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평가보고서를 쓸 때 평가자마다 조망이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평가자는
각 심리검사의 sign이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에 온통 신경을 씁니다.
목질을 중요하게 보는 사람입니다.
어떤 평가자는
각 심리검사의 sign이 수검자의 어떤 기능 영역을 설명할 수 있는지에 온통 초점을 맞추고 봅니다.
나무를 중시하는 사람입니다.
또 어떤 평가자는 심리검사의 개별 sign보다는 그것으로 설명되는
수검자의 심리적 특성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래서 결국 심리평가를 통해 알아낸 핵심 개념이 무엇인지에 넓게 초점을 맞추고 봅니다. 이것이
숲을 보는 사람입니다.
심리평가를 실시할 때는 당연히 목질과 나무와 숲을 모두 볼 수 있으면 좋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심리평가의 목적에 따라, 선택한 심리검사도구가 무엇이냐에 따라, 수검자가 어떤 반응 양상을 보였는지에 따라 수검자의 심리평가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영역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목질보다는 나무에, 나무보다는 숲을 보기 위해 조망을 넓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질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so what?' 질문에 걸려 넘어지게 됩니다. 각 심리검사도구의 해석집을 열심히 공부하고 검사 sign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는 알지만 그것이 수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래서 뭘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무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수검자의 각 기능에 대한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인지 기능이 어떻게 발휘되고 있는지, 현재 어떤 정서 상태에 있는지에 대해서는요. 하지만 인지 기능의 저하와 심리적 고통감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평소에 숲을 보는 훈련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이런 평가자가 쓴 보고서는 틀린 구석은 없습니다. 하지만 연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각 기능 영역을 단순히 병렬로 나열한 느낌이라서 읽는 사람이 지루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모르는 모호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특정 심리검사 sign의 해석에 다소 자신이 없다고 해도, 특정 기능 영역의 기술이 매끄럽지 않다고 해도 평가하고자 하는 수검자의 전체성(wholeness)을 염두에 두고 각 기능 영역의 연결성에 초점을 맞추는 연습을 평소에 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목질보다는 나무가, 나무보다는 숲이 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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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아이들을 나무에 비유하곤 합니다. 그래서 무럭무럭 자란다느니 쑥쑥 자란다느니 하는 표현을 사용하죠.
한편으로는 부모가 원하는 방향과 속도로 아이들을 자라게 하려는 걸 분재처럼 키운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나무와 같다는 건 스스로 자라는 생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역할은 화재나 병충해처럼 자라는 나무가 감당하기 힘든 환경적인 위험 요소를 막아주는 선에서 그치는 게 좋습니다. 나무는 원하는대로 맞춤 조립하는 기계가 아니니까요.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는 나무입니다.
아이들이 나무라면 어떤 아이는 쭉쭉 곧게 자라는 침엽수일 수 있고, 다른 아이는 잎이 넓게 퍼지는 활엽수일 수도 있으며 또 다른 아이는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유실수일 수도 있을 겁니다. 당연히 수종에 따라 자라는 속도가 다를 수 밖에 없죠.
아이가 늦되다고 생각될 때 주변의 어느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데도 그런 생각이 든다면 부모의 조급함 때문이 아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담을 하면서 아이가 빠릿빠릿하지 못하고, 쉽게 주눅이 들어서 친구들과 잘 못 어울리고, 너무 예민해서 소리를 지르고, 자기 의사를 정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편식을 비롯해 자기만의 취향 고집이 심한 문제 등으로 고민하는 부모를 많이 만났습니다. 내 아이가 문제가 있거나 늦되다는거지요.
이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기준은 대체로 주변의 비슷한 또래 아이들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각기 다른 나무라서 다른 특성과, 다른 성질과, 다른 성장 속도를 갖습니다.
내 아이가 조금 빠르다고 기뻐할 일이 아니고, 반대로 내 아이가 조금 늦되다고 걱정할 일도 아닌거지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환경에 맞추어 나무가 제 성장 속도를 되찾게 되거든요.
아이는 자라는 속도가 각기 다른 나무입니다.
