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어그로 끌기 죄송합니다;;;
나는 왜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연인 없이 쓸쓸하게 연말을 보내야 하는가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물론 일이 너무나 많아서와 같은, 자신도 어찌 못할 외부 요인 때문에 연애 자체를 할 시간이 없는 사람도 있을텐데 그런 분들은 이 포스팅을 보지 않을테니 이 글에서 다루는 내용과 상관이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자신의 연애 실패를 외모, 재력, 학력 등의 스펙이나 플러팅 기술 또는 공감 능력 등의 소프트웨어 부족에 귀인하고 있을텐데 정말 그럴까요? 수십 만원짜리 온라인 연애 강의를 수강하고 연애 강사에게 일대 일 코칭을 받으면 연애에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정말 그럴까요? 물론 그럴수도 있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당신이 연애에 실패하는 이유는 의외로 다른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supervision을 할 때 연애 자체가 안 되거나 연애를 하기만 하면 지랄맞은 상대방을 만나 지옥같은 연애를 하는 사람을 보면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동성의 또래 친구와 우정을 쌓고 있는지 확인해 보라'는 겁니다. 친구가 아니라 베프여야 합니다. 친구는 그냥 공통 관심사를 공유하는 정도로도 충분히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숫자가 얼마나 되든 우정을 기반으로 한 베프가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성격 장애의 대인 관계 문제는 동성 (또래) 관계에서 더 두드러진다'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미성숙한 사람은 또래의 동성 베프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만약 또래 동성 베프가 한 명도 없다면 앞 단계로 올라가서 건강한 부모-자녀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부모와 적당한 물리적, 정서적, 심리적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지나치게 냉담하지도, 지나치게 집착하지도 않는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분리-개별화' 과제를 완수했다고 말합니다. 이 관계의 고리를 한 줄로 표현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건강한 부모-자녀 관계 -> 또래 동성 베프 관계 -> 연애 관계
이 단계는 반드시 순서대로 진행합니다. 그러니까 부모와 분리-개별화가 잘 되어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어야 또래의 동성 친구와 건강한 우정을 맺을 수 있으며 그게 가능해야 비로소 연애가 가능합니다. 이러한 순서는 인간의 발달 단계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이전 단계가 완료되어야만 다음 단계로 옮겨가는 것이 가능합니다. 물론 딱딱 끊어지는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중간에 과도기가 존재하지만 순서가 뒤바뀌거나 skip하고 넘어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20년 넘게 현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 순서가 어긋난 사례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계속 연애에 실패하고 있다면 또래 동성 베프가 있는지부터 점검하시고 그마저도 없다면 부모-자녀 관계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살펴보고 망가진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덧. 이미 부모-자녀 관계가 망가져서 회복이 불가능해 보여도 절망할 필요 없습니다. 상담과 같은 전문적인 심리 서비스를 통해 상담자가 대리 부모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고장난 관계를 대체할 수 있으니까요. 이는 관절이 망가졌을 때 인공 관절로 교체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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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전에도 몇 번 말씀을 드린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supervision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건 상담을 받으러 온 아동/청소년에게 부모-자녀 관계 문제가 없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상담을 할 때에도, 심리평가를 할 때에도 저는 항상 부모-자녀 관계 문제나 가정 불화를 염두에 두고 확인을 해 보라고 조언하는 편입니다.
이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자녀를 피해자, 부모를 가해자 구도로 단순하게 설정해놓고 부모를 바라보면 안 된다는 겁니다. 물론 힘의 우열을 놓고 보자면 당연히 부모가 압도적인 힘과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기 쉽지만 오히려 자녀보다 부모가 더 심각한 상태인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오죽했으면 상담을 받으러 오는 자녀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 같은 존재라고 할까요. 그만큼 부모도 부모 노릇하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고 부모도 자신의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해 힘들게 세상을 살아가는 분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성장 과정에서 자신의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거나 심하게는 애착 외상을 입은 부모가 많아서인지 부모-자녀 관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속을 들여다보면, 자녀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 부모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자신의 부모들도 자신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자녀에 대해 모르는 게 이상하다고 느끼지도 못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게임 중독이라며 상담을 받으러 온 부모에게 자녀가 무슨 게임에 빠져 있냐고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하는 걸 보기가 힘듭니다. '대개 총 쏘고 사람 죽이는 게임이던데요' 정도라도 대답할 수 있는 부모가 의외로 보일 정도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시간'이라는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녀를 관찰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내지도, 평소 호기심을 갖고 자녀를 대하지도 않기 때문에 공부와 관련없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거지요.
