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자가 부부 갈등 해결을 위한 상담을 진행할 때 어느 배우자의 편도 들지 않고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건 거의 상식에 가깝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부부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구한다는 건 둘이서 말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는 이야기이고 대부분 상담자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상대의 잘못을 드러내 변화를 강제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 상담자가 기계적인 중립을 지키겠다고 암만 노력해봤자 잘 되지 않습니다. 각 배우자가 적극적으로 상담자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는 것은 물론 애매한 입장을 취하는 상담자를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기 때문이죠.
이처럼 부부 상담에서 상담자가 중립을 지키기 어려울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 고려해 볼만한 방법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제가 잘 쓰는 방법 중 하나는
'공적(公敵)을 자초'하는 겁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상담자가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과 이유를 들어 각 배우자를 대상으로 일종의 공격을 하게 되는데 이 때 당사자는 아무 변명이나 반격도 할 수 없고 상대편 배우자가 이를 방어(소위 편들기)를 해야 합니다.
한 회기 내에 부부 모두에게 실시해야 하고 상담자가 공격하는 수위는 비슷한 수준이어야 하고요.
이 방법의 강점은 일반적인 부부 상담에서 일어나기 쉽지 않은 부부 연대(또는 동맹)를 촉진한다는 겁니다. 상담자가 외부의 적을 자처함으로써 내부의 결속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잊고 있었던 상대 배우자의 강점과 좋았던 시절을 remind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방법이 효과를 발휘하면 당장 회기 내에 배우자를 바라보는 눈빛부터 친근하게 바뀝니다. 지금까지 적이었는데 과거의 동지를 소환한 것이니까요.
다만 이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는데,
1. 부부 상담의 목적이 이혼이 아니라 부부 갈등 해결이어야 함
: 간혹 이미 갈라서기로 결정했지만 이혼을 앞두고 재산 분할, 자녀 양육 등 산적한 문제 때문에 심리적 중재가 필요하거나 마음의 상처를 줄여보려고 부부 상담을 받는 부부가 있는데 이 경우에는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2. 상담자가 배우자 각자에 대한 개인 상담을 충분히 진행했어야 함
: 배우자 각자에 대한 개인 상담을 충분히 진행했어야 한다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상대방 배우자에 대한 불만, 악감정을 개인 상담에서 충분히 토로했다는 것과 이 과정을 통해 상담자가 부부 갈등에 영향을 준 각 배우자의 장, 단점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즉 부부 상담으로 들어갔을 때 어느 한 쪽 배우자가 아직 남아있는 비난과 험담을 하기 시작하면 이 방법을 쓸 수 없고 상담자가 부부 모두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으면 사용할 수 없는 방법입니다.
부부 상담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이 특히 힘든 상담자라면 한번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 경우에는 꽤 효과가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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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도박자(모든 도박자가 그런 건 아님)가 바닥을 치려면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다는 절박감을 뼛속 깊이 느껴야 하는데 법적으로 이혼하더라도 가족이 결국은 자신을 받아줄거라고(그래서 다시 재결합할 수 있을거라고) 믿는 도박자는 절대로 자신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러니 단순히 이혼으로 협박만 하면 혼자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도박자가 정신을 차리고 치료를 받을거라고 가정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이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던 배우자만 큰 고통을 받게 됩니다.
또한 그러한 과정의 연속선상에서 이혼으로 받은 상처에서 피가 철철 나는데도 도박자가 돌아올 것을 배우자가 기다리면서 봉합하지 않고 (도박자가 돌아오기만 하면 상처가 없었던 것이 되기라도 할 것처럼 착각하면서) 기다리면 그 상처는 반드시 덧나게 마련이고 상처를 봉합할 기회도 놓치게 되어 더 고통스럽게 됩니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상처를 지혈하고 봉합하면 시간이 지나 상처가 아물 것이고 나중에 도박자가 돌아온다고 했을 때도 마음의 동요가 적고 치유의 원칙에 입각한 현명하고 냉철한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이혼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 이혼의 과정 중 받은 상처와 이혼 후의 삶을 대비하기 위한 전문가의 도움을 당장 받으셔야 합니다.
