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 중 청렴한 것처럼 보여 지지했던 정치인이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될 때,
평소 대중들에게 따뜻해 보이는 모습이라 좋아했던 연예인이 스탭에게 갑질한 게 밝혀져 구설수에 오를 때,
나를 도와줄 것이라고 믿고 의지했던 상담자가 그저 돈 때문에 나를 상담했다는 걸 우연히 알게되었을 때, 등등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이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고 분노합니다. 하지만 그런 분노 감정에 몰입하는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펴봐야 하는 건 대체 왜 분노하게 되었느냐입니다.
많은 경우 분노는 '욕구의 좌절' 때문에 생겨납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죠. 맛집에서 2시간 이상을 기다렸는데 바로 내 앞에서 재료 소진으로 오늘 영업이 끝났다면 일시적으로 분노가 치미는 건 이상한 게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욕구의 좌절은 다른 욕구의 추구로 쉽게 대체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맛집으로 바로 이동해서 먹고 싶었던 같은 종류의 음식을 먹게 되면 어느 정도는(완전하지는 않더라도) 해결되죠.
하지만 위에 제시한 예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다른 청렴한 정치인을 발굴해서 지지하거나 다른 연예인 팬카페에 가입하거나 상담자를 바꾼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날까요? 그건 욕구가 아닌 '기대'가 좌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기대는 내 가치관과 신념이 투영되게 마련입니다. 정치인은 청렴해야만 하며, 연예인은 모든 대중에게 겸손하게 행동해야 하고, 상담자는 돈이 아닌 소명의식과 이타심에 의해 상담을 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기대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내가 마음 속에서 만들어 낸 것입니다.
'기대를 버리고 비교하지 않는 방법'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세상은 공평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이 다 나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국 내 마음이 만들어낸 지옥에서 살게 됩니다.
'관계는 기대 때문에 망하고 불행은 비교 때문에 느낀다' 포스팅에서 저는 세상 만사의 모든 고통이 거의 대부분 자신이 만들어 낸 기대 때문에 생긴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내 고통은 내 기대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는 '너 때문이야!!'라고 남 탓하는게 훨씬 쉽거든요. 변화를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고요.
하지만 그렇게 남 탓만 하면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을 향해 기대하면 할수록 좌절되었을 때 더 큰 분노를 경험하게 되고 그 분노는 언젠가 지옥불처럼 나를 집어삼켜 영원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게 만들 겁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기대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혼자서 안 되면 전문가든 누구든 도움을 받아서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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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사랑은 내리 사랑이자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들 합니다. 부모가 되어 봐야 아낌없이 주는 부모님의 바다와 같은 사랑을 진정으로 깨닫게 된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부모의 사랑은 자식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일까요?
저는 그런 사랑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상담일을 하면 할수록 무조건적인 사랑은 허구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짙어지거든요.
자녀가 사소한 일로 감정이 폭발해 부모님은 항상 나를 무시한다고 울분을 토하는 걸 듣고 황당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온 부모님이 계십니다. 당신은 자녀를 무시하는 마음을 품은 적이 한번도 없다고 억울하다고 하시면서요.
그런데 왜 그 자녀는 부모님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그건 그동안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왔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부모가 나에게 조건부 사랑을 줬다고 느꼈는데 그 사랑을 받기 위한 기대를 충족할 능력이 본인에게 없으니 답답했던 것이죠.
부모와 자식의 이런 생각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이런 차이를 보이는 가족이 정말 많습니다. 저는 이럴 때 부모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순서대로 합니다.
1. 자녀를 사랑하시나요?
: 놀랍게도 이 질문부터 선뜻 자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부모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 부모가 별로 없거든요. 물론 자식을 사랑하는게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물어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2. 사랑한다면 왜 사랑하시나요?
: 안타깝게도 이 질문에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고 대답하는 부모를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사랑한다고, 부모가 자녀를 무슨 이유가 있어서 사랑하느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많지만 결국 부모가 스스로의 마음을 차근차근 들여다보면 사랑하는 이유가 무언가는 반드시 있더군요.
