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르샤하는 임상가에게 가히 애증의 대명사라고 알 수 있습니다. 임상 전공자에게는 매력있지만 그만큼 토 나오는 검사이고 상담 전공자에게는 욕심나는 선망의 대상이지만 그만큼 도전을 주저하게 만드는 도구이죠.
그런데 순서를 좀 바꿔야겠습니다.
작년에 나온 이 책은 '임상심리 수련생을 위한 종합심리평가 보고서 작성법' 시리즈로 유명한 성태훈 선생님이 쓰셨습니다. 이 책의 목차를 보면,
1장. 해석을 위한 준비
2장. 검사 실시
3장. 각 기호의 채점
4장. 로르샤하의 특징과 해석 방법
5장. 로르샤하에서의 투사와 각 카드의 의미
6장. 구조변인의 해석
7장. 기타 해석 방법
보시는 것처럼 '종합체계 워크북'과 '로르샤하 해석의 원리' 내용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이걸 한 권에 모두 담았습니다. 그것도 우리나라 현장에 맞춘 찰떡같은 예시를 통해서요.
제가 미니 강의, 특히 심리검사와 관련된 강의를 할 때마다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외국의 번역서나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신뢰하면 안 된다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달리 적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로르샤하도 그렇죠. 실시 방법과 채점, 해석에 이르기까지 융통성이 필요한 구석이 꽤 됩니다.
성태훈 선생님이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임상가들에게 유용한 꿀팁과 놓치기 쉬운 포인트까지 잘 정리해 놓으셨네요.
로르샤하 입문자는 이 책부터 먼저 읽고 로르샤하 시리즈 3권을 읽은 뒤 다시 이 책으로 총정리를 하는 순서로 공부하시는 게 더 효과적입니다.
저는 이 책의 내용조차도 100% 동의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출판된 로르샤하 관련 서적 중 제가 알고 있는 것과 싱크로율이 가장 높은 책이라 로르샤하에 도전할 분들께 자신있게 추천합니다.
덧. 이 책은 제가 소장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참고할 예정이라 북 크로싱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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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샤 검사를 마스터하는데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많지만 그 중 두 가지만 꼽으라면 구조적 요약의 복잡성과 채점의 어려움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죠. 채점이 정확하지 않으면 구조적 요약의 내용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조적 요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임상에 비해 상담에서는 구조적 요약까지 꼼꼼하게 익히지는 않지만(사실 임상 수준으로 꼼꼼하게 익혀야 합니다;;;) 내용 분석이나 질적 분석만 한다고 해도 채점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차이는 큽니다. 그러니 정확한 채점을 할 수 있느냐는 로샤 검사의 해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사실 로샤 채점이 어려운 이유는 채점 체계가 구조적 요약 만큼 체계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채점 체계가 워낙 오래된 것이어서 최근 수검자의 응답 내용을 반응하지 못하기도 하고 채점자가 어떻게 채점하느냐에 따라 달리 채점될 수 있는 여지가 너무 많습니다. 로르샤하 워크북에 있는 소위 '300제'의 채점 내용도 정확도를 완벽히 신뢰할 수 없는 수준이거든요.
때문에 로샤 채점에 있어서 만큼은 어느 누구도 자만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경험 많은 채점자라고 해도 채점의 실수가 있을 수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채점의 오류를 감수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채점자의 채점 패턴은 이와 다른 문제입니다. 채점자가 일정한 채점 패턴을 갖고 있는 경우 이건 채점 내용 뿐 아니라 구조적 요약에도 일정한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러한 채점 패턴에는 여러가지 유형이 있는데, 너무 보수적으로 채점하는 것, 너무 너그럽게 채점하는 것, 쌍반응을 많이 주는 것, popular 채점에 인색한 것, 특수점수를 많이 주는 것, 복합 결정인 채점을 많이 하는 것, F 결정인을 자주 채점하는 것, 운동반응을 일정한 방향(p 또는 a)으로만 채점하는 것, 반응 영역 시 S채점을 자주 놓치는 것 등등 무수히 많습니다.
