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올해 책을 한 권 단독으로 번역하는데 도움을 좀 받았려고 무심코(?) 주문했던 책인데 아주 대박입니다(대성이냐? -_-;;;).
사실 이 책의 저자인 이희재는 '문명의 충돌', '몰입의 즐거움'을 읽을 때 '어, 이 사람 번역 꽤 깔끔하네?' 정도로 생각한 사람이고 학부 전공이 심리학이라서 약간의 친근함을 더 했던 정도이지만 이 책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본인은 '한국어 임상보고서'의 수준이라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지만 이론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고 무엇보다도 우리말답게 번역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해서 참 반가웠습니다.
학문 분야의 서적은 최대한 원문 그대로 번역해야 한다는 잘못된 통념이 그대로 반영되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엉터리 번역서가 난무하는 심리학계에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책이고 전공 서적은 그래도 전문 번역가보다는 심리학자가 번역을 해야 제대로 하지라고 생각했던 제 짧은 생각을 부끄럽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번역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된 계기도 되었고요. 영어 공부보다도 우리말 공부가 더 시급하네요.
아쉬운 점은 상세히 설명하느라고 그랬겠지만 예시 지문이 너무 많아서 영한 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조금 지루할 수 있겠더군요. 그리고 앞쪽은 실제 번역 때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실전 TIP이 많이 제시되는데 비해 오히려 뒤로 가면서 맞춤법 문제, 영한 사전 문제, 토박이말 문제 등의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어 긴장감이 좀 떨어집니다.
어쨌거나 그것이 책이든, 논문이든, 사용 설명서이든 간에 번역할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세요. 큰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강력 추천합니다.
이 책은 저도 자주 참고해야 할 것 같아서 북 크로싱을 못 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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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들이밀까, 길들일까 : 직역과 의역의 딜레마
* 원어(source language) -> 번역어(target language)
* 번역의 미시적 기준 : 어떤 종류의 글인지, 독자는 누구인가 따위를 따지는 것
* 번역의 거시적 기준 : 한 나라의 번역 문화 풍토
: 한국은 원본과 원문을 최대한 살려주어야 한다는 직역의 전통이 아주 강함
2장. 한국어의 개성 : 동적인 한국어, 정적인 영어, 더 정적인 프랑스어
* 한국어는 추상 명사가 주어나 목적어 자리에 오는 걸 꺼린다.
: '무분별한 개발은 자연 파괴를 낳는다' -> '무분별하게 개발하면 자연이 파괴된다'
* 동사를 좋아하는 한국어는 영어보다 동적이고 영어는 프랑스어보다 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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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는 동사로 풀어서 옮겨주는 것이 독자에게 좋다. 목적어 자리의 동사를 명사로 바꿔주다 보면 정작 번역문에서 주어로 쓸 만한 것이 없어질 수가 있다. 이럴 때는 적절한 주어를 채워 넣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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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형용사는 한국어 부사로 바꿔주는 것이 좋다. 다만 자칫 방심하면 부사가 어느 것을 가리키는지 불확실할 때가 많기 때문에 위치 선정을 잘 해야 한다.
* 영어에는 과거, 현재완료, 대과거, 과거완료 등 과거를 나타내는 여러 시제가 있지만 한국어는 '-던'이나 '-었-'과 같은 과거를 나타내는 어미로 이것을 모두 나타낸다. 따라서 '만났었다'와 같은 표현은 문장을 지저분하게 만든다.
* 한국어는 '의'가 겹치는 것과 대명사(특히 인칭 대명사)를 아주 싫어한다.
3장. 껄끄러운 대명사 : '그'와 '그녀'를 모르는 한국어
* 한국어에서 '그'는 대명사가 아니라 영어의 정관사 the에 해당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영어에서 명사처럼 쓰는 'he', 'she'와 같은 3인칭 대명사는 한국어에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3인칭 대명사는 대명사가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바꾸어 주는 것이 좋다.
