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출처 :
YES24
지금으로부터 33년 전인 1981년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를 통해 처음 출판된, 영문학 교수 피터 엘보의 글쓰기 관련 책입니다.
33년이나 되었는데도 1998년에 개정판이 발간되는 등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을 받는 글쓰기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죠.
김우열 번역가가 글쓰기 관련 책으로 강력 추천하는 책으로 개인적으로도 처음 읽어보는 류의 책이었습니다.
그럼 목차를 보시죠.
닫기
1부 몇 가지 기본 사항
1·한 가지 접근법
2·자유롭게 쓰기
3·공유하기
2부 독자
4·타인
5·집속렌즈로서의 독자
6·글쓰기 까다로운 세 가지 상황
3부 글쓰기
7·직선형 글쓰기
8·위험한 방법 : 한 번에 끝내는 글쓰기
9·개방형 글쓰기
10·순환형 글쓰기
11·다양한 용도의 글쓰기
12·글쓰기를 위한 마중물 붓기
4부 퇴고
13·빠른 퇴고
14·철저한 퇴고
15·피드백을 활용한 퇴고
16·자르고 붙이기 퇴고와 콜라주
17·마지막 단계 : 문법 오류 제거하기
18·메스꺼움 극복하기
5부 피드백
19·기준에 따른 피드백과 독자에 따른 피드백
20·기준에 따른 피드백 질문 목록
21·독자에 따른 피드백 질문 목록
22·피드백 받기의 선택사항들
6부 글의 힘
23·글쓰기와 목소리
24·목소리로 힘을 얻는 방법
25·글에 경험 불어넣기
26·설명문에 경험 불어넣기
27·글쓰기와 마법
글쓰기 방법과 퇴고 뿐 아니라 피드백에 대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글쓰기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김우열 번역가만큼 인상깊게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블로깅을 하면서 내심 부족하다 싶은 부분의 원인도 찾았고 내심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 부분을 좀 더 가다듬을 기술도 얻었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한 말을 제 방식으로 요약하자면,
'이것저것 가리고 재지 말고 일단 마음 가는대로 많이 쓸 것. 그리고 이를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되 글쓰기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고 가능하면 경험을 바탕으로 할 것'이네요.
제가 블로깅을 하는 원칙과도 맥락이 닿는 부분이 많습니다. 저는 포스팅을 할 때 일단 quality를 신경쓰지 않고 그냥 말하고 싶었던 글꼭지를 제목에 쓴 뒤 그 다음에는 손가락이 움직이는대로 그냥 쓰거든요. 그리고 포스팅을 할 때에는 가능한 한 제가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이 아주 생경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블로깅을 하는데 있어 필요한 도움을 받았지만 여러 현장에서 글쓰기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보시면 좋을 책입니다.
이건 그냥 여담이지만 김우열 번역가의 노력과는 별개로 '알짬', '욱여넣은' 등의 용어 사용이 꽤 눈에 거슬리는데 우리글 바로쓰기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넘기기는 했지만 잊을만 하면 튀어나오는 통에 상당히 신경이 쓰이더군요. 이 책을 읽으실 분들은 참고하세요.
닫기
* 대개는 창조하기와 비판하기 과정을 분리해서 서로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는 편이 낫다. 먼저 비판없이 자유롭게, 좋은지 나쁜지는 걱정하지 말고 생각과 글을 최대한 많이 생산한다. 그런 다음 비판적인 마음가짐으로 전환해서 이제까지 쓴 것을 철저하게 퇴고한다. 좋은 부분은 살리고 좋지 않은 부분은 버리고 남은 부분은 강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 먼저 힘을 빼고 열린 마음으로 빠르게 초고를 쓴다. 그런 뒤 쓴 것을 퇴고할 때는 비판적이고 강한 마음가짐으로 한다. 이렇게 구분해서 사용하면 이 두 가지 기술이 전혀 상충하지 않고 오히려 상생한다는 점을 발견할 것이다.
* 힘이 없는 글의 상당수는 글쓴이의 기술 부족보다는 마음 깊은 곳에서 주겠다고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일단 대가없이 넘겨주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나면, 아무것도 망설이지 않고 쓰라고 하면 상당한 힘과 기술로 쓸 수 있다.
* 자신의 글을 소리 내어 읽는 행위는 자기 글을 책임지는 데 필요한 근육을 단련하는 일이다.
* 나는 당신이 이 책에 쓰인 다른 어떤 활동보다 자유롭게 쓰기와 공유하기 그 두 가지 방법으로 글을 가장 크게 개선할 수 있다고 믿는다.
* 깊게 뿌리 내린 믿음이 바뀌려면 그저 논리나 정보를 얻는 데서 그치지 않고 경험을 해봐야 하므로 상상과 경험을 담은 글이 논증보다 더 효과적인 경우가 있다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 글을 성공적으로 써내는 비결은 한 가지 중요한 태도를 익히는 것이다. 아직 맹아 상태에 있는 아이디어, 아니면 심지어 아이디어를 얻고 싶다는 갈망밖에 없을 때라도 일단 쓰기 시작하면 언젠가 자신이 하려는 말을 찾게 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아이디어가 꼬물거릴 때 더 흔하게 나타나는 반응을 피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이미 머릿속에 떠올라 명확하게 정리될 때까지 기다리면서 쓰지 않는 것 말이다.
* 글의 종류를 막론하고 퇴고를 끝내기 전 어떤 시점에서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 정확히 알아내어 한 문장으로 명료하게 진술할 수 있어야 한다.
* 글쓰기는 공유하기보다 중요하고, 공유하기는 피드백 받기 보다 중요하다. 즉 공유하다보니 글을 못 쓰겠다면 공유하기를 중단하라. 그리고 피드백을 받다보니 글쓰기나 공유하기가 안 된다면 피드백 받기를 중단하라. 쓰기가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글쓰기에 장애가 되지 않으면서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면, 그 두 가지로 막대한 혜택을 얻을 것이다.