자녀에 대해 모르면 접점이 없기 때문에 막상 함께 있어도 할 이야기가 없게 마련입니다. 모처럼 가족이 함께 모이는 시간이 되어도 상대방에 대해 모르니 무슨 이야기를 할 지 모르는거지요. 그래서 그냥 각자 스마트 기기나 들여다 보고 앉아있는 겁니다. 요새는 연인이 데이트를 할 때도 서로의 얼굴 대신 스마트 기기를 보면서 이야기를 한다지요. 참 슬픈 세상입니다.
자녀에 대해 모르면 이야기가 줄어드는 건 물론이고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 자녀에게 물어보지 않게 됩니다. 부모는 그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결정하게 됩니다.그것이 자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도 자녀에게 먼저 물어보지 않습니다. 자신이 어른이고 부모이니 현명하게 결정했다고 믿어버리는거지요. 정말 그런지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자녀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이 경우 어떤 부모는 학폭위를 열겠다고 길길이 뛸 수도 있고, 더러운 똥을 피한답시고 자녀를 다른 학교로 전학시킬 수도 있고, 학기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일단 학교를 다니게 하면서 상담을 받도록 의뢰하기도 합니다. 사안에 따라 여러가지 대처 방법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자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보는 부모가 거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저 자신의 경험과 생각에 따라 자녀에게 도움이 될거라고 믿는 방향으로 그냥 결정한 후 자녀가 따르게 합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아동/청소년은 부모가 자신의 의견을 물어보지 않은 것에 큰 상처를 받게 됩니다. 따돌림 경험 그 자체보다 부모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인해 더 큰 상처를 입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그게 왜 문제인지도 모르는 부모들이 정말 많습니다.
물론 자녀가 선택한 방법이 부적절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설득해야 할 수도 있죠. 하지만 먼저 자녀의 의사를 물어봄으로써 부모의 존중을 표현하는 건 정말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자녀는 부모에 대한 신뢰를 공고히 다질 수 있으니까요. 아무리 문제가 잘 해결된다고 해도 부모-자녀 간 신뢰가 무너지면 이를 회복하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소탐대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이 좀 길어졌는데 간단히 요약해보면,
1. 자녀에 대해 모르는 부모가 너무 많다.
2. 그 이유는 통 시간을 내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자녀에 대한 호기심이 별로 없어서이다.
3. 뭔가를 결정하기 전에 제발 좀 자녀의 의사를 먼저 물어봐라.
4.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보다 부모-자녀 간 신뢰가 깨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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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검자가 아동/청소년인 경우 심리평가 해석 상담을 원칙에 맞춰 수검자에게만 실시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법적 보호자인 부모도 그 결과를 궁금하게 생각하고 듣고 싶어할테니까요. 아동/청소년이 부모에게 알리지 않기를 원하면 해석 상담을 미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부모를 설득해야 하지만 그럴 때를 제외하고는 대개 부모에게도 해석 상담을 하게 됩니다.
불행하게도 어려움을 호소하며 상담/심리평가를 받으러 온 아동/청소년에게만 문제가 있는 경우는 사실상 거의 없습니다. 자녀는 가정의 불행을 드러내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 같은 존재라서 자녀에게 심리적 문제가 생겼다면 이미 부모-자녀 관계나 부부 갈등, 가족 구성원 간 불화, 심하게는 부모가 치료를 요하는 정신 장애에 걸려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를 대상으로 심리평가를 할 때도 최소한 부모를 대상으로 한 선별검사(TCI, MMPI-2) 정도는 실시해야 하고 이 결과는 부모 각자에 대한 치료적 개입 여부 뿐 아니라 해석 상담을 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확인하기 위한 귀중한 정보로 활용됩니다.
