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존감이 높을수록 타인에게 도움을 주기는 해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걸 주저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우습게 보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설사 나를 우습게 보더라도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을만큼 자신이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겁니다.
사람들이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이유는 거절을 당할까봐이고 거절 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자신이 못났다고 생각하는 자기 비하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 틀을 깨야 합니다.
도움을 청했을 때 도움을 받으면 도움을 받아서 얻는 실제 이득보다 내가 도움을 받을 정도의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자기 가치감이 고양됩니다. 또한 도움을 준 사람은 자신이 남을 도울 만큼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자기 고양감이 생기기 때문에 서로 윈-윈하게 됩니다.
자기 가치감이 높아지면 도움을 청하는데 주저하는 빈도가 줄어들고 확률적으로도 도움을 청하면 받을 가능성이 커지게 됩니다. 따라서 점점 자기를 비하하는 경향이 감소하게 되죠. 따라서 도움을 받을 일이 생기면 억지로라도 도움을 청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수록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습니다. 설사 거절을 당해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니 damage가 적으니까요.
그렇다면 자기 비하하는 문제를 먼저 해결해서 자신감을 얻어서 거절 당할 확률을 최대한 줄인 다음에 도움을 청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왜냐하면 거절당했을 때 damage는 아무래도 피하고 싶으니) 생각이나 신념을 바꾸는 것보다 행동을 바꾸는 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 성공 경험을 통해 자존감을 높이는 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성공 가능성이 너무 낮아요. 그래서 강제로 인지 부조화 상태를 만들어서(이미 도움을 청하는 행동을 했다. 이건 바꿀 수가 없음. 그러니 나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정도의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바꾸는 게 상대적으로 더 쉬움) 생각을 바꾸는 게 더 빠른 방법입니다.
다만 마찬가지 원리로 도움 요청을 거절당했을 때도 이미 거절당한 환경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내가 거절당할만큼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고 귀인 할 수 있으니 거기에 대한 대비를 미리 해야 합니다. 가능하면 상대가 쉽게 도와줄 수 있는 가벼운 부탁부터 연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한번 연습삼아 도움을 청해보는 것이 아니라 정말 도움을 받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갖고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겁니다. 인간은 사회성이 중요한 영장류에서 진화했기 때문에 종족의 안녕을 위해 협조하려는 성향이 본능처럼 내재되어 있어 간절한 도움을 거절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보다 누군가를 콕 집어 살려달라고 애원하면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애매하게 간보듯이 하지 말고 간절함을 담아서 도와달라고 해야 합니다.
정리하자면,
1. 자존감을 높이는 건 지속적인 성공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음
2. 도움을 요청하는 건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자존감을 기반으로 함
3. 행동보다 생각을 바꾸는 것이 쉽기 때문에 일부러 도움을 청하는 건 인지 부조화를 이용한 방법임
4. 반복적으로 거절을 당하면 오히려 자존감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에 거절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요청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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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도움을 받지 않고 모든 걸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는 게 마치 어른으로 인정받는 전제 조건인 것처럼 인식되곤 합니다. 때로는 모든 사람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필요할 땐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도움을 청할 수 있고 설사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해도 효율적인 일처리를 위해 스스럼없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건강한 겁니다. 도움을 주고 받는 것 모두 숨쉬듯 자연스러워야 하는 거지요.
중요하니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건 내 주변 사람들의 모든 문제를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믿음(구원자 환상) 만큼이나 정신 건강에 해롭고 심각한 문제입니다.
남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건 주로 두 가지 문제 중 하나 때문에 나타나는데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EP(Effortless Perfection) 때문입니다. 이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완벽해야 한다는 신념입니다. 남들처럼 밤을 새우지 않아도 반에서 1등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며 운동도, 노는 것도, 연애도 동시에 잘 해야 한다는 거죠. 그야말로 엄친아여야 한다는 건데 이런 엄친아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건 안 될 말입니다. 남이 나에게 신경을 쓰게 한다는 건 완벽함이 깨지는 그야말로 가오 상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인간은 체력이든 지능이든, 하다 못해 시간의 제약이란 게 있습니다. 무한대의 자원이란 건 없거든요. 그래서 도움을 받는 걸 끝까지 거부하면 결국 언젠가는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때 치러야 할 댓가는 어마어마하지요.