3. 자녀가 기대를 충족하지 못해도, 내 기대에 반하는 삶을 살아도 사랑할 수 있나요?
: 아직까지 이 질문에 대해 진정으로 그렇다고 대답하는 부모를 한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 질문을 들은 모든 부모가 주저하거나 대답을 꺼리고 피하더군요.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 면을 세워주고, 내가 바라는 직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원하는 배우자를 얻고, 내가 봤으면 하는 손주를 안겨 주고, 내가 원하는 효도를 한다면 그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 반대라면요? 그래도 사랑할 수 있나요?
세 질문에 모두 "예"라고 선뜻 대답할 수 없다면 조건부 사랑이 아닌지를 의심해 보세요. 즉, 내가 원하는 것을 해 줘야,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사랑하겠다는 메시지를 나도 모르게 주고 있지는 아닌지를요.
조금 과격하게 말한다면 그건 사랑을 한 것이 아니라 투자를 한 겁니다. 게다가 그 투자는 상대방이 원치 않은 것이라는데 본질적인 문제가 있는 겁니다.
앞서의 예로 돌아가 자신을 무시하지 말라고 울부짖는 자녀는 이미 부모의 속마음을 읽고 있던 겁니다. 그냥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해 달라고 절규하는거지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 무조건적인 사랑은 없으며 모든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는 게 아닙니다. 제가 만나는 사람들은 마음을 다쳤거나 마음이 약해진 분들이 대부분이니까요. 마음이 건강한 분들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고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기대가 충족되어야만 조건부로 사랑하면서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부모와 그런 부모의 기대가 너무도 부담스러워 그 사랑을 굴레처럼 느끼는 자녀의 관계는 건강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 슬프고 안타까운 일방적인 관계지요.
부모가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욕심과 기대를 명징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 자신의 부모로부터 받은 기대가 자신도 모르게 대물림되어 자식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을 때, 그 때가 되면 비로소 진정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포스팅에서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에 국한해서 말씀드렸지만 연인, 배우자, 친구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면 별반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아무런 기대 없이 사랑하고 있는지를요, 상대방이 내 기대에 반하는 삶을 살아도 사랑할 수 있는지를요. 만약 그렇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 행복한 관계를 맺고 있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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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여담이지만 저는 아이 문제로 심리평가나 상담을 받으러 온 부모의 문장완성검사에서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우리 아이들을 ~~~하게 키우는 것'이라는 응답을 발견하면 주의하는 편입니다. 경험적으로 부모-자녀 관계가 문제인 가정이 많았거든요.
문구 자체만 놓고 보면 자신의 아이를 제대로 키우겠다는 부모의 자기 다짐처럼 느껴지기에 별 문제 없어 보이지만 사실 저 문장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우선 아이의 기질, 아이가 바라는 것, 아이가 되고 싶어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없습니다. 아이가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내 아이를 이렇게 저렇게 키우겠다는 다짐 속에는 아이가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욕구와 희망과 꿈이 들어갈 자리가 거의 없는거지요. 아이가 원하는 것을 알았다손쳐도 부모의 기준에 부합해야만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모의 기대와 욕심이 먼저, 아이의 욕구와 꿈은 나중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자칫 아이의 행복이 우선적인 기준이 아닌 자신의 대리 만족을 위한 욕구의 투사 대상으로써 아이를 바라보게 됩니다. '내가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해서 하고 싶은 공부를 맘껏 못했으니 우리 아이는 그런 걱정 안 하고 마음껏 공부를 할 수 있게 하자'고만 욕심낸다면 정작 아이가 공부 대신 다른 것을 하겠다고 했을 때 흔쾌히 허락하고 지원하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내 대신' '내가 못한' 공부를 해야 하니까요. 이런 투사는 아이와 부모 모두를 병들게 합니다. 정말 불행한 일이죠.