* 글에 아무런 목소리가, 심지어 가짜 목소리조차 없는 일이 많은 까닭은 사람들이 문장을 써나가는 도중에 너무 자주 멈추고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 걱정하고 이리저리 재기 때문이다.
* 독자가 글에 숨결을 불어넣어 강렬한 경험을 하기 바란다면 필자는 글을 쓰면서 거기에 경험을 불어넣어야 한다. 자신이 쓰고 있는 것을 스스로 경험할 때 독자도 그것을 경험할 가능성이 커지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어 있는 법인 듯 싶다.
덧. 이 책은 e-book으로 읽었기 때문에 북 크로싱하지 않습니다.
★★★★☆
이미지 출처 :
YES24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책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출판이 되었죠. 그동안 월덴 3에서 소개한 책들만 정리를 해 보면,
1.
몰입의 즐거움
2. 몰입의 재발견 <- 오늘 소개할 책
3.
몰입,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
4.
몰입의 경영
이렇게 됩니다.
'몰입,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가 다분히 일반인 독자를 염두에 두고 씌여진 책이라서 그런지 '몰입의 즐거움'의 확장판인데도 쉽게 읽힌다면 그 둘 사이에 낀 이 책은 조금 난도가 있는 편입니다.
전작인 '몰입의 즐거움'을 읽고 난 독자라면 아마도 이런 생각이 들 겁니다. '옳거니, 몰입이 정말 중요하구나. 그런데 순간순간의 삶 속에서 몰입의 기쁨과 만족을 끌어내면서 살면 행복해질 수 있는걸까?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게 가능은 할까?'
이 책에서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몰입을 방해하는 장막과 힘들을 우리 내면에서 기만하는 장막(유전 명령, 문화, 자아의 요구)과 외부에서 작용하는 힘(착취, 기생, 인간의 창조물)으로 나누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2부에서는 진화를 통해 미래에 추구해야 할 자아상으로 복합성이 증진되는 방향으로 이끄는 자아인 초월적 자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몰입의 즐거움'에서 이야기하는 몰입이 개인 수준의 몰입이라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몰입은 인류 진화의 수준까지 넓힌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말하는 이 책의 논제는 '진화 과정의 능동적이고 의식적인 일부가 되는 것이 현재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과정에서 매순간 즐기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점입니다.
'몰입의 즐거움'과 '몰입,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에 비해 조금 어렵지만 지적인 자극의 강도는 더 강해진 책입니다. 좀 더 학문적으로 몰입을 공부하고 싶은 심리학도라면 이 책이 더 맞을거라 생각해요.
각 장이 끝나면 충분히 이해했는지를 점검하기 위한(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자기 진화를 위한 질문이라고 썼지만) 질문이 제공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복습까지 되는 책입니다.
제가 추천하는 몰입(flow) 관련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책을 읽는 순서는 1 -> 3 -> 2 -> 4(이건 선택)입니다.
닫기
* 초월적 자아를 만들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삶을 즐겨야 한다.
2. '복합성'을 더해야 한다.
3. 지혜를 개발해야 한다.
4. 미래에 투자해야 한다.
5.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조화로운 미래 건설'에 힘을 쏟아야 한다.
* 기대와는 달리 '플로우'는 여가나 놀이 시간처럼 긴장을 풀 때보다 어떤 어려운 작업, 신체적/정신적 능력의 한계를 끌어내야 하는 작업에 매달릴 때 일어난다. 사실 플로우 이론의 가장 중대한 공헌은 심리학적 견지에서 일과 놀이가 반드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는 점이다.
* 플로우의 첫 번째 징후는 명확하게 규정된 목표에 주의가 집중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지루한 일조차도, 기술을 끌어내야 할 상황을 만들어 목표를 명확히 하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질 때가 있다.
* 자유의지에 따라 사는 사람은 외부 요인이 미래를 절대적으로 결정한다는 논리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 우연과 필연은 고민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유일한 통치자다.
* 의식이라는 제 3의 결정 요인은 우리를 안전으로도, 파멸로도 이끌 수 있다.
*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것들의 총합이 곧 우리의 인생이다.
*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왜 그런 방식으로 느끼고, 무엇이 우리 행동의 동기가 되는지 평생 모르는 채 살아간다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 즉 밀도 있는 경험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 마음은 정돈된 정보가 있어야만 정돈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명확한 목표가 있고 피드백을 받을 때만 마음은 잘 작동한다.
* 기술과 집중이 필요한 활동을 하게 되면 마음이 무질서에 사로잡혀 광적으로 뛰어다니는 현상을 예방할 수 있다.
* 어딘가에 집중하지 않을 떄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이 십중팔구 우울한 이유
1. 부정적인 가능성이 언제나 긍정적인 가능성을 압도한다. 우리 삶에는 한마디로 '나쁜' 일이 '좋은' 일보다 많이 일어난다.
2. 그런 부정적인 성향이 적응에 유용하기 때문. 단 '적응'이라는 말이 생존 확률의 증가를 의미한다고 가정할 때.
* 논리도 과학적 담화도 의사소통에서 일어나는 비틀림을 피할 수는 없다. 언어로 현실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하고, 일반화는 모두 의심스러우며, 사람 사이에 의미를 공유한다는 것은 환상이다.
* 집단과 함께 생활하기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사람만 살아남았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외향적인 선조(살아남은 자들)의 후예이기에, 다른 사람과 함께할 때 쾌락을 느끼도록 진화했다. 그러나 이제 사회성도 우리 시대에는 과도해지고 해로워지기 쉽다.
