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중독을 치료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합니다. 매우 다양하다는 말은 그만큼 특효를 보이는 유일무이한 치료법이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도박 중독자를 8년 동안 만나왔지만 저도 아직까지 무엇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인지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워낙 변수가 많아서 그냥 도박자에 따라 맞춤 치료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요새 들어 지금까지 많은 치료자들이 굳건히 믿고 있는, 도박 중독은 머리(또는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심리적인 접근법을 주 치료법으로 해야 한다는 전제가 너무 불완전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위의 전제를 믿는 임상심리학자들은 도박에 대한 잘못된 기대와 신념을 교정하기 위해 CBT를 실시하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되살리기 위해 실존치료적 접근을 하고, 부인과 합리화의 방어 기제를 사용하는 도박자를 치료 장면에 끌어들이기 위해 동기 강화 상담을 할 겁니다.
물론 이 방법들도 필요합니다. 저도 하고 있고요.
하지만 근본적으로 저는 도박 중독이 머리의 문제이기에 앞서 몸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도박 문제가 있음을 불현듯 깨닫고 도움을 받으러 오기까지는 대개 상당히 오랜 시일이 지난 뒤입니다. 이미 도박을 하는 습관이 몸에 철저히 배어버린 뒤이지요. 그래서 도박을 그만 두려고 해도 머리는 주인의 의지를 이해하고 도박 충동에 저항하지만 몸은 그러지 못합니다. 그래서 도박을 하던 요일, 시간 등 환경이 비슷하면 몸이 기억하는 그대로 행동하려고 하기 때문에 불안, 초조, 좌불안석, 주의집중곤란, 수면 장애 등의 금단증상이 나타나는 것이죠. 가만히 보면 자신이 도박을 하던 환경과 전혀 다른 상황에서는 금단증상을 경험하는 도박자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몸에 배어 있는 도박 습관에서 빠져나오려면 도박에 익숙해져있는 몸의 패턴을 처음부터 완전히 바꾸어야 합니다.
주 도박으로 경마를 했던 사람이라면 금, 토, 일요일의 생활 습관을 도박과 완전히 무관하게 바꾸어야 합니다.
간혹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기 전에 그렇게 도박을 끊으려고 시도해봤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도박자가 있는데 대충 몇 번만 해서는 어림도 없습니다. 최소한 도박에 빠져서 날려버린 시간만큼은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몸이 새로운 습관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머리의 문제를 다루는 치료법만큼이나, 몸의 문제를 다루는 치료법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도박의 늪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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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중독이 그렇지만 도박 중독은 병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입니다. 병에 대한 인식이 없으니 치료를 받아야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것이죠.
그래서 도박 중독 치료에서는 도박 중독자가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을 변화의 전환점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도박 중독자에게 문제 의식이 생겼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자신에게 도박 문제가 있고 그대로 놔둬서는 안 되기 때문에 상담을 받는다고 이야기하는 도박 중독자는 생각보다 많이 있습니다. 인지적인 수준에서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마음 속 깊이 자신이 도박에 중독되었음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은 결코 간단치 않습니다.
자신에게 도박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인 도박 중독자에게는 행동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저는 도박 중독자의 가족들에게 가끔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가족이 먼저 이제 그만 상담을 받아도 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상담을 만류한다면 도박자가 어떻게 반응할까요?"
자신이 도박에 중독되었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그런 마음 흔들기에 동요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확실히 도박에 대한 자제력이 생겼다고 여길 때까지는 상담이든, 단도박 모임 참석이든, 약물 치료이든 간에 함부로 그만두지 않죠.
만약 가족의 그런 말에 금방 동요되어 그때까지 잘 유지하고 있던 치유 활동을 중단하는 도박 중독자는 자신에 도박 문제를 마음 속 깊이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도박자의 말보다 행동을 믿으라는 현장의 금언은 문제 의식이 있느냐를 평가하는 데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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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상담할 때 도박 중독을 산불에 자주 비유하곤 합니다.
이걸 제 마음대로
'도박 중독의 산불 이론'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
아시다시피 산불이 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탈 것(울창한 삼림)이 풍부해야 할 것이고 인화 물질도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낮은 습도와 강한 바람, 풍부한 산소 등이 더해지면 큰 산불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도박 중독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박자마다 산불을 일으키는 요인에 차이는 있지만 일정 액수 이상의 돈이 생기거나, 가족이 모르는 여유 시간이 비거나, 도박을 하던 옛 친구의 전화를 받거나, 경제적인 압박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는 재발 요인 하나만 갖고 다시 도박을 하게 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하지만 정말 공교롭게도 이런 요인들이 우연히 한 곳에 모이게 되면 산불이 일어나듯이 걷잡을 수 없이 다시 도박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도박자마다 다시금 도박에 빠지게 만드는 요인들을 상담 과정에서 점검하고 대처 연습을 하는 것이죠.