다음으로는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이라는 질문은 내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 넓게는 나에게 삶의 의미가 되는 것이라는 포괄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 아이를 어떻게 키우겠다는 다짐이 가장 바라는 것인 부모는 자신에 대한 바로 그것이 없습니다.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없고 나와 다른 존재인 내 아이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기대'를 하게 되고 제가 예전에 했던 포스팅(
관계는 '기대' 때문에 망하고, 불행은 '비교' 때문에 느낀다)에서처럼 부모-자녀 관계를 망치게 됩니다.
칼릴 지브란이 자신의 시(
'자녀는 부모가 키우는 분재가 아니라 스스로 크는 소나무이어야 합니다' 포스팅 참고)에서 말했듯이 부모가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까지 줄 수는 없으므로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원하고 응원하는 것이 참 부모의 역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내 아이가 나와 다른 생각, 다른 꿈, 다른 희망을 품고 있다면 세계적인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 말처럼 다른 북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나와 같은 북 소리를 듣고 같은 박자에 흥을 느끼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다른 리듬을 타는 내 아이를 보는 것도 즐겁고 보람된 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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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에
'관계는 기대 때문에 망하고, 불행은 비교 때문에 느낀다'는 포스팅을 하면서 우리가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기대'와 '비교'를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 포스팅은 위의 글과 내용이 이어집니다.
매사에 자꾸 기대를 하게 되면 그 기대가 좌절되었을 때 실망하거나 원망하고 분노를 폭발시키면서 대인 관계가 악화됩니다. 또한 자신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며 불행을 느끼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며 얻게 되는 일시적인 위안에 매달리게 되죠.
행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기대'와 '비교'를 내려놓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아무 것에도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가능하겠지만 그건 경지에 이른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마음가짐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아무런 욕심도 갖지 않는다면 삶의 의욕마저 잃어버리고 무기력에 빠져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적절한 수준의 욕심은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의 두 가지 생각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가 때때로 꺼내 되새겨 보세요.
1.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건 맞지만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빨리 인정할수록 좋습니다. 세상이 공평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면 기대가 꺾이는 경험을 계속 반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왜 부자가 아닐까', '왜 나는 예쁜 여자 친구가 없을까', '왜 나는 한번에 취업이 안 되는 걸까'에 대한 원인을 '부자인 부모에게서 태어나지 않아서', '내가 못생겼기 때문에', '머리가 나빠서 공부를 해도 안 되니까'처럼 원인을 자신에게 귀인하게 되고 쉽게 좌절하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은 공평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불공평한 일이 일어나게 마련이라고 생각하면 고통을 덜 느끼게 됩니다. 안 아프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은 덜 아프죠. 세상을 살면서 안 아플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조금 덜 아픈 건 굉장히 중요합니다. 너무 아프면 아픔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어 문제 해결적인 대처 방법을 사용할 수가 없게 되거든요.
2. 다른 사람들이 다 나처럼 생각하는 건 아니다
세상사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이라는 걸 빨리 받아들이는 겁니다. 내가 제아무리 옳고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걸 담보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마련이고 어떤 사람이냐, 어떤 사람으로 성장했냐, 지금 어떤 상황과 처지에 놓여있냐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이 더 신기한 것이죠. 나는 왜 자꾸 다른 사람들과 마찰을 빚고, 오해가 생기며, 사람들이 내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가 하면 그건 그 사람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고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나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딴지를 거는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다 나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그냥 주어진 환경에 맞춰 패배자처럼 참고만 살아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를 빨리 인식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확률이 증가하게 됩니다. 최소한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 속에서 낭비되는 에너지와 시간을 아낄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나만 싫어하는 것 같고, 세상이 나만 홀대하는 것처럼 느끼는 분이 계시다면 기대를 내려놓고 비교를 하지 않기 위해 오늘 말씀드린 두 가지를 한번 차근차근 곰씹어 보시기 바랍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실거에요. 저에게는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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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관계 갈등 때문에 상담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상대방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만이 대충 두 가지 중 하나로 나뉘어지더군요.