가족들이 도박자에 대한 마음을 확실히 정리하고 이를 일관되게 보여줘야 그나마 도박자가 정신을 차리고 돌아올 가능성이 커집니다.
(가족들이) '돕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돕는 것이다'의 역설처럼 진정 마음으로 헤어질 준비를 마쳐야 헤어지지 않고 재결합 할 가능성이 생긴다는 또 하나의 역설을 보여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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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남자가 밖에서 일해서 돈을 벌어 오고, 여자는 집에서 살림을 담당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이 명확한 편이었지만 점차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아이 양육과 가사를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개념 정립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변화의 속도에 비해 인식 변화의 속도는 더딜대로 더뎌서 외벌이든 맞벌이든 상관없이 아이 양육과 가사는 여전히 여자가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의외로(제 생각에는 거의 대부분) 많습니다.
그래야 하는 근거로 드는 것 중의 하나로 남자가 여자에 비해 더 많은 돈을 번다는 게 있는데 이건 말하는 것 자체가 창피한 일이죠. 남자가 여자에 비해 더 많은 돈을 버는 건 능력이 더 뛰어나서가 아니라 이 사회가 불평등하기 때문이거든요. 그럼 여자가 많이 버는 집에서는 남자가 아이 양육과 가사를 모두 책임지나요?
다른 근거로 많이 드는 것 중 하나는 여성이 양육과 가사에 특화(?)되어 있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여자가 더 잘 한다는거죠. 정말 그래요? 여성들 사이에서도 편차가 심한데다 그냥 해 본 경험이 없어서 서툴고, 사실 하기 싫어서 그렇다는 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누구는 태어나면서부터 아이 돌보기와 집안일에 익숙한 사람이 있답니까?
가사와 아이 양육을 분담하는 문제는 사실 상 독자 생존이 가능(배우자 중 한 사람이 제대로 기능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더라도)하도록 훈련하고 그런 훈련을 하는 가운데 효율성을 극대화해서 두 사람 모두가 심신의 평화를 누리자는 차원에서 논의할 일이지, 위에서처럼 내가 돈을 더 많이 버네, 이 일은 원래 여자가 할 일이네 하면서 찌질하게 굴 일이 아닙니다.
막말로 배우자가 죽으면 어차피 모두 내가 할 수 밖에 없는 일 아닙니까? 아님 모두 사람 사서 처리하시든지...
게다가 여자가 음식을 만들어서 식사를 하고 난 뒤 자상한 남편 코스프레하면서 "설거지는 내가 할께"라는 멘트를 던지는 남자들이 있는데 멋있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된 심리는 '그 일은 원래 내 일이 아니다'이기 때문에 사실 아주 괘씸한 것이죠.
설거지를 당연히 해야 하는 자신의 일로 생각하는 사람은 굳이 설거지는 내가 하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겁니다. 그냥 조용히 가서 설거지를 하겠지요.
여자들이 "아이는 내가 재울께", "저녁은 내가 만들께"라고 이야기하는 거 보셨습니까?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런 말 따위를 안 하는 겁니다.
그러니 진정으로 양육과 가사 분담을 제대로 하고 싶으면 '저 일은 원래 모두 내가 할 일이다'라는 자세부터 가지셔야 합니다. 일단 백번 암송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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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상담을 할 때 부인과 남편이 상담을 받기 위해 함께 나오면 참 좋겠지만 배우자 중 어느 한 쪽만 먼저 상담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부부를 동시에 상담할 때의 장점보다 문제가 더 많을 때도 있어 일부러 따로 상담하기도 합니다.
제 경우는 부부가 함께 나오더라도 초기에는 따로 상담을 하고 어느 정도 개인 상담이 진행된 이후에 양쪽 모두의 동의를 받아 부부 상담으로 전환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인데요.
부부를 각각 상담할 때 꽤 많은 내담자가 부부 사이에 생길 수 있는 오해를 해결하고자 자신의 입장을 상담자가 잘 정리하여 상대방 배우자에게 전달해 주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때로는 그런 교통정리를 능수능란하게 하는 교통경찰의 역할이 부부 상담자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부 상담자의 역할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상담자가 부부 사이의 이야기를 전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하게 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한 쪽 배우자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상담자의 견해나 주관이 개입되어 왜곡된 내용이 전달됨으로써 오해가 더 커지는 일이 생길 수도 있고요.