둘째, 역의존(Counter-Dependence) 때문입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역의존은 의존하고자 하는 개인적 욕구를 거부하는 걸 의미합니다. 역의존을 유발하는 심리적 기제의 뿌리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이고 다른 하나는 치명적 결함(Fatal Flaw)입니다. 전자는 '내가 너무 대단한 사람인데 어찌 열등한 다른 인간에게 의존한다는 말인가'에 가깝고, 후자는 반대로 '나는 뭔가 치명적인 하자가 있는 인간이라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을테니 괜히 민폐끼치지 말자'에 가깝습니다.
읽으면서 느끼셨겠지만 EP와 역의존 모두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치료가 필요한 상태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힘들어도 다른 사람(부모님, 형제, 친지, 베프, 연인 등)에게 도움을 청하는 걸 절대로 못하는 분이 계시다면 빨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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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받으려는 많은 내담자들이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별 일도 아닌 이런 정도의 일로 상담 씩이나 받아도 되나'입니다.
그런데 그런 내담자일수록 보고하는 내용을 들었을 때 상담자가 느끼는 건 '대체 이렇게 힘든 데 어떻게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을까' 정도로 심각한 수준입니다.
대체 이런 gap은 어떻게 생기는걸까요.
가장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도움을 받는 것이 주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용기를 요구하는 일이라는 겁니다.
도움을 주는 것은 능력과 이타성만 있으면 가능하지만 도움을 받는 건 역의존성 문제를 극복해야 하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니까요.
상담자가 내담자를 돕는 건 공부와 수련을 바탕으로 형성된 전문성과 조금의 소명 의식만 있으면 되지만 상담을 받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이야기 할 수 없는 자신의 상처와 치부를 생판 남에게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담을 받을 일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상담을 받는 내담자들은 정말 용기 있는 분들입니다.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게 뭔 용기까지 필요하냐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그건 지금 받은 도움을 당연히 언젠가 돌려줄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세상에는 공짜가 없으니)과 내가 도움을 청하면 당연히 받을 수 있다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형성한 건강한 분들(물론 탐욕으로 똘똘 뭉친 이기주의자들은 예외입니다만)에게나 가능한 일입니다.
많은 내담자들이 역의존성(conter-dependence)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역의존성은 간단히 말해서 남에게 아주 간단한 것도 의존하고 도움을 구하지 못하는 것인데 그 이면에는 형편없는 자아상과 바닥을 친 자존감이 깔려 있습니다. 역의존성은 '나는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가 아니다'라는 핵심 신념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기대했던 애정을 받지 못하게 되면 생기기 쉽구요.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지만 사랑을 받지 못했을 때 받은 상처 때문에 역의존성이 생기고, 상처를 치유해야 하지만 역의존성 때문에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그래서 상처가 덧나서 더 심해지는 악순환을 겪게 됩니다.
그러니 상담자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건 자신의 역의존성을 넘어설 용기를 냈다는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엄청 대단한 겁니다. 그 상담의 결과가 어떻든 간에 그런 용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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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낮에 제 휴대폰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발신 번호를 보니 유선 전화이더군요. 받지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받았습니다.
경찰청 인사과의 경감이라고 신분을 밝힌 그 분이 제가 익히 아는 어떤 교수님의 이름을 말하기까지 제가 얼마나 긴장했을까요? 아무리 죄 지은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사법기관에서 전화를 받으면 긴장을 하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왜 그 교수님은 제게 미리 언질을 주지 않으셨을까요?
게다가 그 교수님이 제가 얼마나 협조적으로 도울 수 있는 사람인지 이야기를 해 놓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그 경감님은 상당히 개인적인 부분까지 노골적으로 물어보시더군요. 솔직히 기분이 나빴습니다. 제 전문성을 인정해주시는 것은 좋은데 그 경찰의 태도로 보건데 제가 언제든 교수님을 위해 몸바치는 떔빵이 되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누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소개해 달라거나 하면 그 사람의 연락처를 주기 이전에 반드시 제가 먼저 통화를 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연락처를 줘도 되는지를 묻고, 감사를 표하고, 양해를 구합니다. 그게 기본적인 매너라고 생각합니다.
그 교수님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인상을 갖고 있었는데 어찌 보면 사소한 일일수도 있는 이번 일로 많이 실망했습니다.
교수에 대한 제 선입견도 다시 한번 확인했고요.
앞으로 제 양해를 먼저 구하지 않고 저를 영문도 모르는 사람과 연계하는 경우 상당히 무례하게 대꾸해 줄 겁니다. 제가 그리 대단한 사람은 못 되지만 그렇다고 언제든 스텐바이 하고 있다가 자문을 하는 5분 대기조도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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