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곧은 농사꾼이자 한치의 양보도 없는 근본주의자, 그렇지만 자신의 가치를 온몸으로 실천하는 사람, 천규석님의 책 '천규석의 윤리적 소비(2010)'를 북 크로싱합니다.
저도 주변에 타협을 하지 않는 고집불통으로 알려져 있지만 천규석님에 대하면 댈 것도 아니더군요.
공정 무역은 공정하지 않다, 착한 여행은 착하지 않다는 도발적인 선언으로 과연 공정한 것은 무엇인가, 착하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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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당신은 원칙을 손상시킬 가능성이 있는 모든 대안을 거부하고 필요하다면 판 자체를 갈아엎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개혁을 선호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현실적인 한계를 받아들이고 소극적이라도 그 안에서 가능한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인가요?
1960년 대 초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한 엘리트였음에도 일찌기 귀농을 결심하고 이후 옹골진 농사꾼의 길을 흔들림없이 걸었던 천규석은 전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공정무역, 복지국가, 국가주의 모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자급,자치,지역공동체연합'입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자면 우리는 모두 스스로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 해야합니다. 저자의 의도에서는 무정부, 무국가주의도 읽힙니다. 외세(자본/국가)에 대한 비폭력 불복종의 농촌자급공동체를 주장하고 있거든요. 또한 저자는 유럽식 복지국가에 대해서도 회의적입니다. 결국 그 세금은 기득권 세력을 유지하는데 사용되고 정작 혜택을 받아야 하는 수혜 대상은 배제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도 천규석의 칼날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는 부자를 욕하면서도 그 부자에게 세금을 더 뜯어내서 이른바 사회 안전망 만들어놓고 그 부자 밑에서 영원히 노동자로 안주하겠다는 그 노동조합주의를 제발 좀 때려치우라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생각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모두 자급자족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것도 또 다른 방향의 폭력이라고 봅니다. 본인에게 맞다고 모든 사람에게 맞으라는 법이 없으니까요. 원리주의에 입각해서 생각하면 야생동물과 똑같이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라 살거나 지구를 위해 인간이 모두 멸종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가능하거든요. 하다못해 제가 읽고 있는 저자의 이 책은 뭐 생존에 필요한 물건인가요? 생존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이 책이 나오기 위해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이나 인도네시아 열대 우림의 나무 한 그루가 희생되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키는데 일조하였을 지 누가 압니까? 까놓고 말해서 아마존 우림의 나무 한 그루가 천규석 본인의 목숨보다 더 소중할지도요.
공정무역이든 착한여행이든 간에 아직은 그 결과가 미약하고 탐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해결방법은 모든 노력을 다 때려치우고 국가를 해체한 뒤 농촌으로 돌아가 세금도 안 내고 선거도 안 하고 농사를 지어서 로컬 푸드만 소모하면서 물물교환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는거라고 생각합니다. 빠르게 돌고 있는 바퀴를 반대 방향으로 세우려면 관성을 서서히 없애는 것이 필요합니다.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면 타이어가 펑크 날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선뜻 찬성할 수 없는 내용이 가득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책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밀어붙이는데 있어 어떠한 타협도 거부하고 추호의 흔들림없이 언행일치를 보이는 저자의 모습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이런 근본주의적 사고가 나태해지기 쉬운 제 정신 상태를 뒤흔들 회초리로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달달한 당의정만 먹을 수는 없잖아요. 가끔은 이런 급진적인 책도 읽어줘야 합니다. 머리 뿐 아니라 마음까지 얼얼해져도 말이죠.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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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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