* 쾌락과 즐거움(혹은 플로우)의 차이는 이렇다. 쾌락은 유전으로 프로그램 된 필요(먹기, 마시기, 쉬기, 성행위, 사교성 등)에 항상성이 깨어질 때 그것을 되찾아주면 발생하는 반면, 즐거움은 대개 유전으로 프로그래밍되지 않은 일에 기술을 활용한 결과로 발생한다는 점이다.
* 자신이 동일시하는 집단이 커질수록 근본적인 진실에 더 가까워진다. 온 지구를 자신의 세계로 보는 사람만이, 유해물이 어디에 폐기되든 그것을 해롭다고 여긴다.
* 자신에게 왜 어떤 충동이 일어났는지, 왜 어떤 습관에 따라 행동하는지 고민하는 것은 정신력을 통제하는 첫걸음이다.
* 유전자가 우리 몸을 번식 도구로 활용하듯이, 문화 역시 존속과 성장을 위한 도구로 개개인을 활용한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 문화는 우리에게 그 우월성을 확신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사회화가 잘된 사람이란 국가나 당파, 종교를 위해 자기 목숨을 기꺼이 바치려는 사람이다.
* 자국 문화가 제시되는 현실 묘사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다. 대중매체가 세상을 '문화의 영향력에 따라' 제시한다는 점을 깨닫기만 한다면 속을 확률은 줄어든다.
* 일단 자아가 존재하게 되면, 그 최대의 목적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된다. 좀 더 작게 보자면, 만족을 모르는 자아는 거의 모든 고대 집단에서 사람들의 정신 에너지를 집어삼켰다.
* 자기성찰 의식이 출현하면서 자아가 자아를 상징하는 수단으로 재산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자아가 외부 상징물과 자신을 동일시할수록 더욱 약해진다는 점이다.
* 사람이 정신력을 가장 많이 투자하는 곳이 어디인지 알면 그 사람의 자아를 나타내는 핵심적 관념이 드러난다.
* 만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 과거나 미래와 조화롭게 사는 사람들, 한마디로 소위 '행복한' 사람들은 보통 스스로 만들어낸 원칙에 따라가는 사람들이다.
* 인간사에서 밈이 더 큰 역할을 하기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은 타인을 착취할 수 있게 되었다.
* 타인의 야망에서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없다.
* 현 상태가 자연스럽고 옳으며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방식은 우리를 지배하는 이들에게나 이로운 일이다. 우리에게 이로운 일은 그것이 늘 옳지는 않다는 사실을 파악하는 것이다.
* 심리학적 차원에서 기생이란 타인의 정신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자다. 직접 명령하는 방식이 아니라 약점이나 부주의를 악용하는 방식으로 다른 존재의 에너지를 빼앗는 존재다. 기생의 형태는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데, 그 가운데 일부만 알아두어도 부지중에 다른 생명을 편안하게 해주느라 우리 삶을 허비하지 않는데 도움이 된다.
* 억압은 저항하고 기생은 무력화할 수 있지만 각각의 정신 에너지를 착취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의태이다.
* 문제는 창시자의 손에서 떠난 후에도 밈이 우리 목적에 부합하겠는가 하는 점이다.
* 한번 밈이 확립되고 나면 우리 마음에 타성이 생겨서 필연적으로 쓰디쓴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 위대한 작품이 매우 적은 까닭은 우리가 예술적 밈 감상에 충분한 정신 에너지를 투자하지 못하거나 그러려고 하지 않기에 소수만 살아남기 때문이다.
*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밈을 우리 목적에 맞게 활용하지 않는다면, 대개 밈이 주도권을 잡고 자기 목적에 우리를 이용한다. 물론 밈은 자기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우리도 대부분의 경우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 진화의 첫 번째 원칙은 '유기체는 모두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자신을 증식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원칙은 '생존하고 증식하기 위해서, 유기체는 외부 에너지를 흡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화의 세 번째 원칙은 앞의 두 원칙에서 비롯된다. '유기체는 모두 주변 환경에서 에너지를 최대한 많이 흡수하려고 할 것이고, 자기보존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 그렇게 할 것이다'. 네 번째 원칙부터는 드디어 진화의 역할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주위 환경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다른 유기체보다) 더 많이 얻어낼 방법을 찾아내는 유기체는 더 오래 살고 복제본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남긴다'. 이는 또 다른 중요한 원칙으로 이어진다. '유기체가 서식지에서 지나치게 잘 에너지를 흡수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 환경과 자신마저 파괴하기도 한다'. 진화의 마지막 원칙은 이것이다. '대개 유기체의 복합성이 증진되는 방향, 즉 분화와 통합이 증진되는 방향으로 진화를 끌어나갈 때 조화를 이룰 수 있다'.
* 서로 다른 종교, 정체, 민족, 가치관, 철학 사이의 다툼은 모두 밈이 우리 마음을 차지하려고 경쟁하는 사례들이다.
*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 사랑과 출산이 자유롭고 마음대로였다는 낭만적인 이야기는 그만두자.
* 가장 자주 언급되는 플로우의 한 가지 특징은, 자신에 관해 혹은 주위에서 찾아오는 다양한 기회를 활용할 가능성에 관해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는 흥분감이다.
* 플로우 경험의 특징
1. 명확한 목표, 즉 목적이 뚜렷이 정의된다. 즉각적인 의견(피드백), 즉 자신이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바로바로 알 수 있다.
2. 단호하게 행동할 기회가 많고, 그렇게 할 기회와 자신의 능력이 맞아 떨어진다. 다시 말해 도전해야 할 일에 필요한 능력과 그것에 도전하려는 개인의 기술이 잘 맞는다.
3. 행동과 자각이 하나로 융합되어 마음이 한 곳에 집중된다.
4. 현재 하는 일에 집중한다. 하는 일과 무관한 자극들이 의식에서 사라지고, 걱정과 근심이 일시적으로 없어진다.
