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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려고 하면 입만 아픈 베스트셀러 작가인 알랭 드 보통의 2011년 작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를 소개합니다.
아무런 배경 정보 없이 제목만 봤을 때(바로 제 경우),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교의 핍박(?)이 괴로운 무신론자들을 위한 대처 방략을 소개하는 지침서이거나 무신론자에게 종교의 입장을 변명하는 책이거나.
알랭 드 보통 본인이 철저한 'natural born' 무신론자이니 후자는 아닐 것이고 아마도 전자가 아닐까 싶었는데 제가 헛짚었습니다. 그야말로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책의 말미에 가면 실제로 이를 꿈꾸었던 프랑스의 사회학자 오귀스트 콩트(1798-1857)를 소개하고 있네요;;;;;
알랭 드 보통이 이 책을 쓴 이유를 직접 들어보시죠.
'우리가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철저한 무신론자로 남아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종교가 유용하고, 흥미롭고,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때때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전제이다. 또한 종교의 관념과 실천 가운데 일부를 세속적인 영역으로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 역시 분명히 흥미롭다는 것이다'
즉,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종교에 찬동하고 따를 수가 없다고 해도 종교를 무조건 배타하는 건 목욕물이 더럽다고 아기까지 버리는 꼴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무신론자로 남아 있으면서도 충분히 종교가 주는 유용하고, 흥미롭고 위안이 되는 부분들은 얼마든지 세속적인 영역으로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거죠 실용적으로요. 그 구체적인 내용을 아래와 같은 목차에 배치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1. 교리가 없는 지혜
2. 공동체
3. 친절
4. 교육
5. 자애
6. 비관주의 <- 요거 재미있습니다
7. 관점
8. 미술
9. 건축
10. 제도
알랭 드 보통이 이 책을 통해 무신론자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책의 목적은 우리가 종교에서 부활시킬 수 있는 교훈들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이었다. 공동체의 감각을 살리는 방법, 친절을 권장하는 방법, 광고의 상업적 가치에 대한 현재의 편견을 없애는 방법, 세속 성인을 선정하여 이용하는 방법, 대학의 전략과 문화 교육에 대한 우리의 접근 방식을 재고하는 방법, 호텔과 온천을 다시 설계하는 방법, 우리의 유치한 필요를 인지함으로써 생기는 이익에 대한 설명, 우리의 비생산적인 낙관주의 가운데 일부를 굴복시키는 방법, 숭고한 것과 초월적인 것을 통해서 자신의 관점을 확보하는 방법, 박물관을 재조직하는 방법, 건축을 이용해서 의미를 만드는 방법 등이 그런 교훈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혼을 돌보는 데에 관심이 있는 개인들의 분산된 노력을 한 곳에 모아서, 제도의 보호 아래에서 체계화하는 방법이었다'
무신론자답지 않게(?) 전혀 시니컬하지 않으면서도 세속적인 세계로 가져올 수 있는 종교의 유익한 부분들을 설득력있는 글솜씨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꼭 유대교에 귀의하지 않더라도 탈무드의 지혜를 실천함으로써 충분히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말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체가 시니컬하지는 않지만 곳곳에 배치한 사진과 삽화를 통해 알랭 드 보통 특유의 재치와 해학은 충분히 맛볼 수 있는 책입니다. 꼭 무신론자가 아니더라도 종교가 세상에 줄 수 있는 많은 혜택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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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유대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치에 의한 학살과 그들의 고난에는 애도를 표하지만 이스라엘의 대 팔레스타인 정책에 반대하며 미국의 정치, 경제계를 제맘대로 쥐락펴락하는 유대인들의 권력 남용에 반대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까지 탈무드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사실 개신교의 교리와 배치되는 부분을 유대 율법에서는 뭐라고 말했는지가 순수하게 궁금해서입니다. 저는 아직까지 제한적 유신론자이지만 개신교는 싫어하거든요. 어쨌거나....
이 책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유대 관련서 'Jewish Literacy'를 쓴 영적 지도자이자 학자인 조셉 텔루슈킨이 쓴 책입니다.
이 책의 구성은
1. 만족은 어디에서 오는가
2. 무엇을 배울 것인가
3. 유대인은 어떻게 실천하는가
4. 선행은 어떤 위력을 지니는가
5. 유혹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라는 다섯 가지 영역에서 매일 하나의 지혜를 365일 동안(안식일은 빠지기 때문에 대략 309일 동안) 묵상할 수 있도록 분류해 놓았습니다.
초반에는 마음이 울컥할 정도로 지혜롭고 감동적인 내용들이 많지만 뒤로 갈수록 유대 율법의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 때문에 기분이 슬슬 나빠지더군요. 제 가치관과 맞지 않는 부분이 꽤 되더군요.
예를 들자면 오로지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이 동물의 생명보다 더 가치있는 거라고 가르치는 부분이라든가 누군가 당신을 죽이려 한다면 일찍 일어나 먼저 그를 죽이라는 선제 공격을 정당화하는거라든가, 어떠한 형태의 반전주의도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라든가...