각 채점 패턴이 구조적 요약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익히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패턴을 교정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패턴 교정을 위해서는 외부 평가자의 시각이 필요한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경험이 풍부한 supervisor에게 점검을 받는 것이죠. 매 사례마다 점검하는 것이 번거롭다면 동료나 동기와 각각 채점을 한 뒤 채점 결과를 비교하면서 패턴을 찾아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자신에게 일정한 채점 패턴이 존재한다면 이를 교정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채점 연습을 한다고 해도 결과 해석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로샤 채점 공략을 위해서는 반드시 채점 패턴을 찾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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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능하면 중학생 미만 수검자에게 로르샤하 검사를 실시하지 않는 편인데 정서 미분화, 지각 미발달 등 여러가지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에 해석이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로르샤하 검사를 실시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있는데 그나마 부족한 구조화된 정서 검사를 대체할 KPRC, K-CBCL 검사를 실시할 수 없을 때나 아동의 보고 신뢰도를 믿을 수가 없을 때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그래서 초등학생 이하 수검자에게 로르샤하 검사를 실시할 때 주의해야 하는 점을 몇 가지 정리해 봤습니다.
* 해석 시 반드시 맥락을 고려할 것
: 어른들에 비해 삶의 경험이 아직 많지 않고 제한된 환경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특성 상 환경 맥락의 영향을 당연히 많이 받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마인크래프트 같은 게임에 몰두하는 아이들은 게임 세계, 엘사에 빠진 아이들은 디즈니 세계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고 로르샤하 카드 지각과 반응 내용이 이러한 맥락의 영향을 받게 되죠. 그러니
로르샤하 검사를 실시할 당시 아이가 주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파악해 반응 해석 시 그 맥락을 고려해야 합니다. RPG 게임에 빠져 있는 아동의 반응을 채점한 후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멀쩡한 아이를 SPR 환자처럼 해석할 수도 있거든요.
* 반응 수가 적을 때 구조적 요약을 고집하지 말 것
: 어른들도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로르샤하 검사는 굉장히 낯설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짐작하기 어려운 새로운 과제입니다. 특히 로르샤하를 실시하는 아동들은 의식적인 수준에서 실시하는 검사 도구만으로는 해석이 쉽지 않기 때문에 로르샤하 검사를 추가 실시하는 경우 즉, 말수가 많지 않거나 수줍음을 많이 타거나 내향적인 아동들이 많기 때문에 구조적 요약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반응 수가 적을 수 있습니다. 이 때
구조적 요약을 하기 위한 반응 수를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반응을 하도록 고무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평가자의 그러한 요구를 뭔가 잘못 되었고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더 많은 반응을 해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 억지로 쥐어짜듯이 반응하게 되는데 응답의 quality가 낮아질 뿐 아니라 아동의 무의식이 아닌 검사 당시에 떠오른 상상 세계를 그대로 투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응답한 반응 내용과 달라집니다. 그러니 반응 수가 너무 적으면 구조적 요약을 포기하고 질적 해석을 하는 게 차라리 낫습니다.
* 지적 제한의 영향을 반드시 고려할 것
: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심리평가를 의뢰하는 아동의 상당 수가 또래 관계 문제가 있고 그 이유 중 하나가 지적 능력의 부족과 그로 인한 사회적 기술 습득 미비일 수 있습니다. 또 발달 지연이 있어 부모가 학업의 어려움을 염려하거나 본인 스스로도 이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현장에서 로르샤하 검사를 지능 검사 없이도 사용하기 때문에
반응 내용이 빈약하거나 반응 수가 지나치게 적을 경우 지적 능력 부족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오해석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 Inquiry 할 때 아동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노력할 것
: 성인 로샤와 달리 소아 로샤는 평가자가 어른이라서 어른의 입장에서 자신의 지각에 따른 inquiry로 유도할 가능성이 크므로 더 조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동이 로켓이라는 반응을 했다면 로켓처럼 생겼다고?와 같이 형태 지각을 유도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들의 경우 로켓이나 전투기는 m반응인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죠. 항상 아동의 눈높이에서 아이가 어떤 반응을 한 것인지 보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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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로르샤하 검사를 익히려면 반드시 봐야 하는 '로르샤하 종합체계 워크북'입니다. Exner가 쓴 로르샤하 종합체계 시리즈는 총 3권인데 겹치는 부분이 많아 세 권 모두 볼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이 책은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어차피 보실거라면 처음부터 이 책을 갖고 공부하시는 게 좋습니다.