5.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6. 자의식 상실, 자아 경계 초월, 성장하는 느낌, 더 큰 존재의 일부가 된다는 느낌이 든다.
7. 시간관념이 바뀌어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8. 경험 자체가 목적이 된다. 활동 자체가 목적이 되거나 그 자체로 몰두할 가치가 있는 것이 된다.
* 우리가 그것을 즐기는 까닭은 그것이 잠재력을 드러내고 한계를 배우고 경계를 넓히게 해주는 기회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기회는 다름 아닌 '자신과의 소통'이 함축하는 바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플로우는 진화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것이 없으면 우리는 유전 명령에 따라서 과거에 '좋았던' 것들만 계속 추구하게 된다.
* 자신을 덜 의식하면 지금 하는 일에 정신 에너지를 더 집중할 수 있다.
* 사람은 더 흥미로운 기회를 인식하는 기술이 부족하면, 단순하고 잔혹한 길로 퇴보하게 마련이다.
* 플로우가 없으면 일어나는 일
: 그런 상황에서 전형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사람들이 쓸모없거나 파괴적인 활동에 빠져든다는 점이다. 다양한 약물에 중독되는 현상은 분명 인위적인 수단으로 최적 경험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반복해서 경험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유도된 플로우는 2가지 면에서 위험하다. 첫째, 그 개인의 기술을 향상시켜주지 않고 따라서 복합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둘째, 생리적으로 중독되면 개인과 집단에 막대한 엔트로피를 야기한다.
* 플로우를 평가하는 방법은 ESM(경험표집방법)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 우리가 가장 즐거워하는 일이 '자신의 존재를 펼쳐 보이는 것'이라는 점이 진실이라면, 플로우가 자유시간보다 업무시간에 더 자주 나타난다는 점은 이치에 맞는다.
* 온갖 종류의 영성에서 공통적인 요소는 인간 의식에서 엔트로피를 줄이려고 한다는 부분이다.
* 일상의 경험을 의미 있고 목표 지향적인 활동으로 바꾸는 능력은 강력한 힘이다. 그리고 그 어떤 문화적 게임도 착취나 악용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덧. 제가 좋아하는 김우열 번역가의 담백하고 깔끔한 번역 덕에 조금은 힘을 빼고 읽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
이미지 출처 :
YES24
'로쟈의 저공비행'이라는 서평 블로그로 유명한 인문학자 이현우 선생의 책입니다. KBS <책 읽는 밤> 2009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 제50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상을 수상한 꽤 유명한 책입니다만 저는 좀 별로였습니다.
이 책은 이현우 선생이 이야기한대로 블룩(Blook)입니다. 블룩은 블로그(Blog)와 책(Book)의 합성어로 블로그에 올려둔 포스트를 골라서 편집하고 교정을 봐서 만든 책이라는 뜻입니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건 아닙니다. 작년에 제가 낸 책도 블룩이었는데요 뭐. 하지만 호흡이 짧은 블로그의 포스트를 모아 만드는 책이라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있거나 없다면 흐름이 매끄러워야 독자들이 읽기 편한데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서재입니다. 이런 저런 다양한 책이 막 꽂혀 있습니다. 물론 다양한 재미를 선호하는 독자라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테지만 제가 좋아하는 방식의 책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스스로를 찌질이, 곁다리 등으로 선전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면서 정진을 위한 동력으로 삼는거야 상관없지만 남들에게 드러내는 것 역시 일종의 나르시시즘이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제목부터 좀 거슬렸습니다. 나중에 다 읽고난 느낌 역시 블로그 글쓰기는 블로그 글쓰기일 뿐이라는 것. 책으로 묶을 때는 거의 다시 쓰는 정도의 수고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게도 반성이 되는 책이었네요.
이 책은 크게 다섯 가지 서재로 나뉘어 있습니다.
1. 걷어차야지만 자리에서 일어난다 : 러시아 문학 읽기
2. 순간에 완성되는 사랑이 있을까요? : 영화에 대한 이야기
3. 아, 겸손한 느릅나무들 : 니체, 데리다, 벤야민 읽기
4. 내 머리는 불타고 있어요 : 지젝 읽기
5. 내 울부짖은들 누가 들어주랴 : 번역에 대한 로쟈의 생각
첫 번째 서재의 글들은 유난히 호흡이 짧습니다. 블로그의 글들을 그동안 계속 읽었던 팬이라면 모르겠지만 저는 뭐랄까 핑거 푸드만 잔뜩 집어먹은 느낌이어서 입맛만 다시다 끝난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러시아에는 얼마만큼의 자유가 필요한가'처럼 뒷머리를 후려 갈기는 좋은 글도 있습니다. 김규항의 칼럼 '희망을 위하여'를 읽고 쓴 논평, '누가 희망을 말하는가'도 좋았구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더군요. 그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만... 전 여전히 김규항 선생의 사상을 지지합니다.
두 번째 서재의 글들은 재미가 없었습니다. 내용이 재미없었다기보다는 선택한 영화들이 재미없었기 때문(솔직히는 못 본 영화들이 너무 많아서)이었죠. 게다가 저는 기본적으로 예술에 평가와 비평의 잣대를 들이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휘휘 넘어갔습니다.
세 번째 서재의 글은 두 번째 서재의 글에 질린 상태에서 봐서 그런지 재미있고 유익했습니다. 니체와 데리다, 벤야민의 저작에 익숙한 독자라면 더욱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니체만 조금 읽어보았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습니다.
네 번째 서재인 '지젝 읽기'는 흥미롭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주관적(어찌보면 당연하겠지만)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별로였습니다. 속된 말로 지젝을 너무 빨더군요. 제가 얄롬을 숭배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뭐 지젝의 정치적 입장에는 대부분 동의하는 편입니다만...