첫번째는 상대방이 (객관적이든 또는 주관적이든) 잘못된 행동을 해서 그것 때문에 직접적으로 감정이 폭발한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시댁 식구들 앞에서 배우자가 자신의 흉을 본 것을 알게 되었다든지, 자녀가 게임을 하다 걸렸는데 훈계를 듣던 도중 적반하장격으로 나에게 욕을 했다든지 등등
이런 경우는 내담자가 상대방의 행동 때문에 받은 상처를 점검하고 개선이 필요하고 또 가능하면 동일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율하는 작업을 통해 재발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내담자를 더 괴롭히는 문제는 두 번째 경우입니다.
바로
상대방이 하지 않은 행동 때문에 폭발한 경우이죠.
예를 들어, 결혼 10주년 기념일인데 축하한다는 인사를 남편이 잊었다든지, 가족과 함께 하려고 어렵게 휴가를 냈는데 각자 일정이 있다고 가족 여행을 못 간다고 했다든지 등등
여기까지는 그래도 이해하기 쉽지만 다음의 예는 과연 상대방이 하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하기에 살짝 미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저녁 설거지를 하겠다고 해 놓고는 그냥 놔두고 출근하는 남편, 학원 다녀오는 길에 신신당부한 심부름을 까맣게 잊고 털레털레 집에 돌아온 아들, 약속에 늦지 않겠다고는 또 다시 늦은 친구 등등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고 이야기를 해놓고는 결국 지키지 않은 것이니 뭔가 나에게 나쁜 일을 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도 모두 하지 않은(일어나지 않은) 행동입니다.
하지 않은 행동을 비난하면 안 됩니다. 하지 않은 행동을 비난하는 건 상대방이 내 마음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내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았기 때문에, 좌절된 내 기대 때문에 생긴 괴로움을 상대방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입니다.
표현 방법이 어떠하든 간에 그것은 결코 효과적이지 않으며 문제를 개선하지도 않고 오히려 상대방의 반발만 초래해 상황을 악화시키게 됩니다.
상대방이 하지 않은 행동 때문에 화가 난다면 오히려 자신에게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왜 그렇게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되는지 진지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내면에는 좌절된 욕구와 기대가 숨어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걸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욕구와 기대는 근본적으로 스스로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 의해 충족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니까요.
그러니 하지 않은 행동, 일어나지 않은 현상을 비난하는 걸 그만두세요. 스스로를 상하게 하는 행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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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이 영화로 김민희씨가 백상예술대상 여자최우수연기상을 거머쥐었지요. 요즘의 연애 실태를 현실적으로 잘 그리고 있고 코믹한 요소도 적잖이 배치되어 있어 내 이야기가 아닌 이상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도 꽤 재미있게 봤고요.
개인적인 감상을 좀 말씀드리면,
연애란 건 당사자가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거라지만 김민희와 이민기가 연기한 두 사람의 연애는 잘 되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영화에서는 다시 한번 잘 해보는 걸로 해피엔딩 처리했지만 개인적으로 결국은 다시 헤어질 수 밖에 없을거라 예상합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우선, 두 사람은 사내 커플입니다. 그것도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정도가 아니라 같은 지점에서 매일 얼굴을 맞대고 일하는 은행원이죠. 예전에
'모든 다중 관계는 해롭다'는 글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사내 커플은 사이가 좋을 때에는 상관없지만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파괴력이 훨씬 더 큽니다. 온갖 구설수때문에도 그렇고 연애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완충시켜줄 자기만의 안전 공간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50점을 깔고 들어가는 불리한 연애입니다.
그 다음으로 이 연애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두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에게 진실하지 않습니다. 이기적이냐 아니냐를 떠나 자신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그러면서 상대방을 위해서 그랬다고 둘러대기만 하죠) 뒤로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느라 온갖 방법(페이스북 감시, 미행, 전화 확인 등등)을 동원합니다. 사랑하는 사이에 가장 중요한 신뢰가 싹틀 틈이 없습니다. 신뢰를 쌓아둔 것이 없으니 갈등이 생겼을 때 인출한 애정 자금이 없는거지요.
