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평가 결과를 해석할 때 수검자의 반응 일관성과 신뢰도를 확인하기 위해 평가자가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건 구조화된 검사의 타당도 영역입니다.
최소한 구조화된 검사의 타당도가 정상 수준이라면 어느 정도 안심하고 나머지 검사의 결과를 해석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닙니다. 구조화된 검사의 타당도가 정상 수준이어도 해석에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수검자가 솔직하게 일관된 답변을 했다는 의미일 뿐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잘 알고 있다는 의미까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고 어떠한 상태인지에 대해 수검자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면 당연히 정확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MMPI-2의 타당도 척도가 normal profile이고 1-3-3-3 코드 패턴도 아닌데 TCI에서 MHH(사려깊은) 성격 유형이 나왔다고 해 보죠.
수검사가 실제로 사려깊은 성격 유형인지, 사실은 전혀 아님에도 자신을 사려깊은 성격 유형이라고 믿고 있는지를 구분하기 위해서 다른 검사 결과와 교차 검증하고 배경 정보까지 꼼꼼히 살펴봐야 합니다. 사려깊은 성격 유형과 상충하는 자료가 하나라도 있다면 TCI 결과가 실제 수검자의 성격을 반영한다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다시 정리해 보면,
* 구조화된 검사의 타당도가 normal profile이라도 해석에 주의할 필요가 있음
* 타당도가 normal profile이라는 건 수검자가 솔직하게 일관된 답변을 했다는 것만 보증함
* 수검자의 real self를 반영하는지, ideal self 내지는 perceived self를 반영하는지 신중하게 교차 검증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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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를 할 때 초기부터 가설을 설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다른 글에서 강조한 바 있습니다.
가설을 설정하지 않고 나중에 결과만 갖고 살펴보겠다고 무턱대고 심리검사부터 실시하면 나중에 훨씬 많은 시간이 낭비되는 것은 물론 원했던 충분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 길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수검자는 수검자대로, 검사자는 검사자대로 힘들게 비용과 시간을 들여 실시한 검사 결과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심리평가 과정에서 검증이 가능하도록 압축된 핵심 가설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상담을 해오던 내담자를 평가하거나 이전 치료력이 풍부한 내담자를 재평가 하게 되는 경우에는 배경 정보가 많기 때문에 초기 가설을 설정하는 것이 비교적 쉬운 편입니다. 하지만 배경 정보가 부족하거나 잘못된 배경 정보로 인한 오염을 우려해 blinded-interpretation을 선호하는 평가자(초심자에게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중급 이상의 평가자들만 이 방식으로 하세요)의 경우에는 가설을 설정하지 않고 검사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평가 내내 가설을 설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검사를 실시한 뒤에 가설을 설정하고 검증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건 어떻게 하는 걸까요? 이 때 중요한 건 심리검사를 실시하는 순서입니다.
저도 그렇고 많은 평가자들이 종합심리평가의 경우 구조화된 검사를 먼저 실시하고 비구조화된 투사법 검사를 나중에 실시하는데 이 때 먼저 실시한 구조화된 검사(대표적으로 MMPI-2/A)로 가설을 설정하고 뒤에 실시한 비구조화 검사(대표적인 것으로 로샤) 결과로 이를 검증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MMPI-2에서 D, RC2, DEP 척도를 비롯해 모든 임상, 내용 소척도만 상승했다면 당연히 고려해야 할 가설은 Depressive Disorder 계열의 진단이죠. 아마도 Double Depression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겁니다. 자, 그렇다면 비구조화 검사에서는 어떤 검사 sign들을 기대해야 할까요? depressive mood와 low positive affect가 동시에 나와야 하겠지요. 로샤라면 C', Y 등과 함께 8, 9, 10번 카드를 비롯한 유채색 카드에서 밋밋한 F반응으로 일관하는 양상을 동시에 보였을 때 가설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반대 방향으로 가설을 검증하는 방법은 어떨까요? 비구조화된 검사 결과로 가설을 설정하고 구조화된 검사로 그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죠.
언뜻 생각하면 그래도 될 것 같지만 반대 방향으로 하면 대안 가설(alternative hypothesis)들이 너무 많아져서 이를 일일이 확인하느라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립니다. 굉장히 비효율적이에요.
그러니 구조화된 검사 결과로 가설을 설정하고 비구조화된 검사 결과로 이를 검증하는 방식이 더 낫습니다.
* 포스팅 두 줄 요약
- 심리평가에서 가설을 설정/검증하는 시점은 심리검사 실시 전/후의 두 가지로 나뉨
- 후자의 경우 구조화된 검사 결과로 가설을 설정하고 비구조화된 검사 결과로 검증하는 방법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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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검사를 실시하다보면 유독 HTP, 로샤와 같은 비구조화된 검사(SCT도 일부 포함)에서 제대로 반응을 못하고 억제하는 수검자를 만나게 됩니다.