특히 상담자는 내담자의 우군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담자가 한 명인 개인 상담과 달리 부부 상담에서는 내담자가 부부 관계이자 갈등 상태인 배우자 2명이므로 어느 한 쪽의 편만 들 수가 없습니다. 또한 한 배우자가 상담자가 중립선을 조금이라도 넘어갔다고 생각하게 되면 어렵게 생성한 rapport가 깨질 위험성이 큽니다.
게다가 부부 상담에서는 객관적인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각 배우자가 각자의 관점에서 지각한 주관적인 두 현실이 충돌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알 수도 없는 객관적인 진실을 찾으려고 하다가는 정작 부부 상담의 상담 목표를 잃고 표류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상담자는 해결사나 전략가가 아닙니다. 부부 스스로 부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니 어설픈 메신저나 중재역을 자처해 상담을 엉뚱한 곳으로 끌고 가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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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YES24
나이들고 병들어 죽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순리를 인정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죠.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인데도 사람들은 남의 일인 것처럼 자신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이든 사람을 '노인네'라고 부르며 경멸하거나, 경멸까지는 않더라도 나와는 상관없는 존재인 양 눈에 안 띄기를 바랍니다. 모든 노인들이 '어버이연합'이 아니듯 모든 노인들이 현명한 것도 아닙니다만 두 번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비롯해 수많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은 노인 세대의 경험과 삶의 지혜에는 한번쯤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30년 이상 노인학 연구를 해 온 Karl Pillemer 교수가 이끄는 코넬대학교 '인류 유산 프로젝트'팀이 5년에 걸쳐 진행한 끈질긴 추적의 소산입니다.
1,000명이 넘는 노인들(이 책에서는 이들을 인생의 현자라고 부릅니다)에게서 삶의 지혜를 모아서 30가지로 분류했습니다.
8만 년의 삶, 5만 년의 일, 3만 년의 결혼 생활이 주는 교훈은 대체 무엇일까요?
닫기
* 결혼
1. 비슷한 사람과 결혼하라
2. 설렘보다는 우정을 믿어라
3. 결혼은 반반씩 내놓는 것이 아니다
4. 대화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길이다
5. 배우자와만이 아니라 결혼과도 '결혼'한 것이다
* 직업
6. 내적인 보상을 주는 직업을 찾아라
7. 포기하지 마라
8. 나쁜 직업도 최대한 활용하라
9. 인간관계가 전부다
10. 자율성을 추구하라
* 자녀 양육
11.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
12. 깨물면 유독 아픈 손가락, 드러내지는 마라
13. 몸의 멍은 지워지지만 가슴의 멍은 평생 남는다
14.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관계의 균열만은 피하라
15. 자녀와의 관계는 '평생의 관점'에서 보라
* 노화
16. 나이 먹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은 일이다
17. 100년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몸을 아껴라
18. 아직 오지도 않은 죽음을 미리 걱정하지 마라
19. 관계의 끈을 놓지 마라
20. 노후의 거처를 계획해두라
* 후회없는 삶
21. 정직하라
22. 기회가 묻거든 "네!"라고 대답하라
23. 더 많이 여행하라
24. 배우자를 고를 때는 신중 또 신중하라
25.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바로 지금 말하라
* 행복하게 살기
26. 시간은 삶의 본질이다. 삶이 아주 짧은 것처럼 살아라
27.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선택이다
28. 걱정은 시간을 독살한다. 걱정은 그만하라
29. 오늘 하루에만 집중하라
30. 믿음을 가져라
-> 붉은 색은 제가 전적으로 동감하는 부분. 30개 중 무려 21개!!
'살아오면서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무엇입니까?", "젊은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삶의 조언은 어떤 것입니까?"라는 아주 단순한 질문이 이끌어낸 삶의 지혜를 한번 들어보지 않으시렵니까?
