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세기 최고의 사상가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버트런드 러셀경의 대표 저작들 중 최고의 문장만을 발췌하여 책으로 묶어낸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Bertrand Russell's Best, 2009)'를 북 크로싱합니다.
정치, 심리, 윤리, 교육, 종교, 성과 결혼이라는 6개의 주제로 묶여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 책의 '소개글'을 참고하시고요.이 책은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국민도서관 이용)가 적용됩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의 북 크로싱 방법에 있는 내용대로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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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 연구가인 로버트 E. 에그너 교수가 버트런드 러셀의 대표 저작들 중에서 최고의 문장만을 발췌하여 정치, 심리, 윤리, 교육, 종교, 성과 결혼이라는 6개 주제로 묶어 펴낸 책입니다.
이 책의 원고는 버트런드 러셀이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몇 주 전까지 검토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버트런드 러셀은 성 윤리에 대한 자유로운 사고를 옹호한 것 때문에 1940년 대 뉴욕에서 큰 곤경을 겪어야 했고 지금까지도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 철학자이죠. 100여 권이 넘는 책과 수많은 저술 중 정작 성과 관련된 것은 1%에도 미치지 못하는데도 말이죠. 그런 점에서 앙리 베르그송에 이어 철학자로서는 두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이유가 '결혼과 도덕(1929)'이었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고 할 수 있죠.
개인적으로 버트런드 러셀의 글을 참 좋아라합니다. 독단이 인류에게 미치는 폐해에 대해 쓴소리를 멈추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가치관을 행동으로 옮기는데 전혀 주저하지 않았던 행동가였죠.
월덴 3에서도 이미
'행복의 정복(1930)',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2005)',
'게으름에 대한 찬양(1997)' 등을 통해 러셀의 사상을 여러 차례 소개한 바 있습니다.
버트런드 러셀의 글 중 '교육', '성과 결혼' 주제로 분류된 내용에 해당하는 책들은 전혀 읽은 적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을 접하게 되어 신선하고 좋았습니다만....
해학이 넘치는 버트런드 러셀의 명문을 읽는 재미는 좋았는데 여러 저작에서 발췌한 내용들을 묶어 싣는 바람에 자꾸 흐름이 끊기고 산만해져서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책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각 장마다 '편집자의 여는 글'과 '해설자의 닫는 글'을 앞뒤로 배치해서 버트런드 러셀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이해하면서 읽을 수 있게 배려한 건 좋았습니다.
버트런드 러셀의 저작을 대부분 읽은 분들이 총정리하는 차원에서 읽으면 좋은 책입니다. 최소한 대표 저작 정도는 다 읽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에 소개된 러셀의 저작들을 다시 한번 뒤져 봐야겠습니다.
닫기
* 나는 근엄하게 굴어야만 진지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근엄함에 맞설 최고의 무기는 재치이다. 재치가 아닌 다른 무기를 쓸 경우 대개는 또 다른 독단주의적이고 분파주의적인 근엄함이 나타날 뿐이다.
* 러셀의 방대한 저작 목록에서 유일하게 찾을 수 없는 철학적 주제는 미학에 관한 것인데, 그 이유는 아마도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과학적 세계관과 논리적 방법으로 철학에 접근한 그에게 미학은 적절한 관심을 끌지 못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 러셀의 주된 관심사는 무수한 형태로 행사되는 독단적 권위가 인류의 진보를 심각하게 가로막아왔고, 이런 상황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데 있었다.
* 인도주의를 기억하라.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무시하라.
* 러셀의 견해에 따르면 정치학 이론의 핵심적인 문제는 진보에 필요한 개인적 창의성과 생존에 필요한 사회적 결속력을 어떻게 결합시키느냐였다.
* 만일 성취욕이 경쟁심보다 강하다면 세상은 더 행복한 곳이 될 것이다.
* 훌륭한 삶은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이다.
* 설사 신이 있다 해도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자들에게 노여움을 느낄 만큼 위태로운 허영심을 지녔을 것 같지는 않다.
* 나는 신념은 죄다 해로운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신념은 아무런 증거가 없는 것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증거가 있는 것을 신념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리는 증거를 감정으로 대체하고 싶을 때 신념이라는 말을 쓰는 것 뿐이다.
* 불가지론자들은 죄가 유용한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도 어떤 행위는 바람직하고 어떤 행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바람직하지 않은 처벌은 고통을 줄 목적으로 인정되어서는 안 되며, 예방이나 계도의 목적으로만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인생에 맞서기 위해서 어떤 신념이나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겁이 많은 사람이다. 이런 태도는 다른 영역에서는 경멸받지만 종교의 영역에서는 훌륭한 태도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영역이라고 해도 비겁한 태도를 칭찬하고 싶지 않다.
* 죄란 명시된 법, 곧 신의 계시에 의해서 신의 뜻이라고 알려진 도덕 법규에 의식적으로 맞서고자 하는 의도적인 행동이다. 이 논리를 따른다면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은 죄를 지을 수 없다.
