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I LML은 '잘 드러나지 않는(Self-effacing)' 유형으로 불리는 기질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별로 없고 주로 사적인 활동을 추구하는 조용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혼자 있어도 별로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자기 나름의 편안함과 만족스러움을 찾아냅니다.
저는 LML 기질 유형을 '뱀파이어' 기질로 자주 비유하는데 뱀파이어의 특성 상 어둠 속 생활에 익숙하고 밝은 세상에 나오는 걸 극도로 꺼립니다. 혼자 있어도 불편함을 잘 모르죠.
그렇다면 왜 '뱀파이어' 기질 유형의 내담자가 상담을 받으러 오는 걸까요? 이는 불행하게도 가족, 지인 등 주변 사람들이 이 기질의 소유자들을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뱀파이어 자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님 때문에 그냥 믿고 내버려 두면 별 문제 없이 자신의 길을 잘 걸어갈 청소년들이 상담실로 '끌려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불행하게도 이 '뱀파이어'가 예,체능이나 기타 영역에서 괄목할 만한 재능을 갖고 있다면 더더욱 그럴 확률이 높아지죠.
부모나 학교 당국이 보기에 능력자가 자기 방에 처박혀 재능을 썩히고 있으니 어떻게든 밖으로 끌어내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고무하겠다며 압력을 가하는데 뱀파이어가 햇빛 찬란한 곳으로 끌려나오면 어떻게 될까요? 이 때 뱀파이어 자녀는 부모가 자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며 부모에게 크게 실망하고 마음의 문을 닫게 됩니다.
또 다른 경우는 뱀파이어의 특성을 살려준답시고 나름 배려하지만 당연히 수반되어야 하는 애정은 주지 않았을 때 생기는 문제입니다. 본인이 원하는대로 해 준다면 방해하지 않는 것은 좋은데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방임하면 이 역시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어 우울에 빠질 수 있습니다. 뱀파이어가 관계 욕구가 없기는 해도 사랑까지 필요없는 건 아니거든요.
가끔 언어적, 신체적 폭력만 학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기본적인 애정과 관심을 주지 않는 방임과 유기도 이에 못지 않은 학대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LML('뱀파이어') 유형은 인간이 사회적 관계를 맺으려는 욕구를 갖고 태어난다는 기본적인 전제와 배치되는 기질이기 때문에 부모 뿐 아니라 상담자도 오해할 수 있으니 특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상담에서 실수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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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에 종합심리평가로는 성격 장애를 진단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TCI 사용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포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
'과연 심리평가로 성격 장애를 진단할 수 있는가' 참조)
TCI라고 해서 성격 장애를 무조건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은 아닌 게
1) 기질 상의 취약성 존재, 2) 성격의 기질 조절 기능 약화 라는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성격 장애 진단을 고려해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TCI를 갖고도 성격 장애 진단은 쉽지 않은 겁니다.
기질의 취약성이야 타고 나는 것이고 일부 유전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성격의 기질 조절 기능 약화는 상담에서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잘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상담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TCI 성격 유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 LLL 유형 : 침울한
주관적인 고통감도 심하고 객관적인 심리평가 결과도 이를 지지하는 성격 유형입니다. 내담자가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고, 우울 장애나 기타 신경증적 문제를 동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만성적인 무기력, 자신감 부족, 에너지 저하 등의 증상이 공통적이고 매사에 성공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를 뿐 아니라 상담이 도움이 될거라는 기대조차도 부족해서 예후가 그리 좋지 않은 편입니다. 어떤 공존 장애를 고려하든 만성화된 상태에서 방문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탐색하는 게 좋습니다.