제가 지금까지 상담을 하면서, 월덴 3를 운영하면서 옳다고 느끼고, 체험했던 내용 중 상당수가 이 책 안에 있습니다.
토네이도 출판사(예전에
풍림화산님이 서평단으로 추천해 주셔서 몇 권의 책을 증정 받았던)에서 이번에 장외 홈런을 하나 날린 것 같네요.
강력 추천합니다.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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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혼
* '끌림'보다는 '공유'가 중요하다. 관심사가 똑같을 필요는 없지만 핵심적인 가치관은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배우자와 가치관을 공유하려면 먼저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 결혼을 하면서 배우자를 변화시키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 함께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친구 같은 사람을 배우자로 택하라.
* 관계가 진지하게 발전하면 반드시 서로에게 물어보고 논의해야 할 것들이 있다. "가슴 떨리던 열정이 사그라지고 무뎌지게 되었을 때도 우리를 함께 있도록 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답이 아이들이어서는 안 된다. 우정이 답이어야 한다. 우정이 없다면 결혼하지 마라
*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두 사람 모두 상대에게 항상 100퍼센트를 주는 것이다. 50퍼센트를 주었으니 50퍼센트를 받아야 한다고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 인생의 현자들은 결혼생활이 행복한지 아닌지 알려면 이렇게 질문해보라고 제안한다. "배우자와 대화가 통하는가? 배우자와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는가? 혹은 나눌 수 없는 이야깃거리가 있는가?" 실제로 인생의 현자들이 결혼을 후회한 가장 흔한 경우는 배우자가 대화를 할 수 없는 사람이거나 아예 대화를 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임을 깨달았을 때라고 한다.
2. 일
* 인생의 현자들은 물질적 보상 때문에 직업을 선택한 사람들은 언젠가 삶을 되돌아보며 '내가 뭘 하고 살았지?'하고 회한어린 자문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가치를 찾아라. 설사 별 볼일 없는 직업에 종사하더라도 자신이 맡은 일을 훌륭하게 잘 해내야 한다. 지루하고 권태로운 일이라고 해서 계속 무관심한 태도로 일을 하면 점점 그런 생각만 강해질 뿐이다. 해결 방법은 주인의식과 그 일을 더욱 발전시키려는 태도이다.
* 직장생활을 즐겁게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자율성과 융통성이다.
3. 자녀 양육
* 평생 아이와 유대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특별한 비법은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인생의 현자들은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필요하다면 희생도 감수하라고 말한다.
* '특별한 사건'보다는 일상을 함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
* 나이 든 사람들이 부모와 관련해 지니고 있는 가장 폭력적인 경험은 덜 사랑받는 아이였다는 기억이다.
* 완벽한 아이로 키우겠다는 생각을 버려라. 완벽한 부모가 되겠다는 생각도 버려라. 가능한 쉽게 키워라.
4. 노화
* 죽음을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생의 현자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던지는 한 가지 조언은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두라는 것이다. 실제로 죽음에 대해 물었을 떄 그들이 가장 크게 걱정했던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제대로 대비하지 못해 가족들에게 짐만 남기고 떠나는 상황이었다.
5. 후회없는 삶
* 내가 살면서 고수한 한 가지 원칙은 "아니오"라고 대답해야 할 명백한 이유가 없는 한 "네"라고 대답한 것이다.
* 산 사람에게 꽃을 보내라. 죽은 사람에겐 보내도 보지 못한다.
6. 행복
* 장례식은 참석 못하더라도 친구는 지금 당장 만나라
* 인생의 현자들은 행복을 선택하기로 의도적으로 결정하고 그것을 실천했다.
* 시간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자원이다.
* 아무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
덧. 저는 이 책을 e-book으로 읽었기 때문에 북 크로싱은 하지 않을 작정이지만 push하는 분이 많으면 새 책으로 북 크로싱할 생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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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상담을 오래 하다보면 부부가 갖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가 눈에 잘 띄입니다.
그 중 하나가
'척 보면 안다는 착각'입니다.
이건 함께 한 세월이 오래된 부부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이들은 눈빛만 봐도, 한 마디만 들어도 배우자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오랫동안 함께 살았으니 배우자의 습관, 성격, 가치관, 삶의 방식에 대해 많이 알고 있겠지요.