나무는 조바심을 낸다고 빨리 자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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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글은 엄밀히 말하자면 개인 서재가 아닌 많은 책을 개인이 독점 소유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근사한 개인 서재를 꿈꿀겁니다. 벽을 온통 책으로 둘러싸고 바닥에는 양탄자를 깔고, 마호가니 책상과 흔들의자가 있으면 더 좋겠고 벽난로와 향기로운 차까지 준비된다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도 한 때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넓은 집으로 가면 꼭 개인 서재를 만들어서 책에 둘러쌓여 지내야겠다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북 크로싱을 시작하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독서광이라면 신경숙 작가의 서재를 보신 적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네이버에서 명사의 서재를 소개하는
'지식인의 서재'에서도 화제가 되었죠. 신경숙 작가는 집을 책으로 채운 것이 아니라 책을 더 많이 보관하기 위해 집의 설계를 바꾸었을 정도로 수천 권의 책으로 빼곡한, 그야말로 독서광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서재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서재를 보고 있노라면 짜증이 밀려 옵니다. 두 번 다시 빛을 보지 못할 그 많은 책들이 단 두 사람(신경숙 작가 부부)을 위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개인적인 욕망에 의해 앞으로도 더 많이 희생되어야 할 나무들의 비명이 귀에 들리는 것 같습니다. 오버라고 하셔도 하는 수 없습니다. 제 느낌이 그러니까요.
어차피 북 크로싱을 하면 책을 운반하는데 화석 연료가 들기 때문에 결국은 마찬가지의 자원 낭비라는 비판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논리를 극단적으로 확장하면 자연을 위해 인간이 모두 죽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는 유일한 종족은 인간이니까요. 따라서 어느 정도 한계를 인정하고 가용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저는 화석연료보다 나무가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북 크로싱을 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출판사는 싫어하겠지만 이렇게 책을 돌려보게 되면 그만큼의 나무는 덜 죽을테니까요.
그래서 인간의 탐욕이 반영된 개인 서재에 대한 거부감이 큽니다. 앞으로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서 개인 서재를 꾸밀 수 있는 여유가 된다고 해도 다시 보지 않을 책으로 서재를 가득 채우는 짓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겁니다. 꼭 다시 볼 책들만 선별해서 최소한으로 갖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장래에 개인도서관이나 북카페를 운영해도 절대로 개인의 이익을 위해 책을 쌓아두지 않을 겁니다. 나무들에게 약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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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엠파스 책
'개미',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타나토 노트', '나무' 등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의 1998년 작입니다. 출판된 지 무려 10년이나 되었는데 이 책을 읽기까지 저는 이런 책이 있었는지도 몰랐네요. 제가 책 읽기에도 편식이 심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작은 하드커버 양장본 2권으로 출판이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합본으로 나왔으면 더 좋을 뻔 했다는 생각입니다. 분량이 많지 않거든요.
이 책은 제가 읽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 중에서 가장 속도감이 넘치는 소설입니다. '개미'만큼 놀랍지는 않지만 매우 흥미진진하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재미 하나 만큼은 확실하게 보장합니다.
이 책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인간 존재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질문 중 첫 번째 질문인 '과거'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다윈, 라마르크, 용불용설, 미싱 링크 등 인간의 과거를 설명하는 매우 다양한 학설을 무겁지 않게 풀어냈습니다. 결론은 약간 충격적일 수도 있어서 말씀 못 드리겠습니다. 읽어보시면 압니다. ^^
이 책은 인디애나 존스류의 액션 어드벤처를 따르는 하나의 줄거리(현재)와 수 백만 년 전에 이 세상에 살았던 인간(?)의 줄거리(과거)를 번갈아 넘나들면서 각 줄거리가 동일한 소재로 매끄럽게 연결되는 감탄스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국내 소개본을 모두 번역한 전문번역가 이세욱씨가 맡아서 깔끔한 문장을 보여줍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팬들에게는 당연히 필독서요, 학문적이면서도 결코 무겁지 않고, 속도감 있는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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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그림 검사에서 피검자가 어떤 주제를 담은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그 주제는 그 사람이 경험하는 갈등과 정서적 어려움을 반영한 것일 수 있습니다.
1. 나무에 개가 오줌싸는 것을 함께 그린 경우
: 자기 자신을 상징하는 나무에 오물이 묻은 그림을 그렸다면, 이는 자신에 대한 가치감과 자기 존중감의 결여, 부적절감 등을 함축한 것일 수 있습니다.
2. 나무를 베는 남자를 함께 그린 경우
: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그림이며 상징적으로 나무를 베는 남자는 아버지상(father image)이 투사된 것으로 해석됩니다. 따라서 아버지와 관계에서 단절감, 거세불안, 억압된 분노, 손상된 감정 등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3. 버드나무를 그린 경우
: 대개 우울한 피검자들이 이런 그림을 그리는 경향이 많습니다.