다섯 번째 서재인 '번역에 대한 로쟈의 생각'은 대체 왜 포함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번역 시장의 왜곡과 일반인들의 편견 등에 대한 울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게 왜 이 책에 수록되었는지는 이해 불가입니다. 그냥 말하고 싶어서 넣은 건가요? 그렇다면 저는 차라리 김우열 번역가의
'나도 번역 한번 해볼까'를 추천하겠습니다.
지적 충격을 주는 글꼭지도 많고 생각해 볼 거리도 많이 던져주지만 전반적으로 뒤죽박죽이라는 느낌의 책이라서 읽고나서도 영 정리가 되지 않는 책이었습니다.
로쟈의 저공비행 블로그의 글이 좋은 분들에게만 추천드릴 수 있겠네요.
닫기
* 문화란 무엇인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는 것
* 행복한 사람은 삶을 '의식'하지 않는다. 즉 당신이 행복을 '의식'하는 순간, 행복은 당신과 함께 있지 않다. 행복은 의식의 대상으로서 현전하지 않으며 언제나 기대되거나 회고될 뿐이다.
* 자유를 잘 다룬다는 건 원자력 에너지를 다루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
* 국가란 인간이 동물이 되는 걸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
* 전제주의나 독재는 나쁜 것이지만, 그것이 자본의 '합리적인' 독재보다 더 나쁜 것일까? 이 질문은 "과연 후세인이 부시보다 더 나쁜 놈일까?"란 질문과 같은 것이다.
* '자유'에는 두 종류가 있는바, '장사꾼들의 자유'와 '농부들의 자유'가 그것이며 이 둘은 구별되어야 한다.
* '중산층 페미니즘', 즉 "계급과 사회 구조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페미니즘은 '허드렛일을 대신해줄 누군가(다른 여성, 빈민, 식민지인)'를 착취하는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 벨 훅스 [행복한 페미니즘]
* 책임질 수 없는 구호들만을 남발하는 걸로 자신이 정의(근본적인 변화)에 편에 서 있다고 믿는 건 착각이거나 오만이다. 그건 자신들이 물적 토대(힘)를 갖고 있기에 곧 정의롭다고 믿는 것만큼이나 오도된 것이다. 자신의 말(구호)에 책임지고, 그 말에 물적 토대(힘)을 부여함으로써, 말의 위엄을 되찾을 수 있을 때만이 정의는 반격/경멸을 받지 않게 된다.
*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말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가볍게 말하는 것이다. - 카뮈
* 선정적인 건, '대상'이 아니라 그걸 바라보는 '시선'이다.
* 철학적 사유의 근간은 그것이 형식논리(아리스토텔레스)이건 변증법적 논리(헤겔)이건 간에 논리에 있으며, 논리에서 중요한 것은 순서(order)이다. 똑같은 언표들이라도 배치 순서가 바뀌면 문학에서는 새로운 의미가 창출되지만 철학적 논리는 한순간에 비논리 혹은 모순으로 전락한다(예컨대 삼단논법의 논항들을 뒤섞어보라). 의미론적 차원에서 논리적 모순의 등가물은 난센스(무의미)다. 때문에 어떤 철학적 논증/저작에 대해 '난센스'라고 말하는 것은 그에 대한 최대의 모욕이 된다(가령, "그게 말이 되냐?"). 반면에 문학에서의 '난센스'는 그 자체가 하나의 기법이자 전략이며, 장르, 더 나아가 사조를 이루기도 한다.
* 언어는 의미의 질병을 낳는 산파다.
* 힘없는 정의는 무기력하다. 정의 없는 힘은 전제적이다. 힘없는 정의는 반격을 받는다. 왜냐하면 항상 사악한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의 없는 힘은 비난을 받는다. 따라서 정의와 힘을 결합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정당한 것이 강해지거나 강한 것이 정당해져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정당한 것을 강한 것으로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강한 것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었다.
* 법(의 힘)은 폭력에 대립적이지만 법(적 권위)의 기원에 놓여 있는 것은 폭력이다. 기원적 폭력. 이것이 데리다가 기술하고 있는 (본질적으로 해체 가능한) '법의 구조'다.
* 레닌주의의 핵심은 자유주의적 '선택의 자유' 대신에 선택 자체를 선택하는 데 있다. 즉 정치적 '활동'이 아닌 '행위'란 현 상황이 제시하는 강요된 선택 대신에 그러한 '정치적 계산'을 돌파하는 어떤 광기다.
* 상품들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순환하지만, 인간들의 순환은 점점 통제되는 것이 그 진실이다. 물론 이런 건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지나친' 세계화가 아니라 '모자란' 세계화다.
* 지젝이 기대하는 것은 미국(초자아)과 제3세계(이드) 사이의 합작이라는 현재의 '억압적 탈승화' 국면에 대항하기 위해서 유럽이라는 자아의 역량을 회복/확장하는 것이다.
* 반세계화 운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자명한 듯이 말하는 '자유와 민주주의'에 태클을 걸어야 합니다. 즉 자유민주주의가 자본주의적인 사적 소유 없이는 존립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우리는 진정으로 반자본주의적으로 될 수 있습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
이미지 출처 :
YES24
2009년에 출판되어 이미 4년이나 지난, 한물 간 책을 아마존 별점이 양극단으로 갈린 최대의 논쟁서 어쩌고 소개하는 출판사의 낚시에 걸리지 않으려고 그냥 패스했던 책인데 최근에 제 주위에서 잡식을 하는 분들이 채식하면 죽는다고 채식을 해서는 안 되는 근거로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자꾸 이야기하기에 대체 뭔 소리가 쓰여 있길래 그러는지 궁금해서 읽어봤습니다. (일단 눈물 좀 닦고요. ㅠ.ㅠ)
비유를 들자면
'이단 종교를 기독교라고 착각하고 몸 주고 마음 주고 사랑도 줬건만 20년이나 지나서야 자기가 헛짓한 걸 깨닫고 분노의 하이킥을 기독교도 아닌 불교에 뜬금없이 날리는 격'이라고나 할까요? 그 모양새가 예전에 제가 혹평한 바바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2011)'과 완전 판박이입니다. 저자가 같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쌍동이처럼 똑같아요. 재미있는 건 '긍정의 배신'도 부키 출판사에서 번역했다는 거. 재미 좀 보더니 배신 시리즈로 독자층을 계속 배신하려나 봅니다.