저는 1999년에 나온 4판의 번역본을 갖고 공부를 하고 수련을 받았기 때문에 2006년에 출판된 이 책을 최근에야 다시 봤습니다. 4판에 비해 추가된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GHR/PHR만 추가된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로르샤하 검사를 익히기 위한 실전 가이드북에 해당되는 책이기 때문에 로르샤하 검사의 역사나 개발 과정 등 비하인드 스토리는 실려있지 않습니다. 1장부터 바로 로르샤하 검사의 실시 절차가 나오고 2장부터 반응영역과 발달질, 결정인, 형태질, 내용과 평범반응, 조직활동, 특수점수를 차례로 다루고 채점전략과 구조적 요약으로 마무리하는 전형적인 구성입니다.
총 400페이지의 분량 중 작업도표와 기술통계, 기호화 연습이 250페이지에 달하기 때문에 내용 자체가 많지는 않지만 로르샤하를 익히는 초심자라면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 많아서 정독이 필요한 책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책인데 제가 왜 평가를 박하게 했냐 하면 4판 번역본에 비해 오, 탈자의 수가 오히려 더 늘었고(하물며 역자 서문에도 오자가 있습니다) 4판의 번역 실수가 전혀 교정되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로르샤하 채점을 할 때 정확한 형태질 채점을 위해 가장 많이 참고하는 부분이 각 카드별 작업도표입니다. 그런데 가나다 순으로 정리해 놓은 4판과 달리 5판에서는 온통 뒤죽박죽입니다. 예를 들어 1번 카드의 Dd22반응(223p)을 보면 제시 순서가 칼, 폭포, 가지, 동물, 발 ,갈고리 발톱, 뿌리, 뿔(동물), 손, 장갑, 팔(인간) 순입니다. 대체 어떤 기준으로 정렬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이 반응은 내용이 많지 않지만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수의 내용이 들어있는 영역의 경우(대개 W반응) 정확한 채점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살펴봐야 합니다.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 이후에 몇 쇄를 찍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이 책을 구입한 게 2016년이니 이 문제는 아직 수정되지 않았을 겁니다.
이 책을 구입한 후 손 때 묻은 4판 번역본을 버렸는데 앞으로 로샤 채점할 때 상당히 난감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구입할 분들은 먼저 작업도표의 반응 내용이 가나다 순으로 다시 정리되었는지를 꼭 확인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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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뿐 아니라 임상) 전공자에게 애증의 대상인 로샤 검사를 익히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만 그 산을 넘기 위해 필요한 도구는 아쉽게도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구조적 요약으로 대표되는 Exner 3부작이야 잘 아실테고요. 월덴 3에는 아직 상세히 소개하지 않았습니다만 세 권 모두를 읽으라고 권해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서로 중복되는 부분이 많거든요. 돈과 시간이 막 덤비시면 세 권 다 읽으셔도 되지만 꼭 한 권만 읽겠다면 당연히 워크북을 선택하는 게 낫습니다.
정작 Exner의 책을 빼면 읽을 만한 로샤 관련 책이 별로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인데요. 원서라든가, journal까지 검색의 폭을 넓히면 읽을 것이 널렸지만 한국말로 된 책 중에서 고르라면 정말 없죠.
