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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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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호텔 로열'은 사쿠라기 시노의 제 149회 나오키상 수상작입니다.
이 연작소설집에는 사쿠라기 시노가 3년에 걸쳐 쓴 7편의 단편소설이 들어 있는데 모두 '호텔 로열'과 어떻게든 연결이 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호텔 로열은 사쿠라기 시노가 15세 때 그녀의 아버지가 홋카이도 구시로 시내에 실제로 개업한 러브호텔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사쿠라기 시노는 15세부터 24세가 되기까지 대략 10년 간 객실 청소 등의 일을 하면서 성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 소설집에 실린 7편의 소설은 호텔 로열과 관련이 있다는 점 외에도 모두 성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관능적이기는 하지만 저속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굳이 온도로 비유하자면 뜨겁다기보다는 오히려 차가운 쪽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실제로 '셔터 찬스'에서는 남자 친구에게서 잡지 투고용 누드 사진 촬영을 부탁받은 수퍼마켓 여직원이, '금일 개업'에서는 인품은 훌륭하나 남성으로서는 불능인, 가난한 절 주지인 남편을 돕고자 후원자들에게 몸을 파는 아내가, '쌕꾼'에서는 호텔 접수처에서 일하며 청춘을 보낸 여자와 의부증으로 고통받는 성인용품 영업 사원이, '거품 목욕'에서는 시아버지를 모시는 빠듯한 살림에 남편과 잠자리조차 할 수 없는 전업주부가, '쌤'에서는 부모가 가출해버린 여고생과 아내의 불륜을 어쩌지 못하는 고교 교사가, '별을 보고 있었어'에서는 일도 안 하면서 자신의 몸만 탐하는 남편을 둔 호텔 청소부가, '선물'에서는 무리하게 러브호텔을 개업하는 과정에서 이혼을 당하고 젊은 아가씨를 임신시키는 사장이 등장합니다. 성과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가 나오지만 어느 것 하나 야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거품 목욕' 같은 경우는 가슴이 짠할 정도로 주인공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작가 스스로도 자신은 공상 세계를 구축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살았던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는 소설을 쓰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호텔 로열을 통해 7편의 단편 속에 작가 자신의 인생을 풀어낸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치밀하게 서로 연결된 구성은 아니나 그런대로 연관성이 있는 주제로 묶인 단편들이라서 새로운 단편을 읽을 때마다 '여기에는 어떤 식으로 호텔 로열이 등장할까?'하는 기대감을 갖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각 단편도 그리 길지 않아서 짬짬이 읽을 수 있는 장점도 있고요.
오랜만에 독특한 소설집을 하나 만났습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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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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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이 책을 쓴 오쿠다 히데오는 월덴 3에서도 몇 차례 소개한 바 있는 작가입니다. 131회 나오키 상을 수상한
'공중그네(2004)'도 있었고 비교적 최근인 2010년에는
'올림픽의 몸값(2008)'도 소개를 했었죠.
올림픽의 몸값을 소개하는 포스팅에도 썼지만 오쿠다 히데오는 무라카미 하루키, 히라노 게이치로와 함께 제가 좋아하는 3대 일본 작가 중 한 명입니다. 세 작가는 공통점이 거의 없어 보이는 전혀 상반된 캐릭터입니다만... 오쿠다 히데오의 책을 읽으면 항상 일본에서 대히트를 기록한 만화 'GTO'가 떠오르거든요;;;;
이 작품은 공중그네로 나오키 상을 수상한 이듬해인 2005년에 선을 보였습니다. 3년 뒤 '올림픽의 몸값'에서는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엽기성과 코믹함이 사라져서 개인적으로 살짝 실망했는데 남쪽으로 튀어는 오히려 작가의 유머 감각이 절정에 달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습니다.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인 양윤옥 선생이 번역하셔서 글 맛은 염려할 것 없고요.
사실 이 작품은 역자 후기에도 있지만 '진지함'과 '명랑성'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소설입니다. 사회주의가 이미 구 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21세기 일본에서 혁명 세대들은 모두 어디 갔는지 궁금했던 것에서 시작(우리나라의 386세대의 행방과 비슷하게 느껴지죠)해 제도권 교육의 맹점, 시민운동의 허구성, 자본주의 체제의 무한 경쟁과 같은 사회 문제들을 무리없이 버무려서 잘 비벼놓은 작품입니다.
일본에서는 2006년도 전국 서점직원들이 뽑은 가장 권하고 싶은 책 '2006 서점대상'과 일본 최대 서점 기노쿠니야의 스탭들이 뽑은 '올해의 책' 베스트 1위에 당당히 선정된 걸작입니다.
내년에 임순례 감독이 영화화해 개봉한다고 하니 미리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연기파 배우인 김윤석씨가 주연을 한다고 하니(아마도 아버지인 우에하라 이치로 역할일 듯) 재미있을 것 같네요.
닫기
* 어른들에게는 어른들의 사정이 있는 법이다. 나는 그저 열한 살의 영역을 지키고 있었을 뿐이다.
* 이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풀려나가는 건 아니다. 한 가족이라 해도 저마다 따로 살아가는 것이다.
* 상식에서 벗어난다는 건 어딘가 유쾌한 일이었다.
* 따스한 기분이 되었다. 이별은 쓸쓸한 것이 아니다. 서로 만나 함께 어울리다가 와 닿게 된 결승점이다.
* 깨끗한 이별이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센티멘털한 기분에 빠지는 건 대부분 어른들이다. 어린이에게는 과거보다 미래가 훨씬 더 크다. 센티멘털한 기분에 빠질 틈이 없는 것이다.
* 소형 트럭의 짐칸에 올라탄 여자애들은 그야말로 여름 그 자체처럼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정말 멋진 풍경이었다. 한 발 빠르게 여름방학이 찾아온 것 같았다.
* 이 사회는 새로운 역사도 만들지 않고 사람을 구원해주지도 않아. 정의도 아니고 기준도 아니야. 사회란 건 싸우지 않는 사람들을 위안해줄 뿐이야.
*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해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
덧. 올림픽의 몸값을 북 크로싱할 때 오쿠다 히데오의 다른 작품을 소개해 달라는 댓글이 달려서 이 책 이야기를 했는데 드디어 소개합니다. 북 크로싱도 할 예정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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