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과 관련해 포스팅된 글을 읽어보면 통계와 확률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물론 그분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Don't Panic"이라고 하고 싶은 거겠죠. 일단 그 심정에는 동감합니다.
그런데 광우병은 확률의 문제로만 볼 게 아니거든요. 메티오닌 동질접합체 문제로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95%라고 호들갑떠는 사람들도 문제이기는 하지만 광우병에 걸릴 확률보다 오늘 집에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을 확률이 높다고 해서 차를 없애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면서 안심하고 있을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죠.
어디선가 본 댓글인데 총에 맞아 죽을 확률이 핵폭탄에 맞아 죽을 확률보다 높다고 해서 핵폭탄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죠. 총은 총, 핵폭탄은 핵폭탄 나름대로 걱정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또 누군가는 영국에서 확인된 광우병 환자의 수가 154명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확률이 낮다고 하는데 제가 알기로 1만 2천 명을 대상으로 한 표본 조사에서 3명이 발견되었거든요. 그걸 영국의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일반화하면 3,800명이나 됩니다. 이미 광우병 환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는 추정 결과도 있고요.
문제는 광우병이 발병하기까지 잠복기가 10년 이상이라는 것이고 그 동안 수혈, 체액 감염 등으로 잠재적인 광우병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에이즈, 암, 하다못해 AI 조류독감과 달리 광우병은 걸리면 100% 사망입니다. 치료 방법이 전혀 없어요. 그런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람이 저는 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꾸 확인된 vCJD환자의 수가 극소수라는 말을 하는데 인간 광우병은 부검을 해서 뇌조직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확인이 안 됩니다. 사용한 수술 도구는 모두 버려야 하고 부검 과정에서 감염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부검의들이 굉장히 꺼리는 것이 광우병 환자입니다. 전에도 제가 포스팅한 적이 있지만 CJD환자 중 광우병 환자로 의심되지만 확인되지 않은 환자의 수가 굉장히 많고 그 수가 최근에 점점 늘고 있습니다. CJD는 보통 50대 이후에 발병하는데 요새는 젊은 층, 때로는 아이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거든요. 따라서 유사 CJD 중 상당 수가 광우병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확인된 환자의 수가 소수이니 괜찮다고 하면 확률 상으로는 낮지만 별로 안심이 안 되는 말이거든요.
지금까지 광우병의 원인이 되는 프리온을 없앨 수 있는 방법 중 효과적인 것은, 단 하나 양잿물에 48시간 이상 담그어 놓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건 식용에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이라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어떤 방법으로도 광우병을 차단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
일본의 경우는 6년 전에 쇠고기 개방을 할 때 300만 마리가 넘는 소를 전수조사해서 광우병 소 26마리를 찾아냈습니다. 겨우 26마리 밖에 안 되었는데도 일본 전체가 발칵 뒤집어 졌고, 그 과정에서 채 30개월이 되지 않은 소도 광우병에 걸린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20개월 이하만 수입하겠다고 통보했고 미국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죠. 그런데도 광우병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게다가 일본은 거의 완벽한 이력추적제를 시행하는 나라이고 곧 식당에서 사용하는 쇠고기도 어디에서 수입된 고기인지 추적할 수 있는 제도를 시행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무 것도 준비된 것이 없습니다. 살코기만 수입하겠다고 했지만 SRM을 제대로 제거할거라는 아무런 보장이 없고, 30개월 이상 연령의 소도 수입하기로 했고요. 그런데도 걱정을 안 해도 된다고요? 전 이런 시스템 부재가 걱정이 되는데요?
단순히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면 온 국민이 모두 광우병에 걸려 죽어 자빠지기 때문에 이민을 가야하나하고식음을 전폐하고 고민할 문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거 거의 안 걸리니까 걱정 안 해도 되거든 하면서 마음놓고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있을 상황도 아니거든요. 미국에 살고 있으면서 그런 글 올리는 분들은 정말 카길 같은 기업이 생산한 미국산 쇠고기를 마음껏 드시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건지, 또는 자기가 광우병 걸린 줄도 모르고 아직 발병하지 않아서 용감한 것인지 궁금해요.
최악의 상황을 예방하려면 최소한 일본처럼 한우를 포함한 모든 소에 대해 전수 조사를 시행해야 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연한에 압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서 국민들이 알아서 광우병 의심 쇠고기를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요. 그래서 미국인들이, 일본인들이 했듯이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확률이 낮으니까, '확인된' 광우병 환자의 수가 매우 적으니까, 안심해도 된다는 논리는 자칫 잘못하면 큰 화를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저 같으면 차라리 그냥 심하게 걱정하면서 만일에 하나라도 있을 수 있는 결과를 예방하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숫자에만 집착하다 보면 숲을 보는 시야를 잃게 되는 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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