거의 9년 전에 소개한
'로샤 검사에 대한 정신분석적 접근(2003)'이 있지만 소개글을 보시면 금방 아실 수 있듯이 추천해 드릴 만한 책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감을 발휘하는데 일단 소지하기에 편할 정도로 매우 얇고(불과 230페이지) 가벼우면서 거기에 책값까지 착합니다(정가 9,000 원). 그러면서도 로샤를 공부하는데 꼭 알아야 할 핵심적인 지식은 빠뜨리지 않고 실려 있습니다. 로샤 검사의 역사나 핵심적인 논쟁점, 이론과 연구의 기초에 대한 개관 부분은 오히려 Exner의 책에 있는 것보다 더 comprehensive합니다. 세 명의 공저자가 각기 자신있는 부분을 맡아서 저술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책은 로샤에 대한 핵심 내용이 압축적으로 실려 있기 때문에 처음 로샤를 공부하는 분들은 부담스러울 것이 확실합니다. 대부분의 로샤 관련 책이 그렇지만 이 책은 Exner 책을 공부한 분들이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읽으면 좋은 책입니다. 짧은 시간 안에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은 책의 뒷 부분에 실린 '주석 목록'인데요. 원서와 저널까지 읽어보고 싶은 열혈 독자를 위해 친절히 번역해서 실어놨습니다. 특히 1990년 대에 불타올랐던 로샤 검사에 대한 논쟁을 깊이 공부하고 싶은 분들이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두고 두고 읽을 만한 소장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 이 책은 북 크로싱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 책을 읽으실 정도의 전공자라면 소장하시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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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샤 검사를 실시할 때 대부분의 평가자가 염려하는 건 구조적 요약을 구성할 수 없을 정도로 반응 수가 적은 겁니다. 그래서 비자발적으로 검사에 의뢰되어 방어적이거나, 의욕이 없거나, 지능이 낮아 보이거나 하는 수검자의 수행 동기를 높여 최소한의 반응 수를 확보하기 위해 위해 고심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로샤 검사의 반응 수가 지나치게 많다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대략 40개 정도? 40개라면 카드마다 평균 4개의 반응을 한 것이니 아마 채점을 하는 것만도 보통 일이 아닐 겁니다.
반응 수가 많으면 채점의 오류가 어느 정도 있다고 해도 구조적 요약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개별 채점의 영향력이 약화되니 좀 더 자신감을 갖고 구조적 요약의 지표값을 해석할 수 있을 겁니다. 구조적 요약을 활용하는 해석의 정확성을 어느 정도 자신할 수 있다는 말이죠.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자면 하나의 카드에서 여러 개의 반응이 쏟아져 나왔을 때 그 반응들이 하나의 연상에서 나온 것이 아닌 독립적이고 배타적인 반응이라고 확신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한지 확인하기 위해 각 반응의 반응 시간 간격을 모두 측정하여 어느 정도 시간 간격이 나타나는지 살펴보기도 하지만 역시나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스토리텔링을 잘 하는 수검자나, 공상 세계로 도피하는 경향이 있는 수검자, 상상력이 뛰어난 수검자, 게임 등에 중독된 수검자들은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 반응을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어찌 보면 반응 수가 많아질수록 구조적 요약의 정확성이 증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오히려 질적 해석의 중요성이 커진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로샤 검사의 반응 수가 너무 많을 때는 어떻게 질적 해석을 하는 게 좋을까요?
제가 활용하는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해석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패턴을 읽어라!
1단계. 해석의 요체가 될 수 있는 채점 요소를 확인한다.
:
이 때 중요한 건 평가 의뢰 사유에 따른 가설에 입각하는거지요. 예를 들어 적응 장애가 의심되는 청소년을 평가했다고 해 보죠. 적응 장애의 경우 중요한 채점 요소는 W, Dd, C', Y, M, FM, m, H, A, Bl, (2), AG, MOR 등입니다. 왜 이게 적응 장애에 중요한 채점 요소들인지는 각자 생각해 보세요.
2단계. Card pull에 따른 반응의 군집 패턴을 읽는다.
