다보니 상담자도 자연스럽게 밖으로 드러나는 내담자의 행동에 치중하게 되고 숙련된 상담자도 인지와 사고 내용만을 중심으로 상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아동/청소년이라고 해도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담자가 상담 중 사용하는 감정 단어를 그냥 흘려 듣지 않도록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아동/청소년(특히 청소년) 내담자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감정 단어는 '죽겠다'인데 보통 두 가지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실제로 심적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입니다. '힘들어 죽겠다'. '괴로워 죽겠다', '민망해 죽겠다'라고 구체적인 감정과 연결해 사용되면 그나마 알아듣기 편하지만 앞의 내용은 생략되고 그냥 '죽겠다'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내담자가 심적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죽겠다'를 사용할 때는
앞에 생략된 감정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상담자의 정서적 지지를 원할 때입니다. 구체적인 감정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내담자와 라포를 형성하는데 중요하기 때문에 지나치지 말고 공감, 경청, 반영 등으로 다뤄야 합니다. 게다가 상담을 받으러 오는 대부분의 아동/청소년은 가정이나 학교에서 충분한 정서적 지지를 받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담자는 내담자의 affection need를 충족시켜주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내담자가 상담 중 '죽겠다'는 감정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 우선 실제로 심적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인지 먼저 확인하고 그게 아니라면 상담자의 정서적 지지를 원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에 따라 대응하면 됩니다.
태그 -
감정 단어,
경청,
공감,
내담자,
반영,
상담,
상담자,
아동 상담,
정서,
정서 분화,
청소년 상담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470
MMPI-2에서 과장된 자기제시 척도로 번역되는 S(Superlative Self-Presentation)척도는 1995년에 Butcher & Han이 개발했으니 사실은 이미 20년이 다 되어 가는 오래된 척도입니다.
이 척도를 개발할 때 극단적으로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 취업 응시자 집단(항공사 파일럿 응시자들)과 MMPI-2의 규준 집단 반응을 비교하여 반응율의 차이를 보이는 문항을 선별하여 예비 척도를 구성했더랬죠.
보통은 방어적인 응답 경향을 점검할 때 K척도를 많이 해석하지만
제 경험 상 진짜 방어 척도의 갑은 바로 이 S척도입니다. 왜냐하면 K척도의 문항들은 370번 문항 앞쪽에 포진되어 있지만 S척도의 경우는 검사 전반에 걸쳐 퍼져 있기 때문에 S척도가 상승했다는 건 문항에 응답하는 내내 시종일관 방어적인 태도를 견지했다는 말이거든요.
S척도가 70T에 근접하거나 over하는 경우(임상 장면에서 S척도가 70T를 넘어서면 무효 프로파일을 고려해야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70T에 근접하는 경우만 고려해도 충분합니다) 거의 모든 임상, 재구성 임상, 내용 척도가 50T 아래로 주저 앉기 때문에 해석 불가능해집니다.
특히
임상 소척도에서 다음의 척도들이 65T 이상으로 상승할 때는 내용 소척도의 TRT1(낮은 동기), TRT2(낮은 자기 개방) 척도의 상승과 상관없이 심리치료/상담 장면에서 rapport를 형성하는 것이 매우 어려우니 각오를 단단히 하시기 바랍니다.
* Hy1(사회적 불안의 부인)
* Pd3(사회적 침착성)
* Pa3(순진성) : 이건 항상 상승하지는 않으니 참고만 하세요.
* Ma3(냉정함)
마지막으로 상담을 하시는 분들께 tip을 하나 드리자면,
S척도가 70T에 근접할 만큼 상승한 남자 중에 보충 척도에서 ES, GM 척도가 70가 넘어서는 분들은 가부장적이고 완고하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특성을 보이는데 정작 상담자 앞에서는 매우 협조적이고 예의바르게 행동하기 때문에 혼란에 빠지는 상담자가 많습니다. 이런 profile을 보이는 분을 상담할 때는 어줍잖은 설명, 해석, 직면, 교육 등은 전혀 효과가 없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다른 내담자들보다 더 한층 공감에 신경써야 하는 내담자입니다.
