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는 무조건 피해야 하는 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몸에 해로운 디스트레스와 어느 정도 유익이 있는 유스트레스로 굳이 나누지 않더라도 적당한(tolerable) 수준의 스트레스가 야기하는 가벼운 긴장감(또는 설레임)은 심신에 활력을 불어넣고 행동을 활성화시키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과도한 스트레스를, 그것도 장기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받게 되면 굉장히 해롭습니다. 그러한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평소에 적절한 수준으로 관리하는 게 중요한데요.
90년대를 풍미한 스트레스 대처 모형을 주창한 Lazarus는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개인 및 환경적 요인을 변화시킴으로써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려는 '문제 중심적 대처'와 스트레스로 인해 유발된 부정적 정서를 완화하려는 목적을 갖는 '정서 중심적 대처'로 스트레스 대처 방법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Lazarus는 다분히 정서 중심적 대처를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소극적이고 회피적인 대처 방식으로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죠.
저는 Lazarus의 대처 방식 분류가 이성과 논리를 감성과 마음에 우선하는 다분히 미국적인 이분법에 입각해 있다고 보기 때문에 견해를 조금 달리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대처 방법의 효과성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느냐보다는 일, 관계 차이에 따라 달라집니다.
도식으로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 일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 -> 대처 방식의 성질이 일과 관련된 것으로 풀어야 함
* 사람(관계)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 -> 대처 방식의 성질이 관계와 관련된 것으로 풀어야 함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 논문을 써야 하는데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 답답해 미칠 것 같음 : 과제 지향적 스트레스 상황
-> 친구와 만나서 폭풍 수다 (X) : 관계 지향적 스트레스 대처 방식이기 때문에 비효과적
-> 헬스장 윈드밀에 올라 땀 흘리며 운동 (O) : 과제 지향적 스트레스 대처 방식이기 때문에 효과적
* 맨날 나만 보면 갈구는 상사 때문에 입맛도 없고 출근하기가 싫음 : 관계 지향적 스트레스 상황
-> 주의를 돌리기 위해 일에 푹 파묻힘 (X) : 과제 지향적 스트레스 대처 방식이기 때문에 비효과적
-> 그 상사를 겪어본 동기와 선배를 만나 상의 (O) : 관계 지향적 스트레스 대처 방식이기 때문에 효과적
첫 번째 스트레스 상황의 대처법은 Lazarus의 분류법에 따르면 둘 다 정서 중심적 대처 방식이지만 제가 볼 때 효과성의 측면에서 전혀 다릅니다.
두 번째 스트레스 상황의 대처법은 Lazarus의 분류법에 따르면 위의 경우와 반대로 둘 다 문제 중심적 대처 방식이지만 역시 효과성의 측면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갖고 오게 됩니다.
중요한 건 대처 방식이 문제 중심적/정서 중심적이냐가 아니라 스트레스의 원인이 일이냐 관계냐에 따라 그에 해당하는 속성을 가진 대처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위의 예는 다른 맥락 정보가 없고 순수하게 일 또는 관계로만 받은 스트레스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스트레스 요인이 일, 관계 복합적이라는 걸 감안하면 지나치게 단순화된 접근법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느낄 때 일과 관계 중 어느 쪽 요소가 강한 지 잘 생각해보면 스트레스의 성질을 결정하는 main part는 있을 겁니다. 그게 일이라면 과제 지향적 스트레스 대처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 반대로 관계라면 관계 지향적 스트레스 대처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스트레스 대처와 관련된 집단상담을 진행하면서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상황과 대처법,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를 짝지어서 분류해봤는데 너무나 분명하게 나뉘는 걸 보고 제가 오히려 놀랐습니다.
아직 통계적으로 검증된 건 아니고 경험적인 발견에 불과하지만 스트레스 대처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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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든 가혹한 체험을 통해 깨닫게 되었든 말이죠.
하지만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걸 알고 난 다음 사람마다 대처하는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불공평한 세상을 공평하게 만들기 위해 일신상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맞서 싸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공평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후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적응해 가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지요. 불공평한 세상을 탓하고 원망하면서 화를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못나게 태어난 자신을 탓하고 체념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게 사실이라도 그걸 개개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과는 굉장히 많이 달라집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다르면 똑같은 지식과 정보도 다르게 받아들이게 될 뿐만 아니라 이를 활용하는 것도 달라지니까요.