: 각 카드의 첫 반응이 무엇인지, 어떤 특수 점수가 반복적으로 채점된다면 주로 어떤 카드들에서 나타나는지, 대인 관계를 상징하는 카드에서 어떤 내용이 주로 등장하는지를 관심 갖고 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각 카드의 첫 반응이 주로 S를 포함하는 얼굴 반응인지, MOR 반응이 유채색 카드에서만 주로 나타나는지, 대인 관계 카드의 내용이 주로 H인지 아니면 A인지, (2)은 어느 정도 채점되는지 등을 보는 겁니다.
Exner 방식의 구조적 요약은 각 카드가 내포하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를 다루지 않습니다. 반응의 합과 비율만을 따질 뿐이죠. 하지만 반응 수가 많아지면(특히 아주 많아지면) 당연히 일정한 패턴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됩니다. 물이 너무 많아지면 물살이 생겨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이요. 그 흐름을 읽는겁니다.
로샤 반응의 패턴을 읽는 방법은 구조적 요약의 해석과는 또 다른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요하지만 수검자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기 때문에 공부해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단, 항상 말씀드리지만 구조적 요약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먼저 깔고 익혀야 합니다. 질적 해석은 구조적 요약을 거치지 않고 지날 수 있는 우회로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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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샤 검사는 심리평가가 주 무기인 임상 전공자에게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내담자를 만나는 상담자에게도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입니다.
미국에서는 이제 별로 안 쳐주는 검사인 것 같지만 그건 미국이 기본적으로 정신역동적 접근을 배타하는 문화인데다 계량화, 구조화된 검사에 의존하는 정도가 심해서 그렇지, 로샤 검사가 그만큼 무시해도 되는 듣보잡 검사여서가 아닙니다.
구조화된 요약에만 목숨을 걸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현장에서 상담을 하면서 로샤의 질적 해석을 해 보면 왜 로샤가 이런 불완전한 해석 체계를 갖고도 지금까지 당당히 살아남은 검사인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어쨌거나 임상 수련을 받는 사람은 어차피 피할 수도 없거니와 기존의 수련 체계에서 로샤를 공부할 기회가 충분히 많이 있으나 상담자는 스스로 공부 의지를 불태우지 않으면 로샤를 공부할 기회 자체가 별로 없거니와 설사 마음을 굳게 먹었다손쳐도 어떻게 공부를 시작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하죠.
그래서 상담자의 입장에서 로샤 공부를 하는 방법을 단계적으로 추천드려보겠습니다.
1. Exner의 종합체계 워크북 구입
: 로샤 관련 책들은 번역서로도 많이 나와 있지만 이 책은 어차피 읽어야 할 필독서인데다 다른 책만 봐서는 제대로 로샤를 익힐 수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 책을 독파하는 게 낫습니다. 괜히 쉬운 길 가겠다고 주해서 같은 책으로 공부해 봤자 어차피 이 책을 다시 봐야 합니다. 그러니 정석으로 가세요.
이 때, 로샤를 본격적으로 접하기 전에 꼭 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로샤 검사에 오염되기 전에 전문가에게 로샤 검사를 받아보는 겁니다. 이 자료는 나중에 채점 연습을 하기 위해서 잘 챙겨둬야 합니다. 관련글(
'심리학도는 오염되기 전에 심리평가를 받을 것')
2. 종합체계 워크북 정독
: 이 단계 공부 패턴에 따라 다른데 혼자서 일독하는 것도 괜찮고 팀 플레이에 강한 분들은 스터디 팀을 짜서 강독을 해도 됩니다.
중요한 건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겁니다. 스터디를 할 때는 다른 사람이 발표하는 부분도 자신이 발표하는 부분처럼 철저히 읽고 연습해야 합니다.