아마도 상대방에 대해 90% 정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상황에서나 통하는 겁니다.
그렇게 서로 잘 알고 있는데 왜 부부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싸움이 반복되는 걸까요?
그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잘 모르는 맹점에 해당하는 10% 부분에서 대부분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더 문제는 각자 90%에 의존해서 상대방이 자신의 나머지 10%도 잘 알고 있고, 그런데도 악의를 갖고 그걸 무시하고 내게 상처를 주고 있다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부부 상담을 해 보면 배우자에게 직접 말하면 오해와 갈등이 생길 것 같지도 않은데 상담자에게만 털어놔서 상담자가 답답하게 느끼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내 고통을, 내 서글픈 마음을, 내 외로움을 상대방이 당연히 알고 있을거라 속단하지 마세요. 그건 상대방이 모르는 10%에 해당하는 영역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말하고 상대방의 감정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완전히 이해될 때까지 확인 또 확인하세요.
모든 부부 문제는 서로가 모르는 10%의 영역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걸 잊지 마세요. 무엇보다 사각 지대부터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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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사랑해서 한 결혼이고 너무나 사랑해서 함께 살기로 결정한 사람인데 우리는 왜 살면서 자꾸 배우자에게 화를 내게 되는 걸까요?
궁극적인 이유는 오늘 포스팅의 주제이기도 한, 배우자에게 화내지 않는 두 번째 방법과 관련이 있습니다. 바로 기대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배우자에게 화내지 않는 방법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초보자에게 적절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자신이 하기 싫은 것을 배우자도 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결심할 것
대체로 하기 귀찮거나 더럽거나 힘든 일을 배우자가 대신 해 줬으면 하고 그나마 부탁을 하면 좋겠는데 대개는 이런 저런 방법으로 묵시적인 강요를 하기 때문에 배우자가 거절하게 되면 자신이 생각한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해 화가 치밀어 오르는겁니다. 사실 상대방이 거절했을 때에도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없어야 진정한 부탁이지 거절당했을 때 화가 난다면 부탁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건 강요한 것이죠. 상대방이 당연히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겁니다. 그러니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절대로 배우자가 하도록 놔두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행동하면 배우자에게 화 날 일이 없습니다. 내가 하기 싫은 일 중에서 배우자가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되나요? 대개 둘 다 하기 싫은 일이죠. 그냥 자신이 솔선수범해서 하면 됩니다.
위의 방법보다 배우자에게 화내지 않는 보다 궁극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배우자에게 아무 것도 기대하지 말 것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 자체가 없거든요.
배우자 없이 혼자 산다고 생각해보세요. 내가 더 오래 산다면, 배우자를 저 세상으로 보내게 된다면 언젠가는 누구나 혼자 살게 됩니다. 그리고 혼자 살게 된다면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아무도 대신 해 주지 않죠. 혼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화가 날 일이 없습니다. 싱크대에 설거지할 그릇이 쌓여 있다고 해 보죠. 어젯밤에는 내가 했는데 오늘도 내가 해야 하는 것이 억울하다는 식으로 생각해봤자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내가 혼자 산다면 그 누구도 아닌 결국은 내가 해야 할 설거지입니다.
배우자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모두 내가 할 바에는 뭐하러 결혼했냐는 말을 하는 분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설거지를 대신 시키려고 결혼하셨나요? 저녁밥을 차려줄 사람이 필요해서 결혼하셨나요? 벽에 못 박을 사람이 필요해서 결혼하셨나요? 아마 아닐 겁니다. 그렇다고 배우자를 위해 희생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희생 역시 시간차만 있을 뿐 기대를 품고 있는 행동 방식입니다. 결국은 댓가를 바라게 되어 있어요.