게다가 이 두 사람은 자신에게,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기대를 합니다. 연애란 이럴 것이라고까지 기대하기 때문에 매번 그 기대를 충족하는지 확인하고 충족되지 않으면 좌절하고 슬퍼합니다. 자신이 만든 기대의 덫에 스스로 걸려서 고통스러워하는거지요.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그걸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은 집착과 희생 밖에 없습니다. 그래봤자 고통의 시간을 연장하는 것 뿐이지만요.
마지막으로 부정적인 예후를 보여주는 건 동희(이민기 분)의 주사와 두 사람의 통제불능증과 기본 예의 부족입니다. 주량 통제가 잘 안되고 일단 술에 취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제맘대로입니다. 영화에서는 그런 요절복통 야단법석이 재미난 에피소드처럼 그려졌지만 사실 이런 주사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항상 맘졸여야 하지요. 실제로 이 영화에서도 박계장이라는 후배가 남자 주인공 때문에 개고생합니다. 그리고 이 커플은 어느 선을 넘어서면 서로에게 쌍욕을 하거나 몸싸움도 가리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 역시 연애 동안에는 화끈하고 열정적으로 비쳐질 수 있지만 기본적인 존중과 매너를 지키지 않는 커플의 미래는 아주 어둡죠.
그래서 이 두 사람의 연애는 결실을 맺기도 어렵고 설사 결실을 맺는다고 해도 서로를 불행하게 만들 뿐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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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인간 관계에서 반드시 버려야 할 두 가지로 '기대'와 '희생'을 꼽는다는 트윗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생각은 지금도 유효합니다만 유효성과 가능성은 별개의 것이라는 게 항상 문제죠.
혹자는 희생은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사람 사이에 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있냐며 반문합니다. 기대가 있기 때문에 희망을 갖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면서요.
개인적으로는 굳이 기대를 하지 않더라도 현재에 충실하게만 살면 충분히 희망을 갖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번 포스팅에서 다룰 내용은 아니니 통과하고요.
기대를 내려놓기가 정 힘들다면 대상을 바꿔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남에게 기대하지 말고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이죠. 남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남에게 기대하면 좌절을 맛볼 확률이 매우 높죠. 간혹 기대를 충족한다손 쳐도 일시적인 안도감을 느낄 뿐이지요.
자신에게 기대를 해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을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남에게 기대하는 것만큼 불확실성이 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건강한 믿음에 기반한 기대는 성취를 향한 연료를 제공할 수도 있거든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성공해 있거나 성공 여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기에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든 꼭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해 목표 지향적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면 스스로에게 작은 기대를 하는 것도 기대를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다면 해 볼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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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받으러 온 내담자의 절대 다수는 대인 관계 문제를 호소합니다. 심리적 증상때문에 힘들다고 하더라도 근본 원인은 대인 관계이거나 최소한 대인 관계 문제가 얽혀 있곤 하죠. 대인 관계 문제가 없이 오로지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문제를 가져오는 내담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됩니다.
그런데 10년 정도 상담을 해 보니 대인 관계 갈등을 만드는 가장 큰 문제가 '기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에게 기대를 하기 때문에 실망을 하게 되고, 분노를 느끼게 되고, 원망을 하게 되는 것이죠.
기대를 하지 않으면 고통을 느낄 일이 없습니다.
간혹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관계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계신데 기대 없이도 충분히 충만하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바라는 것 없이 주는 것이 기쁜 관계를 맺으면 됩니다.
저는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데 사실 얘네들에게 별로 기대하는 것이 없습니다. 먹여 주고 재워준다고 아양을 떨 것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고 우울할 때 저를 위로해 줄 것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존재 자체가 위로가 되고 사랑스럽게 느끼는 것이죠.
그런데 인간들은 유독 상대방의 의사는 묻지도 않은 채 제 맘대로 서로에게 기대하고 그 기대가 좌절되면 실망하거나 원망하고 분노를 폭발시키기도 합니다. 기대의 근원에는 욕심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욕심을 버리면 기대를 할 일이 없고 기대를 하지 않으면 관계 갈등이 생길 일이 없습니다.