태그 -
Butcher,
ES,
GM,
Han,
Hy1,
Ma3,
MMPI-2,
Pa3,
Pd3,
profile,
rapport,
S,
Superlative Self-Presentation,
S척도,
TRT1,
TRT2,
공감,
과장된 자기제시 척도,
교육,
낮은 동기,
낮은 자기 개방,
내용 척도,
냉정함,
사회적 불안의 부인,
사회적 침착성,
상담,
상담자,
설명,
순진성,
심리치료,
심리평가,
임상 척도,
재구성 임상 척도,
직면,
해석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453
상담을 하면서 메모를 하는 문제로 고민하는 상담자가 의외로 많습니다. 메모를 하지 않자니 내담자의 말을 따라가기 벅차고, 혹시라도 핵심을 놓치지 않았을까 두려워 복기하자니 메모를 해야 한다는 불안이 있고, 그렇다고 대놓고 메모를 하자니 내담자가 취조받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신경이 쓰입니다.
메모를 하는 동안은 짧은 찰나의 순간이기는 해도 눈맞춤이 끊어지고 내담자에게서 나오는 비언어적인 정보를 놓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을 겁니다.
초보 상담자일수록 메모를 하는 문제로 고민을 많이 하는데 예전에 ...라는 글에서 메모는 최소한으로 하라는 조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모를 포기할 수 없다면 상담자만 메모를 할거냐 말거냐로 고민하지 말고 좀 더 전향적으로 내담자도 필요하면 메모를 하도록 허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실제로 상담자의 말을 적어가고 싶거나 뭔가 통찰을 얻었을 때 곧바로 메모를 하고 싶어하는 내담자가 적지 않으나 상담 장면에서는 상담자만 메모를 할 수 있는 걸로 생각하고 메모를 해도 되냐고 물어보지조차 못하는 내담자가 많습니다.
훈련받은 상담자도 상담 시간에 나왔던 이야기의 흐름을 경청으로 따라가면서 요점을 파악하고 요약해서 반영하고, 공감하는게 쉬운 일이 아닌데 내담자가 그걸 기억하고 일상에서 활용하고 연습하고 일상에서 깨달은 걸 다음 상담 때 정리해서 가져오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한 기대입니다.
그래서 저는 내담자에게 언제나 메모지와 필기구를 가까이 두고 뭔가 이야기 할거리가 생각나면 메모를 해서 상담 시간에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필요하면 상담 시간에도 자유롭게 메모를 하라고 허용하는 편입니다.
그렇게 하면 상담자가 메모하는 동안에 끊어지는 상호작용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내담자의 눈치를 더 이상 살피지 않아도 됩니다.
메모를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지엽적인 문제로 고민하기보다는 좀 더 핵심적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내담자에게도 메모를 허용하는 것이 더 치유적입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407
공감이 뭔지 모르는 상담자는 사실 상담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공감은 상담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개념이고 모든 상담 관련 책과 자료의 맨 앞에 나오는 핵심 주제니까요.
그런데 사실 공감만큼 잘못 이해되고 있는 개념도 많지 않을 겁니다.
현장의 상담자가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는 공감을 단어 뜻 그대로 내담자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내담자가 과거의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흘리면 상담자도 감정에 북받쳐서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그걸 공감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죠.
하지만 제가 볼 때 그건 공감이 아닙니다. 그건 공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공명입니다. 소리굽쇠를 두드린 후 다른 소리굽쇠에 가져다 대면 그 소리굽쇠도 함께 울리는 공명과 같은 거지요.
물론 공명도 공감이 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감정의 공명이 아닌, 내담자가 느끼고 있는 감정의 행간을 흐르는 핵심 메시지를 느낄 수 있어야 진정한 공감이라고 할 수 있죠.