부모가 약물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우울 장애로 고통받고 있거나 MMPI-2에서 S척도를 70T 이상으로 띄울 만큼 방어적이라면 해석을 위한 접근이 그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으니까요.
문제는 많은 상황에서 이러한 부모 평가가 불가능하다는거지요. 부모가 심리평가를 거부하기도 하고, 비용 문제로 추가 검사를 실시할 수가 없거나 기관에서 부모용 검사를 제한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종류의 제한이 있거든요.
그래서 부모가 어떤 분들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자녀 심리평가 결과의 해석 상담을 해야 할 때 주의해야 하는 점을 몇 가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 자녀의 문제가 부모 탓인 것처럼 들리게 말하지 말 것
: 실제로 자녀의 문제가 부모에 의해 생긴 게 맞다고 하더라도 그걸 부모에게 직면시키는 건 거의 항상 효과가 없습니다. 아무리 열린 마음을 가진 부모라고 해도 자신을 탓하는 평가자의 해석을 접하면 자동적으로 방어 기제가 작동하게 마련입니다. 그게 인간이니까요. 그러니 문제의 원인보다는 해결 방법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는 게 훨씬 낫습니다.
* 부정적인 내용만 이야기하지 말 것
: 특히 임상 장면에서 일하는 평가자들이 많이 하는 실수인데 훈련 과정 자체가 문제를 찾아내는 것에 치우치다보니 보고서를 쓸 때도 수검자의 문제를 조목조목 기술하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죠. 그래서 해석 상담을 할 때만이라도 수검자의 문제 하나 당 강점 하나씩을 함께 이야기해서 해석의 체감 온도를 조절하려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평소에 검사 결과를 해석할 때도 어떤 부분이 수검자의 강점인지 부모에게 할 해석 상담을 염두에 두고 찾는 버릇을 들여야 하고요.
* 균형을 맞춘다는 느낌으로 해석할 것
: 예를 하나 들자면, 많은 아동/청소년들이 강압적인 훈육 방법을 고집하는 부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심리평가를 받게 되는데 그런 부모일수록 평가자/상담자에게 원하는 건 다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빨리 문제를 해결하는 겁니다. 이럴 때 공부만 강요하는 훈육 방법을 고집하면 안 된다고 훈계하듯이 이야기하는 건 소용없습니다. 그게 바로 그 부모가 자녀에게 사용하던 방법이니까요. 그럴 때는 균형을 맞추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게 더 효과적입니다. 저는 두 날개의 비유나 포르쉐 엔진을 단 프라이드 자동차 비유 등을 많이 사용하는데 채찍을 많이 사용하는 부모에게 당근으로는 무엇을 사용하는지 묻거나, 규율과 규칙을 중요시하는 부모에게는 정서적 스킨십과 칭찬 등을 얼마나 사용하는지 묻거나 하는 식으로 부모가 잘못 하고 있다는 핀잔 식이 아니라 당연히 아시겠지만(물론 전혀 모르거나 알고도 사용하지 않는 부모가 태반입니다만) 조금 더 신경 써 주시라는 의미로 뜨끔하게 만드는 정도로만 이야기 하는 겁니다.
다시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설사 부모가 자녀 고통의 원흉이라고 해도 부모를 가능하면 적으로 돌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내담자에게 도움이 됩니다. 도저히 설득이 불가능한 부모를 밀어내고 아동/청소년 내담자에게 집중하기로 결정하는 건 가장 마지막에 꺼낼 카드입니다. 그 때까지는 어떻게든 부모를 협조자로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하고 신중한 해석 상담이 그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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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가 상담에서 보이는 행동의 의도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건 상담자가 흔히 하는 일이지만 그 행동이 겉으로 보기에 부정적인 유형인 경우 이를 해석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역전이 때문에 어렵기도 하고 상담 초기인 경우는 저항으로 해석하기 쉽기 때문이죠.
