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상담에서 기본적인 신뢰감의 재구축을 통한 라포 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미 여러차례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대부분의 상담이 그렇지만 특히 아동/청소년 상담에서 라포는 그야말로 처음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중요해서 저는 아동이나 청소년을 상담할 때는 거의 규칙이 없다시피 허용적으로 대하는 편입니다.
현재 제가 상담하고 있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동의 경우에는 상담을 할 때 의자에 눕는 것도 허용(똑바로 앉아서 어른과 눈을 맞추면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큰 아동이거든요)하고, 예전에는 공부 압박에 시달려 너무 피곤해 하는 고등학생을 상담실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붙이도록 한 적도 있습니다. 상담을 너무 부담스러워하면 함께 그림을 그리거나 보드 게임을 하는 건 일상이고요.
상담에도 기본적인 예의는 필요하니 상담자와 내담자가 서로 바른 자세로 마주 앉아 눈맞춤을 하면서 격식을 지켜가며(은어와 비속어를 자제하면서) 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담자가 있다면 그게 정말 상담자의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가 아닌 온전히 내담자를 위한 상담 규칙인지 다시 한번 고민해 보실 것을 제안드립니다.
어쨌거나 상담 중 거의 대부분의 행동을 인정하는 저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모바일 기기의 사용입니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상담자와 내담자의 연결(connection)이 끊기기 때문입니다. 언어적이든 비언어적이든 상담자와 내담자의 연결이 끊긴다면 그건 이미 상담이 아닙니다. 그냥 같은 공간에서 각자 다른 활동을 하는 것 뿐이죠. 동상이몽이라고나 할까요? 개인적으로 별로 선호하지는 않지만 이보다는 차라리 온라인 화상 상담이 더 낫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동/청소년 상담 도중에 꼭 지켜야 할 규칙을 하나만 꼽으라면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지 않도록 합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담자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담자와 계속 연결되어 있느냐가 더 중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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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몇 차례에 걸쳐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개인 상담은 성인 대상의 상담과 많이 다릅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인식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를 해결하고자 자발적으로 방문하는 성인과 달리 아동/청소년은 대부분 부모나 보호자의 손에 이끌려 상담실을 방문하게 됩니다. 게다가 기본적인 신뢰감이 부족한 내담자가 많아서 성인보다 훨씬 더 라포 형성이 중요하고 또 어렵습니다.
또한 라포 형성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떤 심리치료 기법이나 상담 기술도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에 단기 상담의 효과가 제한적인 것도 상담자에게 꽤 큰 부담이 되는 부분입니다.
그러다보니 아동/청소년 상담은 시작도 라포에서 시작하고 끝도 라포에서 끝난다고 봐도 될 정도로 라포 형성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아동/청소년과 라포를 형성한다는 건 실질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저는
상담자를 '나를 알아주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을 라포 형성의 시작으로 보는데 이를 위해 두 가지 원칙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 중 하나는
'완전하게 진실하기'입니다. 치유에 도움이 된다면 거짓을 말하거나 변명할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을 달지 않고 어떠한 순간이든 솔직하게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선언하고 그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저는 성인의 경우에도 진실하지 않은 순간이 있는 상담이 진정한 치유를 야기하는 걸 아직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하물며 basic trust rebuilding이 중요한 아동/청소년 상담에서 완전한 진실성의 중요성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상담자가 '이 정도는 숨겨도 되겠지'. '치유를 위해서는 말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잖아', '모든 것을 말하는 게 내담자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야' 같은 여지를 두면서 상담한다면 라포 형성은 어림없습니다. '완전하게 진실하기'를 마지노선으로 설정해야 가능합니다.
사실 완전하게 진실하기만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이것만으로 아동/청소년과 라포를 형성하는 건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번째 원칙까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바로
'내담자의 편 되기'입니다. 이 원칙도 그냥 선언적인 수준에서가 아니라 실질적이어야만 효과를 발휘합니다. 최소한 상담 내용이나 심리평가 결과를 알려달라고 요구하는 부모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지킬 수 있는 원칙입니다. 이것과 관련해서는 예전에 포스팅한 내용('
부모가 아동/청소년의 심리평가 원자료를 보여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이 있으니 참고하시고요.
내담자의 치유에 해가 되지 않는 한 어떤 상황에서도 내담자의 편에 서서 내담자의 권리를 옹호하겠다는 강한 마음을 먹지 않는 한 아동/청소년과 라포를 형성하는 길은 요원합니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동/청소년 상담에서 라포 형성의 시작은 상담자를 '나를 알아주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
* 이를 위한 두 가지 원칙. 1) 완전하게 진실하기, 2) 내담자의 편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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