서설이 길었는데 이 포스팅에서 다루고자 하는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게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해도 그걸 포기나 체념이 아닌 수용으로 받아들이고 나서야 어떠한 노력이든 집착에 헛되이 낭비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을 위해 발휘될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게 결코 쉽지도 금방 되는 것도 아니지만 일상에서 온전히 행복을 느끼기 위해 꼭 해내야 하는 과제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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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자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내담자들이 이야기하는 어려움과 문제는 내담자의 수만큼 다양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로 묶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많은 건 관계 갈등이고요.
'학교에 잘 적응하고 싶다.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다, 좋은 사람과 연애했으면 좋겠다. 상사가 또라이인데 어떻게 해야 하냐, 남편이 마마보이다, 아들이 날 홀대한다, 누군가 나를 무시하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동료의 잘난 척을 참을 수가 없다 등등'
예를 들자면 끝이 없겠지만 모두 대인 관계 문제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내담자가 호소하는 관계 갈등의 양상을 파악하고 내담자가 느끼는 고통감의 정도를 탐색하는 것으로 상담을 시작하지만 그 방향으로만 계속 가면 거의 예외없이 막다른 길에 몰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담자의 관계 갈등 대상이 상담 장면에 없는 상태에서 상담을 진행해야 하니 저도 모르게 fact finding을 하는 함정에 쉽게 빠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내담자의 지각 왜곡이나 역기능적 신념, 자동적 사고 등을 찾아내는 수확을 거두기도 하지만 그걸 교정하려고 해도 생각만큼 잘 되지 않습니다.
예전에 도박 중독자의 가족은 도박 중독자에 앞서 자신을 먼저 돌보라는 의미의
'지금은 각자의 성을 돌볼 때다'라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상담을 할 때는 내담자의 내면에 먼저 집중해야 합니다. 내담자의 숨겨진 욕구가 무엇인지, 언제부터 좌절되었는지, 그 욕구 좌절의 결과로 어떤 대처 방략 또는 방어 기제가 형성되었는지, 내담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관 또는 삶은 무엇인지 등등
내담자의 내면 탐색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다음에야 관계의 문제를 좀 더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물론 경험이 많은 상담자들은 이 두 가지 작업을 동시에 진행할 수도 있지만 아직 그런 내공이 부족하다면 먼저 내담자 개인의 내면 탐색을 하고, 그 다음에 관계 문제를 다루는 것을 고려해 보세요. 제 경험으로는 꽤 효율적이었습니다.
특히 부부 상담, 커플 상담 등 상담의 유형 자체가 관계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상담에서는 관계 갈등의 문제에만 집중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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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는 닥칠 상황이 비교적 확실하고 구체적일 때, 불안은 예상이 확실하지 않을 때 경험하게 된다고 하죠.
'~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은 대개 예상이 확실하지 않거나 예상 자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처했을 때 들게 마련입니다.
어차피 내가 모르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결과도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아무리 고민을 해 봤자 뾰족한 수가 생각날 리가 없는 것이죠.
이런 저런 시나리오를 짜고 Plan B를 만들어 봤자 불안만 증폭될 뿐 마음이 편안해지지는 않습니다.
그럴 때 제가 하는 대처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저는 '~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때 ~하는 주체가 저인 경우, 즉 제가 통제권을 갖고 있는 행동의 주체인 경우에는 무조건 그걸 시도합니다.
어차피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불안을 유발하는 사고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때는 '~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면 무조건 그 행동을 하겠다고 미리 결정해 두는 것이 하나의 해결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경험하고 나면 별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어 자신감이 생기고 유사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까지 덤으로 얻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패를 하게 되는 경우에도 계속 주저하고 이것 저것 재다가 등 떠밀려서 하게 되는 것에 비해 심정적인 타격이 적으니 어쨌든 '~하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이 생길 때 ~하는 것의 행동 주체가 자신이라면 무조건 시도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는 하나의 대처 방법이 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제게 꽤 괜찮은 대처 방법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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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는 심리검사 + 행동 관찰 + 면담 + 전문 지식에 의한 해석 등으로 이루어지는 매우 복합적인 과정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심리검사의 비중이 크다 보니 많은 평가자들이 심리검사의 검사 sign에만 치중해서 case formulation을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전형적인 검사 profile만 찾으려고 애를 쓰거나 눈에 띄는 일부 검사 sign에만 치중하게 되어 잘못된 formulation을 하게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래서 심리검사 전에 의뢰 사유를 확인하고 그에 따른 가설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
'심리검사 전 필수 점검 사항 - 의뢰 사유 확인과 가설 설정')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의뢰 사유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적절한 가설을 설정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많아서 의뢰 사유를 통해 가설을 설정하기 위해 확인해야 하는 아주 핵심적인 점검 사항을 요약해 보았습니다.
일단 정확한 용어는 아닙니다만 심리평가를 피검자가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과정이라고 전제하고 문제라고 통칭해서 사용하겠습니다.