내담자가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거기에 반응해서 상담자도 울컥하지만 내담자의 슬픔이 (인지적, 정서적, 영적으로 통합되어)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내담자에게 공감한 것인지 상담자의 역전이 때문에 의식 수준으로 올라온 자신만의 또 다른 감정인지 구분하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공감의 이해와 역전이에 의한 공명은 어떻게 구분할까요? 상담자 스스로 평소에 상담을 꾸준히 복기하면서 동시에 자기 분석을 통해 자신의 전이-역전이 패턴을 파악해놔야 합니다. 그래야 상담 중 결정적 순간에 그것이 공명인지 공감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지속적인 훈련은 당연히 필요한거구요.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249
내담자가 자신이 받고 있는 고통을 토로하면서 눈물을 흘릴 때 감정의 동요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 상담자는 거의 없을 겁니다.
그래서 티슈를 뽑아서 건네주고 싶기도 하고 정말 힘드실 것 같다고 위로를 건네고 싶기도 하고 때로는 상담자의 윤리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안아주거나 어깨나 등을 토닥이면서 힘을 주고 싶기도 할 겁니다.
그런데 상담자가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하는 건
상담자는 내담자를 위로하려고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모두
위로를 공감과 착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입니다.
설사 상담자가 위로를 할 수 있다고 해도 그런 어설픈 위로가 도움이 된다면 내담자는 굳이 그 아까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상담자를 찾지 않았을 겁니다. 가족이나 친구들도 그런 위로는 충분히 제공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위로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기 때문에 전문가를 찾아온 것이고 상담자는 그런 내담자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니 티슈를 뽑아서 내담자의 눈물을 닦아줄 그 시간에 마음으로는 내담자의 힘든 마음을 공감하고 마음의 흐름을 충실히 따라가면서 머리로는 냉철하고 명확하게 내담자가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된 원인,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 이러한 문제의 기저에 다양한 인지 오류나 역기능적 신념들이 있지 않는지 탐색해야 합니다.
위로는 가족, 친지, 친구, 종교인에게 맡겨두세요. 상담자가 할 일은 위로가 아니라 공감과 분석의 이중주입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008
서양 문화에서 출판되는 자기 계발서의 문제점은 지나치게 '독립'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려 하거나 다른 사람의 인정과 승인을 갈구하는 사람을 몰아부쳐서 오롯하게 혼자 서라고 push하곤 하죠.
그에 반해 우리나라 저자에 의해 출판되는 자기 계발서 류의 책들이 강조하는 핵심은 대개 '관계 맺기'입니다. 시작이 어떻게 되었든 결국은 관계 맺기를 통해서만 진정한 치유가 가능하다고 강조합니다.
저는 그런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관계 맺기가 근본적인 치유 방법이 아닐 뿐 아니라 오히려 관계 맺기에 대한 집착이 더 큰 상처를 입히고 건강하게 살 수 있었던 사람들까지 멍들게 하고 있다고까지 생각합니다.
물론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관계 맺기가 치유의 수단이 될 수 있으며 관계 맺기 자체도 아무런 무리 없이 잘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건강하니까요.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굳이 관계 맺기에 의존할 필요가 없으며 관계 맺기를 통해 더 행복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가 깊고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지나친 관계 맺기가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관계 맺기는 긍정적인 에너지와 공감, 배려만을 전달하지 않습니다. 냉정한 자기 돌아보기, 타인의 평가, 기대의 조정과 같은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도 함께 전달하는데 그들은 그걸 감당한 힘이 아직 없습니다.
심리적,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혼자서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관계 맺기를 통한 해결책을 강요하면 지나친 의존이 발생하거나 희생과 착취의 악순환 고리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허물어지기 일보직전의 진흙성이 과연 강철 교각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목표가 진정한 독립이든, 자존감의 회복든, 행복 찾기이든 간에 해결책은 온전한 '자립'이지 '관계 맺기'가 아닙니다. 관계 맺기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해도 자립이 우선입니다.
사실 관계 맺기를 악용하는 상담자, 종교인, 멘토들부터가 더 문제입니다만....
태그 -
건강,
공감,
관계,
관계 맺기,
독립,
배려,
자기 계발,
자존감,
치유,
평가,
행복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2918
상담에서 상담자가 내담자가 하는 말을 분석하고 어떻게 개입을 해야 할 지 방법과 시점을 찾아내는 것은 당연히 중요합니다. 상담은 단순한 수다가 아니니까요. 제대로 된 도움을 주기 위해 상담자는 항상 최대 속도로 두뇌를 회전시켜야 합니다.