그걸 깨닫고 나니 인생에 원망이 사라지더군요. 저도 아직은 완벽하지 않지만요.
그리고 또 하나, 불행은 '비교' 때문에 느낀다는 것도 상담을 통해 배웠습니다. 비교하지 않으면 불행감을 느낄 일이 없다는 걸 자연스레 알게 된거죠.
이건 행복이 뭔지에 대해 의미 치료적으로 접근하다 찾은 것인데 사람들은 흔히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행복감을 느끼라는 충고를 따르다가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안타깝지만 상대적으로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서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내는 것도 비교의 틀 안에서 놀아나는 것입니다. 잠시동안 상대적인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지만 감당하기 어렵거나 자신에게 중요한 자원이 고갈되면 오히려 취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죠.
'기대'와 '비교'만 하지 않을 수 있어도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떠한 '기대'도 하지 마시고 누구와도 '비교'를 하지 말아보세요. 그 결과에 놀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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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라디오 방송을 들으니 신혼 부부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례사 1위로 5분 이내에 끝내는 간략한 주례사가 뽑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 추세에 발맞춰 저도 5분 이내에 끝내고 주례 잘 모셨다는 인사 한번 들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딱 4가지입니다. 이래놓고 한 말씀 더 한 말씀 더, 이런 짓은 안 하겠습니다. 정말 딱 4가지만 말씀드리죠.
첫 번째와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와 네 번째 내용은 서로 관련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부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도 아니고, 정도 아닙니다. 바로 신뢰입니다. 신뢰를 잃으면 부부 관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뢰는 어떻게 쌓아야 할까요?
첫 번째 말씀은 바로 신뢰를 쌓는 방법에 대해서입니다.
무조건 상대방 배우자의 편이 되십시오. 부모도 자식도 형제자매도 배우자의 앞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혈육의 인연과 정은 쉽게 끊어지지 않지만 부부가 쌓은 신뢰의 성은 너무나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반드시 배우자가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부부가 왜 무촌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만큼 가까워서요? 아닙니다. 헤어지면 아무 사이도 아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무조건 배우자의 편이 되어주셔야 합니다. 배우자는 자신의 등을 맡길 수 있는 응원군을 원하지 정의의 재판관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 말씀 역시 신뢰를 쌓는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무조건 배우자의 편이 되라는 말은 총론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 말씀은 각론에 해당합니다. 실천 기술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아주 쉽습니다.
어설픈 마음 읽기를 하지 말고 무조건 사실을 말하라는 겁니다. 우리는 보통 상대방에게 사기를 칠 의도로 행한 적극적인 거짓말만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보를 모두 알리지 않는 소극적인 거짓말도 분명히 거짓말입니다. 필요한 정보를 주지 않으면 그 빈자리를 추론과 마음 읽기로 메워야 하는데 여기에서부터 오해와 왜곡이 발생하게 됩니다. 배우자에게 상처를 주지 않겠다고,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사실을 숨기는 것도 하지 마세요. 책임은 자신이 지되 배우자에게만큼은 모든 것을 숨기지 않고 말해야 합니다. 배우자에게만큼은 완전히 투명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앞서 두 가지의 말씀은 부부 사이에 가장 중요한 신뢰를 쌓고 지키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부부 사이를 붙여놓는 접착제와 같은 것들이었지요.
그런데 이제부터 드릴 말씀은 부부 사이를 떼어놓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앞의 내용과 사뭇 다르다고 생각되어 의아한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잘 들어보면 큰 맥락에서 다른 말은 아닙니다.