1. 문제의 진행 과정 : 수직적 접근
: 피검자의 문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진행되어 왔는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일종의 시간 순서에 따라 확인하는 것이죠. 정신과 병원의 경우 chart를 확인해 일종의 퍼즐 맞추기를 하고 모자라는 조각을 면담을 통해 채울 수 있습니다. 동일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지, 아니면 과거와 다른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는지, 새로운 문제는 이전의 문제와 어떤 관련이 있어 보이는지, 문제를 야기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episode가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겁니다.
2. 문제의 일반화 가능성 : 수평적 접근
: 현재를 기준으로 이 문제가 특정 상황에만 국한되는 지(예; 선택적 함구증처럼 학교에서만 말을 하지 않는지, 남편과 함께 있는 상황에서만 울화가 치미는지 등), 아니면 모든 상황에서 일관되게 관찰되는 문제인지(예; ADHD 아동이 집과 학교 모두에서 산만한 행동을 보이는 것 등)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문제의 일반화 가능성에 대해 알아야 이 문제가 상황 특정적인지, 성격 문제에 기반한 것인지, 특정 인물과 관련되어 있는 문제인지 등등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기초 자료가 생깁니다.
3. 문제에 대한 피검자의 주관적 해석
: 문제를 피검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도 중요합니다. 이는 특히 진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피검자가 문제를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편안하게 받아들이느냐(ego-syntonic), 아니면 고통스러우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생각하느냐(ego-dystonic)에 따라 진단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4. 문제로 인한 일상 기능의 피해 여부
: DSM-IV-TR 기준에 따른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이 피검자가 일상 생활에서 이 문제로 인해 장해를 경험하는지의 여부입니다. 성추행에 대한 trauma로 인해 엘리베이터를 탈 수가 없거나 왕따를 당한 뒤로 등교를 거부하는 등의 문제가 이에 속합니다.
5. 문제에 대한 과거의 대처 방법 : 치료력
: 이 부분은 치료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실 문제에 잘 대처했다면 치료의 결과 확인을 위해 재평가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심리평가를 받을 필요가 없겠지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을 청하고 심리평가를 받는 것이죠. 그러니 이전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어떤 노력을 했는지, 다른 치료 기관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향후 치료 계획을 세우는 것 뿐 아니라 심리평가에서 가설을 설정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 글에 기술된 내용들은 어디까지나 필요 조건일 뿐 충분 조건은 아닙니다. 그러니 피검자를 평가하기 위해 필요한 내용을 나름대로 추가해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구축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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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다가 굶게 되면 배가 고프듯이 도박에 중독된 도박자는 도박을 하지 않아도 일어나는 도박 충동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도박 중독 치료는 도박 충동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박 충동을 어떻게 다루는가를 습득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어디나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도박 충동은 그를 자극하는 특정한 요인(시간, 장소, 사람 등)에 의해 유발됩니다. 그런데 그 유발이라는 것은 파블로프의 실험에 나오는 개가 종소리를 들으면 침을 흘리는 것처럼 완전히 자동화된 것은 아닙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내가 항상 로또 복권을 샀던 판매소를 우연히 지나가다가 발걸음을 멈추었다고 해서 또 다시 로또 복권을 사고 싶어 미칠 것 같이 된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도박 충동은 어느 정도의 단계를 거쳐 증가합니다.
저는 이를 크게 2단계로 나누고 단계에 따라 대처하는 방법을 달리하도록 조언합니다.
1단계는 도박 충동을 인지적인 수준에서 경험하는 단계입니다. '어, 내가 로또 복권을 사던 판매점이네. 사람들이 여전히 많구만'이라고 과거 도박을 했던 경험 등이 자연스럽게 회상되는 단계로 약간의 흔들림을 느끼게 됩니다. '오랫동안 도박을 하지 않았으니 이제는 조금씩 즐기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라는 유혹을 받게 되는 단계이기도 합니다.
1단계의 도박 충동은 아직까지 감정적, 신체적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논박'을 통해 도박을 유혹하는 사고에 정면으로 대항해야 합니다. '전에도 조절하면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시험삼아 했다가 재발했잖아. 다시 재발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어디 있어' 이렇게 말이죠.
