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보다 4년 전에 쓴 책인데도 심장을 찌르는 독설과 팩트 폭격은 더 했으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 않습니다.
이 책의 소제목들만 봐도 어떤 지 짐작이 갈 정도지요.
한번 보시겠습니까?
* 어떻게든 되는 시골 생활은 없다
* 경치만 보다간 절벽으로 떨어진다
* 풍경이 아름답다는 건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이다
* 텃밭 가꾸기도 벅차다
* 지쳐 있을 때 결단하지 마라
* 고독은 시골에도 따라온다
*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 깡촌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 심심하던 차에 당신이 등장한 것이다
* 친해지지 말고 그냥 욕먹어라
* 엎질러진 시골 생활은 되돌릴 수 없다
* 시골에 간다고 건강해지는 건 아니다
* 불편함이 제정신 들게 한다
사람에 치이고 환경 오염에 찌든 도시인들이라면 한번쯤 귀농이나 귀촌을 꿈꿔봤을텐데요. 저도 한 때 귀촌을 생각하면서 이런저런 정보를 많이 찾아봤지만 저랑은 기질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꿈을 접었더랬습니다. 북 카페 꿈 이후로 두 번째로 접은 꿈입니다.
그 과정에서 겉보기와는 사뭇 다른 우리나라 시골의 추악한 민낯을 접하고 오만 정이 다 떨어졌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소개글을 접했을 때도 '일본 시골도 다를 바 없구나' 정도의 씁쓸한 감흥만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구매해서 읽기 시작한 건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에서 제 가슴을 통렬하게 후려쳤던 마루야마 겐지의 가감없는 경험담(실제로 미루야마 겐지는 귀향 후 계속 시골 생활을 하고 있죠)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예상은 했지만 홀로서지 못하는 인간을 평소에도 경멸하던 마루야마 겐지가 시골 생활에 대한 어설픈 로망을 품은 독자들을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죠. 역시나 돌팩트로 양 싸대기를 날립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마루야마 겐지가 하는 말이라서 '수제 죽창을 만들고 침실을 요새화하라'는 조언도 그냥 웃어넘길 수가 없더군요.
시골 생활을 어설프게 동경하는 저 같은 얼치기 도시인에게 얼음 냉수 한 사발 같은 책입니다. 부디 이 책 드시고 속 차리세요.
닫기 * 새장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생애에 걸쳐 추구하고 전력할 일이나 취미가 있어서 곧바로 그것들로 옮겨갈 수 없다면 지금껏 헛되고 무의미하게 살아왔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생활 환경으로는 가혹하다는 의미입니다.
* 시골에서 살려고 할 때 그 지역 기질은 아주 중요합니다. 공기나 물 혹은 그 이상의 핵심 조건입니다. 그런데도 가장 파악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 지역 주민들과 교류하지 않으면 외로우리라는 약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시골 생활은 처음부터 깨끗이 단념해야 할 것입니다.
* 인구가 극히 적은 지역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고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그곳으로 가는지 처음부터 확실한 목표를 세우는 일입니다. 확실한 목표가 있느냐 없느냐가 시골 생활의 성패를 좌우할 것입니다.
* 자연에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은 무엇보다 스스로를 다스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홀로서기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 시골에서는 내 일은 내 힘으로 한다는 강한 마음가짐과 체력이 필요합니다. 이주하고나서 도시의 편리함과 비교하며 불평해 본들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것이든 스스로 내해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으면 굳이 불편한 곳에서 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덧. 이 책은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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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남자를 대상으로 상담을 하다 꿈 이야기를 할 때 보면 자주 나오는 레퍼토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은퇴한 뒤 귀농해서 전원 주택을 짓고 마누라와 농사 지으면서 알콩달콩 살았으면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누라 손 잡고 둘이서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나는 겁니다.
심리 평가를 할 때에도 유독 남자 어른의 문장완성검사에는 귀농과 세계일주여행이 많이 등장합니다.
왜 그렇게 많이 등장하느냐는 차치하고,
은퇴 후 귀농을 하려면 우선 15년 정도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자가 동의를 하느냐인데 나이 들면 의료 시설이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하고 편의 시설이 밀접되어 있는 도시를 떠나지 않으려는 여성들이 많기 때문에 마누라와 합의된 것이 아니면 혼자서 헛꿈 꾸고 있는 것이죠. 준비 다 해 놓고 마누라가 당신 혼자 내려가라고 하면 완전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겁니다. 게다가 말이 귀농이지 노후 보장이 확실하지 않다면 은퇴 후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인데 농사가 어디 말처럼 쉽나요? 그러니 귀농 지역 선정, 집을 지을 땅 매입, 귀농 후 무슨 농사를 지을 지, 어떤 소일거리를 할 지 실제로 귀농하기 훨씬 전부터 고민을 해 두어야 한다고 합니다. 시작부터 만만치 않죠?
세계 일주 여행은 더 어렵습니다. 많이 다닌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근 몇 년 동안 집중적으로 해외 여행을 다니면서 제가 절절히 느낀 것은 여행 아무나 다니는 거 아니라는 점입니다. 일단 체력이 필수여서 체력이 떨어지면 개발 국가 이외에는 못 갑니다. 그러니 여행을 다니려면 건강과 체력 관리는 필수입니다. 게다가 체력도 체력이지만 여행이라는 것이 언어 장벽이라든가, 위기 대처 능력이라든가, 현지 적응이라든가, 문화적 차이 극복이라든가 그냥 돈 들고 단체 관광 가는 것이 아니라면 신경 쓸 점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여행을 나가보면 우리나라 남자 어른들이 꿈꾸는 것처럼 백발 성성한 부부가 손 꼭 잡고 다니는 건 유럽 여행자들이나 그렇지 우리나라, 아니 동양권은 전멸입니다. 유럽 사람들이야 젊어서부터 배낭 여행 경험도 많고 호기심에 모험심도 많아서 뽈뽈거리고 많이 돌아다니니 나이 들어서도 노부부가 여행 다니는데 어려움이 별로 없지만(이 사람들은 체력까지 좋아요. -_-;;;) 우리나라야 어디 그런가요? 제가 장담하는데 젊었을 때부터 체력 관리하면서 열심히 여행 다니지 않으면 늙어서 세계 일주 여행 어림도 없습니다.
그러니 자꾸 은퇴 후 무엇을 하겠다고 미루지만 말고 지금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틈틈히 즐기는 것이 장땡입니다.
글쎄, 나중에는 돈 있고 시간 있어도 하기가 어렵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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