하지만 내담자에게 부모-자녀 관계 문제가 있고 내담자의 행동 의도가 '파괴적 관심끌기'라면 이는 당연히 상담 장면에서도 재현됩니다.
내담자가 상담을 받으러 오는 이유가 심적 고통을 해소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굳게 믿고 있는 상담자는 이러한 의도를 간파하기 어렵습니다(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지만 해결 방법만을 몰라서 상담자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내담자는 극히 드문 경우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특히 파괴적 관심끌기를 통해 애정 욕구를 채우려는 내담자는 스스로 상담자에게 어필할 만한 강점이나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실제로 그런 능력과 강점이 없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에 자연스럽게 체화된 파괴적 관심끌기를 통해 상담자에게 어필하려고 하고 부모-자녀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상담자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을 파괴적 관심끌기 행동으로 선택하게 됩니다.
당연히 상담자는 강한 역전이를 경험하게 되고 내담자를 제압하거나 통제하려는 욕구를 느끼게 되는데 감정의 강도가 지나치게 강하다면 이것이 내담자의 파괴적 관심끌기가 재현되는 것인지를 한번쯤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파괴적 관심끌기는 일종의 가해자 테스팅 같은 거라서 상담자가 이를 간파하고 현명하게 소거 및 대치할 수 있다면 부모-자녀 관계에서도 극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내담자의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오르고 감정을 제어하기 어렵다면 한번쯤 파괴적 관심끌기 가능성을 고려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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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I의 사회적 민감성 기질에는 '정서적 감수성' 하위 차원이 있고 연대감 성격에는 '공감/둔감' 하위 차원이 있습니다.
이 두 하위 차원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시는 선생님들이 많아 이 참에 정리를 한번 해 보려고 합니다.
* 정서적 감수성 : 사회적 민감성 기질의 하위 차원
* 공감/둔감 : 연대감 성격의 하위 차원
naming만 보면 왠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 같고 둘 다 높거나 둘 다 낮은 '정적 상관'이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공감을 잘하려면 정서적 감수성 수준이 높아야 하지 않나?', '정서적 감수성 수준이 낮으면 공감이 안 되지 않나?' 하는 식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둘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릅니다.
정서적 감수성은 기질이고 일종의 타고난 '레이더' 같은 겁니다. 정서적 감수성 수준이 높게 태어난 사람은 성능이 뛰어난, 민감한 레이더를 장착한 것이고 낮게 태어난 사람은 성능이 나쁜 둔감한 레이더를 장착한 것이죠.
이 레이더는 상대방의 감정을 감지하는 기능을 합니다. 정서적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은 상대방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자신도 모르게) 귀신같이 압니다. 머리를 굴려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감지하는 것에 가깝죠. 정서적 감수성은 기질 차원이기 때문에 훈련한다고 (좀처럼) 높아지지 않습니다.
공감/둔감은 성격이고 일종의 '역지사지 능력' 같은 겁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쉽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잘 이해합니다. 반대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상대방의 생각, 감정에 둔하기 때문에 관심도 별로 없고 배려도 못합니다. 공감/둔감 성격은 능력이기 때문에 부단한 노력과 훈련을 통해 배양할 수 있죠.
둘의 차이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정서적 감수성 : 기질, 타고난 레이더, 향상 불가, aware
* 공감 : 성격, 역지사지 능력, 향상 가능, understand
정서적 감수성과 공감 능력이 둘 다 높은 수준이거나 둘 다 낮은 수준이라면 수검자를 이해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겁니다. 실제로 건강한 부모로부터 좋은 기질을 물려받고 태어나서 충분히 사랑받고 자랐다면 둘 다 높은 것이 정상적입니다. 하지만 많은 임상가 선생님들이 곤혹스러워하는 상황은 다음과 같은 경우입니다.
