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그냥 개인적인 경험인데 저는 언론이나 대중매체와 좋은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칼럼을 써 줘도, 인터뷰를 해도 단 한 번도 제 의도대로 기사나 인터뷰가 나간 적이 없고 왜곡 편집 등으로 제 말과 정반대의 논조로 방송된 적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중매체는 과학적 사실에 관심이 없구나. 그냥 대중들의 관심만 끄는게 목적이구나'라고 생각하고 될 수 있는 한 거리를 두는 편입니다(월덴 3를 익명으로 운영하는 것도 그런 거리두기의 일환).
임상심리학자가 되어 현장에 나온 초기에 그런 경험들을 집중적으로 하게 된 이후 대중매체에 소개되는 심리학 관련 기사도 항상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게 됩니다.
제가 월덴 3를 처음 시작하던 때와 달리 지금은 심리학에 관심있는 분들도 많고 적극적으로 블로그 활동도 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간혹 보면 심리학 관련 기사를 스크랩하거나 정보 차원에서 모으는 분들이 있는데 주의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심리학자가 직접 쓴 기사나 칼럼도 얼마든지 데스크의 입맛에 맞게 편집되는데 외국의 심리학 연구 결과를 인용하여 작성된 기사가 객관적인 사실은 온전히 담아낸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심리학 관련 기사를 볼 때(국내, 국외 막론) 항상 다음의 과정을 거칩니다.
첫째. 기사의 내용을 뒷받침하는 관련 근거(references)가 정확히 기재(또는 링크)되어 있는가
이게 없으면 무조건 skip합니다. 더 이상 볼 필요가 없으니까요. 웃기는 건 대부분의 언론이 다루는 심리학 관련 기사는 관련 근거를 적시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거의 대부분 볼 필요가 없는 것들 뿐입니다.
둘째. 기사의 내용이 내가 알고 있는 상식과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반드시 출처를 추적하여 내용을 확인할 것
가뭄에 콩 나듯이 출처가 기재된 기사도 정작 원문을 읽어보면 전혀 다른 내용이 적혀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대체 뭘 보고 기사를 쓴 것인지 의심될 정도이죠.
셋째. 기사와 출처의 내용이 일치하지만 아무래도 미심쩍은 경우에는 출처의 source가 어디인지 확인할 것
사설 연구소나 대학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한 연구라면 무조건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익 단체의 lobby나 funding을 받고 실시한 연구일 수도 있으니까요. 외국에는 이런 일이 왕왕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예로 들자면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표한 갤럭시2에 대한 연구 결과라고나 할까요. SCI, SSCI에 등재된 journal에 실린 article 정도가 아니라면 진지하게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대체 어떤 심리학 관련 기사를 읽으라는 거지?'하는 의문이 드실 수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심리학 관련 기사는, 특히 대중매체나 언론에 실린 심리학 관련 기사는 읽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대개는 시간 낭비일 가능성이 큽니다. 특정 주제에 대해 궁금하시면 주제어 저널 검색을 해서 최신 연구 경향을 살펴보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월덴 3에 심리학 관련 기사를 모아놓는 메뉴는 없는데 자료실에는 논문의 article 분석을 한 내용이 있는 이유를 이제는 아시겠죠
심리학 관련 기사를 열심히 스크랩하는 심리학도(혹은 심리학 지망생)들이 꽤 많은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포스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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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저는 휴무일에 틈틈이 짬을 내어 파트타임으로 local clinic에서 심리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쏠쏠하게 손에 들어오는 용돈이 짭짤해서이기도 하지만 심리 평가를 주 업무로 하지 않는 제 근무 여건상 검사자의 감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검사 실시 경험은 꼭 필요하거든요.
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때에는 자격증만 손에 쥐면 절대로 검사는 다시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사람의 일이란 것이 마음먹은대로 되는 것은 확실히 아닌가 봅니다.
사실 평가와 치료, 그리고 연구의 세 바퀴를 모두 잘 굴려야 하는 것이 임상심리학자이기 때문에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증이 있다고 방심을 해서는 안 되지요.
