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성격 장애에 비해 반사회성 성격 장애는 상담 현장에서도 보기 쉽지 않습니다. 성격 역동의 특성 상 기능이 좋은 반사회성 성격 장애는 다른 사람을 착취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상담을 받으러 오지 않거든요. 하지만 기능이 좋지 않은 반사회성 성격 장애는 다릅니다. 최근에 기능이 좋지 않은 반사회성 성격 장애 케이스를 보게 된 참에 정리를 해 봅니다.
기능이 좋지 않은(단순히 지능이 낮다거나 사회 부적응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말이 아니라 심리 상태가 불안정할 정도로 damage를 입은 경우를 말합니다) 반사회성 성격 장애가 (자발적으로든 비자발적으로든) 상담을 받으러 왔을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건 뭘까요?
바로 자살 위험성입니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반사회성 성격 장애의 자살 위험성은 의외로 굉장히 높은 편이고 자살 시도를 했을 때도 성공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이를 다른 B군 성격 장애의 양상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연극성(HLH) 성격 장애는 가장 중요한 역동이 최대한의 관심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게다가 위험회피기질도 낮아서 두려움이 별로 없기 때문에 자살 시도 빈도는 가장 높고 자살에 대한 보고도 많지만 대개는 제스쳐(gesture)에 그칩니다. 왜냐하면 자살 시도의 의도 자체가 죽음으로 고통을 끝내려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의 관심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얼핏 보기에는 가장 위험해 보이지만 사실 상 자살 위험성은 가장 낮은 편입니다.
이에 비해 자기애성(HMH) 성격 장애는 자기애 상처(Narcissistic Injury)의 고통을 둔화시키려고 자살 시도를 합니다. 일반적으로 자기애성 성격 장애는 평소 죽음에 대해 숙고하지 않지만 자기애 상처를 심하게 입은 경우 이 상처를 곰씹는 것보다는 자신을 해함으로써 고통을 견디는 것이 더 낫다고 믿기 때문에 자해를 하는 빈도가 높고(연극성 성격에 비해서도 자해 심각도가 높은 편입니다) 자살 시도까지 연결되는 경우는 죽으려는 의도가 없음에도 선택하는 도구의 치명도(fatality)가 높기 때문에 자살 성공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연극성 성격이 손목을 긋는다면 자기애성 성격은 목을 긋는 식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도가 지나쳐 사망하는 경우이죠.
마지막으로 반사회성(HLL) 성격은 연극성이나 자기애성과 달리 사회적 민감성이 낮은 유형이므로 다른 사람을 개의치 않습니다. 반사회성 성격이 자살을 고려하는 이유는 자신의 평판과 명예, 지위가 추락하는 걸 참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살 도구도 가장 치명적인 걸 택하기 쉽고 다른 사람의 이목을 고려하는 다른 B군 성격과 달리 사후에 자신이 자신이 어떻게 보이든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목을 매거나 투신처럼 육신의 손상 정도가 큰 방법을 택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자살 위험성을 기준으로 대략 순위를 매기면,
반사회성 > 자기애성(수동-공격성) > 연극성 순이 됩니다.
그러므로 B군 성격인 내담자를 상담하실 때는 겉으로 느껴지는 느낌과 자살 위험성이 반대 방향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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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회성 성격 장애는 성격 장애군 중에서도 치료가 어렵기로 유명합니다. 오죽했으면 남자 반사회성 성격 장애의 경우 나이가 듦에 따라 여성 호르몬 수치가 증가하면서 자연적으로 반사회성이 약화되는 걸 기대할 수 밖에 없다는 말까지 나왔을까요;;;;;
그렇다고 손을 놓고 마냥 앉아 있을 수는 없으니 뭐라고 해봐야겠지요. 그럼 뭘 해야할까요? 그 답을 TCI에서 찾아보겠습니다.
TCI에서 반사회성 기질은 HLL 유형입니다. 굉장히 다양한 성격 유형과 조합될 수 있지만 반사회성 기질의 경우 상담실에 내방하는 많은 내담자들의 성격 유형과 반대로 자율성이 높고 연대감이 낮은 유형의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자율성을 높이는데 주력해야 하는 많은 내담자들과 달리 연대감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거죠. 기질을 바꿀 수는 없고 자율성을 낮춰서도 안 되니 연대감을 올려 사회에 적응하고 살게 하는 것이 일차적인 치료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연대감의 하위차원으로는 타인수용, 공감, 이타성, 관대함, 공평이 있습니다. 자기 수용이나 자기 일치처럼 실존적인 영역을 다뤄야 하는 하위차원이 많은 자율성에 비해 연대감을 올리는 게 상대적으로 수월(?)합니다. 그 이유는 연대감 하위차원들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는 역지사지의 영역에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반사회성 기질답게 당연히 그러한 역지사지 노력에 저항하지만 좀 더 큰 이익 실현을 위해 연대감이 있는 척 연기하도록 연습함으로써 인지 부조화를 유발하는 것도 효과적인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연대감이 상승하게 되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디까지 도달할까요? 이는 각 성격 유형에 따라 다릅니다.
1) 자기초월이 높은 유형 : HLH
: 편집성(HLH) 성격 유형의 반사회성 성격 장애는 연대감이 증가하면 독창적인(HMH) 유형을 거쳐 창의적인(HHH) 유형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피해 의식과 관계 사고를 창의적이고 건설적인 방식으로 활용하게 바뀌는 것이죠. 따라서 사회에 대한 기여를 통해 반사회성이 누그러지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2) 자기초월이 중간인 유형 : HLM
: 괴롭히는(HLM) 성격 유형의 반사회성 성격 장애는 연대감이 증가하면 과도기인 HMM 유형을 거쳐 성숙한(HHM) 유형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괴롭히는 유형은 성장 과정에서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고 악독해진 성격 유형이라서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걸 수용하게 되면 오히려 건강한 성격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3) 자기초월이 낮은 유형 : HLL
: 독재적인(HLL) 성격 유형은 가장 전형적인 반사회성 성격 장애이나 자기초월이 낮은 만큼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초월이 높은 유형에 비해 연대감을 높이기 쉬운 편입니다. 연대감을 높이는 게 자신에게 실질적인 이득을 가져다 준다는 걸 쉽게 받아들이니까요. 그래서 연대감이 조금만 높아져도 논리적인(HML) 성격이 되고 연대감을 더 높인다면 조직화된(HHL) 성격이 되어 매사에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성격이 됩니다. 오히려 연대감이 너무 높아지지 않도록 조율을 잘 하는 게 중요한 성격 유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경험으로는 독재적인 성격에서 신뢰로운 성격으로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경우는 별로 없었고 연대감을 높이면 자율성이 조금 내려와서 MML 유형이 되는 게 더 흔했습니다. 그렇더라도 이 정도만 되면 반사회성 기질의 소유자라고 해도 대인 관계 갈등을 줄이면서 사회 생활을 하는 데 큰 무리가 없더군요.
반사회성 기질과 조합을 이루는 대표적인 3가지 성격 유형의 예를 들어 설명했지만 결국 반사회성 성격 장애 치료의 핵심은 연대감을 높이는 것이고 이 때 어떤 성격 유형이냐에 따라 다른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상담자는 이에 따라 치료 전략을 세밀하게 조율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 포스팅의 핵심입니다. 굳이 반사회성 기질이 아니더라도 성격의 기질 조절 기능을 향상시킬 때 연대감 증진이 중요하므로 나중에 연대감을 향상시키는 방법에 대해서도 별도로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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