기대 자체를 내려놓으세요. 그리고 혼자서 살고 있다고 가정하고 행동하세요. 어차피 혼자 살게 되는 날을 대비해서 언젠가는 할 줄 알아야 하는 일들입니다. 그렇게 솔선수범하게 되면 결국 배우자의 사랑과 존경을 얻게 됩니다. 그 반대 순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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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이 말은 다름 아닌 가족, 특히 배우자가 도박 중독자에게 하는 말 중 하나입니다. 모든 배우자가 도박자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배우자가 이와 비슷한 말을 하거나 직접 행동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 말이 옳은 것도 아니고 도박 중독을 치유하는데 도움이 되는 말도 아니지만 그만큼 도박 중독으로 인해 가족이 받은 상처가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짧은 말에는 도박 중독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많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이 말을 하는 가족은 도박 중독이 병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박 중독자는 죄를 저지른 죄인이니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도박 중독이 죄라는 생각의 가장 큰 문제는 도박 중독이 아닌 도박 중독자를 원인으로 보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도박자를 공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도박 중독의 치유는 도박자와 힘을 함쳐 도박 중독을 공격해야 가능한데 도박 중독을 죄라고 생각하게 되면 이런 협동이 불가능해집니다.
둘째, 이 말을 하는 가족은 상호 의존의 덫에 걸려 있습니다. 당신이 도박에 중독되어 내 삶을 망가뜨린 만큼 나도 당신의 삶을 좌지우지해야겠고 당신은 그걸 거부할 권리가 없다는 생각이 내면에 깔려 있는 것인데 얼핏 자신이 통제권을 가지겠다는 시도처럼 보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통제하고 끊임없이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선택과 책임에 기반한 자립은 점점 더 어렵게 됩니다.
이 말은 결국 내 인생은 도박자인 당신에게 달려 있고 당신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절대로 나 스스로는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없다는 의존을 고백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 말을 하는 가족은 분노의 감정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상처를 줬으니 나도 당신에게 상처를 주겠다는 말이며 내가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는 보복의 심리에 기반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가족이 받은 마음의 상처는 보복한다고 해서 치유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을 뿐입니다. 이 문제는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용서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죄인이니까 항상 나에게 미안하게 생각하고 무조건 내 말대로 해야 해'
이 말에 집착하고 매달릴수록 가족 본인의 치유와 회복은 점점 어렵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하면 할수록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전문적인 도움을 받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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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병,
분노,
상처,
선택,
죄,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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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부부 상담을 하다보면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한마음 한뜻으로 사는 건 참 좋은데 일심동체라는 말을 부부는 항상 붙어다녀야 한다는 말로 고지식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수십 년을 각기 다른 가족 문화와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루고 함께 사는 것인데 당연히 다른 취향과 기호, 생활 방식을 갖고 있을텐데 무조건 함께 해야 한다고만 생각합니다. 어디든 함께 가고, 꼭 함께 밥을 먹어야 하고 쉬는 날에 서로 다른 일정을 소화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건 이미 서로에게 감옥을 만들고 있는 것이죠.
둘이 항상 붙어있어야 한다고만 생각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고 서로에게 맞지 않는 부분을 느끼게 되면(그럴 수 밖에 없겠죠. 맨날 붙어 있으니) 괜시리 날이 서게 되어 예민하게 반응하는겁니다. 그러다보니 직접적으로 물어봐도 될 일도 마찰을 피하기 위해 '마음 읽기'를 하게 되는데 이게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어 사이가 더욱 벌어지게 되고 상대방을 자신의 마음대로 통제하고 굴복시키기 위해 무리한 에너지를 투입하거나 반대로 상대방과의 차이를 받아들이기보다는 체념하고 자포자기하게 되기도 합니다.
건강한 부부 관계는 잘못된 일심동체의 신화를 깨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건강한 부부는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거리 두기'를 잘 합니다. '교집합'에 해당하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여집합'에 해당하는 일정 부분은 자신만의 고유한 생활 영역으로 남겨 두는 것이죠.