만약 도박을 하기 위해 소지했던 평균 금액이 20만 원이라면 항상 그 금액 이하로 돈을 갖고 다니고, 가족들이 모르는 여유 시간이 생기지 않도록 일정을 조정하고 행선지를 가족에게 일러 둔다거나, 옛 도박 친구의 청을 거절하는 연습을 하고 경제적인 압박을 해소하기 위한 재정 관리 능력을 배양하는 식으로요.
혼자서 도박을 끊기 어려운 이유는 도박자가 도박을 끊는 방법 자체를 모르기 때문도 있지만 자신을 도박으로 이끄는 요인들을 꼼꼼히 살펴서 도박 청정 지역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산불 방지를 위해서는 산림청과 소방방재청의 공조가 중요한 것처럼 도박 중독의 재발 예방을 위해서는 전문치료기관의 전문성과 도박자의 협조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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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자가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은 치유의 시작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 도박자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도박을 끊을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지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택하기 쉽습니다.
대개 도박자들이 먼저 선택하는 것들은 도박 빚을 갚는 것, 벌금을 내는 것, 구직 활동을 하는 것 등입니다. 치료보다 이것이 더 급하다고 생각하는 도박자가 많습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한 활동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모두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렵고 환경의 도움이 필요한 것들이죠. 도박 빚을 갚기 위해서는 돈의 쓰임새를 다시 결정해야 하는데 가족, 특히 배우자의 협조가 필요하고, 벌금을 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직 활동을 하는 것도 소비 지출에 대한 점검과 자신을 고용할 구인자를 찾아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즉 도박자 혼자 열심히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동안 도박을 하면서 많은 것들이 정상 수준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혼자의 힘으로 무리하게 돌려놓으려는 시도는 자칫 도박자에게 좌절감을 안겨주게 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도박에 안주하는 재발의 위험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도박자에게는 실패가 가져오는 두려움이 일반인에 비해 더 크니까요.
따라서
스스로의 힘으로 충분히 할 수 있고 쉽게 성공할 수 있는 것부터 먼저 시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일과표 짜기, 계획 세워 운동하기,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들은 도박자의 의지만 굳건하다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시도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힘으로 뭔가를 성취해나가는 느낌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자존감이 높아지면서 환경의 도움이 필요한 일을 할 때 필요한 용기를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도박자는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부터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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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중독자와 상담을 하다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도박자들이 빚만 갚으면 혹은 잃어버린 돈만 회수하면 지금까지 도박으로 날린 자신의 모든 것을 어느 정도는 회복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있습니다.
많은 도박자들이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있다고 착각하며 돈을 딸 수 없다고 생각하는 도박자도 무의식적으로는 도박을 통해 어느 정도라도 손실을 회복하고 나면 가족의 용서를 받고 잃어버린 평판을 회복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실제로 도박을 해서라도 돈을 따기만 하면 가족들이 자신을 용서해줄거라는 말을 하는 도박자도 많습니다.
하지만 도박자가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있다고 해도 그 돈을 스스럼없이 받거나 도박자의 잘못을 용서해줄 가족은 거의 없습니다.
도박으로 벌어온 돈은 사람을 죽이고 강탈해 온 돈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가족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도박과 연관된 돈은 그들에게 끔찍한 것입니다.
도박자는 자신이 재산을 탕진한 사실이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가족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돈 문제가 아닙니다.
가족들은 자신이 사랑해왔던 사람을 앞으로는 믿을 수가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나약함에 절망하는 것입니다.
도박자는 돈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가족들은 신뢰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바로 그 차이가 치유를 더디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시간이 걸릴지라도 빚은 갚으면 됩니다. 잃어버린 돈도 회복하면 됩니다. 하지만 깨져버린 신뢰는 결코 쉽게 치유되지 않습니다. 부단한 언행일치와 시간만이 그것을 가능케합니다.
그러니 단기간에 승부를 보려고 하는 충동적인 도박 중독자들이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도박 중독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도박 중독자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니 신뢰를 회복하는데 목숨을 거십시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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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치료를 권유할 때 많은 도박자가 혼자서 도박을 끊을 수 있다면서 치료를 거부하곤 합니다. 지금까지는 끊을 생각이 없었지만 이제는 끊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면서요.
언뜻 들으면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지금까지는 끊으려는 마음을 먹은 적이 없으니 당연히 아무런 노력도 안 기울였을테고 이제 정신을 차리고 끊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면 끊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니까요.