2단계의 도박 충동은 인지적 수준을 벗어나기 때문에 감정적, 신체적으로도 도박을 하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끼는 단계입니다. 이 때에는 인지적으로 반박하는 것이 별로 소용이 없습니다. 이럴 때에는
도박 충동과 싸우지 말고 현장의 치료자들이 흔히 말하는 '충동의 파도타기'를 해야 합니다. 큰 파도가 밀려올 때에는 파도와 맞서는 것이 아니라 타고 가는 것이 안전한 것처럼 충동이 일어나는 것을 최대한 객관화하면서 관찰하는 겁니다. '내가 지금 도박을 하고 싶은 충동이 드는구나. 입이 타는 것을 느낄 정도인 것을 보니 많이 하고 싶은 것 같다' 이렇게요.
충동은 파도처럼 해변으로 밀려왔다가 다시 물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파도를 타듯이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충동을 관찰(
이 때 중요한 것은 아무런 행동도 섣불리 하지 않는 것입니다)하면서 버티면 충동은 서서히 가라앉게 됩니다. 불이 났을 때 탈 것을 주지 않으면 불이 서서히 사그라드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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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지는 않지만 가끔 여건 상 도박중독자와 가족이 함께 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함께 살아도 도박중독자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 전전긍긍하는 보호자와 가족의 입장에서 도박중독자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은 견디기가 쉽지 않습니다. 떨어져 있게 되면 도박중독자에 대한 의심 뿐 아니라 분노, 원망의 감정이 보호자를 사로잡기 때문에 매우 힘이 듭니다. 특히 치료 초기에 가족의 심적인 고통이 극에 달하는데요.
이를 위해 보호자와 가족이 취할 수 있는 몇 가지 초기 대처 방법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감정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정리가 될 때까지는 될 수 있으면 도박중독자에게 연락하지 말 것
: 중독자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감정이 가라앉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상적인 주제로 이야기를 한다 해도 쉽게 감정이 격앙될 것 같고 언쟁이 벌어질 것 같으면 차라리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2. 꼭 연락을 해야 할 때에는 이메일을 이용할 것
: 이메일은 비언어적인 단서가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보통은 더 좋지 않지만 일상적인 사안에 대해 상의를 하기 위해 제한적으로 사용하면 괜찮습니다. 대신 이메일을 사용할 때에는 감정적인 문구가 포함되지 않았는지 수 차례 점검을 하고 보내야 합니다.
3. 꼭 전화를 이용해야 할 일이 있을 때에는 2인칭을 사용하지 말고 1인칭으로 대화할 것
: 꼭 전화 통화를 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에는 의식적으로 '나'를 주어로 해서 통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상대방을 지칭하는 2인칭을 사용하게 되면 의도야 어떻든 도박자를 비난하거나 자신을 공격하는 것처럼 도박자가 오해하게 되어 결국 싸움이 일어납니다.
4. 부정적인 파국적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혼자서 멍하니 있는 시간을 줄일 것
: 그렇다고 도박중독자와 아무런 연락이 없는 상태에서 멍하니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 과거에 있었던 나쁜 일을 저도 모르게 반추하게 되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심하게 부정적으로 상상하게 됩니다. 따라서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고 몸과 마음이 바쁘도록 자신의 일과를 조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5. 의도적으로 과거보다 미래에 대한 생각에 초점을 맞출 것
: 보호자와 가족들은 자신이 한 일이 아닌데도 고통을 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를 생각하는 것은 보통 도박중독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하도록 보호자와 그 가족을 옭아맵니다. 과거에 당한 고통과 괴로움을 다루는 것은 상담 장면에서입니다. 그러니 될 수 있는 한 희망적인 미래를 상상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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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은 다른 중독계 정신 질환과 달리 약물 등의 물질에 의해 유발되는 병이 아니기 때문에 자제력을 상실함으로써 도박 행동에 지나치게 탐닉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인과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게다가 도박 중독자는 자신이 도박을 한다는 사실을 아주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감추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더군다나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도박 중독을 'hidden addiction(숨겨진 또는 은밀한 중독)'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도박 중독에 빠지는 원인을 그 개인의 성격이나 평소의 행동 양식, 가정환경, 때로는 양심에 돌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도박 중독이 정신 질환의 일종이라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정작 도박 중독자들도 이처럼 잘못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쉽사리 치료 장면에 들어오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따라서 치료 현장의 전문가들은 도박 중독자가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인식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50%는 치료가 되었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입니다. 그만큼 도박 중독자는 병에 대한 인식과 심각성이 없으며, 치료를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기억해야 할 점은 도박 중독은 어느 누구나 걸릴 수 있으며(저라고 자유로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암 환자를 탓하지 않듯이 도박 중독에 걸린 사람을 탓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물론 치료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책임감을 강조하는 경우는 있습니다).
그럼 가족 구성원이나 지인이 도박 중독자인 경우 간단한 대처 방법을 몇 가지 알아보겠습니다.
