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좀 자극적인데 원래 쓰려고 했던 제목은 '말을 편하게 하는 상담자'였고 나중에 제목만 보고도 무엇을 말하는지 금방 알 수 있도록 하려고 제목을 바꿨습니다. 태그를 붙여도 되겠지만 포스트 수가 3천을 넘어가면서 부터는 태그 검색이 느린데다 관련 포스팅이 너무 많이 검색되어서 말이죠. 어쨌거나 의도치 않게 기분 상하는 분들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길게 사전 설명을 드렸습니다.
예전부터 한번은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는데 최근에 모 기관의 상담 케이스 supervision을 하는 자리에서도 이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정리해 둡니다.
먼저 개인적인 기준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원칙적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어떤 내담자에게도 말을 놓지 않습니다. 지금은 종결했지만 최근까지 상담했던 내담자 중에는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도 있었는데 당연히 끝까지 꼬박꼬박 높임말과 존칭을 썼고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많은 분들이 저를 좀 유난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해도 되는 거 아니냐고 하시죠. 또한 말을 놓는 것이 내담자(특히 아동/청소년의 경우)가 상담자를 좀 더 쉽게 친숙하게 느껴 빠른 라포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경험을 들려주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이고 상담자만 그렇게 착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뒤에서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제가
어떤 내담자에게도 반말하지 않고 꼬박꼬박 존칭과 높임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상담자의 반말이 상담자와 내담자의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내담자는 도움을 받으러 온 사람이고 상담자는 이러한 도움 요청에 호응해서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권력 관계만 떼놓고 보면 이미 시작부터 수평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상담자는 상담자에 대한 의존 문제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 안전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는데 상담자의 반말은 이러한 안전 공간을 만드는 걸 어렵게 만듭니다. 반말과 하대는 상담에서 꼭 필요한 수평적인 의사소통체계와 안전 공간의 구축에 매우 해롭습니다.
둘째,
내담자에 따라서는 존칭과 높임말이 치유에 도움이 되는 의외성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상담 장면에서 상담자가 의외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믿는데 그것이 내담자가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게 함으로써 자신의 문제를 통찰하게 만들기도 하고, 내담자에게 희망을 갖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소리지르는 부모에게 야단만 맞았던 아이가 부모와 같은 연배의 상담자에게 존대를 받으면서 이야기를 하게 될 때 그 아이가 경험하는 의외성의 치유적 효과에 대해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셋째,
내담자들에게는 존중받는 느낌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내담자들은 살면서 많은 상처를 받았고, 그 때문에 마음의 힘이 많이 약해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최소한 상담에서만큼은 존중받는 느낌을 받아야 합니다. 따스함의 힘을 느껴야 하지요. 상담자가 자신과 최대한 눈높이를 수평으로 맞추고, 자신과 동등한 입장(그것이 진정으로 가능한지의 여부는 여기서 논하지 않겠습니다)에서 성심성의껏 자신의 상처를 들어주려는 마음을 느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호 존중이 필요한데 저는 일방적인 반말이 어떻게 상호 존중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볼 때는 반말 존댓말 섞어 쓰는 것도 다를 바 없습니다. 내담자의 허락을 받았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으로 상담자의 반말로 인해 내담자가 상담자를 친숙하게 느낄 수 있다는 서두의 이야기를 반박해 보겠습니다. 정말로 그게 맞다면 좀 더 빨리 친숙해지기 위해 내담자도 상담자에게 반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서로 말을 놓게 되면 그만큼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을테니까요.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말을 놓아도 되고, 내담자는 상담자에게 그럴 수 없다는 건 상담자가 내담자에 대한 상대적인 우월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런 이론적인 논의를 다 떠나서 상식적인 선에서 이야기를 해 볼 수도 있습니다. 입장을 바꿔서 자신이 내담자가 되어 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 상담자가 자신에게 반말을 한다면 과연 그 상담자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을까요? 저는 못 할 것 같습니다. 이 상담자가 왜 내 허락도 없이 말을 놓는지만 생각하면서 상담을 받는 내내 기분이 상해 있을 것 같고 상담자가 하는 말과 행동이 계속 거슬릴 것 같습니다.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편하게 반말을 해야만 상담이 가능하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요?