1. 정서적 감수성 高 / 공감 低
: 정서적 감수성이 높은데 공감 능력이 낮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기분과 감정을 귀신같이 알아차릴 수 있는 뛰어난 성능의 레이더를 장착하고 태어났지만 이러한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배려하는 데 쓰지 않고 자신을 위해서만 (이기적으로) 사용하게 자란 겁니다. 즉, 그럴 수 밖에 없는 환경적 영향이 있었다는 걸 암시하는데 많은 경우 형제자매들 중에서 차별 대우를 받았거나,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거나, 부모가 너무 바빠서 care를 받지 못했거나, 심성이 차가운 분들이라서 제대로 된 관심을 못 받고 큰 경우입니다.
애정 욕구가 지속적으로 좌절되거나 박탈된 분들이 많죠.
2. 정서적 감수성 低 / 공감 高
: 정서적 감수성이 낮은데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선천적으로 타인의 기분과 감정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후천적인 노력으로 이를 극복한 경우인데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받고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역지사지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한 경우와 이와 반대로
그렇게 보여야만 하는 상황적 압력이 강한 환경에서 성장한 경우로 나눌 수 있습니다. 동생들을 위해 부모의 빈자리를 채우고 희생할 것을 강요받은 장자/장녀가 대표적인 예인데 상담을 받으러 오는 내담자는 불행하게도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다만 이 경우는 MMPI-2의 GM, GF, Es, LSE 등 관련 척도 점수를 확인하는 교차 검증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정서적 감수성 기질과 공감 성격이 같은 방향으로 나타나지 않을 때는 우선 그런 차이를 야기한 환경적 영향이 무엇인지를 가정 환경과 부모-자녀 관계로부터 찾아보는 것이 먼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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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무력한 조력자'라는 제목만 보고 이 책을 구매했을 당시 제가 기대했던 것은 임상가들의 정서적 소진과 이를 극복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훨씬 더 심각하고 중요한 내용을 다루고 있더군요. 무려 40년 전에 독일의 심리학자인 볼프강 슈미트바우어에 의해 씌여졌고 출판되자마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1) 어린 시절 부모-자녀 관계에서 충분한 애정과 관심을 받지 못해 자기애적 욕구가 반복적으로 좌절됨
2) 이러한 자녀 중 일부는 부모의 초자아를 경직된 방식으로 동일시하게 됨
3) 하지만 자기애적 허기를 계속 느끼기 때문에 이를 충족하고 자기애적 손상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직업을 선택하게 됨
4) 이는 자기애적 손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조력자는 결국 자살, 중독, 다양한 정신장애에 걸림으로써 자기를 파괴하게 됨
그 당시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을지 모르겠으나 제 생각에 이 문제는 이미 '조력직'에 만연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굳이 자기애적 손상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리학에 관심을 갖고 더 나아가서 임상이나 상담 영역의 직업을 구하기 위해 수련을 받는 수많은 잠재적인 조력자증후군의 대상군이 존재합니다.
오죽했으면 제가
'자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상담자가 되지 말고 치유하고 나서 그래도 원할 때 상담자가 되라'라는 글까지 썼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리학에 입문한 임상가라면 꼭 한번쯤은 읽어보셔야 합니다.
다만 저는 조력자증후군의 원인이 오로지 부모-자녀 관계에서 비롯된 자기애적 손상이라는 단선적인 분석 결과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오히려 이 책의 저자인 볼프강 슈미트바우어 자신이 자기애적 손상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렇게 확신에 차서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남을 돕는 이타적인 활동의 이면을 들여다보다'라는 부제처럼 남을 돕는 '조력직'에 종사하면서도 행복하지 않거나 자신의 문제로 고통받는 임상가라면 생각해 봐야 하는 중요한 문제를 다룬 책입니다.
닫기
* 조력자증후군의 범위 안에서 우울증과 자살의 문제는 조력자 자신이 도움을 받아들이기가 극히 어렵기 때문에 첨예화된다.
* 조력직 종사자들은 도움을 받는 게 절대 수치가 아니라는 것을 클라이언트들이 믿도록 노력하는 반면, 그들 자신은 이 말을 거의 믿지 않는다.