예전의 부키 출판사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2007)',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2010)'와 같은 훌륭한 책들을 많이 내놨죠. 최근에 사장이라도 갈린 겁니까? 대체 왜 이러죠?
출판사 욕은 그만하고 저자 이야기를 좀 해보죠.
일단 책 제목처럼 채식의 배신 혹은 원제의 Vegetarian Myth처럼 채식은 이야기 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저자가 20년 동안 먹은 건 채식이 아니라 정크 푸드 편식이니까요. 저자가 20년 동안 뭘 먹고 살았는지는 책에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GMO 옥수수 시리얼이나 싸구려 두유, 콩고기 버거만 먹고 산 듯 합니다. 책 내용 중에 신선한 샐러드, 채소와 같은 단어 자체가 전혀 안 나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채식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신 분들이 동물성 식품을 안 먹는답시고 백미밥에 김치만 먹다가 영양실조로 쓰러지는 일이 왕왕 있는데 딱 그 꼴입니다. 채식에 대해 조금만 공부를 하신 분들이라면 건강을 위한 채식마저도 단순히 동물성 음식을 먹지 않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균형잡힌 식생활을 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래서 탄수화물 중독도 조심해야 하고, 가공 식품도 안 먹게 되고, 무엇보다 정크 푸드를 피하게 되죠. 제가 볼 때 저자는 비건이 아닐 뿐 아니라 채식주의자도 아니고 그냥 정크 푸드 편식의 희생자입니다. 이 사람이 진정 비건이었다면 친구와 같이 차를 달려 로컬 레스토랑에서 피자를 흡입한다든가 참치 통조림을 먹으면서 온몸의 세포가 절규하는 히스테리컬한 경험을 하는 일 따위는 없을 겁니다. 참치 통조림 에피소드에서는 그냥 고소만 나오더군요. 에휴~
저자가 제대로 된 채식인이 아니라는 건 책 곳곳에 등장하는 주변 사람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 주변에 있는 채식인들은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니라서 아프리카 세렝게티 공원에 담을 세워 포식동물과 초식동물을 갈라놔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자신의 삶과 존재가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고도 지속할 수 있다고 믿고 있거나(저자 본인도 그랬답니다) 아니면 공기만 먹고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호흡주의자(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그런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채식과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동일시해서 식이장애에 걸린 사람들만 득시글합니다. 어디에서 이런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만나는 건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미국이라서 그런걸까요? 아님 유유상종?
무엇보다도 저는 이 저자의 아집("이 문제는 논쟁으로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경험을 했고, 내 신념에 자신 있다". 65p)에 일단 어이가 가출하더군요. 아~ 그래서 자신의 경험에 대한 자신감이 너무 넘친 나머지 이 책에 인용한 자료의 출처 중 1/3이 위키피디아였나 봅니다. 하도 이상한 자료들이 많아서 references를 보니 그냥 웹사이트 10개 달랑 소개한 게 답니다. 흔해빠진 영양학 journal이나 article 하나 없습니다. 개인적인 경험만 갖고 말하자면 겨우 1년 9개월 채식을 한 저도 할 말 있습니다. 채식 1년 만에 고지혈증, 고도의 지방간을 고쳤고 중성 지방 등 몸에 안 좋은 수치를 모두 정상으로 돌려놨습니다. 그러니 저를 믿고 채식하세요. 무병장수 하실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 다음은 책 내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시 눈물 닦고. ㅠ.ㅠ)
저자는 세 가지 방향에서 채식주의를 비판합니다. 일단 이 책은 온통 자가당착, 아전인수격의 자료 선별과 해석의 왜곡이 난무한다는 걸 미리 말씀드립니다.
1. 도덕적 이유의 채식주의
2. 정치적 이유의 채식주의
3. 영양학적 이유의 채식주의
저자에 따르면 도덕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고 있는 것은 농업이 본질적으로 파괴적이라는 것이고 특히 일년생 곡물의 단일 경작이라고 주장합니다. 농업에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그리고 로컬 푸드를 먹는게 좋다는 것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저자는 채식주의자가 동물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 농업에 중독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농업을 위해 미생물, 곤충, 작은 동물들을 죽일 수 밖에 없으니 아무 것도 죽이지 않으려는 채식주의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그런 걸 주장하는 채식주의란 걸 저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가능하면 불필요한 살생을 피하자는 것이지 아무런 죽음도 인정하지 않는 채식주의란 것이 어디 있습니까? 왠 허수아비 공격?). 게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채식이란 건 불가능하니 그냥 고기를 먹자고 합니다. 어떻게? 직접 길러서 잡아먹자고 합니다(응?). 모두 자급자족식 농업을 하자는거지요(그러면서 참치 통조림은 왜 먹나?).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인, 질소 등의 제공없는 지속가능한 농업은 불가능하고 그러려면 가축이 필요하고 기왕 가축이 있으니 고기를 먹자는 겁니다. 동물이 전혀 없이 지속가능한 유기 농업을 하고 있는 veganic farm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은 그냥 고기가 먹고 싶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냥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지.