* 신이 세계를 창조하고 그 속에 죄로 인한 해악을 포함시켰다면 그 신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나마 사악한 존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낙관적인 신념을 받아들이는 것은 최선의 삶의 방식이 아니다. 두려움에 호소하는 종교는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할 뿐이다.
* 내가 기억하는 한, 어느 복음서에도 지성을 칭송하는 내용이 들어 있지 않다.
* 근거가 없을 때는 판단을 보류하도록 훈련받지 못한 사람들은 독단적인 예언자의 말에 넘어가고 무식한 광신자나 엉터리 협잡꾼이 지도자가 되기 쉽다.
* 멜서스는 인구 증가를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은 도덕적 자제와 악덕과 빈곤, 이 세 가지뿐이라고 보았다.
* 죄에 대한 신념이 덕망 있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막대한 보상은 바로 아무 거리낌 없이 고통을 가할 수 있는 기회이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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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 버트런드 러셀의 저서 중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행복의 정복(Conquest of Happiness, 1930)'을 북 크로싱합니다.
워낙 유명한 것인데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오히려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책이 되겠습니다(그냥 제가 여태까지 못 읽은 변명입니다. ^^).
행복의 정복이라서 뭔가 남성적인 공격적 문체로 가득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괜히 겁을 집어 먹었더랬습니다. 생각보다 아주 쉽게 읽히는 책이거든요.
이 책이 어떤 책인지 궁금한 분들은 '소개글'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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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 중 한 명인 버트런드 러셀의 책은 이미 월덴 3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드린 바(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게으름에 대한 찬양') 있습니다.
두 권 다 필독 도서지만 사실 버트런드 러셀이라면 뭐니뭐니해도 '행복의 정복' 아니겠습니까? ^^
1930년에 나온 저술인데도 지금까지 꾸준히 읽히고 있는 이 근대 고전(?)은 크게 '1부. 행복이 당신을 떠난 이유'와 '2부. 행복으로 가는 길'로 나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사람들이 왜 행복하지 못한 지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2부에서 구체적인 행동 강령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실 각 장의 제목만 보면 버트런드 러셀이 하고자 하는 주장이 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죠.
1부. 행복이 당신을 떠난 이유1. 자기 안에 갇힌 사람2. 이유 없이 불행한 당신3. 경쟁의 철학에 오염된 세상4. 인생의 끝, 권태5. 걱정의 심리학6. 질투의 함정7. 불합리한 죄의식8. 모두가 나만 미워해9. 세상과 맞지 않는 젊은이
왜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지 아시겠어요? ^^
제가 가끔 도박자들에게 도박으로 딴 돈으로 무엇을 할 지 구체적으로 정해놓지 않으면 도박에 먹히고 만다고 겁을 주곤 하는데 버트런드 러셀은 3장에서 '성공한 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지 배워두지 않은 사람은 성공한 후에 권태의 먹이가 될 수 밖에 없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싱크로율이 참 높죠?
2부. 행복으로 가는 길10. 인간이 느끼는 행복11. 열정이 행복을 만든다12. 사랑의 기쁨13. 좋은 부모가 되려면14. 일하는 사람이 덜 불행하다15. 폭넓은 관심, 튼튼한 인생16. 노력과 체념 사이17. 나는 행복한 존재다
이제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지 아시겠어요? ^^
그래도 모르시겠다면 이 책을 읽으러 고고씽~
행복하고 싶으나 방법을 몰라 고민했던 분이라면 버트런드 러셀의 현명한 지혜를 빌려봄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던 버트런드 러셀의 풍자적인 멘트 하나를 소개드립니다.
"때로 죄의식이 심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그것을 신의 계시나 더 고귀한 행동을 하라는 요구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질병이자 약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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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입밖에 내면 반드시 시끄러워지는 몇 가지 주제가 있습니다.
종교, 남녀차별, 군대 문제가 그것이죠. 정치야 입밖에 내지 않아도 항상 시끄러운 주제이니 통과.
그런 나라에서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다니 출판사가 논란을 정면돌파하기로 작심을 단단히 했거나 아니면 관심있는 사람들만 읽으라고 틈새 시장 공략을 염두에 두었을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신의 존재는 믿지만 기독교가 우리나라를 이 꼴로 망쳤다고 생각하는 제 입장에서 버트런드 러셀의 이 책은 언젠가는 꼭 한번 읽었어야 할 책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러셀은 서문에서부터 "나는 세계의 모든 위대한 종교들 - 불교, 힌두교, 기독교, 회교, 공산주의까지 - 에 대해, 진실이 아닐 뿐 아니라 해로운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종교가 진실하지 못하다고 굳게 믿는 만큼이나 해롭다고 확신하는 바이다"라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러셀은 사실 무신론자라기보다는 불가지론자에 가깝습니다. 신을 알 필요가 없다는 쪽에 가깝지요. 다만 유신론자들의 종교가 이 세상을 파괴하는 부분은 적나라하게 성토하고 있습니다. 러셀의 공격 대상은 신의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의 종교입니다.
