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영화를 통 못 보고 있습니다. 이 포스팅을 하기 전 마지막 본 영화가 작년 12월 중순에 본
'한산 리덕스(2021)'이니 거의 분기에 한 편 보는 수준이네요. 한 해 결산을 열심히 하던 시기에는 한 해에 최소 월 1회는 영화를 봤던 것 같은데 말이죠.
국내, 국외 영화를 떠나 오랜만에 본 영화입니다. 예고편만 봤을 땐 그냥 생각없이 볼 수 있는 코미디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장르만 로맨스이고 실제로는 코미디인가 보다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목도 꽤 신경을 써서 지은 것 같더군요. 왜냐하면 이 영화는 '선을 넘는' 이야기거든요. 여러가지 의미에서 선을 넘는 영화입니다. 장르만 따지면 로맨스 코미디인 건 맞지만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 넷플릭스에서 봤지만 뭔가 전형적인 우리나라 남성 감독 작품(개인적으로 편견이 강해서 가능하면 피하려고 애쓰는 편입니다)이 아닌 것 같아서 확인했더니 역시나 여성 감독이 연출했더군요. 게다가 놀랍게도 조은지 배우의 첫 감독 작품입니다. 조은지 감독은 이 작품으로 2022년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까지 수상했더군요.
조은지 배우는 2000년 '눈물'이라는 영화로 데뷔했으니 20년 넘은 연기 경력을 갖춘 중견 배우지만 상업적인 영화에서는 주로 맛깔나는 조연 역할을 많이 맡았고 무게감 있는 연기는 주로 독립 영화에서 많이 보여줬습니다. 저는 2007년 개봉한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에서 처음 알게 되었고요.
2018년부터는 배우보다는 각본과 감독 등 연출 쪽으로 특기를 살리는 것 같더니 이 영화로 상업 영화의 첫 감독을 맡았습니다. 물론 2022년에는 '낮과 달', 2023년에는 '컨버세이션'으로 연기도 꾸준히 하고 있고요.
류승룡, 오나라, 김희원, 이유영의 탄탄한 연기력이야 말해서 뭐하겠습니다만 무진성 배우의 우수에 찬 눈빛 연기와 성유빈 배우의 코믹 연기가 재미와 감탄을 더합니다.
저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웃기는 코미디보다는 그 속에 삶의 애환이나 따뜻한 감동을 담아내는 영화를 더 좋아합니다. 전작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영화가
'극한직업(Extreme Job, 2018)'이었고요. 둘 다 류승룡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는 게 인상깊네요.
누적 관객 50만 명으로 흥행에 실패해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좋은 작품입니다. 꼭 한번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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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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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영화
현재 상영 중인 '악마를 보았다'와 묘사의 잔인함이 비교되는 영화라서 솔직히 좀 꺼렸던 영화 '아저씨'를 보고 왔습니다. 요새는 피 튀기는 하드고어 영화는 좀 별로인데다 주로 심야에 영화를 보는데 피가 질척대는 영화는 좀 피하고 싶었거든요.
같이 사는 사람이 원빈을 좋아하는데다 평이 좋다고 하도 그래서 보고 왔습니다. 트위터에서도 전반적인 평이 괜찮았는데 타임라인의 평만 의지해서 봤던
'인셉션'도 대박을 쳤기 때문에 믿음이 좀 있었죠.
어차피 '레옹'과 비슷한 원빈의 원맨쇼일거라고 생각하고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괜찮았습니다. 우선 원빈의 연기가 놀랄 정도로 많이 늘었더군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보여준 어색함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직 내면 연기를 논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감정을 절제하는 연기가 상당히 깔끔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주 스타일리시한 액션이 발군이더군요.
2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잘 편집된 것도 좋았습니다. 과거 회상씬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고, 원빈과 소녀가 마음을 교류하는 것을 질질 끌고 갈 수도 있었지만 이정범 감독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게 오히려 주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성공한 한국 영화의 공식 중 하나인 조연 배우들의 호연이 이 영화에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연기력만 놓고 보면 원빈에 하나도 밀릴 것이 없는 배우들이 다수 등장하죠. 김태우의 친동생인 김태훈, 개성파 배우인 김희원, 김성오 등의 연기가 모두 좋았습니다. 아무리 시선을 잡는 원빈의 멋진 모습으로도 2시간 이상을 끌어가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잔인한 장면은 오히려 액션보다는 장기 밀매 과정의 상황적 맥락이 더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원빈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must see movie가 될 것 같고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원빈의 다른 연기 색깔을 경험하고 싶은 분들에게도 괜찮은 선택이 될 영화 아저씨, 추천합니다.
덧.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상황이 종료되고 원빈이 소녀와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 소녀가 놀랄까봐 권총을 뒤로 슬쩍 감추면서 "오지마, 피 묻어"라고 나즈막하게 말하는 장면입니다. 캬~ 남자가 봐도 멋지더군요.
덧2. 이렇게 연기력이 일취월장하게 되면 중후한 연기의 정점으로 가파르게 치닫고 있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비슷한 길을 갈 수도 있겠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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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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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영화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배우로서의 임창정을 좋아합니다. 미워할 수 없는 루저 연기의 최고봉이 임창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연기가 조금 틀에 박힌 감은 있지만 그걸 임창정의 연기 특색이라고 조금 너그럽게 봐준다면 그만큼 궁상맞은 삶의 페이소스를 절절하게 느끼게 해주는 연기자도 드뭅니다.
이 영화에서 임창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가진 것 하나 없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없는 가운데에서도 진실된, 그야말로 나름 열심히 사는 젊은이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무엇보다도 사랑의 힘이 운명을 압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행동으로 옮깁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는 확실할 수만 있다면 무엇에라도 의존하고 싶어합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 삶의 불확실성은 불안감에 비례해서 더 커지게 됩니다.
임창정이 연기한 원조백수 승원은 그런 불확실성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온몸을 바치고 최선을 다해도 안 되겠다 싶으면 찌질하게 매달리지 않고 깔끔하게 끝을 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뭐 하나 내세울만한 것이 없는데도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그렇다고 높은 점수를 줄 수만은 없지만).
달콤살벌 박예진은 '패떳'의 부작용으로 인해 정극 이미지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나름 열심히 했지만 패떳의 그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연기도 아직 과감하지 못합니다. 영화의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색즉시공'에서 하지원이 보여준 연기와 자꾸 비교가 되더군요. 조금 더 망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겠습니다.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니 오히려 정극 이미지를 확연히 드러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청담보살같은 영화는 조연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너무 진지하게 흐르지 않도록 양념도 쳐야하고 그렇다고 슬랩스틱 코미디가 되지 않도록 주변 정리도 잘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의 조연들은 존재감이 그리 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의욕이 지나친 나머지 너무 오버하는 것 같았습니다(예를 들어 병수와 지혜역을 맡은 김희원과 서영희가 서로를 그리워했음을 울먹이면서 재결합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손발이 오그라들더군요).
보여주려고 한 메시지는 참 마음에 들었는데 담는 그릇과 어울림이 좀 부족했다는 생각입니다.
여러모로 아쉬운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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