워크북을 읽을 때 중요한 건 실제 원자료를 채점해 보는 경험을 갖는 것입니다. 이 때 미리 받아놓은 자신의 로샤 원자료를 활용합니다. 스터디를 한다면 팀원들의 원자료를 돌려가면서 채점하고 토론하면 다양한 원자료를 채점할 수도 있고 자신의 채점 오류에 대해 깨닫게 되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3. 로샤 워크샵 듣기
: 임상 전공이라면 수련 과정에서 지긋지긋할 정도로 로샤 채점과 해석을 할 것이기 때문에 워크샵까지 굳이 들을 필요가 없지만 상담 전공자라면 종합체계 워크북을 정독한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로샤가 워낙 내용이 방대하기 때문에 전문가가 핵심을 요약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훑어주는 워크샵을 한번쯤은 듣는 것이 좋습니다. 가끔 워크샵을 먼저 듣고 종합체계 워크북을 나중에 보면 안 되냐고 묻는 분이 계신데 별로 추천하지 않습니다.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로샤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이 어느 정도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워크샵을 들어봤자 흰 것은 프로젝터 바탕 화면이요, 빨간 것은 레이저 포인터일 뿐입니다.
힘들더라도 책을 먼저 보시고 그 다음에 워크샵을 듣는 것이 시간 대비, 비용 대비 효율성이 훨씬 높습니다.
4. 로샤 실시 및 채점, 구조적 요약의 반복 연습
: 종합체계 워크북도 공부했고 관련 워크샵도 들었다면 머릿속에 들어간 지식이 망각되기 전에 자꾸 리허설해서 장기기억으로 넘겨줘야 합니다. 임상 전공자는 수련 과정에서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을 정도로 끊임없이 로샤를 실시, 채점, 해석하는 연습을 하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상담 전공자는 상담하느라 로샤를 실시할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가능한 한 많은 로샤 실시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로샤 검사가 불필요한 내담자에게 실시하는 게 윤리적으로 부담스러우면 주변 지인이라도 마루타로 삼아 계속 연습해야 합니다. 최소한 워크샵을 들은 지 1년 이내에 50개 이상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채점해야 합니다.
정 사례가 없으면 종합체계 워크북에 실린 300개 예제라도 반복해서 채점하고 채점이 틀린 예제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따로 모아서 공부하세요.
로샤를 채점할 때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최소한 10 사례 정도는 채점 프로그램의 힘을 빌리지 말고 손으로 구조적 요약을 해 보라는 겁니다. 이건 통계 방법론을 익힐 때 변량분석을 손으로 직접 계산해서 해 보는 것과 유사한데
어떤 알고리즘에 의해 지표들이 계산되는지 손으로 계산하면서 익혀놔야 나중에 지표 해석 이해가 쉽습니다. 복잡하다고 채점 프로그램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아무리 단계별 해석 방법을 공부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가끔은 무식한 방법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가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조언드리면, 가끔
로샤 채점 체계의 불완전성을 강변하면서 구조적 요약 없이 질적 해석만 공부하면 안 되냐고 하는 분들이 계신데 그렇게는 안 됩니다. 질적 해석의 풍부함은 구조적 요약의 바탕 하에서만 나오는 겁니다. 구조적 요약을 제대로 익히지 않고 질적 해석을 아무리 열심히 파 봐야 제대로 된 해석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요령 부리지 말고 구조적 요약을 돌파한 뒤 질적 해석으로 넘어가시는 게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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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샤 검사는 심리평가를 공부하는 모든 사람들이 가장 익히기 어려워하는 최고 난도의 심리검사입니다. 로샤가 어렵게 느껴지는 결정적인 이유는 구조적 요약의 복잡성 때문이고 구조적 요약이 어려운 이유는 수검자의 반응 채점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수검자의 반응 채점을 쉽게 할 수 있으면 구조적 요약의 정확도가 증가하고 이를 통해 수검자의 심리상태를 이해하는 것이 쉬워집니다.
