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캔팅(Decanting)이란 프랑스어로는 '데캉타쥬(décantage)'라고 부르는데 와인병을 오픈한 뒤 디캔터(decanter)'라고 부르는 용기로 와인을 옮겨 담는 행위를 말합니다.
디캔팅을 하는 목적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오래된 와인 입자들이 뭉쳐 생성된 찌꺼기를 와인병 안에 남기고 불순물이 없는 깨끗한 와인만 따로 분리해내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이 과정에서 와인의 탄닌이 산소와 접촉하면서 산화과정을 거쳐 부드러워져 맛과 향을 풍부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와인이 숨을 쉬게 된다고 하여 브리딩(breathing)이라고도 합니다.
모든 와인을 디캔팅하는 것은 아니고 레드 와인, 그 중에서도 풀 바디 레드 와인을 주로 합니다. 라이트에서 풀 바디로 갈수록 아래가 넓은 디캔터를 사용하여 공기와 접촉면을 넓히고 좀 더 오래 브리딩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풀 바디 레드 와인을 제대로 마시려면 항상 디캔팅을 해야 하는 걸까요? 당연히 하면 좋지만 적당한 디캔터도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짧게는 15분에서 길게는 1시간 동안 기다려야 하니 번거롭기 그지 없습니다. 디캔팅을 좀 더 신속 편리하게 하는 방법은 없는 걸까요?
있습니다. 바로 에어레이터를 사용하는 겁니다.
이 제품은 2014년에 비네이라사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전동 에어레이터입니다. 독일 레드닷 시상식에서 '최고의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구성품은 아주 간단합니다. 설명서, 거치대, 본체, 스테인레스 확장 튜브입니다.
AAA 건전기 6개로 작동합니다. 배터리팩이 아닌 게 구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배터리팩은 오래 사용하면 효율이 떨어져 교체를 해야 하는데 건전지는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매일 와인을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면 건전지로 작동하는 전자제품이 더 효율적일 수 있죠. 저는 에네루프 충전 건전지를 사용합니다.
거치대에 본체와 확장 튜브를 장착한 모습입니다. 홈바에 올려놓아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 디자인입니다.
뒤에 조절 노브가 있어서 에어레이션 효과를 0~180분까지 조절할 수 있습니다. 피노 누아 같은 품종을 사용한 라이트 바디 와인은 30분으로 조절하면 충분하고 멀롯은 60~90분, 까베르네 쇼비뇽이나 프랑은 90분, 네비올로는 120~180분으로 조절하면 됩니다. 잘 모르겠으면 대략 90~120분 정도로 맞추면 적절한 것 같습니다.
확장 튜브는 와인병 크기에 따라 3단계로 확장됩니다. 750ml부터 최대 1.5리터 병까지 사용 가능합니다. 확장 튜브 최하단에는 스테인레스 필터가 장착되어 있어 와인 찌꺼기가 따라 올라오지 않도록 걸러줍니다. 확장 튜브를 본체에 돌려서 끼우고 와인병에 장착하기만 하면 됩니다.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고정됩니다.
본체 꼭대기의 버튼을 누르면 펌프로 와인을 퍼올려 공기와 일정한 비율로 섞은 뒤 수도꼭지에서 물 나오듯이 배출구로 와인을 분출합니다.
와인잔을 대고 필요한 만큼 뽑아 올려 담으면 됩니다. 와인병이나 디캔터를 들고 기울여 따를 필요도 없습니다. 아주 사용하기 편리하죠.
세척도 아주 간단해서 용기에 깨끗한 물을 담고 확장 튜브의 끝단을 깨끗한 물에 담근 뒤 버튼을 눌러서 깨끗한 물이 나올 때까지 작동하면 됩니다. 그 뒤에 마른 천으로 남은 물기를 닦은 뒤 보관하면 끝입니다.
사용, 세척, 보관이 편리한 건 알겠는데 가장 중요한 디캔팅 효과는 어떨까요? 과연 이 에어레이터를 사용하면 와인의 풍미가 달라질까요?
놀랍게도 이 간단한 기구를 거쳐 나온 와인은 누구나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달라집니다. 처음에 와인병을 오픈하여 조금 따라 마신 후 곧바로 에어레이터를 사용하여 마셔보면 똑같은 와인이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큽니다. 약간 마술같아요. 풍미가 강해지는 것도 마음에 들지만 무엇보다 잡미와 떫은 맛이 훨씬 줄어듭니다.
그래서 이 제품을 사용하는 와인애호가들의 평도 호평 일색입니다. 저 같은 일반인도 알 정도인데 미각이 예민하고 경험이 많은 와인애호가들이 이 차이를 못 느낄 턱이 없으니까요. 와인 좋아하는 분들은 필구매 제품입니다.
이 제품의 유일한 단점은 만만치 않은 가격입니다. 제가 2020년 9월에 구매할 때만 해도 97,900원이라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는데 2023년 9월 18일 현재 198,000원으로 3년 새 두 배가 넘게 올랐네요. 이 에어레이터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저로서도 다시 구매하려면 주저하게 될 가격입니다.
그리고 이 에어레이터는 맥주나 샴페인 같은 발포성 주류에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다만 위스키나 브랜디, 소주에 사용하면 목넘김이 한결 좋아진다고 하니 와인이 아닌 다른 술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유용할 것 같습니다.
* 장점
- 풍미를 높이고 잡미를 없애는 등의 탁월한 에어레이션 효과
- 너무나 편리한 디캔팅
- 사용, 세척, 보관 용이
* 단점
- 독점 제품이라는 걸 감안해도 미친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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