게다가 이 사람이 책에서 자주 먹는 유제품은 결국 낙농업에서 나온 산물인데 이 사람이 그렇게 칭송해 마지않는 수렵 채집 생활에서는 그런 양질의 유제품이 없었고 정착 농업이 시작되면서 가능해졌는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앞뒤가 안 맞아서 당췌 이해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단일 경작하는 옥수수 등의 곡물은 주로 고기 생산을 위한 가축들의 사료로 사용하기 위해 기르는 건데 단일 경작을 하지 않으려면 고기 소비부터 줄이는 데서부터 시작을 해야지 뜬금없이 채식은 왜 끼워넣는답니까? 아항 자기가 20년 동안 먹었던 옥수수 시리얼을 만드는데 사용된 GMO 옥수수를 까야하니까?
도덕적 이유의 채식주의 장에 나오는 동물 권리 옹호론에 대한 저자의 무지와 몰상식은 거론하기 창피한 수준입니다. 동물 권리 옹호론자들이 죽음이 생명의 일부라는 걸 부정하기 때문에 다른 생명을 전혀 죽이지 않고도 먹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말(142p)을 합니다. 대체 그렇게 주장하는 동물 권리 옹호론자들이 누굽니까? 자기가 죽음이 잘못된 것이라고 믿었다네요(150p). 자기가 그렇게 오해해놓고 엄한 동물 권리 옹호론자들에게 덤터기를 씌웁니다. 그래놓고 이 사람이 내린 결론은..... "나는 마침내 대답을 찾았다. 나는 선을 긋지 않을 것이다(160p)" 그냥 다 먹겠답니다;;;;; 그래서 참치 통조림을 흡입했지요~
정치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쳤다고 저자가 주장하는 건 동물을 먹지 않고 채식을 하는 것으로 세계 기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장에서 저자가 비판한 공장형 축산을 위한 단일 경작 문제는 저도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채식주의가 표방하는 곳도 같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저자는 중간에 방향을 틀어서 공장형 축산이나 채식주의나 똑같다고 한통속 취급을 합니다(읭?). 단일 경작은 공장형 축산을 위한 사료 생산도 하지만 저자가 20년 동안 먹었던 GMO 시리얼을 만들기 위한 옥수수를 생산하기도 한다면서요. 그러면서 갑자기 이 사람은 지구 상에 사람이 너무 많다고 합니다(204p). 지구가 수용 가능한 지속 가능한 인구의 수를 6억으로 산정한 머컬(그냥 미국 작가랍니다;;;;)의 추정치도 너무 많다면서 이 책의 막판에 아이를 낳지 말자는 극단적인 주장을 합니다. 본인도 안 낳았다면서요;;;;; 아 놔~
마지막 3부의 영양학적 이유의 채식주의가 놓치고 있는 것으로 저자가 주장한 것은 현재의 인간을 만든 건 육식이지 채식이 아니라는 겁니다. 드디어 저자의 구석기 시대 찬양론이 등장하는데 수렵, 채집 시대에는 이렇다 할 질병이 없었다거나(p243), 들소 떼가 영양분 가득한 자신들의 몸으로 인간의 뇌를 성장시킨 결과 라스코 동굴 벽화가 탄생했다거나(241p), 게다가 이런 내용들에 대해 고고학적으로 논쟁의 여지 없이 증명된 사실(244p)이라면서 출처 표기 하나 안 하는 멋진 생까기를 보여줍니다.
제가 영양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하나하나 반박하지 못하나 상식적으로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저자의 주장을 몇 개 열거하면(당연히 출처는 하나도 없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이 포스팅의 말미에 영양학자의 반박 포스팅 링크를 걸어둘테니 관심있는 분들은 읽어보세요.
* 식생활에서 글루텐(밀에서 많이 발견되는 식물성 단백질)을 제거하면 정신분열병이 개선된다는 연구 결과가 수없이 많이 나와 있다(252p)
* 중간 크기의 구운 감자를 먹는 것과 대용량 청량음료 한 병을 마시는 것은 대사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 사실 감자 쪽이 살짝 더 나쁜 음식이다(258p)
*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피 속에 든 콜레스테롤의 80%가 우리 몸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266p).
* 동물성 지방보다 포화 지방이 더 많은 것이 코코넛 오일이다(279p).
* 비타민 A를 함유한 식물성 식품은 존재하지 않는다(293p).
* 비타민 D를 함유한 식품은 대구 간유, 동물 간, 달걀 노른자, 기름진 생선, 버터 등 동물성 식품 뿐이다(293p)
* 사실 심장은 지방을 연료로 사용할 때 가장 잘 돌아간다(295p).
* 의학박사 비어트리스 골롬은 1965년 이후에 발표된 모든 연구 결과를 샅샅이 훑어 낮은 콜레스테롤 수치와 폭력이 관계가 있는지 고찰했고, 둘 사이의 상관성에 인과 관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296p).
* 식물성 기름에 오메가6 지방산은 많이 들어있는 반해 오메가3 지방산은 거의 들어있지 않다. 오메가6 지방산은 각종 염증과 고혈압, 소화기 자극, 면역 기능 저하, 불임, 세포 증식, 그리고 암을 유발한다(299p).
이 포스팅을 하는 중에 5분 정도 구글링을 해 봤는데도 위에서 저자가 주장한 내용 중 4가지 이상을 반박하는 증거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대체 뭘 갖고 이런 얼토당토 않은 주장들을 하는 건지...
그 밖에도 대부분의 비건들이 단것 중독증이라고 주장(312p)하거나(난 그 좋아하던 아이스크림도 전혀 생각 안 나는데?) 비건 식사를 시작한 지 6주가 지나자 탈진했다거나(굶어서 그랬겠지~ 난 몸만 가볍고 쌩쌩해지더구만)하는 허무맹랑한 주장이나 경험담이 난무합니다.
