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회기 동안에 내담자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감정 표현은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모두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것이 눈물입니다.
성격적인 문제가 있는 내담자가 상담자를 manipulation하기 위해 흘리는 눈물(사실은 이마저도 중요한 정보입니다만)을 제외하고는 모든 내담자의 눈물은 굉장히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담자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는 건 무엇인가가 내담자의 눈물샘을 건드렸다는 것이고 그것이 내담자의 문제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단서일수도 있습니다.
내담자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지만 상담자가 염두에 두고 탐색해 볼 필요가 있는 의미는 억울함, 분노, 슬픔 등입니다.
일반인들도 그렇고 많은 상담자들이 내담자가 눈물을 흘리는 걸 우울 증상의 하나라고만 생각하고 마는데 의외로 생각보다 단지 우울해서 우는 내담자는 많지 않습니다. 설사 우울 장애로 고통받는 내담자라고 해도 우울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서, 자신을 돌봐주지 않고 버린 어떤 사람이 미워서, 이렇게 비참한 처지가 된 자신이 불쌍해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울하니 당연히 울 수 있겠지 하고만 생각하지 마시고 내담자가 지각하는 눈물의 의미를 함께 찾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내담자가 눈물을 흘릴 때 상담자가 보일 수 있는 반응도 다양한데 초심자는 당황해서 표면으로 올라온 감정을 내담자가 살펴볼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고 섣불리 위로하는 실수를 하거나 반대로 본인이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상담의 흐름이 끊어지기도 합니다.
가끔 눈물을 닦으라며 티슈나 손수건 등을 내담자에게 건네는 상담자가 있는데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상담 장면에서 상담자의 그런 행동은 내담자에게 자신의 눈물이 잘못된 것이거나 부정되어야 한다는 오해를 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경솔한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보통 내담자가 눈물을 흘리면 처음에는 내담자가 그 감정에 충분히 젖을 수 있도록 조용히 지켜보는 편입니다만 눈물을 흘리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오열로 이어지게 되면 제 시선에서 벗어나 혼자 감정을 다룰 수 있도록 기록지에 상담 내용을 메모하면서 정서적으로 살짝 거리를 두면서 물러나 기다립니다.
여러가지 다양한 이야기를 했지만 내담자가 흘리는 눈물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만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상담 도중 내담자가 눈물을 흘리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말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다루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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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를 할 때 검사 전에 수검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일별하다 보면 DSM의 여러 진단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딱히 어느 것 하나로 수렴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진단들을 떠올려서 비교하고 몇 개의 진단 가설로 정리한 뒤 심리평가를 통해 변별 진단을 하려고 시도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제 경험 상 위와 같은 경우는 심리검사 sign들도 기대만큼 전형적인 profile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심리평가를 마치고 나서도 어떤 진단을 내려야 할 지 분명한 그림이 떠오르지 않아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하는 단계까지 평가자를 곤혹스럽게 만들게 됩니다.
이런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평가자가 오로지 진단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에만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수검자가
이런 저런 증상을 호소하는데 함께 묶이지도 않고 어떤 진단을 내려야 할 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변별 진단을 해야 하는 사례가 아니라 두서없이 보고되는 증상의 핵심을 찾아야 하는 문제일 가능성을 떠올려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진을 할 가능성도 있고 이에 따라 치료 방향 설정도 잘못될 위험성이 있는데다 무엇보다 증상이 계속 변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무기력감, 시시때때로 엄습하는 걱정, 만성적인 짜증, 통제되지 않는 눈물, 수면 장해 및 피로감과 같은 증상들을 호소하는 수검자가 있다고 해보죠.
얼핏 스쳐 지나가는 생각으로도 우울 장애, 홧병, 불안 장애 등등의 진단들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증상들이 어느 하나의 진단으로 딱 묶여지지 않죠.
심리평가를 해도 구조화된 검사에서는 대부분의 임상 척도가 상승되어 있고 투사법 검사에서도 고통감이 두드러지는데 전형적인 양상이 아니라서 수검자가 힘들어 하는 건 분명한데 특정 진단을 내리기에는 결과 양상이 애매한 겁니다.
진단에만 집중해서 수검자를 case formulation하게 되면 이런 사례의 경우 증상이 계속 바뀌게 됩니다. 우울 장애처럼 보였던 증상은 어느새 사라지고 신체화 장애처럼 보이는 증상이 새로 등장하는 것이죠.
이럴 때는 진단을 내려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서 이런 증상들을 만들어 내는 기저의 핵심 문제가 무엇일까에 초점을 맞추고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런 증상이 수검자에게 어떤 이차적 이득(secondary gain)을 가져다 주는 지를 포함해서요.
문제의 뿌리를 찾으려고 노력해야지 이파리나 꽃만 보면 오히려 핵심을 놓치게 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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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은 배우자를 포함한 가족 뿐 아니라 때로는 친구나 직장 동료같은 주변 사람까지 재정적으로 고갈시키는 병이기 때문에 다른 정신질환에 비해 주변 사람들이 체감하는 고통이 훨씬 크고 구체적입니다.
도박 중독의 치료는 사실 가족 치료로 완성된다고도 할 수 있는데 보호자들은 재발의 징조를 미리 감지해 치료자에게 보고하기 위해, 또는 도박 중독이 야기하는 부수적인 문제에 대한 대처 교육을 받기 위해, 그리고 도박 중독이라는 병으로 받은 마음의 깊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중독자와 함께 옵니다.
엄청난 재정적인 고통을 맨몸으로 겪으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치료를 위해 곁에서 헌신하기 때문에 도박 중독자의 가족들은 겉으로는 매우 강인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약한 자극에도 쉽게 부서지고 깨질만큼 마음이 약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치료자 앞에서도 쉽게 눈물을 보이곤 합니다. 다른 일반심리상담소나 정신과 병원에 비해 도박중독 치료센터의 티슈 사용량이 훨씬 많을겁니다.
제가 도박 중독 치료자로 일을 하면서 가장 난처한 것이 치료자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보호자 앞에서 격해지는 감정을 참기가 어렵다는 것이죠. 저를 아주 잘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제가 감정적인 사람이라는 말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겁니다. 첫인상이 대체로 차갑고 냉정해 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다가 직업 상 논리정연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기 때문에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 아닐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많이 달라서, 저는 어릴 때 싸움을 하더라도 코피가 터져서 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울음을 터뜨려서 지곤 했습니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면서도 엉엉 울었다고 하니 보는 사람이 상당히 의아해 했겠지요. 지금도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면, 누구랑 있든지 상관없이 눈이 퉁퉁 부을 때까지 마음껏 웁니다. 가끔은 꺼이꺼이 울기도 하죠. ^^;;;
슬플 때 눈물을 흘리고, 기쁠 때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참 건강한 사람이죠. 저는 그런 감정 표현이 자연스러운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치료 장면에서는 감정을 그렇게 쉽게 표현하는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닌데, 내담자에게 확실하게 공감을 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내담자가 자신의 열려진 감정에 주목하고 그것을 따라갈 수 있도록 인도하지 못하고 감정에 함께 계속 몰입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는 제 감정 표현으로 인해 치료 장면에서 문제가 되었던 적은 없지만 그래도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치료자의 본분을 잠시 망각하더라도 함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뜨거운 가슴이 치료자에게 필요한 덕목이라고 애써 주장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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