그러니
로샤 검사를 Exner의 구조적 요약 방식으로 접근하려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채점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채점을 어떻게 해야 정확하게 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채점 기준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건 기본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실제로 채점이 잘 되지 않는 이유는 채점 기준을 잘 몰라서가 아니라 inquiry를 명확하게 하지 못해서 입니다.
inquiry를 잘 하는 원칙 중 하나는 질문의 수를 줄이는 것입니다. 검사자의 질문이 많아지면 그만큼 유도 반응이 많아지고 당연히 채점이 복잡해집니다. 그러면 채점이 틀릴 확률이 증가하게 되므로 구조적 요약의 정확도도 자연스럽게 떨어지게 되지요(대체로 수검자의 심리적 문제를 과장하는 식으로 증폭시켜 설명하게 됨).
그렇다면
질문의 수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건 로샤 검사를 많이 실시해 보는 것이죠. 실시 경험이 늘어나면 수검자의 반응 패턴이 저절로 눈에 보이게 됩니다. 예를 들어 4번 카드에서 수검자가 "발이 엄청 큰 거인이네요"라고 반응하는 경우 경험많은 검사자는 자연스럽게 FD 결정인을 떠올릴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굉장히 많은 실시 경험과 그에 따르는 시간의 누적이 필요할테니 다른 방법을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수검자가 어떤 반응을 했을 때 검사자도 수검자가 본 시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게 꽤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1번 카드에서 수검자가 "검은 박쥐가 거꾸로 매달려 있네요"라고 반응했을 경우 본인도 그렇게 보려고 애를 써 보세요.
수검자가 말한 반응과 동일한 이미지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지 보고 잘 떠오르지 않는 바로 그 부분을 inquiry에서 질문하는 겁니다. 위의 예에서 검은 박쥐는 C'F 결정인으로 채점될 것이 거의 확실하지만 거꾸로 매달려 있다는 말이 단순한 F인지 아니면 FMp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위의 예에서는 inquiry를 할 때 검은 박쥐보다 거꾸로 매달려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에 초점을 맞춰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검사자가 수검자가 본 로샤 반응을 동일하게 보려고 시도하는 건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공감에 도달하는 방법과 비슷하기도 하고 또한 로샤 검사 실시에서 수검자에게 "당신이 본 것을 저도 볼 수 있도록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요청하는 건 실시 방법에 나오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전혀 새로운 게 아니에요. 하지만 심리평가를 많이 하게 되면서 시간에 쫓기게 되고 수검자와 동일한 시각으로 보려는 시도를 언제부터인가 안 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Back to Basics'하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뭐든지 기본이 가장 중요한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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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현장 분위기가 단기 상담, 구조화된 상담 위주로 바뀌는 추세이기 때문에 덩달아 심리평가의 중요성도 강조되고 있습니다.
물론 여건 상 종합심리평가를 하지는 못하고 MMPI-2/A, SCT 조합으로 구성한 선별심리평가 결과를 상담 전에 routine하게 실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담자를 배정받은 상담자는 자신과 상관없이 실시된 선별심리평가 결과를 손에 쥐고 상담을 시작하게 되는데 필요에 따라 추가적인 심리검사 실시를 고려하기도 합니다.
이 때 주로 활용하는 검사는 HTP이며 심리검사에 익숙한 상담자의 경우 로샤, TAT 등을 추가로 실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로샤 검사의 경우 Exner 방식의 구조적 요약 해석에 익숙한 상담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반응과 inquiry에 입각한 내용 분석 결과를 중심으로 해석합니다.
문제는
비구조화된 검사 결과에 너무 의존하게 되면 가설을 설정, 검증, 채택/기각하는 과정 대신 배경 정보나 상담 내용 등과 일치하는 내용만 선택적으로 활용하게 되어 선별심리평가를 실시하는 이유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이는 상담자가 맥락 정보를 다루는데 익숙해질 수 밖에 없는 훈련 과정 때문인데 선입견과 편향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구조화된 검사 활용에 치중할 필요가 있고 특히 구조화된 검사의 대표격인 MMPI-2/A의 결과 해석 공부에 주력해야 합니다.
투사법 검사를 공부하는 것, 특히 로샤의 구조적 요약 해석을 공부하는 건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그만큼 객관적인 검사의 결과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숙지하는 것도 상담자에게는 중요하다는 점을 아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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