거기에 내담자가 하는 말에 공감을 하려면 내담자의 감정선을 잘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오감을 곤두세우고 초집중하여 내담자의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그래서 흔히들 공감과 경청이 한 몸처럼 붙어 다닌다고 합니다.
그런데 내담자가 하는 말을 분석하는 것과 공감을 위해 내담자의 감정 흐름을 따라가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물론 둘 다 중요합니다. 숙련된 상담자는 이 두 가지 새를 모두 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background에서는 내담자가 하는 말의 내용을 분석하면서 동시에 내담자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죠. 하지만 이 경우에도 감정에 대한 공감이 먼저입니다. 즉 background에서 감정에 공감하고 전면에서 인지적으로 내용 분석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앞에 앉은 상담자가 자신의 말을 분석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내담자도 자신이 하는 말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검열하게 됩니다. 그러면 진정한 소통이 일어나지 않고 상담자가 내담자와 전략 싸움을 하게 됩니다. 소모적인 밀고 당기기의 시작이죠.
특히 분석과 공감을 한꺼번에 할 수 없는 초보 상담자는 분석보다는 공감에 더 치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초보 상담자는 자신감이 부족한 상태에서 내담자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걸 줘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분석만 하려고 애씁니다. 상담 경험이 부족한 초보 상담자가 분석에만 치중하게 되면 나타나는 전형적인 결과는 임의 탈락입니다.
그러니 분석과 공감을 한꺼번에 하는 것이 어려울 땐 공감만 붙잡으세요. 경험이 쌓이면 분석은 자연스럽게 하게 되니까요.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2636
★★★☆☆
이미지 출처 :
YES24
이 포스팅을 읽기 전에 다음의 질문에 답해보시기 바랍니다.
1)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해외에 있는 사람이 더 싸게 할 수 있는가?
2) 컴퓨터가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더 빨리 할 수 있는가?
3)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은 풍요의 시대에 비물질적이며 초월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인가?
1)번과 2)번에 '그렇다', 3)번에 '아니다'라고 답을 했다면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암울한 것이라고 이 책의 저자인 Daniel Pink는 이야기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분석적, 해석적, 논리적 기능이 요구되는 정보화 사회를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위의 문장에서처럼 지식 근로자들(특히 IT종사자들)이 수행하고 있는 많은 일들이 인도와 아시아의 저임금 국가로 아웃소싱되거나 자동화되고 있고 그 속도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는 이른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시대에는 좌뇌-우뇌 균형 내지는 우뇌 우선 능력이 우대받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출처 : http://johnfenzel.typepad.com/
즉 '정보화' 사회에서 '컨셉과 감성'의 사회로 이동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미래 사회의 인재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디자인, 스토리, 조화, 공감, 놀이, 의미
뭔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러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 대우받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6가지 조건에는 동감합니다.
삽화나 그림이 적절하게 추가되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충분히 쉽게 씌여져 있고 내용도 이해하기 쉬운 편입니다. '폴 에크만', '로버트 스턴버그', '다니엘 골먼', '빅터 프랭클' 등 제게는 익숙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참신함은 많이 떨어지지만 저자가 이런 단편적인 지식들을 조합해 새로운 '스토리'를 만드는 것의 중요성을 책 안에서도 강조했기 때문에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
이 책이 impact가 떨어진다고 느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책이 나온 시점이 2005년인데 이미 5년 사이에 어느 정도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시대가 목전으로 다가왔다고 제가 느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톰 피터스가 추천사에서 썼듯이 상당히 새롭고 놀라운 미래 예견이었을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미래(라고 쓰고 현재라고 읽는다) 트렌드를 빠른 시간에 살펴보기 위한 속독형 예측서로 괜찮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대부분의 미래 예견서가 그렇지만 '그래서 어쩌라고?'의 질문에 뾰족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뇌 우선의 삶을 살려면 어떡해야 하는지, 공감 능력을 배양하려면 어떡해야 하는지, 의미를 찾으려면 어떡해야 하는지, 디자인 우선의 사고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별 제안이 없습니다.
