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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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영화
2014년 하반기 독립영화 최고 흥행작에 등극한 족구왕입니다.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최정예군단'으로 알음알음 알려진 광화문 시네마에서 제작했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발로 하는 건 다 서투른지라 족구는 고사하고 축구도 싫어합니다. 대학원 때도 그 유행했던 팩차기 한번 해 본 기억이 없습니다. 게다가 제가 군 생활을 했던 부대는 정말 특이하게도 소프트볼을 하던 기갑부대(!!)라서 군에 있을 때도 족구는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소프트볼은 나름 잘해서 포지션이 부동의 투수(일병때까지만)였습니다만...
족구에는 관심도 경험도 없지만 그래도 족구가 군대, 복학생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정도는 알죠.
배경이 교내 체육 대회의 족구 시합이기는 해도 족구의 룰 따위 하나도 몰라도 이 영화를 즐기는데 하등의 지장이 없습니다.
저는 깨알같은 유머 코드도 재미났지만 영화 전체를 관통해 흐르는 메시지가 아주 마음에 들더군요. 극 중 주인공인 홍만섭(안재홍 분)의 이 멘트로 대표되는 메시지 말이에요.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같다고 생각해요"
"홍만섭, 너에게 족구는 어떤 의미냐?"
"재밌잖아요"
그렇습니다. 인생 뭐 있나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재미나게 사는거지요.
족구가 아니더라도 풋풋한 대학생들의 로맨스와 열정(혹은 무모함)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뛰는 영화입니다.
저처럼 젊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 채 그냥 주어진 길만 터벅터벅 걸어왔던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금 가슴에 불을 활활 지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왠지 뭐라도 배우거나 갑자기 연애라도 시작해야 할 것 같은 충동이 샘솟는 영화 족구왕입니다.
추천합니다. 우울할 때 보면 특히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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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초에 다음 아고라에서 열띤 논쟁을 불러 일으킨 글이 있었는데 바로 취업 관련 성차별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칼퇴근에 야근 안하겠다고 답한 여성 지원자는 탈락하고, 야근을 불사하겠다고 한 남성 지원자는 합격한 것을 놓고 여성들의 자세 문제를 성토한 글이었고, 항상 그랬듯이 갑론을박 게시판이 온통 시끄러웠습니다.
평소에 정치, 종교, 성차별에 대해 논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그러는가보다 하고 지나갔습니다만 우연히 제 생각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분의 글을 읽고 김에 제 생각을 다시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요즘의 여성 운동을 보면 엉뚱한 지점을 포격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여성들은 남성 위주의 성차별적인 사회를 개혁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제도를 공격해야 하는데 남성을 공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합리한 제도를 만든 것이 남성이기 때문에 얼핏 보면 제대로 공격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옳은 방법일지는 몰라도 현명한 방법은 아닙니다.
의도와 목표는 좋은데 방법이 틀렸습니다. 여성들의 생각대로 성차별적인 사회 제도를 남성이 만들었다고 해도 이미 남성들은 불합리성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그 제도에 익숙해진 상태이고 반성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제도를 개선하라는 요구에 당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인간은 변화에 저항하는 심리적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담을 받는 내담자들도 정작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변화에 저항합니다. 대다수의 남성들은 남성들도 그런 제도의 피해자라고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남성에 대한 공격은 반발을 살 수 밖에 없고 원하는 목적을 이룰 가능성은 전무합니다.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 제도가 만들어 놓은 달콤한 꿀단지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 뿐입니다. 불리하면 남성을 공격하고(제도가 아니라), 유리할 때는 여성이 가지는 이득(남성이 돈을 내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는 것, 힘든 일은 여성이기 때문에 빠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등)을 취하는 자세는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얼핏 당연하게 생각될 수 있지만 실상은 문제 의식을 가진 남성마저도 등을 돌리게 만드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여겨집니다.
