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몽골 여행 2일차입니다. 내일 남부 고비 사막으로 내려가기에 앞서 워밍업을 하는 차원에서 울란바타르 시내 곳곳을 조금은 여유있게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느즈막히 8시쯤 일어나 샤워하고 아침을 먹으러 내려갑니다. 식당을 둘러보니 예상했던대로 동양인은 별로 안 보입니다.
Kempinski 호텔의 조식 뷔페 구성은 평범하지만 그렇다고 별로인 수준은 아닙니다. 괜찮은 편이에요.
여기는 시리얼 관련 section인데 곡물의 종류도 다양하고 괜찮습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차 section. 굉장히 다양한 차를 종류 별로 맛볼 수 있게 준비해 놓았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리셉션에서 미화 100불만 환전(2016년 8월 1일 기준 환율 2,063)했습니다. 환전에 앞서 환율 앱으로 확인해보니 2,061이던데 현지 환율이 오히려 낫네요.
Kempinski 호텔의 로비는 비즈니스 호텔 같은 분위기입니다.
객실로 돌아가 나갈 채비를 하고 로비로 다시 내려왔는데 한국인 사업가 부부를 우연히 만나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업 파트너인 현지 사장님의 초대로 방문해 오늘 테렐지 국립공원을 둘러본다고 하시네요.
Kempinski 호텔 로비의 넓이는 적절한데 앉아서 쉴 수 있는 소파의 수가 너무 적어서 좀 휑합니다. 그래도 항상 자리는 있었어요. 그렇게 붐비지 않더라고요. 오른쪽에 보이는 레스토랑 '카라코룸'에서는 나중에 두 번인가 밥도 먹었죠.
컨시어지에 부탁해서 간당 사원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습니다. 5분도 안 되어 도착했네요. 공인 택시가 오기는 했지만 그렇게 깨끗한 편은 아닙니다. public taxi라고는 해도 택시 기사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 합니다.
Kempinski 호텔이 울란바타르 시의 동쪽 언저리에 있고 간당 사원은 서북쪽이니 가까운 거리는 아닌 것 같았는데 택시를 타니 의외로 금방이네요.
생각보다 울란바타르 시가 넓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택시로 이동했을 때 가까운 것이지 걸어서 갈 거리는 절대로 아닙니다.
미터기를 켜고 가지 않아 살짝 바가지도 각오했는데 도착해서 스마트폰에 요금 찍어서 보여주는 걸 보니 6,000투그릭에 불과합니다. 비싸지도 않을 뿐 아니라 바가지도 안 씌웠네요. 제가 너무 예민했네요. 순박한 몽골 택시 기사를 오해한 것 같습니다.
간당 사원은 원래 입구에서 입장권(4,000투그릭)을 사야 하나 택시를 타고 가니 그냥 통과시켜줍니다. 가만 보니 현지인은 입장료를 안 받고 외국인만 받는데 택시를 타고 가니 그냥 통과한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간당 사원에 가실 분들은 확인해 보셔야 할 듯합니다. 믹지드 잔라이식 숨의 입장료와 가격이 동일하니 입구에서 티켓을 끊으면 믹지드 잔라이식 숨을 그 티켓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간당 사원(Gandan Khild)은 몽골에서 가장 중요한 불교 사원 중 하나로 이름의 어원은 '온전한 기쁨을 주는 위대한 장소' 정도로 번역될 수 있다고 합니다.
아침 8시 30분에 문을 열고 저녁 7시에 닫는데 오후에는 문을 닫는 불당이 많으니 오전에 방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간당 사원 가장 안쪽에 위치한 건물이 가장 인기 있는 '믹지드 잔라이식 숨(Migjid Janraisig Sum)'입니다. 딱 보기에도 위용있게 생겼죠.
3단으로 이루어진 처마 끝 부분이 '마니차'인 것이 특이합니다.
믹지드 잔라이식 숨은 얼핏 보기에는 여느 법당과 비슷합니다. 근데 특이한 건 스님이 돌아다니다가 외국인을 발견하면 스윽 다가와서 돈을 받고 티켓을 끊어줍니다;;;;
입장료는 1인 당 4,000투그릭(2015년 판 론플에 각각 3,500, 5,000투그릭이었는데 그새 올랐습니다;;;)이고 촬영을 하려면 기기 당 7,000투그릭을 더 내야 합니다. 티켓이 허접하지 않고 은근 고급스럽습니다. 한번 보시죠.
이게 입장권입니다. 무슨 지폐 같지 않습니까?
이게 촬영 허가증입니다. 역시나 고급스럽죠. 물론
촬영 허가증이 있어도 믹지드 잔라이식 숨 내부나 사원 바깥 풍경만 촬영할 수 있고 다른 사원의 내부는 촬영 금지입니다.
믹지드 잔라이식 숨의 압권은 정면에 위치한 조각상입니다. 원래는 1911년에 복드 칸이 매독으로 잃어버린 시력을 되찾고자 염원을 담아 만들었는데 1937년에 러시아가 녹여서 총알을 만들려고 가져가 버려 1966년에 네팔과 일본의 기부금을 받아 다시 만들었다고 합니다.