* LLM 유형 : 미성숙한
성별과 연령을 불문하고 정신적으로 덜 자란 느낌을 주는 내담자로 순진한 것과는 다른 미숙함이 특징적입니다. 기질 상의 취약성도 함께 갖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성장 과정에서 이러한 기질이 온전히 수용되지 못함으로써 자기 회의, 자기 비하 성향이 강해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볼 때 그다지 성취라고 할 만한 걸 이룬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LLM 유형으로 분류되는 내담자는 성장 과정에서 방임이나 학대 등의 애착 외상을 입은 적이 있는지, 지나치게 강압적이고 통제 지향적 부모에게서 양육된 것은 아닌지 부모-자녀 관계 문제 가능성을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 LML 유형 : 모방하는
성인의 경우 이 유형으로 분류되는 내담자가 꽤 많습니다. 흔히 말하는 남 따라하기 유형인데 목적 의식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삶의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고자 살아온 게 아니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여도 삶의 만족도가 낮은 것이 특징적입니다. 이 유형의 내담자도 LLM 유형처럼 지나치게 통제적인 가정 환경에서 성장했을 가능성이 큰데 진정한 어른이 되는데 꼭 필요한 선택과 책임 중 어느 것도 스스로 하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결과에 대한 집착이 강하기 때문에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비난할 대상(주로 부모 등 significant others)을 찾아 외부 귀인하면서 자신의 약한 멘탈을 지키려고 합니다. HHH기질 유형(수동-공격적 유형)과의 조합이 가장 예후가 좋지 않으며 이럴 경우 조기 종결 가능성도 큽니다.
말씀드린 세 유형의 공통점은 자율성 차원이 매우 낮다는 겁니다.
상담을 받으러 오는 내담자의 특징 중 하나는 자율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죠. 거기에 연대감까지 낮으면 문제가 더 심각해집니다. LLL, LLM 유형이 대표적인 경우이죠. 자율성이 낮아도 연대감 수준이 어느 정도 높다면(Meduim level 이상이라면) 상담자와 rapport를 형성할 때까지는 버틸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설명드린 성격 유형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주 만날 수 있는 성격 유형으로 LLH(비조직화된), LHM(복종적인), LHL(의존적인) 유형도 있습니다. 이 유형들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 두시는 게 좋은데 이들 유형은 LLH 유형을 제외하고는 그나마 연대감 수준이 높은 장점이 있어서 상담자가 본격적인 개입을 할 때까지 시간을 벌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상호 의존 문제를 염두에 두어야 하고 전이-역전이 분석이 필요한 내담자가 많습니다.
유형에 대한 숙지 이외에도 중요한 내용을 정리해 보자면,
1. 상담을 받으러 오는 내담자들은 대부분 TCI의 자율성 차원이 낮기 때문에 자율성의 하위 차원 분석을 통해 어떻게 자율성을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함.
2. 연대감 차원까지 낮다면 조기 종결 가능성이 커지며 내담자가 호소하는 증상의 심각도도 비례해서 올라가는 경향이 있으므로 각오를 단단히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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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산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연구회의 회원인 6명의 임상심리학자들이 공동 번역한 Jon G. Allen 박사의 책입니다. 이 책은 2005년에 출판된 2판을 번역해서 2010년에 내놓은 것입니다.
저자가 머리말의 말미에서 외상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심리학과 정신의학만 갖고는 부족하며 생물학과 철학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 이유는 외상이 신체적인 질병임과 동시에 실존적인 고민에 직면하도록 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듯이 이 책은 철학과 신경과학의 관점에서도 외상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제가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만).
방대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이 책의 구성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1부 기초편에서는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고, 2부 외상의 영향에서는 외상이 미치는 영역을 정서, 기억, 자기, 관계, 질환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3부에서는 우울, PTSD, 해리성 장애, 자기파괴적 행동 등 외상과 관련된 정신과적 장애를, 마지막으로 4부 치유에서는 정서 조절과 치료적 접근, 희망 등의 내용으로 트라우마를 어떻게 치유하는지 알아봅니다.