노력해도 성취할 수 없는 조건들이라면 6가지 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는 사람만이 성공하는 더러운 세상~만 남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별 세 개 이상을 줄 수가 없더군요. 미래를 앞서 내다보는 뛰어난 예지력을 갖춘 리더는 많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기까지 가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는 대안 제시형 리더가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여전히 아쉬움을 남기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그 -
A Whole New Mind,
Daniel Pink,
공감,
놀이,
다니엘 골먼,
다니엘 핑크,
디자인,
로버트 스턴버그,
빅터 프랭클,
새로운 미래가 온다,
스토리,
의미,
조화,
폴 에크만,
하이컨셉,
하이터치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2224
제가 써 놓고도 제목이 영 낚시스럽네요. 쩝...
저는 상담자의 진정한 내공이 바로 자신보다 나이가 (상당히) 많은 남자 내담자를 끌고 갈 수 있느냐로 발휘된다고 봅니다.
물론 내담자의 특성과 상담의 목적에 따라 분명 차이가 있을테니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상담 상황에서 말이죠.
전반적으로 여성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상담을 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원래 대부분의 여성들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다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는데도 거리낌이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일단 상담 장면에 들어오면 그야말로 도움을 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임하는 경우가 많죠. 여성 내담자의 경우는 상담자가 공감과 경청만 충실히 해도 끌고 나가는 것이 한결 쉽습니다.
그 다음, 남자 아동 및 청소년의 경우에도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부모에 의해 억지로 끌려 오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때로는 협조가 잘 되지 않고 상담 초기에 말문을 열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남자 어른 만큼 어렵지는 않습니다. 공통 분모만 잘 찾아내서 상담자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만 하면 오히려 다른 어떤 유형의 내담자보다도 상담의 효과가 금방 나타나는 내담자군입니다.
남자 어르신(노인)의 경우는 내담자가 걸어온 길을 긍정하고 삶의 지혜를 인정하는 마음만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다면 오히려 더 마음 편하게 상담에 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담자가 섣불리 어르신을 교육하려고 억지 부리지만 않는다면 역시 그리 어렵지 않게 상담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담자에 비해 10년 이상 나이가 많은 남자 내담자는 무엇 하나도 녹록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장유유서 정신이 살아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상담자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면 일단 자신의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네가 인생을 알아? 분위기)에 학력이나 학벌, 자격증과 같은 부수적인 도구가 필요하기도 합니다(개인적으로 아주 싫어합니다만 확실히 효과가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겠군요). 게다가 입 싼 남자를 경멸하는 사회 분위기 상 자신의 문제를 미주왈 고주왈 늘어놓는 남자 어른이 별로 많지 않고 그러다 보니 상담을 받으러 와도 자신의 문제를 조리있게 잘 표현하는 내담자가 없어요. 그래서 내담자의 문제를 파악하는 것도, 상담의 목표를 정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런 내담자와 빠른 시간에 라포(Rapport)를 형성하고 상담자를 신뢰하는 분위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할 수 있도록 내담자를 이끄는 상담자는 고수임에 틀림이 없죠.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1722
사회 심리학자인 윌리엄 이케스가 쓰고 서울대 권석만 선생님이 번역하신 책으로 공감적 추론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회 심리학, 그것도 관련 분야 전공자에게만 흥미를 유발할 것 같은 책이라서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실망했지만 그래도 궁금한 분들을 위해 북 크로싱합니다. 무엇보다 18,000 원이라는 살인적인 가격이 구입을 망설이게 하니까요.
이 책에 대한 내용은
'리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국민도서관 이용)가 적용됩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의 북 크로싱 방법에 있는 내용대로 하시면 됩니다.
* 월덴 3의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하는 방법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1645
★☆☆☆☆
이미지 출처 :
YES24
이 책의 대상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실험실에서 일반화 가능성을 최대화하기 위한 실험 방법론'에 관심이 있는 사회 심리학 전공자입니다.