저는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존칭과 높임말을 쓰면서도 충분히 치유적인 상담이 가능하고 오히려 그래야만 진정한 치유적 상담이 가능하다고까지 생각합니다.
덧. 제가 공부가 부족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문제를 정식으로 다룬 상담 분야의 전문 서적을 본 기억이 거의 없고 현장에서도 이 문제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공론화하는 상담자가 많지 않다는 게 저로서는 참 놀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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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저는 누가 제 '나이'를 물어보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제가 나이보다 어려보이는가 아니면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가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과는 하등의 상관 없이). 왜냐하면, 일단 나이를 밝혀야 할 특수한 상황(미성년자가 술집에 들어가는 경우와 같은)이 아닌 경우 나이를 물어볼 이유가 없고, 대부분 나이를 물어보는 의도가 그다지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나이를 물어보는 사람의 의도는 크게
1. 정말 몇 살인지 궁금한 경우. 대개 외모만 가지고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고 특히 말하는 품과 괴리가 큰 경우에 호기심이 발동해서...
2. 상대방의 나이와 자신의 나이를 견줌으로써, 상대방이 자신의 나이보다 어리면 '장유유서'의 훌륭한 전통을 답습함으로써 말을 놓아 상대방을 자신의 마음대로 쉽게 통제하고 상대방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으면 역시 재빨리 고개를 숙임으로써 연장자의 그늘 밑에서 보호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 그래도 장유유서에 불복하고 싶은 사람은 함자를 이용한 족보 뒤지기와 몇 대손 따지기라는 후속 기술이 남아 있음.
의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다른 경우를 알고 계신 분은 댓글로 알려주세요), 제가 겪어본 (초면에) 나이를 물어보는 사람은 열 중 아홉은 후자였습니다. 사실 전자의 경우는 그 사람과 친해지면 시간은 조금 필요하지만 어차피 결국은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잠시만 자신의 호기심을 접어두면 쓸데없는 오해를 사지 않아도 됩니다.
이름, 학연, 지연 등 상하관계를 결정하는 다른 것들도 나쁘지만 나이는 그 효과가 매우 강력합니다. 밝혀지는 즉시 효력이 발생하고, 일단 나이로 인한 상하관계가 형성되면 그때부터 그 상하관계와 독립된 의견 개진이 거의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연장자의 의견에 대한 비판 같은 것은 어림도 없죠.
그래서 저는 충분히 친하지 않은 사람이 제 나이를 물어보면,
"몇 살같이 보이는데요? 한번 맞추어 보세요"라고 진을 빼놓고 결국은 안 가르쳐 주거나, 처음부터 위아래를 따지려는 의도가 명백한 경우, "그거 알아서 뭐하시게요?"라고 단칼에 잘라버립니다. 그리고 그 사람만큼은 절대로 저에게 하대하지 못하게 단단히 못을 박아 둡니다. 네... 저 성격 상당히 까칠합니다. -_-;;;
저는 아무리 저보다 나이가 어리더라도 절대로 먼저 하대하지 않습니다. 심리 평가를 할 때에도 피검자가 중학생일지라도 검사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아니면 철저하게 존대합니다. 존경이나 친밀함 모두 상대방에게 반말을 함으로써 얻는 것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오래 만나도 상대방이 말을 놓으라고 하지 않는 이상, 먼저 말을 놓는 경우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관계가 어색해지는 경우도 없습니다. 말을 놓아야만 서로 관계가 돈독해진다고 믿는 분들이 있다면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나보다 어린 상대에게 반말로 하대를 해야만 친밀감이 생기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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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04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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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남자지만..남자들이 초면이나 친하지 않는 경우인데도..나이 묻는 것..정말 싫어요.
나이가 조금 많다고..아무개야..말 놔도 되지? 이러는 건 더 싫어요.
대체로 보면은..여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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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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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학 ‘호칭’보고서 라는 포스팅을 읽고 대학 생활때 생각이 나서 몇자 적는다. 그 때 여자애들은 남자 선배에게 "오빠"라고 부르기 보다는 "형"이라고 부르고 싶어했다(라고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