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는 무조건 피해야 하는 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몸에 해로운 디스트레스와 어느 정도 유익이 있는 유스트레스로 굳이 나누지 않더라도 적당한(tolerable) 수준의 스트레스가 야기하는 가벼운 긴장감(또는 설레임)은 심신에 활력을 불어넣고 행동을 활성화시키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과도한 스트레스를, 그것도 장기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받게 되면 굉장히 해롭습니다. 그러한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평소에 적절한 수준으로 관리하는 게 중요한데요.
90년대를 풍미한 스트레스 대처 모형을 주창한 Lazarus는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개인 및 환경적 요인을 변화시킴으로써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려는 '문제 중심적 대처'와 스트레스로 인해 유발된 부정적 정서를 완화하려는 목적을 갖는 '정서 중심적 대처'로 스트레스 대처 방법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Lazarus는 다분히 정서 중심적 대처를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소극적이고 회피적인 대처 방식으로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죠.
저는 Lazarus의 대처 방식 분류가 이성과 논리를 감성과 마음에 우선하는 다분히 미국적인 이분법에 입각해 있다고 보기 때문에 견해를 조금 달리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대처 방법의 효과성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느냐보다는 일, 관계 차이에 따라 달라집니다.
도식으로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 일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 -> 대처 방식의 성질이 일과 관련된 것으로 풀어야 함
* 사람(관계)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 -> 대처 방식의 성질이 관계와 관련된 것으로 풀어야 함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 논문을 써야 하는데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 답답해 미칠 것 같음 : 과제 지향적 스트레스 상황
-> 친구와 만나서 폭풍 수다 (X) : 관계 지향적 스트레스 대처 방식이기 때문에 비효과적
-> 헬스장 윈드밀에 올라 땀 흘리며 운동 (O) : 과제 지향적 스트레스 대처 방식이기 때문에 효과적
* 맨날 나만 보면 갈구는 상사 때문에 입맛도 없고 출근하기가 싫음 : 관계 지향적 스트레스 상황
-> 주의를 돌리기 위해 일에 푹 파묻힘 (X) : 과제 지향적 스트레스 대처 방식이기 때문에 비효과적
-> 그 상사를 겪어본 동기와 선배를 만나 상의 (O) : 관계 지향적 스트레스 대처 방식이기 때문에 효과적
첫 번째 스트레스 상황의 대처법은 Lazarus의 분류법에 따르면 둘 다 정서 중심적 대처 방식이지만 제가 볼 때 효과성의 측면에서 전혀 다릅니다.
두 번째 스트레스 상황의 대처법은 Lazarus의 분류법에 따르면 위의 경우와 반대로 둘 다 문제 중심적 대처 방식이지만 역시 효과성의 측면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갖고 오게 됩니다.
중요한 건 대처 방식이 문제 중심적/정서 중심적이냐가 아니라 스트레스의 원인이 일이냐 관계냐에 따라 그에 해당하는 속성을 가진 대처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위의 예는 다른 맥락 정보가 없고 순수하게 일 또는 관계로만 받은 스트레스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스트레스 요인이 일, 관계 복합적이라는 걸 감안하면 지나치게 단순화된 접근법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느낄 때 일과 관계 중 어느 쪽 요소가 강한 지 잘 생각해보면 스트레스의 성질을 결정하는 main part는 있을 겁니다. 그게 일이라면 과제 지향적 스트레스 대처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 반대로 관계라면 관계 지향적 스트레스 대처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스트레스 대처와 관련된 집단상담을 진행하면서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상황과 대처법,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를 짝지어서 분류해봤는데 너무나 분명하게 나뉘는 걸 보고 제가 오히려 놀랐습니다.
아직 통계적으로 검증된 건 아니고 경험적인 발견에 불과하지만 스트레스 대처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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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자를 치료하는 경우 뿐 아니라 일반 상담에서도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많은 심리적 문제가 스트레스에 의해서 유발되거나 악화되고 간혹 내담자가 직접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상담자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부분 중 하나이죠.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완벽하게 없앨 수 있다면 스트레스 퇴치 또는 스트레스 박멸이라고 표현했겠지요. 스트레스 관리라고 하지 않고요. ^^
스트레스 전문가들은 삶에 적당한 활력과 긴장감을 주는 좋은 스트레스를 '유스트레스', 심리적 정신적으로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 나쁜 스트레스를 '디스트레스'로 구분하기도 합니다만 통상적으로 스트레스라고 하면 디스트레스를 이야기하는 것이니 통칭해서 스트레스라고 부르겠습니다.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기술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언젠가 다시 포스팅을 하겠지만 다양한 관련 서적도 많이 나와 있으니 구체적인 이야기는 이 포스팅에서는 생략하겠습니다.
내담자가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법을 알고 싶다고 하면 먼저 그게 궁금하다는 것 자체가 치료적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를 해 줍니다. 제가 주로 상담하는 도박 중독자에게는 스트레스와 도박 중독 재발의 관계에 대해 설명을 해 주고 도박 중독 재발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된 것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다뤄줍니다.
그리고 상담을 하는 동안에는 스트레스로 인해 문제가 생길 위험성을 느끼면 위기 개입 상담을 통해 상담의 틀 안에서 다룰 수 있음을 이야기 해 줌으로써 심리적인 buffer를 마련해 줍니다.
또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스트레스를 빨리 벗어나기 위해 조바심을 내거나 섣부른 행동을 하지 말고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신체적 증상, 생각, 감정을 일단 현재에 머물면서 그대로 따라가 보라고 일러줍니다. 소위 '충분히 젖어들기'를 하는 것인데 스트레스로 인한 자신의 상태를 충분히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레 겁을 먹게 되면 잘못된 대처 행동을 할 수 있거든요. 충분히 젖어들게 되면 그 과정에서 생각보다 스트레스의 영향이 크지 않음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기도 하고 터널 시야에서 벗어나게 되어 보다 합리적인 대처를 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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