나머지(다른 심리학 전공자와 일반인)는 읽을 필요가 별로 없고 내용이 재미있지도 않습니다. 내용 자체가 좀 중언부언(저자인 윌리엄 이케스의 글솜씨가 별로인 것 같습니다)이라서 상세하게 설명은 되어 있지만 좀 지루합니다. 군더더기가 너무 많아요. 특히 무려 80페이지가 넘는 1부에서 방법론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고 지리하게 하기 때문에 끝까지 읽고 싶은 의지가 사라집니다.
제목과 책에 대한 설명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어적, 비언어적 의사소통과정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추론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책을 기대할텐데 별로 그런 내용은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치료자의 입장에서 환자/내담자를 보다 더 공감적으로 추론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는데 그런 내용도 없습니다. 그저 자신이 개발한 방법을 치료자를 훈련하는 과정에 적용하면 공감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는 막연한 제언 뿐입니다. -_-;;;;
닫기
* 직접적 정보와 사전 정보 모두가 공감적 추측에 중요하다
-> 직접적 정보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더 중요
-> 과거에 얻은 정보는 친구들 사이에서 더 중요
* 배경 지식의 양보다는 친밀도가 중요하다
* 낯선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데 필요한 최소 시간은 30분이다
* 오래 산 부부일수록 공감 정확도가 오히려 떨어진다
-> 결혼 생활에서 남편과 아내는 다른 방향, 다른 속도로 변화하며 이는 다른 성역할과 그에 따른 역할의 변화에 기인한다. 따라서 태도, 관심, 가치, 감정이 변하게 되어 점차 교류가 줄어들게 된다.
* 성별은 공감 정확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
-> 단 공감적이어야 한다는 성역할 기대에 대한 상황적 단서가 주어지는 상황에서는 여성이 우위
-> 남자들도 충분한 동기 유발만 되면 여자와 비슷한 수준의 공감이 가능
* 공감 정확도가 높은 사람들은 자폐증의 징후를 갖지 않을 뿐 아니라 귀인 복잡성에서 높은 점수를 얻으며, 다른 사람을 잘 믿기보다는 의심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다. 남자의 경우에는 언어 지능이 높은 사람들이 비교적 공감 능력이 우수하다.
* 상대방의 생각이나 감정이 우호적이어서 관계에 위협이 되지 않을 때에는 공감 정확도가 높을수록 관계가 좋아지지만 상대방의 생각이나 감정이 고통스러운 것이고 관계에 위협이 될 때는 공감 정확도가 높을수록 관계가 악화된다.
* 내담자와 치료자가 대화한 모든 내용을 분명하게 들을 수 있는 한 공감 정확도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연구 결과입니다. 즉 전화 상담이나 대면 상담이나 공감을 하는데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말인데 저는 지금도 전화 상담을 하면 내담자의 마음이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안개 속을 더듬으면서 나아가는 느낌이에요. 대면 상담과는 천지차이죠. 체험적으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네요.
이 책을 읽고 저자인 윌리엄 이케스에 대해 내린 제 나름의 결론은,
"왕 외골수구나~"
윌리엄 이케스는 자신의 연구 방법에 대한 자신감이 지나쳐서 이 책의 뒷부분에 가서는 과학자로서의 중립성마저 살짝 흔들리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1970년대에 비언어적 행동이 언어적 행동보다 중요하다는 주장이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하다고 비판하면서 그런 주장은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의 글자를 정보의 유실 없이 자막 없는 움직이는 화면으로 대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p305)고 억지를 부립니다. 아시다시피 언어적 행동과 비언어적 행동은 공감적 추측에 모두 중요하고 맥락에 따라 상대적인 중요성이 달라질 수 있지요. 누가 비언어적 행동만 있으면 된다고 주장했답니까?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번역은 역시나 권석만 선생님답게 깔끔하게 잘 되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원저 자체의 재미없음을 상쇄하지는 못했습니다. 게다가 Asperger's Syndrome을 '아스페르거'라고 번역하셨던데 DSM-IV를 비롯한 대부분의 정신병리학 교과서에서 이미 '아스퍼거'라는 용어로 통일해서 사용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본다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권석만 선생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번역을 하신 것인지 의심까지 들더군요.