6장의 제목은 더 재미있습니다. "만병통치약 콩의 진실" 대체 어느 채식인이 콩을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한답니까? 아무리 홍삼이 몸에 좋아도 이 사람처럼 홍삼을 먹으면 몸이 견뎌내겠습니까? 아무래도 이 사람은 콩 혹은 두유 중독증이었나봅니다. 그러니 콩이 미워 죽겠지(난 콩 하나만 줄창 패~).
7장에서는 채식주의자들을 찾아오는 식이장애라는 제목으로 채식을 하면 식이장애에 걸린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헐~). 식이장애 환자들이 거식하는 걸 주변 사람들이 방해하지 못하게 하려고 흔히 대는 핑계 중 하나가 자신이 채식을 한다고 둘러대는 건데 이 사람은 그런 건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을 겁니다. 그냥 채식하면 식이장애에 걸린다고 주장하고 싶겠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투사(projection) 기제의 끝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저자가 우울증, 식이장애, 공황장애, 퇴행성 디스크, 저혈당, 암까지 걸렸다는데 그러게 제대로 된 채식을 하지 왜 정크 푸드만 20년을 먹으면서 고행을 한건지 참 안타깝습니다.
앞으로 본인이 기른 고기와 유제품 중심의 식단을 쭈욱 밀고 나간다니 더 안타까워요. (마지막으로 눈물 닦고)
꼼꼼히 읽느라고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데 보면서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리고 자꾸 멘붕이 오는 통에 참 힘들었습니다. 비건이나 채식하시는 분들은 정신 건강을 위해서 안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 채식을 하면 인슐린 수용체가 마모되어 저혈당증에 걸리고 뼈와 관절이 파괴되며 염증에 뒤덮이게 됩니다. 알츠하이머 병에 걸릴 확률이 급증하고 전신 통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갑상선도 손상되고 위도 망가지고 언제나 너무너무 춥습니다. 게다가 신경 손상 가능성이 있고 지능이 낮아지는데다 우울, 불안증에 걸릴 수 있답니다.
이 증상의 대부분을 저자가 경험했고 아마도 콩을 많이 먹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ㅡㅡ;;;;
잡식하시는 분들은 채식을 공격할 때 더 이상 이 책 들고 오지 마세요.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 않으면...
덧. 반박 리뷰 링크 몇 개 겁니다. 모두 영어이기는 하지만 읽어볼 만 합니다. 채식의 유혹을 쓴 김우열 번역가가 트윗해 주신 겁니다. 허락없이 무단 링크걸어서 죄송합니다~
http://www.theveganrd.com/2010/09/review-of-the-vegetarian-myth.html
http://skepticalvegan.com/2010/03/19/myths-of-the-vegetarian-myth/
미국 아마존에서 이 책을 검색하시면 최고의 추천 리뷰로 선정된 중립 입장의 리뷰도 읽어보세요.
덧2.
'인간동력, 당신이 에너지다(2008)'라는 제가 극찬한 좋은 책을 쓴 유진규 PD가 추천사를 썼던데 유진규 PD 정말 실망입니다. 책을 보는 눈이 이 정도 밖에 안 될 줄은 몰랐습니다.
덧3. 그래도 혹시나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한 분들을 위해 북 크로싱 할테니 사지 마세요. 이런 책을 위해 더 이상 나무가 희생되면 안 됩니다.
★★★★★
이미지 출처 :
YES24
채식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된 책으로 많은 채식인이 꼽는'음식혁명', '육식의 종말',
'죽음의 밥상'(제가 채식을 결심하게 된 책) 등이 있습니다. 모두 좋은 책이고 한번쯤 꼭 읽어보기를 권합니다만 사실 채식의 유혹을 느끼는 사람들이 알고 싶은 것은 따로 있습니다.
'채식만 해도 힘을 쓸 수(?) 있을까?',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하지?', '직장 생활하는데 어려움은 없을까?', '결혼해서 내 아이를 낳았을 때 채식만 먹여도 될까?', '채식을 하면 생활비가 더 많이 들지 않을까?', '외식할 때 주의해야 할 점에는 어떤 것들이 있지?'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궁금증들이죠.
그런 걸 이미 오랫동안 채식을 경험한 사람이 세심하게 짚어주는 책이 어디 없나 싶었는데 최근에 나왔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시크릿'의 번역가로 유명한 김우열씨입니다. 자기 계발서, 평전, 철학 분야에 특화된 뛰어난 영어 전문 번역가이고 이 분이 번역한 책인 '몰입의 재발견'(구매만 해놓고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을 저도 갖고 있습니다.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휴대폰 업계에서 일을 하다가 번역의 길에 뛰어들었고 이미 1999년부터 명상과 채식을 시작한 채식의 고수(?)입니다. 지금도 채식을 한다고 하면 백안시하는 분위기가 은근히 남아 있는데 그 당시에는 채식을 한다고 하면 어떤 취급을 당했을 지 아찔하네요. 이 책에서는 오랜 채식 경험을 통해 몸에 밴 다양한 노하우와 채식을 하면서 정리한 생각들을 꼼꼼하면서도 차분하게 풀어놓고 있습니다.
제가 체험에 입각한 노하우를 풀어놓은 책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책은 단점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채식을 하는 분들에게는 보물과도 같은 책입니다. 채식의 철학적 측면을 진지하게 설명하는 한편, 채식이 건강에 어떻게 좋은지 최근 연구 동향까지 보여주고 있고 채식하는 사람들이 즐겁게 찾아갈 수 있는 맛집 소개, 채식 식재료를 구매할 수 있는 온라인 쇼핑몰 소개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채식에 대해 좀 더 궁금한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는 서적들도 잊지 않고 소개하고 있고요.
그야말로 채식의 유혹을 받고 있는 초심자들께 딱인 책입니다.
채식을 생각하고 계신 분이라면 이 책만큼은 꼭, 그것도 가장 먼저 읽으시기 바랍니다. 강력 추천합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