잠시 잠깐의 달콤함에 취해 여성 착취를 정당화 할 제도와 문화와 가치관을 공고화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힘을 보탠다면 결국에는 꿀단지에 빠져 죽는 파리꼴이 될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래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려면 달콤한 꿀부터 거부해야 합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열외되는 일에 편리함을 느끼고 안주하지 말고 분노해야 하고, 동등하게 대우해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남자들이 그동안 여자들이 알게 모르게 누려왔던 특권을 내세우면서 변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군대 문제도 그렇습니다. 해당 사항이 전혀 없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군가산점에 목 매고 흥분하는 이유는 기득권을 빼앗긴데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형평성이 없다고 느끼는데 대한 분노의 감정인데, 별로 관계도 없는 출산 이야기나 군대 환경 개선이라는 현실성 없는 이야기를 꺼내면 말문은 막을 수 있을지언정 근본적인 변화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병역은 필요악이며 동시에 성차별을 공고화하는 무기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성들이 우리도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겠다고 들고 일어나 공동 병역을 요구하고 주장하면 실제로 여성이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게 되느냐의 여부와 상관 없이 이 문제는 훨씬 더 빨리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이것이 실질적으로 효과를 거두는 전술입니다. 성차별은 이미 합리성, 형평성, 대의명분 등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해결되지 않는 감정의 차원에 있기 때문에 거대 담론 차원의 이야기는 아무리 해도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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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자극적인 제목이기는 합니다만 요즘 언론에서 이야기하듯이 군대가 정신질환을 야기하는 것처럼 단정을 지어 말하기에는 간과된 점이 꽤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결코 군 시스템 및 복무 환경 개선을 반대하려는 의도가 아님을 미리 밝혀둡니다.
저는 주말에 일을 하고 평일에 쉬기 때문에 1년 전부터 군 병원 정신과에서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 장병을 대상으로 심리평가 하는 일을 아르바이트로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연천 총기 난사 사고의 가해자였던 김×× 일병을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모 국회의원이 정신 질환으로 복무 부적격 판정을 받는 군 장병의 수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는 자료를 제시한 일이 있습니다. 이 국회의원의 논리인즉슨 군에 문제가 있어 정신 질환을 앓는 사병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군이 정신 질환을 야기하는 원흉인 걸까요?
제가 일을 시작하기 전인 1년 전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환자의 수가 늘어난 것 같습니다만 일반인들이 흔히 생각하듯이 군의 복무 환경이 열악해서 또는 요즈음 신세대 장병들의 심신이 예전보다 나약해서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사병이 늘어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군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고 이런 경로를 통해 사고 사례가 널리 알려지게 됨으로써 사회적인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예전에는 간과하고 있던 문제 장병들을 치료 의뢰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가 담당하고 있는 도박 중독 분야만 보더라도 1년 전과 비교해서 치료를 받는 사람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는데 이는 '은밀한 중독(hidden addiction)'이라고 불리는 도박 중독의 특징을 고려해본다면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사행성 산업의 확산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치료 기관의 적극적인 홍보 활동의 효과와 사회적인 관심이 맞물려 그동안 숨어 있었던 환자들이 치료 현장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의무 심사를 통해 정신 질환을 이유로 복무 부적격 판정을 받는 장병 중 상당수가 정신 지체(Mental Retardation)라는 것입니다. 정신 지체라고 하면 일반인들은 '영구'나 '맹구' 이미지를 흔히 떠올리지만 실제로 실생활에서 만나는 정신 지체 장애인은 정상인과 식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경도의 정신 지체(Mild Mental Retardation, IQ=50-55∼69)라면 말이 좀 어눌해 보이고 아는 것이 많지 않아 보이는 것뿐 자신에게 익숙한 상황이라면 정상인과 그다지 차이 없이 생활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대에서도 부적응이나 지시 불이행 등으로 곤란을 겪다가 '적응 장애'나 '우울 장애'를 의심해 정신과에 의뢰하는데 사실은 이들 중 많은 수가 정신 지체입니다. 이들은 훈련받은 전문가의 1:1 검사를 통해서만 진단할 수 있기 때문에 입대 과정에서는 이들을 선별할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예전에는 학력 수준으로 어느 정도 선별이 되었지만 요새는 수능 시험을 거치지 않고 특기 적성을 통해서 일정 수의 입학생을 받아들이는 대학들이 늘어났기 때문에 입대 전 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 지능 검사를 해보니 정신 지체인 경우가 꽤 많습니다.