게다가 가격이 무려 18,000원입니다. 양장본도 아닌데... 그야말로 터무니 없는 가격입니다. 권석만 선생님이 돈에 욕심을 내실 분은 아닐텐데 출판사가 돈독이 잔뜩 오른 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엄청난 가격이죠.
사서 읽는 것은 비추천입니다.
덧. 방법론 상으로 볼 때 의도를 숨기고 비디오 촬영을 한 뒤에 그 사실을 알리고 동의서를 받고 나중에 평가를 하는데 몰래 촬영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에 평가를 하면 오염되지 않을까요?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실험자가 나를 속였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어떤 방향이든 자연스러운 반응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저라면 차라리 평가까지 다 한 뒤에 설명을 하고 동의서를 받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안 했을까요?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1644
상담에서 공감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만큼 상담자는 제대로 된 공감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단련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잘못된 공감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무반응
문화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Sue, 1990). 내담자가 말을 할 때에는 짧더라도 반응을 보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담자는 자기가 한 말이 가치가 없다고 여기기 쉽다.
-> 사실 상담을 하다보면 자주 하는 실수 중 하나입니다. 이건 내담자에게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떤 시점에서 내담자의 말에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몰라 놓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결국 상담자는 항상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죠(그러니 장시간의 상담을 하고 나면 상담자가 파김치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
주의를 분산시키는 질문
핵심 메시지에 대한 공감적 반응을 하지 않고 퍼붓는 질문은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 초보 상담자가 많이 저지르는 실수입니다. 내담자의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불안 수준을 질문 공세를 통해 감소시키려고 하다보니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병리적인 측면을 주로 다루고 진단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임상 심리학자가 많이 저지르는 잘못이기도 합니다.
상투적 어구
상투적인 말은 상담자를 지시하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고 내담자의 문제를 하찮게 여긴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상투적인 어구는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거의 전달하지 않기 때문에 의도와 상관없이 빈 말이나 다름없다.
-> 내담자는 특히 상담 장면에 들어올 때, 대부분 상담자에게 상당한 기대를 품고 옵니다. 이 기대를 모두 충족시켜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변 사람들에게서도 충분히 들을 수 있는 뻔한 반응을 한다면 내담자의 몰입도가 떨어질 뿐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상담 자체를 지속하기가 어려워질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상담자는 소위 '치고 빠지기'를 잘해야 합니다.
해석
어떤 상담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상담 이론에 바탕을 둔 해석을 내담자에 대한 이해의 표현보다 더 중시한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해석은 내담자가 숨기고 있는 핵심 메시지를 놓치게 만든다.
-> 제가 절충주의자가 된 대표적인 이유입니다. 특정한 이론에 입각해 내담자를 대하다 보면 봐야 하는 것을 보기보다는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됩니다. 어떤 이론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그 이론에만 집착한다는 것이 결코 아니죠.
충고
청하지도 않는 충고를 하는 일은 일상 생활에서도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상담 장면에서도 흔히 일어난다. 상담 장면에서 상담자가 하는 충고는 내담자의 자기 책임을 박탈하기 때문에 해로울 수 있다.
-> 어떤 상담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충고는 상담에 해롭습니다. 상담자에 대한 의존성을 강화시킬 뿐 아니라(상담은 내담자가 독립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돕는 것이므로 이에 역행),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내담자의 자기 책임을 박탈하기 때문에 회피하는 경향을 강화시킵니다. 충고는 여러모로 해롭습니다.
되뇌기
공감이란 내담자가 한 말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이해는 상담자를 통해서 전달되기 때문에 상담자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전달해야 한다. 되뇌기를 피하려면 내담자가 말할 때 생각한 것을 전달하고, 내담자가 한 말을 다른 각도에서 보고, 상담자 자신의 말을 사용하고, 순서를 바꾸어 보고, 내담자가 표현한 감정에 명칭을 붙여보면 좋다. 즉 내담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담자에게 알릴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좋다.