1. 대리 변제 절대 불가
'대리 변제'란 빚을 대신 갚아준다는 말인데, 도박 중독자의 빚을 대신 갚아주면 절대로 안됩니다. 물론 도박에 빠진 상태임을 모르고 빌려주었다면 모르겠지만 상황을 파악한 이후에는 절대로 안 됩니다. 빚을 대신 갚아주면 도박 중독이 악화합니다. 신용 불량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채권자에게 시달리는 것이 안쓰러워서, 등등의 이유로 빚을 대신 갚아주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도박 중독자를 돕고 싶다면 눈물을 머금고 참아야 합니다(오히려 신용불량자를 만드는 것을 권합니다). 흔히 도박 중독자들은 빚을 갚기 위해서 도박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빚만 해결되면 도박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도박 중독자가 도박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도박에 대한 환상과 미신적인 착각에 사로잡혀 도박 충동이 끊임없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빚을 대신 갚아주면 일시적으로는 도박을 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므로 다시금 도박 충동이 일어나 도박을 시작하게 됩니다. 도박 중독자의 빚을 갚아주면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실 겁니다.
2. 재정 관리 대신하기
어떠한 이유에서든 도박 중독자에게는 필요 이상의 돈을 주면 안 됩니다. 이것은 마약 중독자의 손에 마약을 쥐여주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도박 중독은 재정 관리 능력이 상실되는 병이니만큼 도박 중독자의 소유로 된 재산의 명의를 보호자에게 돌려놓거나 공동 명의로 등재해서 도박 중독자가 멋대로 재산을 처분할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급여나 재산의 관리도 당연히 보호자가 해야 합니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간에 도박 중독자가 도박 중독에서 완전히 빠져나올 때까지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3. 소문 내기
우리가 담배를 끊을 때 주변 사람에게 금연을 선포하고 도움을 청하듯이 도박 중독의 경우도 주변의 모든 사람이 감시자 겸 지지자가 될 수 있도록 자신이 도박 중독임을(혹은 도박 문제가 있음을) 알리고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창피해서 이것을 못한다면 도박 중독의 무서움을 아직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도박 중독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오해를 하고 있다면 이들에게도 도박 중독의 정확한 실상을 알려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문제가 아니면 관심이 없으며 이는 도박 중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에 소문을 내는 것은 도박 중독자가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음(또는 못함)으로써 대인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도박 중독의 치료에는 주변 사람들의 정서적 지지가 필수적인데 도박 중독은 대인 관계에 갈등을 일으킴으로써 단절시키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에 바로 이 정서적 지지를 고갈시키고 중독자를 고립시킵니다. 실로 무서운 병입니다.
4. 일상 생활의 대처
이것은 치료 현장에서 가장 먼저 시도하는 대처 방법이기도 합니다만 우선적으로 도박 중독자의 휴대전화 번호를 바꿉니다. 이것은 두 가지의 목적이 있는데 채권자의 무분별한 추심 행위로부터 잠시 자유로워짐으로써 치료에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목적이 하나이고, 도박과 관련된 사람들과 연결 고리를 끊음으로써 도박 충동을 감소시키는 것이 다른 하나입니다. 이때 번호를 바꾸면서 휴대전화에 보호자가 위치 추적(이통사에서는 친구 찾기 서비스라고 합니다)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는 보호자가 수시로 도박 중독자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어 불필요한 의심을 하지 않음으로써 갈등이 증폭되는 것을 막는 효과와 함께 도박 중독자에게는 충동이 일어날 때마다 보호자가 자신을 감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 더 함으로써 브레이크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또한 도박 중독자에게는 일체 현금화 할 수 있는 물건(금붙이, 신용카드 등)을 소지하지 못하도록 하고 현금 출납부를 쓰게 해야 합니다. 앞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도박 중독자는 재정 관리 능력이 상실되기 때문에 모든 지출은 영수증 등 관련 근거를 보호자에게 제출하도록 해야 합니다.
5. 궁극적인 방법
무엇보다도 도박 중독은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정신 질환인 만큼 도박 행동을 유지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뿌리를 뽑지 않으면 아무리 오랫동안 단도박 상태를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다시 재발합니다. GA모임(단도박을 위한 커뮤니티 모임)을 아무리 오래 다녀도 재발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따라서 하루라도 빨리 전문적인 치료 기관에서 체계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대한 설득하고 필요하다면 극단적인 방법이라도 사용해야 합니다. 실제로 기관에서 치료를 받는 부부 중 이혼 서류를 작성해서 "치료를 받을 거냐, 아니면 이혼을 할 거냐"고 요구하고 치료 장면에 도박 중독자를 끌고 오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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