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을 하면서 예전에 제가 올린 학술대회 참석 후기글들을 좀 읽어봤는데 하나같이 전문가 연수 평점이 미달되거나 부족해서 경고를 받은 뒤에 어쩔 수 없이 참석했다는 내용이네요;;;;; 저도 참 어지간히 학회 참석을 싫어하는 듯. ㅡㅡ;;;;
역시나 작년에도 전문가 연수 평점 부족으로 경고를 받은지라 올해는 supervisor 자격 유지를 위해서라도 연수 평점을 채워야했는데 임상심리학회 봄 학회를 놓친데다 가을 학회까지 놓치면 정말로 답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국심리학회 연차학술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연차학술대회 장소는 홍제동에 있는 그랜드 힐튼 호텔이었는데 제 입장에서는 강남에서 한다고 교통 편이성이 더 올라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상관없었지만 셔틀 버스가 9시 55분 부터인가 운행을 시작해서 오전 10시 워크샵을 들어야 하는 저로서는 홍제역에서 택시를 타야 했기 때문에 첫날 시작부터 그리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다행히 택시는 금방 잡을 수 있었지만.
심리학회 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숙박비 할인 서비스도 좋지만 10시에 시작하는 워크샵이 그렇게 많은데 셔틀 버스를 일찍 운행하도록 호텔측과 미리 협의했으면 더 좋았겠지요. 좀 아쉽네요. 택시 타고 오면서 보니 다들 홍제역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걸어서 올라오시는 것 같더군요. 오전이라도 날씨가 더운데... ㅠ.ㅠ
그랜드 힐튼 호텔은 오래된 호텔이라 시설이 첨단은 아니지만 오래된 호텔만이 가지는 중후함과 품격이 있죠. 개인적으로는 이런 오래된 호텔을 좋아라합니다(깨끗하기만 하다면). 특히 워크샵들이 열리는 conference room들이 대부분 천정이 높아서 답답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냉방 시설도 괜찮은 편이었고요. 덥지도 춥지도 않게 잘 조절되더라고요.
별도로 지어진 conference center 뿐 아니라 호텔에서도 분산되어 열리기 때문에 장소를 찾느라 이동 중에 staff들에게 질문을 많이 했는데 하나같이 친절하게 답해주었을 뿐 아니라 장소, 화장실 위치까지 잘 숙지하고 있더군요. 꼼꼼한 운영 좋았습니다.
도착해서 등록을 하려고 가니 등록 데스크가 넓고 가나다 순으로 이름이 정리되어 있어 이름을 이야기하면 한쪽에서는 명찰과 자료를 챙겨주고, 다른 staff이 단말기로 제 이름을 검색해서 본인이 맞는지 확인합니다. 효율적으로 잘 분업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예전처럼 무거운 자료집을 주지 않는 건 좋지만 뜬금없이 칫솔, 치약, 가글액, 빠리바게뜨 단팥빵 1개를 함께 주네요(이건 뭥미). 아마도 어디에서 donation을 받은 것 같은데 심리학회 기념품이라고 보기에는 좀 뜬금없네요. 설명문이라도 좀 붙여놓든지... 저는 칫솔 하나 빼고는 다 필요 없어서 그냥 등록 데스크에 반납했습니다.
남자 화장실이 부족한 건 여성 수가 압도적인 심리학회의 특성 상 불편하더라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문제는 점심 식사였죠. 3일치 식권을 미리 나눠주는데 어제는 비빔밥이어서 제가 먹을 수 있었겠지만 오늘은 갈비탕이라서 저는 식권만 내고 한 숟가락도 못 먹었습니다. 결국 호텔 레스토랑에서 비싼 돈을 내고 파스타를 사 먹을 수 밖에 없었죠. 내일도 불고기 정식이라니 미리 준비를 해와야 할 것 같습니다. 채식인을 위한 별도 메뉴까지 고민하는 건 바라지도 않지만 그래도 샐러드 바 정도라도 준비를 해 주었으면 좋았겠습니다. 휴~
21일에 첫 번째 참석한 워크샵은 측정 평가 분야에서 오전 10시부터 시작하는 '레시피(Cole et al., 2008)로 배우는 조절된 매개효과 검증방법'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메운 가운데(대부분 대학원생이나 관련 분야 교수인 듯), 경희대 경영학과의 정선호 선생님이 강의하셨고요. 원래 매개, 조절 효과 검증에 대해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데다 조절된 매개 효과 검증에 대한 방법론 강의는 꼭 듣고 싶었기 때문에 기대를 했죠. 예도 많이 들고 무엇보다 수학적인 수식보다는 개념적인 설명에 치중된 강의라서 저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지만 다시 한번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만큼은 아니지만 정선호 선생님이 말이 굉장히 빠른 편이었는데도 2시간의 강의 시간 중 1시간 30분을 개념 설명에 사용하셔서 SPSS 실습은 시간에 좀 쫓기는 감이 있었습니다. 저는 spd 파일을 설치할 때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SPSS 프로그램에 오류가 생겨 어차피 결과물은 못 봤지만요. 마지막 부분에 질문에도 나왔지만 매개, 조절 효과를 검증하는 많은 연구들이 여전히 제대로 된 단계를 밟지 않는 것 같더군요. 여전히 제 블로그의 referer log를 보면 매개, 조절 효과에 대한 검색어로 들어오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말이죠. 구조 방정식 모형을 이용해 잠재 변인을 포함하는 모형 검증을 하지 않고 측정 변인만을 대상으로 매개, 조절, 조절된 매개 효과를 검증하려면 제대로 공부를 해 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 내용은 중요하기도 하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정리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두 번째 워크샵으로는 점심 식사 후 1시 20분부터 시작된 일반 분야의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치료적 개입 : 애착관계의 조망, 변증법적 행동치료(DBT)'를 들었습니다. Complex PTSD, 특히 애착 외상의 DBT 치료가 메인인데 1부에서는 애착 외상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을 들었습니다. 