* 영어 대명사를 한국어로 옮기는 원칙은 두 가지. 1. 지시 대상이 모호해질 것 같으면 대명사를 명사로 바꿀 것. 2. 문장 안에 없어도 한국어로 뜻이 통하는 불필요한 대명사는 과감히 뺄 것.
4장. 주어는 어디 갔지? : 한국어와 주어
* 한국어는 주어의 비중이 영어보다 훨씬 작다. 따라서
주어는 될 수 있으면 쓰지 말고 똑같은 주어로 이어지는 여러 문장에서 뒤의 주어들을 생략해서 좀 허전하다 싶을 때는 '그래서', '그러면서', '그런데' 같은 문장 접속 부사를 덧붙이면 좋다.
* 주로 생명체가 주어인 한국어와 달리 영어에서는 모든 것이 주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사물이나 관념을 주어로 사용하는 영어를 번역할 때는 이유를 나타내는 부사어로 바꿔 주면 자연스럽다. 목적어 자리에 사람이 오는 문장은 사람 주어로 바꿔도 좋다. 또는 이 두 가지를 결합해서 주어 자리에 오는 내용을 이유를 나타내는 부사어로 바꾸고 목적어를 주어로 삼아도 좋다.
* '나'를 가급적 드러내지 않는 것이 한국어다운 문장이다.
* 좋은 한국어 번역을 위해서는 사물의 시각을 사람의 시각으로 끊임없이 바꾸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 목적어도 무조건 '을', '를'과 같은 목적격 조사가 아니라 '이', '가'를 붙여 옮겨주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때가 많다.
7장. 죽은 문장 살려내는 부사 : 추상에 강한 영어, 구체성에 강한 한국어
* 영어는 한국어보다 추상성과 보편성을 담아내는 데 강하고, 한국어는 영어보다 구체성과 특수성을 나타내는데 강하다. 따라서 포괄적인 뜻을 지닌 영어 부사는 구체적인 뜻을 지닌 한국어 부사로 옮겨주자.
* 영어 동사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 달랑 한국어 동사 하나로만 번역하지 말고 한국어 부사를 덧붙일 수 있으면 과감하게 덧붙여라.
* 영어는 특히 동사를 많이 알아야 하고, 한국어는 특히 부사를 많이 알아야 한다.
8장. '적'이라는 문장의 '적' : 형용사는 부사로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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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형용사는 한국어 부사로 옮긴다. 영문에는 형용사가 여럿 나열되었더라도 한국어로 옮길 때는 명사를 꾸며주는 마지막 말을 빼고 앞의 꾸밈말은 모두 부사형으로 처리하는 것이 좋다. 형용사구나 형용사절도 마찬가지로 '-고'로 처리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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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용사+명사'가 짝을 이루었을 때 앞의 형용사를 명사로 처리하고 다음에 '-라는' 또는 '-라고 하는'을 넣어주어
'명사라는 명사'로 옮기면 요긴할 때가 많다. 영어 '형용사+명사'를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옮기는 또 다른 방법은 바로 명사를 주어로 삼고 형용사를 작은 서술어로 나타내는 것이다.
* 한국어는 명사와 명사의 결합력이 높은 언어라서 꼭 '-적'에 기대지 않고 그냥 명사만 갖다 붙여도 관형어 역할을 충분히 해낼 때가 많다. 또한 '-롭다', '-답다'처럼 접미사를 써도 된다. '-적'을 불가피하게 집어넣어야 하는 경우에도 꼭 '-적인'이라고 할 필요가 없다.
* '명사 of 명사'는 '형용사+명사'로 바꿔도 좋을 때가 있다.
9장. 간결한 문자의 비밀, 덧말 : 접두사와 접미사 활용하기
* 간결한 번역은 불필요한 영어 원문의 주어를 없애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 접사를 잘 이용해서 번역문을 간결하게 만들려면 번역은 단어를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 현대 한국어는 특히 감정을 나타내는 '-감', '-심'을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미 감정이 들어간 명사에는 이런 접미사를 굳이 덧붙일 이유가 없다.
