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일하는 기관에서는 5회 이상 상담한 케이스를 장기 상담으로 분류하여 통계를 냅니다. 사실 도박 중독 상담은 상담 횟수가 얼마나 되느냐보다는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가 더 중요합니다.
다만 도박 중독자가 워낙 병에 대한 인식이 없고 치료받고자 하는 동기도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정신 장애 분야는 말 할 것도 없고 중독 분야에서도 워낙 조기 탈락율이 높습니다.
그래서 5회 정도는 상담이 이루어져야 상담자와 내담자 간에 어느 정도의 치료적 동맹 관계가 형성되고 경험적으로 볼 때, 치료 가능성이 높아지기에 편의 상 그렇게 분류하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이번 국정 감사에서 모 국회의원이 5회 이상을 장기 상담으로 보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라며 트집을 잡으면서 전문가들(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뻔한 바닥에서 그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저는 정말 궁금합니다)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형식적인 운영을 질타하는 질의서를 보냈습니다.
참 신기한 것은 이 논리가 지난 달인가 사감위에서 모 언론에 사행산업체에서 운영하는 센터(제가 근무하는 기관을 콕 집어서)가 유명무실하고 형식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는 인터뷰를 할 때 근거로 내세웠던 것과 똑같다는 것이죠.
뭐 이 질의를 한 국회의원이 그 기사를 보고 영감을 얻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수도 있지요.
그런데 웃기는 건 이런 분류 기준에 따른 통계 자료를 요구한 시초가 다름 아닌 국회의원들이었다는 것(국정감사 이전에는 이런 분류를 한 적이 없습니다)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참 민망하고 우습지만 제가 일하는 기관에서는 5회 상담한 것은 상담 축에도 못 듭니다. 2~30회 상담한 내담자가 수두룩한데다 제가 어제도 상담한 내담자는 50회(그것도 지금은 종결을 위한 준비 기간이라 한 달에 1번 만나는 것이라서 50회이지 실제 햇수로는 3년 째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에 육박하니 5회 상담을 장기 상담이라고 우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지금 기억으로도 현재 제가 상담하고 있는 내담자 중에서 10회가 넘지 않은 내담자는 한 명도 없는 것 같거든요.
저는 오히려 궁금한 것이 국가기관인 사감위 중독예방치유센터는 대체 얼마나 장기 상담을 잘 하고 있기에 다른 기관을 그렇게 폄하하느냐는 것이죠. 과연 저희처럼 모든 내담자의 개인 chart 관리를 하고 있을까요? 5회는 장기 상담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쉬운 5회를 넘기는 내담자 비율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집단으로 돌리는 프로그램 말고 개인 상담으로 말이죠. 저는 그게 참 궁금하거든요.
보는 사람마다 감상이 다를텐데 가슴이 답답한 분도 계시고 헛웃음이 나오는 분도 계실겁니다. 저는 어이가 없더군요.
그런데 동영상에 나오는 이 분이 얼마나 바보인가 하면,
국정감사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완전히 짜고치는 고스톱이거든요.
일은 이렇게 됩니다.
일단 국정감사기간에 들어가면 해당 위원회에 속한 국회의원들의 보좌관이 피감 기관에 자료 요청을 하게 됩니다. 이 때 어떤 자료를 요청하느냐만 보더라도 대충 어떤 질의를 할 지 일차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본 감사를 앞두고 피감 기관에서 투입된 (특공) 인력이 국회의원실에 진 치고 질문서를 입수합니다. 보좌관이 얼마나 일을 빠릿빠릿하게 하느냐에 따라 질문서를 쉽게 입수하고 금방 퇴근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밤을 새기 일쑤입니다. 어쨌거나 이미 본 감사에 나오기 전에 이미 어떤 국회의원이 어떤 질문을 할 지 다 알게 되고 거기에 따라 피감 기관의 해당 부서에서 모범 답안까지 철저하게 준비합니다.
더 철저한 곳에서는 감사를 앞두고 예행연습까지 합니다.
질문도 알고, 답도 알고, 게다가 예행 연습까지 하니 어지간히 바보천치가 아닌 다음에야 제대로 답변을 못할리가 없습니다. 아니, 답변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상황입니다.
그러면 동영상에 나오는 저 사람은 대체 뭘까요?
저런 사람이 교육감으로 앉아 있으니 서울시의 교육 행정이 이 모양 이 꼴인 것이 확실히 이해가 되네요.
국정감사란 460여 개에 달하는 정부 부처 및 산하 기관이 일 년 동안 제대로 업무 수행을 했는지, 그 공과를 엄정히 평가하고 잘한 부분은 독려하고 잘못된 부분은 시정을 명하거나 개선을 요구하는 공식적인 자리입니다...... 라는 건 어디까지나 말뿐이고 실상은...