둘 다 액션 영화를 좋아한다면 영화는 함께 보지만 수영은 남편만 좋아하거나 기타 배우는 건 아내만 좋아한다면 상대방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자고 강요하지 말고 자신만의 시간을 충분히 즐기고 마찬가지로 배우자도 자신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혹자는 어떻게 그렇게 부부 생활을 칼로 무 자르듯이 나눠서 할 수 있느냐, 한쪽이 적당히 참고 양보하고 희생하면서 맞추는 거 아니냐고 합니다. 단호히 말씀드리지만 희생은 암묵적인 강요가 수반되어 있고 또 다른 희생을 강요하게 됩니다. 내가 지난 번에 참고 당신이 하자는 거 했으니 이번에는 내가 원하는 걸 당신이 해 줘야지라는 마음이 숨어있는 것이죠. 그래서 상대방이 나처럼 희생하지 않으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됩니다. 모든 부부 갈등의 근원 중 하나이기도 하죠.
건강하고 행복한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은 잘못된 일심동체와 희생의 신화를 깨고 적당한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덧. 저는 개인적으로 배우자나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 70%, 자신만의 시간 30% 정도의 비율이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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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치료나 상담을 하는 임상가가 빠지기 쉬운 함정 중의 하나는 자신이 갈등 속에 빠져 균형을 잃은 부부의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착각입니다.
물론 중재자 역할이 전혀 필요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담자가 처음부터 중재자의 역할을 염두에 두고 상담에 임하면 부부 각자가 하는 말의 옳고 그름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고 판단, 조언을 하고 싶은 욕구와 싸우느라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장인 어른과 만나기로 먼저 한 약속을 미루고 친형네 식구와 먼저 만나자고 고집을 부리면서 장인 어른은 신혼 여행 후 한번 뵌 적이 있지만 친형네 식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장인 어른을 또 만나뵙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주장을 편다고 가정해보죠.
이 때 먼저 한 약속이 우선이다, 친형보다는 손윗 사람인 장인 어른을 우선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적인 접근으로는 문제의 핵심에 다가가지 못합니다. 그러면 한 쪽 식구만 두 번 만나는 건 공평하지 않다는 형평성의 논리를 들고 나올 수 있으니까요.
부부 상담을 오래한 상담자는 대부분 절감하는 내용이지만 부부 간에 일어나는 갈등은 거의 대부분 합리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감정적인 문제가 대부분이죠. 상대방이 내 편이 아닌 것 같다는 섭섭함, 이해받고 있지 못하다고 느껴져서 생기는 거리감,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되어 튀어나온 분노 등.
배우자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안전하게 수용되고 나서야 비로서 부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자발적인 노력과 방법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 배우자의 말이 얼마나 논리적인지, 합리적인지를 따지기보다는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부부 치료나 상담에서 훨씬 더 유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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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모가 도박에 중독되었을 경우 아무 것도 모르는 배우자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배우자의 성향에 따라 다르다가 정답입니다.
어떤 배우자는 자신에게 직접적인 영향(빚을 대신 갚아야 하기 때문에 재정 축소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등)을 미치지 않는 이상 시댁 혹은 처가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원 가족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개의치 않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배우자는 아무리 시댁, 처가의 문제라고 해도 그렇게 중요한 문제를 자신과 상의하지 않는 것 자체가 부부 간의 신뢰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섭섭해합니다.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거지요.
또한 명백한 사실을 배우자에게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도박에 관한 한, 한 점 의혹도 없이 명확하게 사실 여부를 밝히라는 도박 중독 치료의 원칙에도 어긋합니다. 거짓을 이야기하는 것만 거짓말이 아니거든요. 정보를 감추는 것도 일종의 소극적인 거짓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될 수 있으면 배우자에게도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고 상의를 하라고 권고하는 편입니다.
오히려 배우자에게 친부모의 도박 문제를 알려야 하는가를 고민할 때에는 배우자가 어떻게 생각할까보다는 정작 도박에 중독된 부모님이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며느리 혹은 사위가 자신의 도박 문제를 알게 되었을 때 창피해서 가족간의 만남을 꺼리게 되고 관계가 어색해지거나 소원해지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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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도박 중독자인 경우 자녀를 시댁에 데려가지 못하게 하는 아내가 많습니다.