10장. 한국어 말꼬리를 잡아라 : 실감나는 어미 활용
* 다른 단어의 영향을 받지 않는 중국어를 '고립어', 한 단어가 문장 안에서 어떤 단어와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유럽어를 '굴절어', 어간과 어미가 한몸으로 끈끈하게 붙어 다니면서 변화무쌍한 뜻을 나타내는 한국어를 '교착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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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 상황을 나타낼 때는 보통 '채로'라는 말을 써주지만 '-고'를 붙여도 좋다. '-고'라는 어미에는 시간 순서대로 일어나는 여러 동작을 나열하는 뜻 말고 동시에 일어나는 상황을 묘사하는 기능도 있다.
* 어미 하나로 접속사와 시제를 한꺼번에 나타낼 수도 있다.
이유를 나타내는 as와 미래의 가능성을 나타내는 may를 '-라' 하나로 나타내는 것이다.
* 영어 and는 단순히 나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약한 인과 관계를 나타날 때가 많다. 심지어는 but의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11장. 살빼기 : 군살은 뺄수록 아름답다.
* 듣는 사람이 이미 안다고 여겨지는 정보를 내놓을 때는 정관사 the를 앞에 붙이고 듣는 사람이 아직 모르는 미지의 정보를 내놓을 때는 부정관사 a를 앞에 붙인다는 것이 영어에서 the와 a를 구별하는 가장 간단한 기준이다. 그렇다면
이미 아는 정보를 제시하는 한국어 조사 '은/는'은 영어 정관사 the에 해당하고 미지의 정보를 던지는 한국어 조사 '이/가'는 영어 부정관사 a/an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 동사가 어떤 작용이나 동작을 나타내지 않고 그저 존재나 상태를 나타내는 be 동사일 때는 '은'이 아니라 '-한 -이다'로 나타낼 수도 있다. 가령 "The station was gloomy"는 "기차역은 을씨년스러웠다"도 좋겠지만 "을씨년스러운 기차역이었다"도 괜찮다.
* 귀에 거슬리는 군말 : '-고 있다', '-어 있다', '-에 관한', '-에 대한'
* 영어는 say, explain, ask, reply처럼 주어의 발언 행위를 묘사하는 동사를 꼬박꼬박 넣어주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도 빼도 무방하다.
* realize, find, notice, feel과 같은 동사도 번역을 안 해주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다.
12장. 좁히기 : 좁혀야 생생하다.
* 영어 전치사는 명사와 명사를 접착제처럼 이어주는 역할을 하지만 사실은 동사에 가까운 뜻이 있다. 그래서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 그 동사의 뜻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면 좋다. 'the agreement between the two countries'는 '두 나라 사이의 합의'라고만 옮길 것이 아니라 때로는 '두 나라 사이에서 이루어진 합의'라고 옮길 필요가 있다.
13장. 덧붙이기 : 풀어주면 쉬워진다.
* 낯선 고유 명사는 일반화해서 표현하는 것이 독자에게 친절한 번역이다. 왜냐하면 번역은 저자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를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
* 전치사가 들어간 영어 문장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 동사를 덧붙여주어야 자연스러울 때가 많다.
15장. 뒤집기 : 뒤집으면 자연스럽다.
* 시간에 관한 내용이 나올 때는 특히 뒤집어서 반대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 접속사 if가 들어간 문장도 뒤집어서 옮기면 자연스러울 때가 많다.
* 시간과 관련된 접속사 중에서도 until과 before는 특히 신경을 써야 한다.
영어 until은 '까지'지만 앞에 not이 올 때는 '부터'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그런가 하면 before는 '전'이지만 '뒤'나 '다음', '나중'으로 옮겨야 좋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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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영어는 순서대로 번역을 해야 할 때가 많다. 앞뒤 문장이 이어지는 흐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16장. 느낌이 사는 토박이말 : 입말 활용법
* 적어도 형용사, 부사, 동사는 될 수 있으면 토박이말로 쓰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