전체 높이가 26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조각상으로 옆에 있는 등신대의 상과 비교해 보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구리에 금박을 입혔다고 하네요.
중앙의 조각상을 중심으로 바깥쪽 벽을 따라 돌 수 있게 만들어 놨습니다. 안쪽으로는 마니차가 있고요.
벽면에는 장수를 상징하는 수 백개의 아유시(Ayush) 상이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구석구석을 잘 둘러보면 깨알같이 볼거리가 많습니다.
믹지드 잔라이식 숨을 정면으로 향한 채 오른쪽을 보면 예불을 비롯한 대부분의 중요한 행사가 열리는 오치다라 사원이 곁에 있습니다.
조금 더 들어가면 1904년 달라이 라마가 몽골에 들렀을 당시 묵었던 디단라브란 사원도 있고요.
제가 갔을 때 마침 예불 중이어서 운좋게 예불을 드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요. 관광객들이 주변에서 북적여서 그런지 스님들도 주의가 많이 분산되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꽤나 지루해 하는 표정들이었습니다. ^^
그 밖에도 간당 사원에는 불교 사상을 가르치는 대학도 있고(외국인은 출입 금지) 불교의 신 칼라차크라를 모신 신당도 있습니다.
사원의 밖에도 어김없이 마니차가 있고 신도들 뿐 아니라 관광객들도 많이들 마니차를 돌립니다.
간당 사원은 유명세 때문인지 분위기가 엄숙하기는 커녕 관광지처럼 북적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신혼 부부들도 많이 들릅니다.
전통 복식으로 한껏 멋을 부린 하객들도 눈길을 끄네요.
사원 근처에는 붉게 칠해진 기둥에 파란 끈을 감아놓은 일종의 성황당도 있습니다. 원래 몽골의 성황당은 돌무더기에 파란 끈으로 장식을 해 둔 모습으로 '어워'라고 하는데(나중에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건 형태가 좀 다르네요.
현지인들은 기둥에 손을 대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을 드립니다. 간당 사원 전체에서 이 주위가 가장 엄숙하고 경건합니다. 그래서 저도 이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멀리서 망원렌즈로 담았습니다.
간당 사원을 둘러보고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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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꾼 꿈이 워낙 생생하면서도 제게는 나름의 통찰을 준 꿈이라 포스팅으로 기록해 두려고 합니다.
최근에 입양한 넷째 냥이를 셋째가 받아들이지 못해 밤마다 전쟁을 치르는 통에 요새 깊은 잠에 들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만 꿈의 시작과 끝을, 게다가 2편으로 나누어 꾼 꿈을 모두 기억한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참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꿈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티벳으로 여행을 간 것 같은데 거기에서 우연히도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게 되었습니다.
달라이 라마와 동자승, 그리고 통역을 담당할 나이 든 보살(여성) 앞에 제가 섰습니다. 그리고는 말합니다.
"저는 비교적 순탄하면서도 행복한 인생을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습니다. 저는 대체 어찌 해야 합니까?"
보살이 제 말을 통역하기도 전에 제 눈에 비친 달라이 라마는 제 말에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입을 크게 벌려 동자승의 민머리를 무는 장난을 치면서 놀고 계시더군요.
발끈해서 뭐라고 항의를 하려는 순간 불현듯이 번개처럼 뒤통수를 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보살이 뭔가를 이야기하려고 입을 벌리자 마자 제가 손을 들어 제지합니다.
"설명하실 필요 없습니다.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제가 그대로 뒤돌아서 나오고 뒤이어 쏟아져 나온 뜨거운 눈물이 뺨을 적시며 흘러 내립니다.
이게 1부입니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 보니 실제로 울고 있더군요;;;; 베갯잇을 적실 정도는 아니었습니다만....
감정을 추스리고 다시 잠을 청했는데 곧이어 이어진 또 다른 꿈을 꾸게 됩니다. 2부는 더 짧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달라이 라마 앞에 제가 다시 서 있습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분위기 상 아마도 왜 그런 장난을 치신 건지 물었던 것 같습니다.
달라이 라마께서는 아무런 말 없이 손을 들어 제게 이미지를 하나 보여 주셨는데 그게 이겁니다.
제가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이라는 건 당연히 아니고 이런 느낌의 이미지였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고 집착한 나머지 안광이 폭발 직전의 괴물 같은 모습이었던 걸 달라이 라마는 한 눈에 알아보신 거지요. 그래서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몸으로 손수 보여주신 겁니다.
왜 이런 꿈을 꾸었는지 깨고 나서 생각해 보니 통제에 대한 집착을 머릿속에서만 내려놓았지 마음으로는 여전히 붙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좀 더 수련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어 기쁜 꿈이었습니다. 이런 깨달음을 주는 꿈은 조금은 괴롭더라도 매일 꾸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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