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포스팅에서는 또래 동성 베프만 다루고 있지만 베프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관계에 적용 가능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베프의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공통 관심사로만 연결되거나 거래 관계가 아니어야 함
2. 비교적 평등한 관계여야 함
3. 신뢰가 바탕이 된 관계여야 함
최소한 이 세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할 수 있어야 비로소 베프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죠.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우선 공통 관심사만 공유하는 건 베프 관계가 아닙니다. 바꿔 말하면 그 관심사가 없어졌을 때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면 베프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그냥 동호회 회원 사이입니다. 무언가를 주고 받는 것으로만 국한된 사이도 베프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냥 계약 당사자에 가깝습니다. 당연히 계약이 끝나면 둘은 아무런 사이도 아니게 됩니다.
두 번째 기준은 상호 호혜성에 관한 것인데 주고 받기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사이도 베프 관계가 아닙니다. 어느 한 쪽이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지나치게 베풀거나, 주기만 하고 받지 못하는 사이, 반대로 받기는 하는데 아무 것도 주지 않는 사이는 베프라고 볼 수 없습니다. 호의를 기부하거나 후원하는 사이이며 측은지심이나 동정심에 기반한 사이라서 오히려 일반적인 관계보다 훨씬 더 병리적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 기준이 가장 중요한데 상대방이 배신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에 대한 신념이 있어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설사 배신한다해도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신뢰에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의외로 베프를 만드는 게 쉽지 않은 일이고 상당히 건강한 사람만 베프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맞습니다. 베프를 갖고 싶다면 내가 상대방에게 베프가 되어야 하니까요.
사실 부모와 건강하게 분리-개별화하여 독립하는 것도, 아무런 이해 득실을 따지지 않고 동년배의 동성인 한 인간과 우정에 기반한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도, 자신과 반대 성인 사람과 성욕을 넘어서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모두 매우 어려운 일이죠.
그러니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아 가정을 이루는 건 또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일까요. 그러니 모든 관계는 신중해야 하고 자신이 성숙해지는 것부터 단단히 챙겨야 합니다. 관계를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얼마나 많은 갈등을 만들어 내고 자신과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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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그로 끌기 죄송합니다;;;
나는 왜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연인 없이 쓸쓸하게 연말을 보내야 하는가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물론 일이 너무나 많아서와 같은, 자신도 어찌 못할 외부 요인 때문에 연애 자체를 할 시간이 없는 사람도 있을텐데 그런 분들은 이 포스팅을 보지 않을테니 이 글에서 다루는 내용과 상관이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자신의 연애 실패를 외모, 재력, 학력 등의 스펙이나 플러팅 기술 또는 공감 능력 등의 소프트웨어 부족에 귀인하고 있을텐데 정말 그럴까요? 수십 만원짜리 온라인 연애 강의를 수강하고 연애 강사에게 일대 일 코칭을 받으면 연애에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정말 그럴까요? 물론 그럴수도 있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당신이 연애에 실패하는 이유는 의외로 다른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supervision을 할 때 연애 자체가 안 되거나 연애를 하기만 하면 지랄맞은 상대방을 만나 지옥같은 연애를 하는 사람을 보면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동성의 또래 친구와 우정을 쌓고 있는지 확인해 보라'는 겁니다. 친구가 아니라 베프여야 합니다. 친구는 그냥 공통 관심사를 공유하는 정도로도 충분히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숫자가 얼마나 되든 우정을 기반으로 한 베프가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성격 장애의 대인 관계 문제는 동성 (또래) 관계에서 더 두드러진다'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미성숙한 사람은 또래의 동성 베프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만약 또래 동성 베프가 한 명도 없다면 앞 단계로 올라가서 건강한 부모-자녀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부모와 적당한 물리적, 정서적, 심리적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지나치게 냉담하지도, 지나치게 집착하지도 않는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분리-개별화' 과제를 완수했다고 말합니다. 이 관계의 고리를 한 줄로 표현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건강한 부모-자녀 관계 -> 또래 동성 베프 관계 -> 연애 관계
이 단계는 반드시 순서대로 진행합니다. 그러니까 부모와 분리-개별화가 잘 되어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어야 또래의 동성 친구와 건강한 우정을 맺을 수 있으며 그게 가능해야 비로소 연애가 가능합니다. 이러한 순서는 인간의 발달 단계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이전 단계가 완료되어야만 다음 단계로 옮겨가는 것이 가능합니다. 물론 딱딱 끊어지는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중간에 과도기가 존재하지만 순서가 뒤바뀌거나 skip하고 넘어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20년 넘게 현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 순서가 어긋난 사례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계속 연애에 실패하고 있다면 또래 동성 베프가 있는지부터 점검하시고 그마저도 없다면 부모-자녀 관계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살펴보고 망가진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덧. 이미 부모-자녀 관계가 망가져서 회복이 불가능해 보여도 절망할 필요 없습니다. 상담과 같은 전문적인 심리 서비스를 통해 상담자가 대리 부모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고장난 관계를 대체할 수 있으니까요. 이는 관절이 망가졌을 때 인공 관절로 교체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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