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Rapport)가 상담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건 상담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 라포가 없거나 약하다면 그 상담의 결과는 결코 희망적일 수 없는거지요. 상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만큼 상담자와 내담자의 치료적 신뢰 관계는 아무리 그 중요성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상담자는 내담자와 공고한 라포를 맺는데 총력을 기울입니다. 저는 필요하다면 전체 상담 회기의 절반을 사용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라포를 중요시하고 있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라포가 잘 형성되었는지, 튼튼한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전의 저도 한 때 그런 착각을 했지만 상담자와 내담자의 사이가 화기애애하면, 내담자가 저항을 그치고 상담에 몰입하게 되면 라포가 형성되었다고 믿는 상담자가 많습니다. 내담자가 상담자의 말을 경청하고, 치료적 조언을 그대로 따르면 라포가 튼튼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라포는 단순히 상담자가 내담자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게 아닙니다. 많은 내담자들이 기본적인 신뢰감이 약해진 상태에서 상담을 받으러 오고, 가끔은 재애착을 해야 할 정도로 무너진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상담 장면은 신뢰를 재구축하는 일종의 인큐베이터와 같습니다. 어머니의 자궁처럼 안전하고 전적으로 보호받는 환경 속에서 누군가를 믿는 것을 재경험하는거지요.
그렇다면 그런 신뢰는 어떻게 공고해 질 수 있을까요?
바로 갈등 상황을 통과해봐야 비로소 그 정도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아니 갈등 상황을 피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상황 자체가 바로 라포의 시험대입니다.
내담자가 상담자의 마음에 드는 말만 하고, 상담자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건 역설적으로 상담자를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담자의 언행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자신의 유일한 지지자인 상담자에게 버림받을까봐, 그것이 너무 두렵기 때문에 뒤로 감추고 겉보기에 좋은 가면만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라포는 상담 장면에서 상담자와 내담자의 갈등이 불거졌을 때 검증받게 됩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자가 내담자를 비난하지 않고, 역전이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내담자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때, 내담자는 상담자로부터 버림받을거라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상담자가 자신의 편에 설거라는 확신을 가지게 될 때 우리는 드디어 탄탄한 라포가 형성되었구나 하고 한시름 놓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꽤 많은 회기를 거치면서 상담자와 내담자 모두 서로를 좋아하게 되고, 상담이 기대되고, 이야기를 할 때는 분위기도 좋고,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한번 들으면 척 아는 수준까지 진행이 되었어도 회기를 돌이켜 보면 맨날 같은 이야기만 하는 것 같고 이건 상담이 아닌 친한 친구와의 수다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면 라포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 라포의 강도를 확인하는 게 두려운 나머지 변죽만 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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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상담에서 기본적인 신뢰감의 재구축을 통한 라포 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미 여러차례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대부분의 상담이 그렇지만 특히 아동/청소년 상담에서 라포는 그야말로 처음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중요해서 저는 아동이나 청소년을 상담할 때는 거의 규칙이 없다시피 허용적으로 대하는 편입니다.
현재 제가 상담하고 있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동의 경우에는 상담을 할 때 의자에 눕는 것도 허용(똑바로 앉아서 어른과 눈을 맞추면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큰 아동이거든요)하고, 예전에는 공부 압박에 시달려 너무 피곤해 하는 고등학생을 상담실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붙이도록 한 적도 있습니다. 상담을 너무 부담스러워하면 함께 그림을 그리거나 보드 게임을 하는 건 일상이고요.
상담에도 기본적인 예의는 필요하니 상담자와 내담자가 서로 바른 자세로 마주 앉아 눈맞춤을 하면서 격식을 지켜가며(은어와 비속어를 자제하면서) 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담자가 있다면 그게 정말 상담자의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가 아닌 온전히 내담자를 위한 상담 규칙인지 다시 한번 고민해 보실 것을 제안드립니다.
어쨌거나 상담 중 거의 대부분의 행동을 인정하는 저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모바일 기기의 사용입니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상담자와 내담자의 연결(connection)이 끊기기 때문입니다. 언어적이든 비언어적이든 상담자와 내담자의 연결이 끊긴다면 그건 이미 상담이 아닙니다. 그냥 같은 공간에서 각자 다른 활동을 하는 것 뿐이죠. 동상이몽이라고나 할까요? 개인적으로 별로 선호하지는 않지만 이보다는 차라리 온라인 화상 상담이 더 낫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동/청소년 상담 도중에 꼭 지켜야 할 규칙을 하나만 꼽으라면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지 않도록 합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담자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담자와 계속 연결되어 있느냐가 더 중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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