바로 독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결혼을 한다고 하면 싱글의 삶이 끝나고 상대방에게 헌신하는 밀착된 삶이 새로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래서는 건강한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해야 하고 개인으로서의 독립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바로
희생하지 말고 배우자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희생을 미화하고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보는 시각이 팽배합니다. 하지만 아무런 댓가가 없는 희생이라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희생은 항상 기대를 낳습니다. 물질로 환산할 수 없는 기대라면 괜찮겠지 싶겠지만 사실은 그게 더 우리를 괴롭힙니다. 내가 열심히 내조하면 내 고마움을 알아주겠지 하는 기대가 좌절되었을 경우 더 큰 분노를 생성하게 됩니다. 그러니 희생하지 마시고 기대하지 마시고
배우자가 없었다면 어차피 자신이 했어야 할 일이니 모든 일을 자신이 해야 할 일로 생각하고 하세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그러려면 뭐하러 결혼하느냐고 묻는 분이 계셔서 그 차이를 설명하는게 참 쉽지 않지만 모든 기대를 내려놓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주도적으로 살면 배우자의 사랑과 존경은 저절로 얻게 된다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찌 보면 이것이 오히려 고난도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도 독립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보통 결혼을 하게 되면 둘 중 한 사람이 재정 관리를 전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용돈을 받아서 쓰는 사람은 항상 불만스러울 수 밖에 없고 전담하는 사람도 자신의 돈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적인 지출을 극도로 억제하게 되니 욕구 불만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재정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지 않으면 용돈을 받아서 쓰는 사람은 재정 상태에 대한 정보가 지극히 부족하기 때문에 돈을 관리하던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게 되면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니 결혼을 하더라도 독립 채산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여자분들께서 반발하시는데 과연 재정을 관리하면서 본인에게 득 되는 일이 뭐가 있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화장품이라도 돈 걱정 안 하고 제대로 사신 적이 있던가요? 알뜰살뜰 모아서 집 마련했다고 누가 제대로 알아주던가요?
요점은 니 돈 내 돈 나누자는 것이 아니고 각자의 재정 관리 능력을 극대화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다는 것을 전제하고 반드시 가계부를 써야 합니다. 가계부를 쓰지 않으면서 미래의 재정을 이야기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우리 가정의 빚이 얼마인지, 수입이 얼마인지, 지출이 얼마인지도 정확하게 모르면서 미래 계획을 세운다는게 어디 가능하기나 하겠습니까? 그러니
꼭 가계부를 쓰십시오. 재정 전문가들이 그럽디다. 가계부를 쓰는 것만으로도 생활비가 30% 정도 감소한다고요. 빨리 시작하면 할수록 득이 되는 것이 가계부 쓰기입니다.
신혼 부부를 앞에 두고 상대방에게 기대를 하지 말라는 둥, 니 돈은 니 돈 내 돈은 내돈으로 살라는 둥 다소 생경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이니 그냥 객적은 소리이겠거니 하고 넘기지 마시고 한번쯤 신중하게 고민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벌써 5분이 지난 것 같으니 이 정도로 주례사를 끝내려고 합니다. 행복한 결혼, 행복한 인생이 되시기를 기쁜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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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목표는 기대를 내면에 깔고 있기 때문에 실패하면 실망감을, 성공하면 잠시의 기쁨 뒤에 또 다른 허탈감을 내포하고 있어 삶에 목표를 세우고 사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추천하지도 않습니다만 그건 제 가치관이니 다른 분께 강요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이미 뭔가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정진하는 분들이 왜 목표하는 삶에 도달하기 어려운가에 대해서 그동안 현장에서 상담을 하면서 느꼈던 것을 정리해 봤습니다.
이 문제는 상담을 하면서 의외로 자주 당면하는 것인데,
제 생각에 목표를 갖고 있는 분들이 목표하는 삶에 도달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 목표가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목표를 정하는 것에서 끝이 아니고 '왜'라고 스스로에게 자꾸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활동, 목표에 부합하는 좀 더 구체적인 목표 행동이 나오니까요.
예를 들어 은퇴하고 나서 귀농해서 살고 싶다는 목표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죠. 이 때 농촌에서 사는 건 목표가 아닙니다. 농촌에서 살게 된다고 목표가 달성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단순히 농촌에서 살고 싶다가 아니라 고구마 농사를 짓고 싶다. 민물 낚시를 하고 싶다처럼 구체적인 행동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농촌에서 살고 싶다는 목표는 실제로 연습을 해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행동은 미리 연습을 해 볼 수 있죠. 낚시를 한다든가, 주말 농장에서 고구마 농사는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이죠.
