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최소한 겉으로는 이분법을 찬성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씁니다. 이분법에 입각한 사고를 하는 인물은 너무 극단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좀 더 온건한, 좀 더 유연한, 좀 더 포용적인 위치에 있는 것처럼 자신을 포장하고 싶어하죠.
하지만 이분법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미 우리 삶에 속속들이 파고 들어 체화된 나머지 자신이 이분법적 사고를 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거든요.
이 책에서는 우리의 사유체계와 일상 속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는 '양극단'의 대립구도인 이분법을 다양한 분야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 친미와 반미, 친일과 반일, 체제수호적 통일과 반체제적 통일, 국가와 개인, 공익과 사익, 중앙과 지방, 남성과 여성이 그것입니다. 익숙한 주제도 있고 조금은 낯설어서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못했던 이분법도 있습니다.
권용립(경성대 국제정치학 교수), 김진호(당대비평 편집주간), 김창엽(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김현민(홍익대 사진과 석사), 박홍규(영남대 법학과 교수), 윤평중(한신대 철학과 교수), 윤해동(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이우영(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황정미(한림대 사회학과 교수)가 집필진입니다.
계간지 '당대비평'에서 단행본 시리즈로 내놓은 '당비생각' 중 한 권으로 (고)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기인 2004년에 나온 책이라서 시대 배경을 고려하고 읽어야 하고 쉬운 글체는 아니어서 읽을 때 집중이 필요한 책입니다.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았지만 성별 이분법을 다룬 '성(性) 대결, 그 신화를 넘어서' 글꼭지에 담긴 문제들이 그 이후로 거의 1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깨달음에서 한숨이 나옵니다.
본인의 이분법적 사고 경향을 돌아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하는 책입니다.
덧. 지인께서 북 크로싱 해 주셔서 이 책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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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초에 다음 아고라에서 열띤 논쟁을 불러 일으킨 글이 있었는데 바로 취업 관련 성차별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칼퇴근에 야근 안하겠다고 답한 여성 지원자는 탈락하고, 야근을 불사하겠다고 한 남성 지원자는 합격한 것을 놓고 여성들의 자세 문제를 성토한 글이었고, 항상 그랬듯이 갑론을박 게시판이 온통 시끄러웠습니다.
평소에 정치, 종교, 성차별에 대해 논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그러는가보다 하고 지나갔습니다만 우연히 제 생각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분의 글을 읽고 김에 제 생각을 다시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요즘의 여성 운동을 보면 엉뚱한 지점을 포격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여성들은 남성 위주의 성차별적인 사회를 개혁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제도를 공격해야 하는데 남성을 공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합리한 제도를 만든 것이 남성이기 때문에 얼핏 보면 제대로 공격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옳은 방법일지는 몰라도 현명한 방법은 아닙니다.
의도와 목표는 좋은데 방법이 틀렸습니다. 여성들의 생각대로 성차별적인 사회 제도를 남성이 만들었다고 해도 이미 남성들은 불합리성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그 제도에 익숙해진 상태이고 반성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제도를 개선하라는 요구에 당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인간은 변화에 저항하는 심리적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담을 받는 내담자들도 정작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변화에 저항합니다. 대다수의 남성들은 남성들도 그런 제도의 피해자라고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남성에 대한 공격은 반발을 살 수 밖에 없고 원하는 목적을 이룰 가능성은 전무합니다.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 제도가 만들어 놓은 달콤한 꿀단지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 뿐입니다. 불리하면 남성을 공격하고(제도가 아니라), 유리할 때는 여성이 가지는 이득(남성이 돈을 내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는 것, 힘든 일은 여성이기 때문에 빠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등)을 취하는 자세는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얼핏 당연하게 생각될 수 있지만 실상은 문제 의식을 가진 남성마저도 등을 돌리게 만드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여겨집니다.
잠시 잠깐의 달콤함에 취해 여성 착취를 정당화 할 제도와 문화와 가치관을 공고화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힘을 보탠다면 결국에는 꿀단지에 빠져 죽는 파리꼴이 될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래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려면 달콤한 꿀부터 거부해야 합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열외되는 일에 편리함을 느끼고 안주하지 말고 분노해야 하고, 동등하게 대우해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남자들이 그동안 여자들이 알게 모르게 누려왔던 특권을 내세우면서 변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군대 문제도 그렇습니다. 해당 사항이 전혀 없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군가산점에 목 매고 흥분하는 이유는 기득권을 빼앗긴데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형평성이 없다고 느끼는데 대한 분노의 감정인데, 별로 관계도 없는 출산 이야기나 군대 환경 개선이라는 현실성 없는 이야기를 꺼내면 말문은 막을 수 있을지언정 근본적인 변화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병역은 필요악이며 동시에 성차별을 공고화하는 무기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성들이 우리도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겠다고 들고 일어나 공동 병역을 요구하고 주장하면 실제로 여성이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게 되느냐의 여부와 상관 없이 이 문제는 훨씬 더 빨리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이것이 실질적으로 효과를 거두는 전술입니다. 성차별은 이미 합리성, 형평성, 대의명분 등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해결되지 않는 감정의 차원에 있기 때문에 거대 담론 차원의 이야기는 아무리 해도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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