특징적인 것은 1부 기초편에서 트라우마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과 별도로 애착 외상에 대해 별도의 장을 할애하여 다소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애착 외상에 대한 저자의 관심을 보여주는 것 같은데 애착 외상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전문가용 책입니다만 트라우마에 관심있는 일반인이 읽기에도 크게 어렵지 않게 씌여진 책으로 트라우마에 대해 관심있는 임상가들의 입문용 책으로 좋습니다. 2011년 11월에 소개드린
'트라우마(Trauma and Recovery : The Aftermath of Violence, 1997)'와 함께 읽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트라우마가 impersonal trauma에 초점을 두고 쓴 책이라면 이 책은 그보다 초점을 더 넓게 잡고 있습니다. 시간 순서로는 트라우마(1997)를 먼저 읽고 트라우마의 치유(2005)를 읽어야 하겠지만 반대로 읽는 것을 더 권장합니다.
트라우마에 관심있는 임상가라면 이 책과 Judith Herman의 '트라우마(1997)'은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두 권 다 추천합니다.
닫기
* 단지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변화시킬 수도 있다.
* 외상을 당한 사람에게 가장 해로운 것은 회피다.
* 학대는 권한 이상의 행위를 하는 것이며, 방임은 의무 이하의 행위를 하는 것이다.
* 방임은 신체적 방임과 심리사회적 방임으로 구분하는데 심리사회적 방임에는 정서적 방임(아동의 정서적 상태에 반응을 보이지 않음), 인지적 방임(아동의 인지적이고 교육적인 발달을 지원하지 않음), 사회적 방임(아동의 사회적/대인관계적 발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음) 등이 포함된다.
* 아동기의 애착 외상에서는 학대와 방임의 결합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외상의 핵심은 두려움과 외로움이다.
* 스트레스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외상 대처의 중점은 추가적인 외상에 노출되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 우리는 보통 외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태풍, 전쟁, 성폭행, 학대와 같은 객관적인 사건에만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객관적인 사건에 대한 주관적 경험이 외상이 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 애착의 안정 기반은 외부 세계에 대한 탐색을 촉진할 뿐 아니라 내적 세계를 탐색하는 것 역시 촉진한다.
* 전두엽의 뇌파(EEG)를 측정하면 부정적 정서의 경우 우반구가 상대적으로 활성화되고 긍정적 정서의 경우에는 좌반구가 활성화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 억제 기질의 사람이 외상 경험에 가장 민감하고 영향을 크게 받는다.
* 수치심은 핵심적인 자기(core self)가 나쁜 것인 반면, 죄책감은 특정 행동이 나쁜 것이다. 수치심이 좀 더 광범위하게 나쁘다는 느낌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죄책감보다 좀 더 파괴적인 경향이 있다.
* 수치심이 외상의 공통적인 측면이라는 사실은 놀라울 것도 없다. 외상적 사건은 무력감을 유발하는데, 이 무력감이 수치심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 플래시백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현실감각(grounding) 기법을 사용할 수 있다. 현실감각 기법이란 감각 입력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현재로 주의를 돌리는 것을 말한다.
* 외상을 탐색해야 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침습적 기억으로 고통을 겪고 있거나, 혹은 외상적 사건을 행동으로 재연하고 있는 경우이다.
* 외상 치료의 목표는 외상적 기억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치료의 목적은 회상을 더 의미 있고 정서적으로 견딜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 매 맞는 아내들은 구타하는 배우자의 기분을 좋게 하고 진정시키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그 노력이 실패해서 폭행이 일어났다고 스스로를 비난한다. 이처럼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통제감을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방어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무력감을 느끼기보다는 비난받을 만하다고 느끼는 것이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 자기 가치감을 향상시키는 관계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자기 가치감을 감소시키는 관계와의 접촉은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 외상 경험에 대해 말하는 목적은 갇혀 있는 정서를 방출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에 대한 더 양호한 통제력을 얻는 데 있다.
* 외상 집단 치료는 첫 번째 단계에서는 안전에, 두 번째 단계에서는 외상 경험에 관한 기억하기와 이야기하기에, 세 번째 단계에서는 지속적인 관계를 발전시키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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