게다가 혼자서 도박을 끊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니 가족들이 도박자의 말을 믿고 싶은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혼자 도박을 끊겠다고 말하는 이유가 정말 도박을 끊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가족의 강요에 의해 치료 받는 것이 싫기 때문이고 도박을 끊을 생각 자체가 없는 도박자도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혼자서 도박을 끊겠다고 말하는 도박자에게 이렇게 물어봐야 합니다.
"좋아, 끊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니 나도 기쁘다. 자 이제 그럼 어떤 방법으로 도박을 끊을 건지 이야기해 봐"
도박은 마음만 먹으면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서 도박을 끊기 어려운 이유는 제대로 된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고 시간을 들여 전문기관에서 상담을 받는 이유도 도박을 제대로 끊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시원찮다면 도박자는 아직 도박을 끊을 생각이 없거나 방법을 제대로 모르는 것이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힘들게 고생하지 말고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자고 설득을 해야 합니다.
제 경험 상 도박을 혼자 끊겠다면서 아무런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도박자가 실제로 도박을 끊은 경우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혼자서 도박을 끊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법을 물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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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담을 받기는 하는데 너 때문에 상담을 받는 것'이라고 선을 긋는 도박 중독자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너'는 배우자가 될 수도 있고, 성인이 된 자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런 말을 다시는 못하게 못을 박아야 합니다.
"당신이 원하지 않고 필요없다고 판단되면 받지 마, 절대로 나 때문에 받는다고 이야기하지 마"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도박 중독자가 내가 너 때문에 상담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을 허용하면 절대로 안 되는 이유는 이 말이 도박자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책임 의식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도박 중독자는 상담이 실패하는 경우(이런 마음가짐으로는 대부분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지 않고 상담자, 가족 등 외부 환경에 돌리게 됩니다.
도박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의 결심을, 자신과 가족의 인생과 행복을 위한 노력을 책임지지 않는 도박자는 어떤 방법으로도 치료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나를 위해서 받는 상담이라면 받지 말라고 강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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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법 간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심리치료 기법은 일반적으로 치료 초기에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를 강조하며 rapport 형성을 중요시하고 적극적 경청과 수용, 공감에 초점을 맞춥니다.
특히 병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중독 상담에서는 치료 동기를 고양하기 위한 동기 강화 상담을 중요시합니다.
그러니 도박 중독 치료 초기에 직접적인 조언이 필요할 때도 있다는 제 주장은 기존의 심리 치료적 접근법에서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도박 중독자를 상담하다보면 공감적인 경청과 수용보다 direct guidance가 더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도박 중독자와 그 가족이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해 명쾌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답답한 마음이 해소되고 상담자를 신뢰해도 좋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다음에야 치료적 관계가 시작되지 개입 타이밍을 놓치게 되면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되기도 전에 조기 종결되는 사례가 많아집니다.
물론 상담자가 상담 초기에 직접적인 조언에만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도박자와 그 가족이 상담자에게 매달리는 의존성 문제가 발생할 수는 있습니다. 아무 내담자에게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하지만 대개의 경우 도박 중독 상담에서는 초기에 명확한 guideline을 제시하는 것이 병식이 부족한 도박자와 치료적 관계와 한계를 설정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저는 치료적 관계가 공고해진 다음에 직접적인 조언을 조심스레 사용하라는 기존 심리치료 기법의 조언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내담자의 상담자에 대한 dependency 문제보다 조기 종결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 도박 중독자와 그 가족을 상담하는 상담자는 직접적인 조언을 위한 전문적인 지식을 충분히 습득하고 있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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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자는 기본적으로 충동성과 조급함 때문에 치료 기간을 줄였으면 하는 마음이 큽니다만 좋아지는 속도에는 분명히 개인차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도박 문제가 있음을 마음 속 깊이 받아들이고 도박을 그만해야겠다고 결정한 경우는 대개 상당히 빨리 좋아지는 반면 자신에게 도박 문제가 없다고 계속 부인하는 경우에는 치료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그런데 빨리 좋아진다고 해서 안심할 수만은 없는 것이, 빨리 좋아진 도박자가 더 쉽게 도박에 다시 빠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 상, 빨리 좋아진 도박자가 더 쉽게 도박에 빠지는 이유는 딱 하나뿐입니다.
바로 자만해서 그렇습니다.
'별다른 금단 증상도 없고 도박 생각도 더 이상 나지 않는 것을 보니 이제 도박 중독이 다 치료되었나 보다'하는 생각이 조금씩 발전하여 나중에는 '이제는 자제력도 충분히 생긴 것 같으니 예전처럼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나 자신을 통제하면서도 적절히 즐길 수 있을거야'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는 것이죠.
도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습게 보는 그 자만심 때문에 빨리 좋아진 만큼이나 더 빠른 속도로 다시 도박에 손을 대게 됩니다.