4. 사과나무를 그린 경우
: 사과나무를 그리는 피검자는 자기 자신은 과일에, 나무에는 어머니를 주로 투사한다고 합니다. 7세 이하의 아동이라면 모르겠지만 청소년이나 성인이 사과나무를 그렸다면 애정욕구와 의존욕구가 매우 높고, 다른 사람의 사랑에 목말라하는 상태를 반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열매를 많이 그린 경우 결실을 보고자 하는 소망을 의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한 성취욕구, 포부수준 등을 반영할 수도 있습니다.
5. 죽은 나무를 그린 경우
: 대부분 상당한 부적응적 양상 혹은 정신병리적 특성이 있음을 의미하며 치료 예후가 부정적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때 검사자는 나무가 죽은 이유가 외부의 요인에 의한 것인지, 내적인 요인에 의한 것인지 물어봐야 합니다.
6. 열쇠구멍 모양으로 나무를 그린 경우
: 열쇠구멍 나무(keyhole tree)는 Rorschach 검사의 space 반응과 유사한 의미로 해석됩니다. 즉 저항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피검자들이 종종 이런 그림을 그리는데 면담이나 다른 검사에서도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7. 나무 대신에 풀이나 열매, 채소 등을 그린 경우
: 일단 다시 그리도록 지시하고 두 번째 지시에서도 비슷한 그림을 그린다면 이는 대부분 정신증적 상태를 시사합니다. 즉 현실검증력이 손상되어 있고 감정 경험이 부적절하며, 사회적으로 위축되어 있는 정신분열증 환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출처 : 그림을 통한 아동의 진단과 이해(신민섭 외, 학지사)
- 온라인 문법/맞춤법 점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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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나무'와 '사람' 그림에는 '신체상', '자기 개념'과 같은 성격의 핵심적 측면이 나타납니다. 그중에서도 사람 그림에는 의식적인 수준에서 자기 자신과 환경의 관계에 대한 '인지 도식'이 반영되고 나무 그림에는 좀 더 무의식적인 핵심 감정이 반영됩니다.
나무 그림은 피검자의 처지에서 보았을 때 자기상이 투영되리라는 짐작을 덜 하게 되므로 방어가 덜 일어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기둥은 나무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므로
피검자의 성격 구조가 얼마나 견고한지, 내면화된 자기 대상의 힘을 나타냅니다.
1. 기둥의 윤곽선
: 지나치게 필압이 강하게 그렸다면 이는 자기 자신의 성격 구조에 대한 위협에 지나치게 방어하려는 경향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너무 흐리고 연하게 그렸다면 정체성 상실, 자아의 붕괴에 대한 긴박감, 강한 불안감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2. 기둥을 안 그렸을 경우
: 이는 극히 드문 경우로 자아 강도가 극도로 약화하였거나 와해하여 정신증적 상태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3. 기둥의 모양과 크기
: 기둥을 지나치게 넓고 크게 그린 경우, 실제로는 내적인 성격 구조가 약하고 자아 강도가 부족하면서도 이로 인한 불안감을 과잉 보상하고자 시도하고 있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너무 좁고 약하게 그렸다면 실제로 자기 자신에 대해 위축되고 약하게 느끼고 있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기둥을 너무 휘어지거나 기울게 그렸다면 내적 자아의 힘이 어떤 외적 요인에 의해 손상을 받거나 압박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둥의 위쪽 부분을 둘 이상으로 갈라서 그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분열된 나무(split tree)'라고 부르며, 이는 세상 속의 자기 자신에 대한 혼란감, 자기 분열감을 시사하는 것으로 주로 정신분열증 환자에게서 발견됩니다.
4. 그루터기만 그린 경우
: 나무 밑동이나 그루터기만 그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심한 유약감, 위축감과 우울감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5. 기둥에 옹이를 그려넣은 경우
: 옹이는 대체로 성장 과정에서 경험한 외상적 사건, 자아의 상처를 의미하는 것이며 옹이가 그려진 높이에 따라 그 외상 경험이 일어난 시기를 추정할 수 있으나 그러한 추정은 기계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6. 옹이구멍 안에 동물을 그려넣은 경우
: 이는 상징적으로 좀 더 안전한 장소, 자신이 위축되어 그 안에 숨고 싶은 장소를 찾고 싶다는 소망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시적으로 퇴행하고 싶은 욕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출처 : 그림을 통한 아동의 진단과 이해(신민섭 외, 학지사)
- 온라인 문법/맞춤법 점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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