따라서 많은 수를 차지하는 이들 정신 지체 사병을 제외하면 군에서 정신 질환으로 제대하는 사병의 수는 일반인의 정신 질환 유병률과 비교해 보았을 때 결코 높은 수치가 아닙니다. 특히 정신 질환으로 입원한 사병의 과거 병력을 보면 이미 입대 전에 정신과 진료를 받아온 사람도 꽤 많이 있어 군 생활이 기존에 이미 가지고 있었던 정신 질환을 악화시켰을지는 몰라도 군 생활이 정신 질환을 야기했다고 말하기에 어려운 사례가 많습니다.
어느 분야나 그렇지만 어떤 현상의 인과 관계를 밝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분위기는 그다지 건설적인 것 같지도 않고 사실 진실 같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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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제목만 보고 '또 멍청한 예비역 하나가 헛소리를 하겠구나'라고 냉소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뭐 그러려니 하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군대가 그런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니까요.
군대를 떠올리면 아직 가지 않은 자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요, 갔다온 자들에게는 무용담을 펼침으로써 인생의 낭비와 다름없는 2년이 넘는 기간을 말로나마 잠시 위로받는 대상이요, 못 가서 차별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테지요. 사람은 각자의 처한 위치와 자리에서 각자의 입장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저는 군대뿐 아니라 그 어떤 것에서도 언제나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상하게도 현역으로 군생활을 하기를 잘했다고 말하면 예비역들은 네가 편한 곳에서 군생활을 해서 덜 고생을 해서 그렇다고 거품을 물고, 군생활을 안(못)해 본 사람들은 심리학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인지 부조화 이론(cognitive dissonance theory)에 입각하여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미화하려는 시도라고 이야기 하더군요. 글쎄요.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생도 많이 했지만 배우고 느낀 것이 더 많았고 재미난 경험도 많이 했거든요. 고생한 만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한층 더 성숙했다고 생각합니다. 눈이 나빠서 현역을 빠질 수 있었던 동생도 제 영향으로 두말없이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쳤고 저와 마찬가지로 가기 싫었다 어쨌다 일체 이야기가 없더군요.
우리나라 남자에게 군생활은 경제적 독립, 결혼, 자녀 출산만큼이나 인생에서 중요한 터닝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효과의 크기는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고 봅니다.
2년이 넘는(저는 2년 2개월 9일입니다만) 기간이 한창 혈기왕성하고 공부를 포함한 할 일이 많은 젊은이에게 너무나 아까운 시간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는데 군대에 가지 않으면 그 기간을 정말 금쪽같이 활용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군대에 다녀오면 정말 머리가 굳어서 바보가 될까요? 저는 사람에 따라 그 답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는데 제 경우에는 모두 그렇지 않았습니다. 군생활을 기점으로 저는 제 인생이 가야할 방향을 정립했고 사람과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졌고 공부도 훨씬 열심히, 잘하게 되었습니다.
군생활이든 뭐든 배울 것이 있다는 자세로 적극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군대 아니라 군대 할아버지를 다녀와도 인생에 분명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군대는 피할 수 있으면 좋은 곳, 안 갈 수 있으면 좋은 곳, 어떤 수를 쓰든 빠질 수 있으면 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군대를 가지 않아도 항상 그런 수동적이고 회피적인 자세로 세상을 살게 마련이고 그런 사람들에게 세상은 결코 녹록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준비된 것은 결국 패배자의 자리뿐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군대의 처우가 형편없어서, 인권을 침해해서, 위험해서, 차별이 존재해서, 등등 사람이 하기 싫은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법입니다. 그런 사람은 군대가 아무리 지상 낙원처럼 바뀌어도 가고 싶지 않을 겁니다. 군대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겠지만 그것이 군대를 빠지려는 이유를 정당화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입대 전에는 당연히 가야할 곳을 가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 적합한 표현이지만) 담담했고, 그러니 안 가려는 시도(몸을 혹사하거나, 배경을 이용하거나)를 해 본 적도 없었고, 가서는 뭐든지 도움이 되는 것을 배우려고 노력했으며(이것은 아래에서 자세히 나열해 보겠습니다), 다녀와서는 고생은 되었지만 다녀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그렇게 좋은 군대라면 또 가지 그러냐고 하신다면... 나라가 부르면 주저 없이 가겠다고 답하겠습니다.