검사 시작 전부터 긴장되어 보이는데다 검사자와 눈도 잘 맞추지 못하기 때문에 위축되어 있거나 혹은 평가 불안이 있는 것으로 가정하고 검사에 들어가는데 이게 웬일? 지능 검사 같은 구조화된 검사에서는 그런 반응 억제가 나타나지 않는데다 가끔은 오히려 경쟁적으로 더 열심히 하는 수검자도 있죠.
특히 지능도 양호한 수준인 경우라면 낮은 지능이나 평가 불안에 의한 수행 저하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비구조화 심리검사에서 반응 억제가 나타나는 수검자에게는 대체 어떤 문제가 있는걸까요?
몇 가지 가능성을 가설로 염두에 두고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rigidity 문제인데요. 틀에 박힌 생활에 젖어 있고 실패를 두려워 해 문제가 될 만한 낌새가 느껴지는 상황 자체를 피하면서 살아온 회피적인 수검자의 경우 연상에 의해 다양한 반응이 가능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합니다. 인지 구조가 너무 rigid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구조화 심리검사에서 얼어붙는(freezing) 상황이 종종 발생하곤 합니다.
그나마 순수한 rigidity 문제라면 괜찮은데 두 번째 가능성과 결합되어 있는 문제라면 좀 심각합니다.
넓게 보면 애착 문제와도 관련이 있겠습니다만 가정 불화가 있는 가정에서 양 부모가 서로 아이를 맡지 않으려고 toss한 경우, 즉 굉장히 불확실한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적응하며 살아온 아이는 답이나 결과가 분명하지 않은 것에는 철저히 반응 억제하는 것을 유일한 대처 방법으로 고집할 수 있습니다.
차라리 틀릴지언정 확실하지 않은 것은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것이죠. 그래야 중간이라도 가고 실패해서 버려질 확률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양 부모가 서로에게 양육을 toss하는 환경에서 자란 자녀가 rigid한 사고 및 행동 패턴을 내재화하게 되면 구조화된 심리검사와 비구조화된 심리검사의 반응 패턴이 극명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reference는 없기 때문에 현장에서 각자 검증해 봐야 합니다만 구조화된 심리검사에 비해 비구조화된 심리검사에서 현저한 반응 억제가 나타나는 경우 성장 환경을 체크해 보시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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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원자료를 raw material이라고 쓰거나 제목의 reading을 다른 용어로 바꾸거나 해야 하는데 적절한 말이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네요. 너무 습관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업계 용어는 막상 바꿔쓰고 싶어도 대체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어쨌거나....
심리평가 supervision을 하다 보면 선생님들이 가장 어렵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심리검사의 원자료를 잘 엮어서 핵심을 뽑아내는 것입니다. 물론 각 검사들의 sign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지식은 당연히 필요한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문제죠.
특히 빠지기 쉬운 함정은 각 검사 sign이 공통적으로 의미하는 부분만 찾으려고 애쓰는 것인데 그렇게 딱딱 떨어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그런 전형적인 profile보다는 반대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원자료 리딩을 잘 하기 위해 제가 추천드리는 방법 중 하나는 '의외성'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한 검사에서 발견되는 의외성을 눈여겨 보고 그 검사 sign으로부터 가설을 설정한 뒤 그 의외성을 다른 검사의 sign들과 교차 검증해 보면 그때까지는 생각도 못했던 역동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등교 거부를 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동이 할머니와 함께 심리평가를 받으러 왔고 부모가 바빠서 동행하지 못해 발달력 등의 개인 정보가 거의 없는데다 할머니가 손주와 함께 살지 않아 자기보고형 평가 도구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경우를 한번 보죠. 문장 완성 검사에서도 아이가 부모나 가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기술로만 일관하고 지능 검사 결과도 평이해서 별로 연결된 고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KFD에서 모든 가족 구성원을 그렸는데 자신만 안 그렸다면 밖에 나가서 놀고 있어 안 그렸다는 아동의 보고만 믿고 넘어가지 말고 그 의외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면 자아중심성이 강하고 주목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나이인데 가족화에서 자신만 안 그렸다면 가족 내 갈등이 있거나 소외감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등교 거부도 학교에서 또래와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파괴적인 관심끌기나 알 수 없는 이차 이득이 있을 수도 있죠. 이런 의외성을 염두에 두고 다른 투사법 검사의 sign들을 살펴보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수 있습니다.
자기 보고형 검사 등 구조화된 검사 결과와 궤를 달리하는 투사법 검사 결과가 새로운 가설을 입증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러니 원자료 리딩을 할 때에는 공통된 부분을 찾으려고만 하지 말고 뜻밖의 모습을 보이는 검사 sign을 눈여겨 보고 새로운 가설을 설정해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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