핵심적인 내용을 compact하게 잘 정리하셨는데 아쉬운 점은 강연하신 선생님의 목소리의 tone이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약간 아이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것처럼 들렸는데 강의를 들으면서 얼핏 든 생각은 발달 심리학 전공자인가? 였습니다;;; 어쨌든 내용이 충실해서 저는 좋았습니다. 문제는 2부였죠. 마인드플니스 심리상담연구소의 김도연 선생님이 나오셔서 DBT에 대한 강의를 하셨는데 1부의 Complext PTSD는 어디론가 날아가버리고 그냥 DBT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셔서 나중에는 흥미와 학습 동기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DBT 안에 포함된 기술들을 직접 체험한 시연은 좋았지만요. 그래서 DBT를 국내 Complex PTSD에 적용했을 때 외국의 경우와 다른 점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질문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물 건너 갔습니다.
심리치료 워크샵을 들을 때마다 불만스러웠던 점은 그냥 개념적인 내용만 다루거나 시연을 추가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내담자에게 적용했을 때 외국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경험적으로 어떤 기법이 상대적으로 더 효과적인지, 유의할 사항은 무엇인지 처럼 정작 궁금한 내용은 하나도 알려주지 않는거지요. 적용 사례가 그만큼 없거나, 아님 노하우 유출을 염려해 감추는 것일텐데 어느 쪽이든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또 한 가지는 김도연 선생님께서 강의 중에 module 별로 사용할 수 있는 기법들이 굉장히 많다는 걸 장점처럼 반복해서 말씀하시던데 저는 절반만 동의합니다. 기법은 외과의사가 수술 중에 사용하는 칼과 같아서 다양한 칼은 다양한 환부에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각각의 칼 사용법을 숙지하지 못한 외과 의사가 사용하게 되면 더 큰 상처를 낼 수도 있는거니까요. 게다가 이것저것 고르다가 골든 타임을 놓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기법이 많은 게 장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편입니다. simplicity is the best니까요.
오후의 마지막 순서로는 3시 30분부터는 2시간 동안 진행된 '연구윤리 및 출판윤리' 심포지엄에 들어갔습니다. 서울대 임정묵 선생님이 첫 연자셨는데 그래도 명색이 서울대인데 연구 단계에서 가설을 설정하지 않는 연구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말씀을 하셔서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가설 설정은 과학적 접근법의 기본 중 기본인데 그걸 안 한다면 대체 어떻게 연구를 해 온 것인지....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학부 때부터 실험 심리학과 실험 디자인을 스터디하면서 배웠던 기초적인 내용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솔직히 좀 멘붕이었습니다.
중간에 심리학 개론 수업을 듣는 학부생을 대상으로 연구를 실시하는 것에 대해 질문했던 분이 있는데 연구 윤리를 떠나서 저는 그런 연구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화 대상이 대학생 모집단이 아니라면 말이죠. 연구의 질이 문제가 되는 연구를 돈이 없어서, sample을 구하기 어렵다면서 IRB의 피험자 윤리 규정이 엄격하다고 징징대면 안 됩니다. 그걸 왜 IRB에 호소합니까? 연구자로서의 자기 양심에 물어봐야죠. 두 번째 연자인 조선대 생물교육과의 조은희 선생님은 논문 출간 이후의 후속 조치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논문 출판 게재 철회 등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들었습니다. 요새는 직접 인용(출처를 제대로 밝힌)의 경우도 상당히 엄격하게 다룬다고 합니다. 즉, 다른 연구의 내용을 자기 식으로 해석하지 않고 출판물에서 직접 인용하면 출처를 밝혀도 문제가 되는거지요. 자기가 쓴 선행 연구의 직접 인용은 어떻게 해야 하는냐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쨌거나 점점 강화되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으니 최대한 보수적으로(직접 인용은 절대 안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학위 논문을 revision해서 학술지에 내는 것도 금지했으면 좋겠습니다. 석사 때는 학위 받고 난 뒤 지도 교수 피해서 요리조리 숨던 사람들이 박사 학위 받고 난 뒤에는 어떻게든 여러 개의 논문으로 쪼개서 저널에 내려고 혈안이 되는 걸 보면(업적 점수를 채워야 하니) 참 추해 보여요.
덧. 현장 사진을 찍기는 했지만 사진을 첨부하려고 보니 초상권을 보호하려면 손을 대야 하는 사람 얼굴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올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냥 텍스트 위주로 포스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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