-> 상당히 많은 상담자가 저지르는 실수입니다. 되뇌기에 익숙해지면 상담이 자꾸 겉돌게 됩니다. 물론 내담자가 스스로 핵심 메시지가 숨어있는 말을 미처 의식하지 못한 채 했을 경우, 다시금 생각해 보도록 반향시킬 수는 있지만 내담자는 대부분 자신의 말을 상담자가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을 들으려고 상담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택은 내담자가 하지만 여러가지 대안을 탐색해 볼 수 있는 화두를 제시하거나, 생각의 여지를 제공하는 것 등을 상담자가 언제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동정 및 동의
공감은 내담자에 대한 이해와 수용을 의미하지만 동정은 동의를 의미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내담자와 공모하는 형태를 띄게 된다.
-> 말은 쉽지만 실제 장면에서는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왜냐하면 공감과 동정의 경계선이 생각보다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감정몰입을 잘하는 저로서는 특히 통제가 잘 안되는 문제입니다.
이해한 척하지 말 것
어떠한 경우든 상담자는 내담자의 이야기를 이해한 척해서는 안된다. 진실한 상담자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때 이를 인정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것은 내담자에 대한 존중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 이건 공감의 그림자 측면이라기보다는 '진실성'의 문제입니다. 상담자가 내담자를 이해한 척 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내담자에게 알려졌느냐의 여부를 떠나서 자기 기만이 되고 그것은 결국 상담을 망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항상 스스로에게 떳떳한 자세를 갖추는 것은 상담자에게 필수적인 덕목이 됩니다.
출처 : 유능한 상담자(Gerard Egan) 중 일부 발췌 및 요약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774
도박 중독은 배우자를 포함한 가족 뿐 아니라 때로는 친구나 직장 동료같은 주변 사람까지 재정적으로 고갈시키는 병이기 때문에 다른 정신질환에 비해 주변 사람들이 체감하는 고통이 훨씬 크고 구체적입니다.
도박 중독의 치료는 사실 가족 치료로 완성된다고도 할 수 있는데 보호자들은 재발의 징조를 미리 감지해 치료자에게 보고하기 위해, 또는 도박 중독이 야기하는 부수적인 문제에 대한 대처 교육을 받기 위해, 그리고 도박 중독이라는 병으로 받은 마음의 깊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중독자와 함께 옵니다.
엄청난 재정적인 고통을 맨몸으로 겪으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치료를 위해 곁에서 헌신하기 때문에 도박 중독자의 가족들은 겉으로는 매우 강인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약한 자극에도 쉽게 부서지고 깨질만큼 마음이 약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치료자 앞에서도 쉽게 눈물을 보이곤 합니다. 다른 일반심리상담소나 정신과 병원에 비해 도박중독 치료센터의 티슈 사용량이 훨씬 많을겁니다.
제가 도박 중독 치료자로 일을 하면서 가장 난처한 것이 치료자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보호자 앞에서 격해지는 감정을 참기가 어렵다는 것이죠. 저를 아주 잘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제가 감정적인 사람이라는 말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겁니다. 첫인상이 대체로 차갑고 냉정해 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다가 직업 상 논리정연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기 때문에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 아닐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많이 달라서, 저는 어릴 때 싸움을 하더라도 코피가 터져서 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울음을 터뜨려서 지곤 했습니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면서도 엉엉 울었다고 하니 보는 사람이 상당히 의아해 했겠지요. 지금도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면, 누구랑 있든지 상관없이 눈이 퉁퉁 부을 때까지 마음껏 웁니다. 가끔은 꺼이꺼이 울기도 하죠. ^^;;;
슬플 때 눈물을 흘리고, 기쁠 때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참 건강한 사람이죠. 저는 그런 감정 표현이 자연스러운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치료 장면에서는 감정을 그렇게 쉽게 표현하는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닌데, 내담자에게 확실하게 공감을 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내담자가 자신의 열려진 감정에 주목하고 그것을 따라갈 수 있도록 인도하지 못하고 감정에 함께 계속 몰입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는 제 감정 표현으로 인해 치료 장면에서 문제가 되었던 적은 없지만 그래도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치료자의 본분을 잠시 망각하더라도 함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뜨거운 가슴이 치료자에게 필요한 덕목이라고 애써 주장해 봅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