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마다 문화마다 부모가 자녀에게 가할 수 있는 심한 벌의 유형이 달랐습니다. 지금도 그렇기는 하지만 예전에는 신체적 체벌과 버리겠다는 협박이 가장 무서운 벌이었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던 궁핍한 시기에 버리겠다는 협박은 그냥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였으니까요.
그 당시에 태어나 그러한 육체적 체벌과 협박을 당하며 자란 지금의 부모님들은 자신에게 효과적으로 작용했던 벌을 자신의 자녀에게 답습해 사용해 보지만 사실 요즘 아이들에게는 거의 먹히지 않는 방법입니다. 사람도 동물이니만큼 신체적 체벌과 버리겠다는 협박이 전혀 통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과거만큼 효과적이지 않죠.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심한 벌은 스마트폰 압수나 사용 금지입니다. 실제로 굉장히 효과적이어서 아이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를 활용하는 부모님도 많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 압수나 사용 금지는 통제의 수단으로든 벌의 방법으로든 사용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왜냐하면 스마트폰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더 이상 유희의 수단이 아닌 소통의 수단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건 아이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며 입을 틀어막는 것과 같습니다. 그냥 아무런 자극이 없는 어둠 속에 던지는 것과 같아요. 스마트폰 압수나 사용 금지 전략을 사용하는 순간 원래의 교육적 의도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의사소통 수단을 빼앗겼다는 분노만 남게 됩니다.
카톡 메시지를 제 때 확인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따돌림의 사유가 되는 아이들 문화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건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그처럼 예민하고 격렬하게 반응하는거구요. 부모가 이런 문화를 인정하든 말든 상관없습니다. 이미 스마트폰은 아이들의 세상에 뿌리내렸고 다시 돌리기 어려울 겁니다.
반대로 아이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도 스마트폰입니다. 아이가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최신의 스마트폰으로 바꿔주는 것이야말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최고의 전략입니다.
최신 스마트폰을 사 주면 스마트폰에만 빠져서 공부를 등한시하고 게임이나 SNS에 중독되지 않느냐고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부모-자녀 관계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교두보는 마련할 수 있겠지요. 구형 스마트폰을 그대로 사용하게 하면 게임과 SNS 중독에서 벗어나 부모가 원하는대로 공부에만 열중하게 되나요?
SNS와 게임 중독은 최신 스마트폰 사용의 부작용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모-자녀 관계 갈등과 소통 부재의 결과입니다. 아무런 대안도 없이 그저 자녀들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빼앗기만 하는 건 다른 대안을 고민해보고 싶지 않은 부모의 게으름과 무지의 소산이고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제는 스마트폰이 어른들과 다른 용도로 자리매김했다는 걸 인정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 인정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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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도박 중독자인 경우 자녀를 시댁에 데려가지 못하게 하는 아내가 많습니다.
도박자가 치료를 거부했다면 모르겠지만 순순히 치료에 응해온 도박 중독자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처사이고 배우자가 자신을 벌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일견 불합리하고 불공정해 보이는 아내의 이러한 처사에 대해 도박 중독자가 먼저 헤아려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자녀를 시댁에 데려가지 못하게 하는 배우자의 행동은 도박 중독자에 대한 벌의 의미가 분명 있습니다. 도박에 빠져 있을 때 자신과 자녀에게 신경도 쓰지 않았으면서 막상 정신이 돌아와 근시안(tunnel vision)에서 벗어나고 어른들에 대한 도리를 다 하겠다고 뒤늦게서야 나서는 도박자가 밉기 때문에 제동을 거는 것이죠. 특히 도박자가 치료를 받기 시작했으나 가시적인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 아직 도박자를 신뢰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치료에 박차를 가하라는 의미에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자녀를 데려가지 말라고 딴지를 거는 겁니다. 그래서
'도박과 관련 없어 보이는 행동들이 가족의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되는 이유' 포스팅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단순히 도박을 하지 않는 것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배우자의 마음을 달래고 어루만지기 위해 가시적인 행동들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이유가 다가 아닙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시댁에 자녀를 데려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강경한 배우자일수록 시댁 식구들과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시부모님들에 대한 원망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도박 중독자의 부모가 며느리에게 하는 행동 패턴' 포스팅에서 언급한 것처럼 도박 중독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는 시부모가 며느리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닦달함으로써 과중한 스트레스를 가하기 때문입니다.
며느리의 입장에서는 정작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는 뒷짐지고 물러나 있어 자신이 도박 문제의 피해를 몽땅 감당하도록 수수방관한 시댁 식구들이 그래도 손주는 보겠다고 데려오라는 꼴이 미운 것이지요. 이러한 시댁의 요구를 뻔뻔스럽다고 지각하는 아내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도박 중독자는 자녀를 본가로 데려가겠다고 떼를 쓰거나 배우자를 윽박지를 것이 아니라 상처받은 배우자의 마음을 위로하는데 집중하고 배우자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당분간 기다려 달라고 본가의 식구들을 설득하는 것이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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