아~ 사설이 좀 길었군요.
각설하고 이처럼 제가 가끔 나가서 심리 평가를 하는 clinic의 원장 선생님(Dr)이 M모 방송국에서 취재를 온다고 저보고 좀 도와달라고 하셔서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면치레를 하느라 다녀왔습니다.
집에 TV가 없는 저로서는 무슨 프로그램인지 모르겠지만 들어보니 교육 프로그램에 오락적인 요소를 곁들인 것이라고 하더군요. 내용인즉슨 칭찬의 교육적 효과를 검증한다나 뭐라나...
10명의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에게 주의력 검사를 한 후 칭찬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일주일 뒤에 다시 주의력 검사를 하여 향상이 나타나는지를 보는 것이 프로그램의 목적이랍니다. 얼핏 보기에도 얼마나 엉성하고 말도 안 되는 것인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나중에 제가 PD에게 말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정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_-;;;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웃기는 쇼인지 이해가 안 되는 분은 덧글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한 분이라도 계시면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자, 그럼 이제 제가 대중 매체를 싫어하는 이유를 설명드리겠습니다. 이 방송국도 유감없이 제 선입견을 강화시켜 주더군요.
첫째, 아무런 사전 조율이나 양해 없는 일방 통보.
: 대표적인 방약무인한 행동인데요. 대중 매체는 그 주체가 방송국이든, 기자든, 뭐든 간에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들의 시간만 중요하고 방송 스케줄만 중요하죠. 오늘의 경우도 자기들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인데 주객이 전도된 격이더군요. 아이들의 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야 한다고 촬영 시간도 저녁으로 잡았습니다.
둘째, 무계획의 극치.
: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의 전문 분야가 아니면 불안해서라도 조언을 구하는데 대중 매체는 전혀 그러지 않습니다. 조언을 구하지도 않지만 조언을 해도 듣지를 않습니다.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할 것이 충분히 예상이 되어도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대충 때웁니다. 예상되는 검사 시간에 대해 그렇게 미리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10명 중에 4명만 마음대로 뽑아서 검사하고 촬영하고 그러더군요. 왜 방송 촬영장에서 제일 힘든 일이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인지 알 만합니다.
셋째, 배려의 부재
: 대중 매체는 방송이나 기사를 위해서라면 그것이 양심이든, 정의든 뭐든 몽땅 팔아버릴 기세로 달려듭니다. 진실을 알리고, 감동을 주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대중 매체의 역할이거늘(제 생각입니다만) 여지없이 주객은 전도됩니다. 늦어지는 촬영 때문에 초과 근무를 해야 하는 clinic 직원도, 휴일에 아무런 대가도 없이 4시간 이상을 허비한 저도, 지루함을 못 참아 몸을 비비 꼬면서도 검사에 참여했던 아이들도, 그저 방송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희생되어 마땅한 것이지요.
넷째, 진실의 왜곡
: 제가 대중 매체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기삿거리를 제공하든, 인터뷰를 하든, 취재를 하든 간에 대중 매체는 사실 그대로를 절대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무슨 기준인지는 모르지만 자기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하고 싶은 말만 쏙쏙 뽑아서 합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에 의도했던 내용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오히려 정반대의 논조와 정보가 나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검사, 촬영하는 과정이 어찌나 상식에 어긋나는지 제 이름은 물론이고 임상심리학과 관련된 출처를 명기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이야기가 꽤 길어졌네요. 더 많은 이유가 있지만 큰 것들은 짚고 넘어갔으니 오늘은 여기서 그치려고 합니다. 또 기회가 있겠지요.
첨언하자면 제 대중매체 혐오증은 거의 알러지 수준에 가깝습니다. 방송국, 신문사, 잡지사에서 누가 나왔다는 말만 귀에 들리면 몸이 오그라듭니다(방법당했냐? -_-;;;)
참고로 제가 직장에서 홍보 담당자인 데에도 아직까지 인터뷰나 촬영은 제 위의 선임에게 미루고 있습니다. ^^
- 온라인 문법/맞춤법 점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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