또 유대 율법에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예수님의 말씀과는 배치되는 것이죠. 정당하게 벌 수 있다면 많이 벌어도 상관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자인 랍비들이 많죠.
제게는 종교인의 삶의 자세라기보다는 오히려 무신론자들이 살아가는 합리적인 방식처럼 보이더군요. 뭐든지 그렇지만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면 되듯이 뭐든지 배울 점이 있는 법입니다. 부정적인 의견을 주로 피력했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상당히 교훈적이고 건강한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됩니다.
700페이지가 넘는 아주 두꺼운 책이고 책값도 28,000원이나 하기 때문에 상당히 부담이 되는 책입니다. 물론 번역은 아주 쉽게 잘 되어 있어서 읽기는 쉽습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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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전적인 면에서 신뢰가 가는 사람만이 종교적으로 신실하다. - 랍비 츠비 히르슈 코이도노버
* 물품이든 정보든 누군가 자기 소유가 아닌 것을 팔려 할 경우 당신에게는 그것을 구입할 권한이 없다.
* 유대 전통은 자선을 베푸는 일도 높이 평가하지만 친절을 베푸는 일을 그보다 더 높이 평가한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친절을 베푸는 것보다는 금전적으로 자선하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 금전적인 문제를 떠나 다른 사람을 돕지 않는 보다 더 큰 이유는 '게으름'이다.
* 자선을 베풀 때에는 진심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베풀어야 한다.
* 난 100명의 걸인 중 단 한 명만 실제 도움을 필요로 하는 걸인이라 해도 그들 모두에게 기꺼이 자선을 베푼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100명의 걸인 중 단 한 명이 진짜 걸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구실삼아 자선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
* 한 자식이 세상으로 나가면서 자기 부모조차 다른 형제자매보다 자신을 덜 사랑한다는 느낌을 갖는 것만큼 불행한 일이 또 있을까?
* 요즘 나는 안식일에 집을 떠나 있을 경우, 전화로 각 아이에게 축복 메시지를 전하곤 한다. 물론 집에 있을 때에는 나 역시 아이들 이마에 입 맞춘 뒤 축복 기도를 올리곤 한다. 아내 말에 따르면, 내가 집을 비운 어느 안식일 전날, 당시 6살이던 딸아이 쉬라가 내가 전화로 축복 기도를 암송하는 걸 듣고 무심코 수화기를 자기 이마에 갖다 댔다고 한다.
* 엘리에셀이 배우자의 최고 덕목으로 친절함을 꼽은 것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성과 데이트를 할 때 상대가 평소 당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다는 식당 같은 데서 종업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눈여겨보는 게 더 좋다"
* 유대 윤리는 상대가 분명 사양할 것이라 예상되는 제안은 하지 말라고 말한다. 유대 윤리에서는 그런 기만 행위, 그러니까 상대로 하여금 당신이 마음에도 없는 호의를 베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믿게 하는 행위를 그네이밧 다앗(마음을 훔치는 일)이라 여겨 비난한다.
* 사람들을 거짓말로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모략하는 것은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일이라 여기면서도 다른 사람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사실인 말을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고 여긴다. 유대 율법은 그런 관점에 반대한다. 타인에 대해 하지 말아야 할 말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라손 하라(나쁜 혀)'는 사실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모든 말을 일컫는다.
* 진실이 건설적인 목적에 기여하지 않는다면, 평화가 진실보다 더 소중한 것이다.
* 누구에게도 허용되는 것을 자신에게 금지시키려는 맹세나 서약을 해선 안된다.
* 절반이 진실이면, 전부가 거짓이다.
* 유대주의 관점에서는 다른 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운 것을 보고도 침묵을 지키며 방관하는 사람을 하나님께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세기 4:9)"라고 반문한 살인자 카인과 동일시한다. "네 이웃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지 말라"라는 율법은 카인의 물음에 대한 답으로 보인다. 토라는 우리에게 "그렇다, 넌 네 형제와 자매를 지키는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 당신도 절대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완벽함을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하지 말라.
* '기도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히트팔렐'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자신을 심판하거나 성찰하다'이다. 이 정의는 기도의 주 목적이 봉사를 할 수 있게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해 주는 것임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 끓는 물이 세상 어느 곳에 있는 어느 사람의 머리 위에 끼얹어지든, 나머지 사람들은 비명을 질러야 한다.
* 손님을 집 밖까지 배웅하라.
* 유대주의는 좋은(선한) 사람이 되는 것을 가장 우선시한다. 탈무드에 따르면 하늘나라 법정에 선 사람들이 처음 받게 될 질문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는가?" 또는 "돈을 많이 벌었는가?"가 아니라 "자신의 일을 정직하게 했는가?이다.
* 비탄에 빠진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그가 어떤 감정, 어떤 생각, 어떤 태도, 어떤 행동을 보이든, 그걸 완전히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앙심과 선함을 요구하신다. 유대 율법은 당신의 신앙심이 당신의 선함을 능가하면 하나님은 감명 받으시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 아픈 사람에게 병문안을 갈 때는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그것이 비옷이든, 논쟁이든, 또는 질문 하나에 불과하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실천의 미덕을 발휘하도록 하라.