각 상임위원회 별로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하면 피감기관의 실수를 파헤쳐 폭로함으로써 언론에 한번이라도 더 노출될 수 있을까에 혈안이 된 일종의 겉치레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3번에 걸친 국정감사를 치르면서 제가 개인적으로 느낀 소감입니다. 아니라고요? 글쎄요.
칭찬이요? 그런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칭찬받으려고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시정 요청도 그렇습니다. 피감기관이 무슨 악의 소굴도 아니고 합리적이고 공정한 문제 제기라면 당연히 발전을 위해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경우 상임위원회의 국회의원들뿐 아니라 보좌관들도 피감기관의 업무에 대한 전문가들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의 자체도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겉돌기 일쑤입니다.
작년에 제출했던 자료는 모두 어디에 팔아먹었는지 똑같은 자료를 매년 요청하기 때문에 국정감사 기간 동안에는 모든 업무를 중지하고 제출 자료 만드는 일에만 치중해야 합니다. 올해의 경우는 10월의 국정감사를 위해 8월부터 의원실에서 요구자료를 보내왔기 때문에 근 석 달간을 매달려야 했습니다. 그동안의 업무 손실이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요. 그래도 필요하다면 해야죠. 그렇다면 피감기관이 보내준 자료는 충실히 반영을 해야지 피감기관을 깎아내리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만 마음대로 편집하는 건 너무 악의적인 행동 아닐까요?
그것도 좋습니다. 일 년에 한 번인 국정감사를 통해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은 마음도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국회의원님들이야 이쪽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니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보좌관들은 대체 뭡니까?
1. 5개 지정 병원 전부가 수도권에 밀집되어 있으며 그나마 일 년 동안 병원 치료를 위탁한 건수가 18건에 불과하여 치료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 지정 병원은 전담 원무 직원이 있기 때문에 행정 처리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을 뿐 전국 어느 병원이라도 내담자가 원하면 위탁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왜 이야기하지 않으십니까? 도박 중독 치료는 심리 치료가 주가 되며 알코올 중독이나 심한 수면 장애 등 약물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만 병원 위탁 치료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왜 이야기하지 않으십니까? 도박 중독 치료를 받는 내담자들이 정신과 병원 및 약물치료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기 때문에 치료자가 권유해도 대부분 병원 치료를 거부한다는 사실은 왜 이야기하지 않으십니까? 약물치료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저희 기관에서 심리 치료자가 대안 요법으로 아로마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왜 이야기하지 않으십니까?
보내드린 자료가 너무 많아서 정리 과정에서 누락되었나요? 훗~
2. 재활 지원비가 1억 8천만 원에 불과하며 1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지금에도 1/3 정도밖에 집행이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 재활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재정 지원을 하는 곳이 전 세계에서 우리 기관이 유일무이하다는 사실은 왜 이야기하지 않으십니까? 1억 8천만 원 중 1억 원은 우리 기관이 집행 여력이 없다고 건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2004년 국감이 끝난 후 농림부에서 떠넘긴 예산이라는 사실은 왜 이야기하지 않으십니까? 도박 중독이 제대로 치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른 직업 소개나 재취업 교육 등의 재활 지원은 오히려 치료 의지를 약화시키고 재발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에 치료자의 입장에서는 대상과 적용 시기를 매우 신중하게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왜 이야기하지 않으십니까?
3. 왜 법인으로 독립하지 않는지에 대해 지적하셨습니다.
-> 사행성 산업체가 치료 기관을 직접 운영하는 경우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며 대부분의 도박 선진국(?)은 국가 또는 지방 정부 주체로 치료 기관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왜 이야기하지 않으십니까? 도박 중독 치료를 위해 국가가 주도해서 진행하고 있는 어떠한 움직임도 없다는 사실은 왜 이야기하지 않으십니까? 올해 전국의 도박 중독 치료 기관이 도박중독문제 공동대응협의회를 결성하여 치료 네트워크 연계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은 왜 이야기하지 않으십니까?
정말 계속 보고 싶은 것만 보시렵니까?
한 말씀만 더 드리겠습니다. 국정감사를 하시려면 전문성 확보를 위해 제발 전문 보좌관을 영입하시고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피감기관이 제출하는 보고서라도 빠짐없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일부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 급급한 피감기관이 있지만 대부분의 피감기관은 국정감사가 피감기관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는 초석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매번 서면 질의서에 대한 답변까지 충실히 올리는데 매년 똑같은 질의가 계속되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말 힘 빠집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