닫기
다림질, 바느질, 구두 닦는 방법, 각종 도구를 다루고 수선하는 방법, 삽질(이게 결코 보기처럼 쉬운 것이 아니죠), 요리 재료 다듬는 법 등을 배웠고(사회에서 이런 거 배우기 쉽지 않습니다. 아니면 돈 내고 배워야 하죠),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법을 배웠고,
혼자 보내는 시간을 사색으로 활용하는 법을 배웠고,
부모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배웠고,
농부의 수고를 배웠고,
신체적인 고통으로 정신을 억압할 수 없음을 배웠고,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과도 손을 잡고 협동하는 법을 배웠고,
건강한 육체의 소중함을 배웠고,
불굴의 인내심을 배웠고,
신의 존재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를 양보해야 한다는 진리를 배웠습니다.
이래도 군대에서 배우는 것이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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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외출에서 돌아오면서 아내와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생각난 건데(사실 '맛스타' 이야기를 하다가 꼬리를 물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때의 생각에 이르더군요) 군 생활을 (제대로) 한 사람이라면 잊지 못하는 먹을거리의 추억이 하나쯤은 있을 겁니다.
한밤중에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 눈물을 흘리며 먹었던 군용 건빵이나 찹쌀 도나쓰(도넛이 아닙니다. -_-;;;) 이야기는 많이들 아시는 것이고(물론 저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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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자대 배치를 받은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새파란 이등병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제가 근무하던 부대는 소위 말하는 짬밥 순서로 야간 근무 명령서를 작성해서 병장은 실내 불침번 근무, 계급이 낮아질수록 외곽 근무를 나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매우 불공평하지만 일종의 관례처럼 지켜지던 것인데 갑자기 사단 감찰 사령의 불시 순찰에 적발이 되는 바람에 본보기로 근 한 달 동안 병장들을 모두 외곽 근무로 보내고 이등병들을 실내 불침번을 서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제가 자대 배치를 받은 시점이었죠. 덕분에 저는 따뜻한 불침번 근무를 서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원래 군인은 10시만 되면 취침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10시만 되면 등화관제(공습을 막기 위해 불빛이 건물의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게 조치하는 것)를 합니다. 그런데 제가 근무하던 부대에서는 취침 시간 이후로 공부방을 운영해서 전역을 앞둔 병장(흔히 개구리라고 합니다. ^^)들이 사회 적응을 위한 공부를 하도록 배려하고 있었습니다. 영어 공부를 하거나 기술 자격증 시험 준비를 하거나 하는 등으로 활용하도록 말이죠.
어느 날 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불침번 근무를 서고 있었습니다. 혼자 적막한 밤에 근무를 서고 있으니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면서 마음이 매우 싱숭생숭했었죠. 그런데 갑자기 공부방의 문이 배꼼 열리더니 최고참 병장 하나가 저를 손짓으로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부리나케 달려가 보니 '깔깔이' 차림의 그 병장이 '관등성명'을 대지 말라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고는 저를 공부방 안으로 불러들이더군요. 사실 제 짬밥이면 공부방은 금단의 구역이라 안을 들여다 보지도 못합니다.
얼떨결에 들어가 보니 초등학교 실험실 같은 분위기인데 책상 위에 그 고참이 보던 자격증 수험서가 펼쳐져 있더군요.
그.런.데. 제 눈과 코를 자극하던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김이 무럭무럭 나는 50개 들이 '삼포만두'와 '종갓집 김치'였습니다(실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품명을 사용했습니다. ^^).
먹다가 남았는데 버리기가 아까워서 주는 거니까 식기 전에 먹으라고 하더군요.
그 다음 순간은 기억이 나지를 않습니다. 아마도 '필름'이 끊겼나 봅니다. 정신이 돌아오고 나서 보니 그 병장이 등을 두드리면서 천천히 먹으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제가 정신없이 입에다 만두와 김치를 우겨넣고 있었나 봅니다. ^^
전역한 지 10년이나 지났고 이제는 향토 예비군도 아닌 민방위 대원이 되었지만 아직도 저는 그날 그 밤에 먹었던 따끈따끈한 만두의 부드러운 속피와 시원한 김치의 아삭한 맛의 절묘한 앙상블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포스팅을 하면서도 입에 침이 가득 고이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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