도박이 자신의 인생을 얼마나 처참하게 망쳤고 얼마나 돌아가게 만들었는지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도박이 자신의 손 안에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도박은 겉보기에만 약해 보일 뿐 또 다시 도박자를 갖고 놀면서 파멸의 늪으로 몰아넣을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겉으로는 아무리 좋아보일지라도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 꼴이 되지 않으려면 평생 도박의 두려움을 상기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만이 살 길입니다.
도박을 이길 수 있다는 자만심을 가지는 순간 파멸의 시계는 작동을 시작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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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자에게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을
'상습적인 거짓말'과
'무책임'이라고 한다면
그 가족에게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의심병'입니다.
의심병은 말 그대로 의심을 하는 병인데 도박 중독자가 도박을 하는 것을 알게된 순간부터 시작되어 점차 증세가 심해집니다. 나중에는 도박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되죠.
도박자의 배우자(기혼인 경우)와 부모(미혼인 경우)는 그야말로 도박 중독의 직접적인 피해 권역에 들어가 있으니 의심병에 걸리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데 자녀는 어떨까요?
예를 들어 장성한 자녀의 경우 이성 관계에서 상대방을 시험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거나 해명을 믿지 못하게 되므로 끊임없이 진의를 캐묻기 때문에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인데 왜 내게 감추는 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면서도 그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고 하는 문제를 감추었다고 자신이 왜 그렇게 화를 내는 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바로 의심병이 다른 가족들에게도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랑하는 가족이 서로를 속이고 또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자녀들은 기본적인 신뢰감을 위협받게 되고 나도 상처받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확인하고 두번 세번 의심해야 한다는 다짐을 무의식 수준에서 하게 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도박 중독자의 치료와 별개로 그 가족들에 대한 치료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특히 이러한 의심병에 걸린 가족은 꼭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자칫하면 사회 생활을 하는데 있어 상당한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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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 도박중독 현장에서 사용하는 도박중독 진단척도는 크게 4가지입니다.
가장 오래된 것이 SOGS인데 유병률이 과다추정되는 문제가 드러나 단독으로는 사용하지 않으며 다른 척도와 병행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기관의 경우 교차 진단을 위해 K-MAGS, K-NODS와 함께 사용합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K-MAGS-DSM(혹은 K-MAGS)으로 미국정신의학진단편람인 DSM-IV-TR의 진단 기준을 활용한 척도입니다. 병원에서 주로 이 척도를 사용하며 사실 상 가장 널리 사용되는 척도입니다.
그리고 K-NODS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개발된 척도로 가장 최근에 나왔죠. 1년 유병률과 평생 유병률을 나누어 측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문항이 좀 많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 밖에 GA(익명의 단도박 모임)에서 AA의 문항을 변형하여 만든 GA20문항이 있습니다. 이 척도는 GA에서만 사용합니다.
CPGI는 사감위만 사용하는 척도로 이전 포스팅(
'한국판 CPGI의 문제점')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엉터리 척도입니다. 도입하는데 들인 돈이 아까워서 그런지 창피함을 무릅쓰고 꾿꾿이 사용하고 있습니다(웃음).
이순묵 & 김종남 선생님은 최근에 publish한 논문(관련 포스팅 '
[논문] 도박중독 문제의 본질에 충실한 평가/진단 및 비율 산정')에서 도박자의 부인 경향을 차단하기 위한 filter 문항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으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별로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고 굳이 도입을 하고자 한다면 병원의 입원 병동에만 국한해 도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정신과 병원의 보호 병동에 입원하는 경우 많은 도박 중독자들이 자신의 문제를 부인하는 경향을 강하게 보이기 때문에 도박 중독 척도를 사용하는 경우 정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초기 라포 형성의 어려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입원 환경에 대한 불만, 다른 입원 환자와 동일하게 취급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를 제외한 현장에서는 도박자의 부인 경향이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제가 일을 시작한 이래로 초기 평가에서 도박 중독자가 정상으로 보이기 위해 진단 척도를 왜곡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양상은 도박자가 자발적으로 방문하든, 가족의 강권에 의해 비자발적으로 방문하든 차이가 없습니다.
2005년부터 저는 도박 중독자에게 MMPI-2와 사회적 바람직성을 측정하는 척도인 MCSD를 함께 제공해왔습니다. 혹시라도 있을 지 모르는 반응 왜곡 경향을 탐지하기 위해서이죠. 도박자들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게 보이려는 경향은 높은 편이나 부인 경향은 거의 없습니다. MMPI-2의 타당도 척도에서도 이상 반응을 보이는 도박자가 없고요. 상당히 솔직하게 답하는 편입니다.
따라서
정신과 병원의 입원 병동을 제외하고는 도박 중독 진단 척도에 도박자의 부인 경향을 탐지하기 위한 문항을 굳이 포함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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