러셀의 주장이 지나치게 감정에 치우쳐 있다고 본 온라인 서평이 있던데 저는 별로 그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너무 공감되어 그랬을까요?
러셀이 주장하는 종교의 해악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종교에 반드시 주어져야 한다고 여겨지는 믿음의 성질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반대 증거가 있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지는 것이 도덕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죠. 다시 말해 반대 증거로 인해 의심이 생기면 그 증거를 억압하는 것이 바로 해악입니다. 다른 하나는 믿고 있는 특정 신조들에 좌우되는 것인데 대부분의 종교들에는 뚜렷한 해악을 저지르는 특정한 윤리적 교의들이 존재합니다. 가톨릭의 산아제한 금지라든가 힌두교의 재혼금지 같은 것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실 지나온 세계역사를 돌이켜보면 러셀이 주장한 것처럼 인간의 정서적 발전, 형법의 개선, 전쟁의 감소, 유색 인종에 대한 처우 개선, 노예제도의 완화를 포함해 단 한 걸음이라도 도덕적 발전이 이뤄질 때마다 세계적으로 조직화된 종교 세력의 반대에 부딪히지 않았던 경우가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요? 제가 보기에도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에는 '종교는 문명에 공헌하였는가', '인간은 죽은 뒤에도 존재하는가',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종교는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와 같은 도발적인 소제목들이 난무하지만 결국 러셀이 종교를 비판하는 잣대는 진실성과 유용성에 달려 있습니다. 각 종교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진실이라고 볼만한 과학적, 합리적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종교들 간에도 합의된 진리가 없다는 것이고 유용성의 측면에서도 종교는 자신의 기득권을 보전하기 위해 자유와 진보를 박해하는 과정에서 결국은 속세의 기득권 세력과 결탁하게 되므로 민중의 정신을 현혹하고 인권을 억압하기 때문에 해롭다는 것(역자 후기 중)이죠.
자신이 유신론자이든 무신론자이든 불가지론자이든 한 번쯤은 읽어보면 좋은 책입니다. 단, 얇고 가벼운 책이지만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니 감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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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을 강조하면서 기독교 윤리는 스스로를 철저하게 개인주의화시켰다. 수많은 세월 기독교가 군림해오면서 생겨난 실질적인 결과는 사람들이 자연이 준 본성 이상으로 이기적이 되고, 자기 속에 갇혀 살게 된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 종교에서 구현되는 인간의 세 가지 충동은 공포와 자존심과 증오라고 할 수 있다. * 행복이 진정한 행복일 수 있는 건 그것에 끝이 있기 때문이며, 사고나 사랑이 영원이 지속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들이 제 가치를 잃는 것도 아니다. * 훌륭한 삶이란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이다. * 신학적 미신보다 훨씬 더 해로운 것이 바로 국가주의의 미신, 즉 자기 나라에 대한 의무만 있을 뿐 다른 나라들에 대한 의무는 없다는 미신이다. * '정의'란 모든 인간의 동등한 권리에 대한 인정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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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의 대표적인 에세이 모음집인 '게으름에 대한 찬양(In Praise of Idleness, 1997)'을 북 크로싱합니다.
세상에 선을 보인 지 10년이 훌쩍 넘은 책이지만 지금 읽어도 탄복할 만큼 세상을 관통하는 지혜가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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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게으름'에 관심이 많습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목표 지향적이어서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지만 저는 그것보다 주변을 둘러보거나 뒤돌아서 제가 걸어온 길의 궤적을 살펴보는 것이 더 좋아요. 그래서 주저없이 선택했습니다. 기대했던 것처럼 게으름만 다룬 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 많았거든요.
이 책은 버트런드 러셀이 내놓은 대표작 중의 하나입니다.
버트런드 러셀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잠시 소개.
1950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며 98세로 사망하기까지 하루에 평균 3천 단어 이상의 글을 써내는 초인적인 능력을 보여준 문필가로 유명합니다. 워낙 다방면으로 박식해서 철학, 수학, 과학, 사회학, 교육, 정치, 예술, 종교 등 모든 분야에 걸쳐 훌륭한 글을 많이 썼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보수화되는 일반인들과 달리 버트런드 러셀은 무정부주의자, 좌파, 회의적 무신론자였으며 평화운동가로 핵무장 반대운동에 매진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는 '게으름'에 대한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몇 개의 글꼭지 중 표제어로 '게으름'을 선택한 것 뿐입니다. 지식, 건축, 경제, 냉소주의, 획일성, 교육, 이성, 사회주의, 문명 등 다양한 주제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라고 보면 됩니다.
제가 보고 싶었던 게으름에 대해 충분히 다루지는 않았지만 좋은 내용이 많아서 충분히 만족합니다.
추천합니다.
덧. idleness와 laziness는 우리 말로는 모두 게으름으로 번역될 수 있지만 사실 어감이 미묘하게 다릅니다. 버트런드 러셀이 사용하고자 했던 어감을 좀 더 충실히 살렸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좀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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