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도박자가 반드시 잊어야 하는 낱말'이라는 글에서 과거의 실수나 실패를 보상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낱말을 잊어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본전'도 예로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도박자가 본전 생각을 없애는 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본전 생각만 안 나면 단도박 하는 것이 훨씬 쉬워질 것 같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정말 어렵다고 말하는 도박자가 많으니까요.
그래서 실제로 도박 중독 치료에서 본전 생각을 없애는 건 기술적으로 어떻게 하는지 나름대로 정리를 해 봤습니다.
본전 생각을 없애는 건 경제학에서 말하는 매몰 비용의 덫에서 빠져나오는 것과 유사합니다. 자꾸 고장나는 제품의 수리를 반복하다가 제품 가격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이 매몰 비용의 덫에 빠진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제품 수리를 포기하고 버린 뒤 필요하면 새로운 제품을 사는 것이 매몰 비용의 덫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죠.
일단 이런 질문을 도박자에게 화두로 던집니다. 이 때 도박자는 도박의 확률 문제를 배워서, 또는 이미 알고 있어서 도박으로 돈을 딸 수는 없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상태여야 합니다.
1. "만약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 갖고 도박에 빠지기 직전으로 돌아간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보통 이 질문에 그래도 도박을 하겠다고 대답하는 도박자는 거의 없습니다. 매몰 비용이 발생하기 이전이고 도박으로 돈을 딸 확률이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2. "만약 현재의 단도박 상황이 일년 동안 지속된다면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이는 과거에 들어간 비용이 아닌 미래에 새롭게 들어갈 비용으로 초점을 옮기기 위한 징검다리 질문입니다. 새롭게 투입될 매몰 비용이 없을 때 어떤 느낌일 지 단기간이라도 한번 예상해 보도록 하는 거죠.
3. "도박을 그만둔다면 무엇이 나아지나요?"
이는 매몰 비용을 포기했을 때의 장점에 초점을 맞추는 질문입니다. 이 때 지금까지 도박을 하면서 매몰된 비용(꼭 돈이 아니어도 됩니다. 도박자가 생각하는 주관적인 비용이라도 상관없습니다)과 도박을 하지 않는다면 매몰되지 않아도 될 비용(매몰 비용 포기 시 장점)을 비교하지만 너무 오래 하면 안 됩니다. 비교보다는 매몰 비용을 포기했을 때의 장점을 부각해야 합니다.
혹시 매몰 비용을 포기한다고 생각할 때마다 부정적인 감정으로 고통을 받을거라고 믿는 도박자가 있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고통을 받을 것 같냐(한 달, 일 년, 10년?)고 묻는 것이 편향된 지각을 바로잡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 중에서 3번째 질문을 다루는 것이 가장 어려운 단계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도박자가 매몰 비용을 포기했을 때 자신에게 주어질 긍정적인 부분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도박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에 맞는 것을 예로 제시해야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그래서 매몰 비용의 덫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도박자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난 뒤인 상담 중반 이후에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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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고픈 도박자는 도박을 하거나 정보를 얻었던 사이트에서 탈퇴하고, 자발적으로 출입 제한을 신청하고, 도박을 함께 하던 친구에게 자신의 문제를 알리고 도움을 청합니다.
알코올 중독자가 자신의 주변에서 술과 관련된 모든 자극을 치우듯이 도박 중독자도 자신의 삶에서 도박과 관련된 것들을 멀리하는 것이죠. 이를 흔히 환경 조성, 환경 개선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도박 중독 치유에 있어 정작 중요한 것들은 도박자의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습니다. 그래서 눈에 잘 띄지 않고 그게 도박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싶은 것들도 많죠.
하지만 도박에 점철된 삶에서 도박자를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발목잡는 건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상담을 하면서 어떤 도박을 하든, 도박으로 돈을 얼마나 잃었든, 얼마나 오래 도박을 했든 간에 다음과 같은 낱말을 자주 사용하는 도박자가 치유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실수나 재발도 많이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복구', '본전', '메꾼다', '만회'와 같은 말들입니다.
모두 과거의 실수나 실패를 보상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낱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도박으로 망가지기 이전으로 단순히 돌아간다는 과거 회귀적인 말이라는데 있습니다.
도박 중독 치유는 새로운 가치관과 삶의 의미를 발견해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지 과거의 삶을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복구', '본전', '메꾼다', '만회'처럼 과거 지향적인 낱말은 머릿속에서 몰아내셔야 합니다. 상처는 치유하는 것이지 메우는 것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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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자를 치료하는 상담자는 누구라도 돈이 도박자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민감하게 고려하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려면 돈이 필요없는 삶을 살기란 정말 어렵기 때문에 도박자가 돈에만 초점을 맞추고 살지 않도록 상담 중에 돈의 의미에 대해 면밀하면서도 충분히 다루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돈에 초점을 맞춘 삶이 왜 도박 중독자에게 위험할까요?
단순하게 생각해서 도박이 돈으로 베팅하는 것이고 돈에만 집착하고 있으면 도박을 잊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돈에 초점을 맞춘 삶이 도박 중독자에게 위험한 이유는 바로 '본전 생각' 때문입니다.
도박으로 인해 생긴 빚만 해결되면 완전히 도박에서 손을 뗄 것처럼 마음을 먹었던 도박자도 막상 도박 빚이 해결되고 나면 다시 도박에 손을 대는 이유는 바로 도박으로 인해 잃어버린 돈에 집착하기 때문이죠.
돈에만 초점을 맞추고 살면 본전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돈을 적게 벌어 경제적으로 어렵다면 더더군다나 그럴 수 밖에 없고 돈을 많이 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도박으로 탕진한 돈이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 부자가 되었을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후회할테니까요.
그래서 도박 중독의 치유 과정에는 돈 이외에 어떤 것이 자신의 삶에 의미가 있는지를 찾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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