* 어떤 측면에선, 영적이고 성스럽게 여길 수 없으며 본질적으로 세속적인 그런 직업은 거의 없다. 아침에 일어나 일터로 가기 전, 당신이 하는 일의 더 깊은 의미를 깨닫는 시간을 가져보자. 당신 일의 어디에 세상을 개선하거나 누군가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줄 기회가 숨어 있을까? 그 기회가 있는 곳을 찾아 그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 당신이 당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관용을 베풀어달라고 간청할 권리도 박탈당하는 것이다.
*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용서하지 말라.
* 속죄일에는 인간에게 지은 죄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지은 죄를 속죄하는 것이다.
* 다른 사람의 고통에 익숙해지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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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입밖에 내면 반드시 시끄러워지는 몇 가지 주제가 있습니다.
종교, 남녀차별, 군대 문제가 그것이죠. 정치야 입밖에 내지 않아도 항상 시끄러운 주제이니 통과.
그런 나라에서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다니 출판사가 논란을 정면돌파하기로 작심을 단단히 했거나 아니면 관심있는 사람들만 읽으라고 틈새 시장 공략을 염두에 두었을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신의 존재는 믿지만 기독교가 우리나라를 이 꼴로 망쳤다고 생각하는 제 입장에서 버트런드 러셀의 이 책은 언젠가는 꼭 한번 읽었어야 할 책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러셀은 서문에서부터 "나는 세계의 모든 위대한 종교들 - 불교, 힌두교, 기독교, 회교, 공산주의까지 - 에 대해, 진실이 아닐 뿐 아니라 해로운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종교가 진실하지 못하다고 굳게 믿는 만큼이나 해롭다고 확신하는 바이다"라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러셀은 사실 무신론자라기보다는 불가지론자에 가깝습니다. 신을 알 필요가 없다는 쪽에 가깝지요. 다만 유신론자들의 종교가 이 세상을 파괴하는 부분은 적나라하게 성토하고 있습니다. 러셀의 공격 대상은 신의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의 종교입니다.
러셀의 주장이 지나치게 감정에 치우쳐 있다고 본 온라인 서평이 있던데 저는 별로 그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너무 공감되어 그랬을까요?
러셀이 주장하는 종교의 해악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종교에 반드시 주어져야 한다고 여겨지는 믿음의 성질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반대 증거가 있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지는 것이 도덕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죠. 다시 말해 반대 증거로 인해 의심이 생기면 그 증거를 억압하는 것이 바로 해악입니다. 다른 하나는 믿고 있는 특정 신조들에 좌우되는 것인데 대부분의 종교들에는 뚜렷한 해악을 저지르는 특정한 윤리적 교의들이 존재합니다. 가톨릭의 산아제한 금지라든가 힌두교의 재혼금지 같은 것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실 지나온 세계역사를 돌이켜보면 러셀이 주장한 것처럼 인간의 정서적 발전, 형법의 개선, 전쟁의 감소, 유색 인종에 대한 처우 개선, 노예제도의 완화를 포함해 단 한 걸음이라도 도덕적 발전이 이뤄질 때마다 세계적으로 조직화된 종교 세력의 반대에 부딪히지 않았던 경우가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요? 제가 보기에도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에는 '종교는 문명에 공헌하였는가', '인간은 죽은 뒤에도 존재하는가',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종교는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와 같은 도발적인 소제목들이 난무하지만 결국 러셀이 종교를 비판하는 잣대는 진실성과 유용성에 달려 있습니다. 각 종교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진실이라고 볼만한 과학적, 합리적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종교들 간에도 합의된 진리가 없다는 것이고 유용성의 측면에서도 종교는 자신의 기득권을 보전하기 위해 자유와 진보를 박해하는 과정에서 결국은 속세의 기득권 세력과 결탁하게 되므로 민중의 정신을 현혹하고 인권을 억압하기 때문에 해롭다는 것(역자 후기 중)이죠.
자신이 유신론자이든 무신론자이든 불가지론자이든 한 번쯤은 읽어보면 좋은 책입니다. 단, 얇고 가벼운 책이지만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니 감안하세요.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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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을 강조하면서 기독교 윤리는 스스로를 철저하게 개인주의화시켰다. 수많은 세월 기독교가 군림해오면서 생겨난 실질적인 결과는 사람들이 자연이 준 본성 이상으로 이기적이 되고, 자기 속에 갇혀 살게 된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 종교에서 구현되는 인간의 세 가지 충동은 공포와 자존심과 증오라고 할 수 있다. * 행복이 진정한 행복일 수 있는 건 그것에 끝이 있기 때문이며, 사고나 사랑이 영원이 지속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들이 제 가치를 잃는 것도 아니다. * 훌륭한 삶이란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이다. * 신학적 미신보다 훨씬 더 해로운 것이 바로 국가주의의 미신, 즉 자기 나라에 대한 의무만 있을 뿐 다른 나라들에 대한 의무는 없다는 미신이다. * '정의'란 모든 인간의 동등한 권리에 대한 인정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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