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도박 중독자들이 이미 여러 차례 도박을 끊겠다고 약속도 하고 선언도 했다고 이야기합니다만 제가 볼 때 그건 제대로 된 공표가 아닙니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요.
첫째. 정말로 도박을 그만둬야겠다는 절박감에서가 아니라 도박을 그만둘 생각까지는 없지만 가족이 하도 보채니까 마음을 달래주려고 각서도 쓰고, 그만하겠다고 약속도 하는거죠. 정말로 도박을 그만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면 그렇게 쉽게 말 할 수 없습니다. 정말 끊어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건 도박자 본인만 알 수 있으니까요.
둘째. 정식으로 제대로 선언한 적이 없습니다. "알았어, 알았다고... 이제 도박 안 할테니까 그만 좀 이야기 해"라는 식으로 가족의 입을 막기 위해 대충, 설렁설렁 이야기를 하고 맙니다.
자의든 타의든 상담을 받으러 왔고 어느 정도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다닌다는 건 본인도 문제에 대해 이전과는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는 걸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시점이 되면 자신의 의지를 다지고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물론 도박 중독이라는 병의 특성 상 도박자가 자신의 말을 번복하고 뒤집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앞으로 죽을 때까지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노라는 다짐을 정식으로 세상에 공표하는 건 중요하고 또 효과가 있습니다.
성격 장애가 있지 않는 이상 거짓말을 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걸 즐기는 도박자는 없기 때문에 취소할 수 없는
공표를 널리 하게 되면 그걸 어겼을 때의 심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도박을 자제하는 효과가 있거든요.
대신 그 공표는 제대로 해야 합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최소한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선언물을 읽는 형식으로 엄숙하게 하는 게 좋습니다. 그 선언문에 지장을 찍거나 사인을 해서(아예 파손이 안 되게 튼튼한 액자로 만들어서)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곳에 걸어 놓으면 더 좋겠지요.
유의한 점은 아직 도박자가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는데 가족들이 압력을 가해서 억지로 진행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겁니다. 대신 도박자가 준비가 되면 격려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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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 뿐 아니라 단순한 행동 습관의 변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전략 중 하나는 변화의 다짐을 밖으로 알리는 공표를 하는 것입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공표하지 않은 다짐은 절대로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다짐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박 중독자들은 대부분 상담을 받으러 오기 전에 도박을 그만 하겠노라며 각서도 쓰고 가족들에게 여러차례 약속을 하지만 그건 엄밀히 말하면 공표가 아닙니다. 그저 난감한 상황을 모면하려고 둘러댄 핑계, 거짓말일 뿐입니다. 정말로 도박을 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각서를 쓰는 도박자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소위 바닥을 치고 가족에 이끌려 상담을 받으러 전문기관에 나온 도박자들은 그 때부터 자신이 도박을 그만둘 것임을 확실하게 표명하지 않습니다. 상담자도 그렇고 가족도 그렇고 이제부터 도박은 당연히 안 하는 걸로 생각하지만 정작 도박자는 스스로 더 이상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소리내어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대충 아무렇게나 둘러대던 그 때와 분위기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반복되는 교육과 상담을 통해 도박 중독의 폐해와 무서움은 알게 되었지만 그만큼 나는 다르다, 통제력만 회복하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베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매달리는데다 도박을 그만 두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뱉고 나면 자신이 도박 중독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것만큼은 피하려고 합니다.
심리학에는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관이나 의지와 다른 행동이라도 일단 행하고 나면 인지 부조화 상황을 피하기 위해 결국에는 가치관이나 의지를 수정한다는 것이죠. 그 어려운 마음의 변화를 먼저 행동을 저지름으로써 이루어내는겁니다.
도박 중독 치료의 효과는 도박을 끊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공표할 때에만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사람의 수에 비례해서 증폭됩니다.
아무리 골방에서 혼자서 머리띠 두르고 혈서를 쓰고 일기장에 각오를 정리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반드시 자신의 탈도박 의지를 밖으로 공표해야만 합니다.
배우자, 부모님, 가족 친지, 친구, 동료에게 탈도박하겠다는 말을 도저히 못 하겠다면 과연 도박을 끊을 준비가 된 것인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아마 아닐 겁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겠습니다. 탈도박하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1) 정말 도박을 그만두고 싶은지 내면의 자신에게 정직하게 물어보고
2) 도박을 그만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뒤
3) 그 결심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공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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