구체적인 목표 행동을 연습해보면 그 사이에 목표가 바뀔 수도 있고 예상되는 어려움을 수정할 기회를 잡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달성하려고 세우는 목표는 기존의 판을 뒤집어야 하는 다소 무리한 것이 많기 때문에 구체적인 행동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이는 오히려 현실에 안주하기 위한 변명거리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평소에 여행은 전혀 다니지 않으면서 은퇴한 뒤 배우자와 세계 일주 여행을 다니겠다는 꿈을 가진 분들이 많은데 그들 중 실제로 세계 여행을 다니게 될 사람의 수가 얼마나 될까요?
목표는 세계 여행이 아닙니다.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지, 무엇을 경험할 것이냐를 연습하고 그것을 체화하는 것이죠. 그런 구체적인 목표 행동에 익숙해지면 어느 순간 목표가 달성되는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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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사랑해서 한 결혼이고 너무나 사랑해서 함께 살기로 결정한 사람인데 우리는 왜 살면서 자꾸 배우자에게 화를 내게 되는 걸까요?
궁극적인 이유는 오늘 포스팅의 주제이기도 한, 배우자에게 화내지 않는 두 번째 방법과 관련이 있습니다. 바로 기대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배우자에게 화내지 않는 방법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초보자에게 적절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자신이 하기 싫은 것을 배우자도 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결심할 것
대체로 하기 귀찮거나 더럽거나 힘든 일을 배우자가 대신 해 줬으면 하고 그나마 부탁을 하면 좋겠는데 대개는 이런 저런 방법으로 묵시적인 강요를 하기 때문에 배우자가 거절하게 되면 자신이 생각한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해 화가 치밀어 오르는겁니다. 사실 상대방이 거절했을 때에도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없어야 진정한 부탁이지 거절당했을 때 화가 난다면 부탁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건 강요한 것이죠. 상대방이 당연히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겁니다. 그러니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절대로 배우자가 하도록 놔두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행동하면 배우자에게 화 날 일이 없습니다. 내가 하기 싫은 일 중에서 배우자가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되나요? 대개 둘 다 하기 싫은 일이죠. 그냥 자신이 솔선수범해서 하면 됩니다.
위의 방법보다 배우자에게 화내지 않는 보다 궁극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배우자에게 아무 것도 기대하지 말 것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 자체가 없거든요.
배우자 없이 혼자 산다고 생각해보세요. 내가 더 오래 산다면, 배우자를 저 세상으로 보내게 된다면 언젠가는 누구나 혼자 살게 됩니다. 그리고 혼자 살게 된다면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아무도 대신 해 주지 않죠. 혼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화가 날 일이 없습니다. 싱크대에 설거지할 그릇이 쌓여 있다고 해 보죠. 어젯밤에는 내가 했는데 오늘도 내가 해야 하는 것이 억울하다는 식으로 생각해봤자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내가 혼자 산다면 그 누구도 아닌 결국은 내가 해야 할 설거지입니다.
배우자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모두 내가 할 바에는 뭐하러 결혼했냐는 말을 하는 분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설거지를 대신 시키려고 결혼하셨나요? 저녁밥을 차려줄 사람이 필요해서 결혼하셨나요? 벽에 못 박을 사람이 필요해서 결혼하셨나요? 아마 아닐 겁니다. 그렇다고 배우자를 위해 희생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희생 역시 시간차만 있을 뿐 기대를 품고 있는 행동 방식입니다. 결국은 댓가를 바라게 되어 있어요.
기대 자체를 내려놓으세요. 그리고 혼자서 살고 있다고 가정하고 행동하세요. 어차피 혼자 살게 되는 날을 대비해서 언젠가는 할 줄 알아야 하는 일들입니다. 그렇게 솔선수범하게 되면 결국 배우자의 사랑과 존경을 얻게 됩니다. 그 반대 순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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