도박자가 치료를 거부했다면 모르겠지만 순순히 치료에 응해온 도박 중독자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처사이고 배우자가 자신을 벌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일견 불합리하고 불공정해 보이는 아내의 이러한 처사에 대해 도박 중독자가 먼저 헤아려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자녀를 시댁에 데려가지 못하게 하는 배우자의 행동은 도박 중독자에 대한 벌의 의미가 분명 있습니다. 도박에 빠져 있을 때 자신과 자녀에게 신경도 쓰지 않았으면서 막상 정신이 돌아와 근시안(tunnel vision)에서 벗어나고 어른들에 대한 도리를 다 하겠다고 뒤늦게서야 나서는 도박자가 밉기 때문에 제동을 거는 것이죠. 특히 도박자가 치료를 받기 시작했으나 가시적인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 아직 도박자를 신뢰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치료에 박차를 가하라는 의미에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자녀를 데려가지 말라고 딴지를 거는 겁니다. 그래서
'도박과 관련 없어 보이는 행동들이 가족의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되는 이유' 포스팅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단순히 도박을 하지 않는 것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배우자의 마음을 달래고 어루만지기 위해 가시적인 행동들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이유가 다가 아닙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시댁에 자녀를 데려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강경한 배우자일수록 시댁 식구들과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시부모님들에 대한 원망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도박 중독자의 부모가 며느리에게 하는 행동 패턴' 포스팅에서 언급한 것처럼 도박 중독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는 시부모가 며느리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닦달함으로써 과중한 스트레스를 가하기 때문입니다.
며느리의 입장에서는 정작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는 뒷짐지고 물러나 있어 자신이 도박 문제의 피해를 몽땅 감당하도록 수수방관한 시댁 식구들이 그래도 손주는 보겠다고 데려오라는 꼴이 미운 것이지요. 이러한 시댁의 요구를 뻔뻔스럽다고 지각하는 아내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도박 중독자는 자녀를 본가로 데려가겠다고 떼를 쓰거나 배우자를 윽박지를 것이 아니라 상처받은 배우자의 마음을 위로하는데 집중하고 배우자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당분간 기다려 달라고 본가의 식구들을 설득하는 것이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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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십 년 간을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다가 결혼이라는 제도에 의해 한 공간(물리적, 심리적) 안에 살게 된 두 남녀에게 부부 싸움이란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을 상징한 말 같기도 합니다.
부부 치료에서는 기본적으로 부부 싸움 자체를 문제라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부 싸움이 전혀 없는 것을 문제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부부 싸움이 없다는 것은 갈등 없이 평안한 것이 아니라 더 한 분노와 적개심을 내면에 간직하고 드러나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거나 그보다 더 심한 상태인 상대방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으로 인해 관계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부 싸움은 그 존재 자체가 아니라 방식이 문제의 초점이 됩니다. 일정한 규칙 하에서 선을 지키면서 하는 건강한 부부 싸움은 서로의 견해 차이와 입장을 이해하게 만들고 장기적으로는 그 부부의 애정 전선을 공고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부 싸움에서 절대로 피해야 하는 방식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물론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제가 볼 때 이것만큼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상대방 배우자의 원가족 공격하기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네 집안 사람들이 다 그렇지 뭐"라든가 "장모님을 보니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알겠네"라는 종류의 말입니다. 비난과 같은 직접적인 공격 뿐 아니라 힐난, 비아냥 같은 것들도 파괴력이 무시무시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 배우자의 집안을 공격하는 것은 불 속에 기름을 끼얹는 것과 같아서 부부 싸움을 엄청나게 격화시키고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상대방 배우자의 집안을 공격하는 것이 왜 이처럼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킬까요?
첫째, 나와 내 가족은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혈연이므로 본능적인 유대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 혈연을 공격하는 것은 내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싸움의 당사자인 나와 달리 내 가족은 사실 상 이 싸움과 상관이 없으며 무엇보다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내가 문제의 근원이라면 반성하고 고치면 되겠지만 내 가족들은 내 통제 권한 밖입니다. 따라서 일종의 불가항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가족을 공격당하는 것은 전쟁에 참전하지도 않은 무고한 동맹국을 공격당하는 것과 같은 감정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러니
판을 깰 것이 아니라면 절대로 상대방 배우자의 집안을 공격하는 것 만큼은 삼가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부부 싸움의 규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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