* 조력자증후군은 자신의 발달을 희생하여 사회적 조력을 경직된 생활방식으로 삼는, 독특한 성격 특성의 결함이다.
* 부모-자녀 관계의 장애로 인해 상호작용에 대한 아동의 욕구가 만성적이고 지속적인 손상을 받으면,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대화 기능에 장애가 발생한다. 바로 이 장애가 조력자증후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자기대상과 마찬가지로 자기에게도 상처를 주는 자기애적 복수는 자기의 경계가 불충분함을 암시한다.
* 자기애적 균형을 이룬 사람이 긍정적인 자아이상의 내면화를 통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자기애가 손상된 사람은 외부에서 찾아야만 한다. 나는 조력자증후군이 이러한 초기의 자기애적 손상을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초자아 동일시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특히 직업적 성공에 지대한 기여를 한다.
* 조력자증후군에서 조력자로 하여금 자주 그의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넘어 과로하게 만드는, 초자아와의 동일시와 연결된 자기애적 허기는 1) 아동기 초기에 자기감의 발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2) 초자아가 즉흥적인 활동을 제한하는 데서, 3) 관계에서 상호성의 회피로 인해서 생긴다.
* 초자아와의 동일시는 사회적으로 매우 성공적이며 인정받는 방어기제이기에 변화에 필요한 심리적 중압감이 결여된다.
* 조력자에게는 자기애가 공급되는 주요 원천이 욕구 충족이나 상호적 사회관계가 아니라, 자신의 욕구 충족을 가시적으로 단념함으로써 얻어진 감사이기 때문에, 그는 자주 클라이언트에게 심하게 의존한다.
* 조력자 개인의 가장 중요한 갈등 영역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아동기 초기에 부모에게서 받은, 대부분 무의식적이며 간접적인 1) 거부를 아동은 단지 부모의 까다로운 초자아를 엄격하게 2) 동일시함으로써 감정적으로 견디려고 노력한다. 그 결과는 3) 숨겨진 자기애적 필요, 즉 허기, 4) 주고받는 상호성의 법칙에 기반을 둔,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 회피, 5) 그들에 대한 공격성의 간접적 표출로 나타난다.
* 조력자증후군에서는 자기애적 손상과 가학-피학적 욕구에 대한 승화가 서서히 또는 조속히, 부분 또는 전체적으로 균형을 잃는다. 에릭 번은 이런 결과를 '어른들의 게임'이라 불렀다. "저는 그저 당신을 도와주려고 했을 뿐인데요"
* 조력자들에게는 자살, 중독, 정신신체 증상과 같은 피학적 욕동의 표출이 비교적 흔히 나타나며, 통계상으로 특히 의사들에게서 많이 관찰된다. 전형적인 조력직(교사,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의 경우에는 정신신경증의 이환율, 즉 살면서 정신장애를 일으킬 가능성이 특히 높다.
* 조력자들이 조치를 강구하는 데 태만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그 주된 문제는 '거부된 아이'의 갈등 영역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일차집단의 관련 인물과의 동일시를 통해 조력자증후군-조력자는 인간의 자기 규제 행동을 깊게 불신한다. 긍정적인 삶, 일상적인 문제의 해결, 신체적/정신적 상처의 치유 등이 예외가 아니라 인생에서 늘 가능하다는 것을 그 자신이 더 이상 믿지 않는다. 그는 클라이언트의 변화에 생물학적으로 의미 있는 성장 모델 대신 기계적인 모델을 제시한다.
* 조력자증후군-조력자는 어린 시절에서 유래한 자기감의 결핍을 초자아와의 동일시를 통해 극복한다. 성격의 이런 발달을 통해 그의 개인적 삶이 손상될 뿐만 아니라 긴밀한 관계의 상호성을 해치고 결국에는 조력자로서의 성과가 위태로워진다.
* 자신의 조력자증후군에 대한 현실적 접근은, 우선 조력을 초기 아동기에 입은 자기애적 손상의 비교적 바람직한 해결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 그러면 방어로서의 조력과 자아에 의해 조절된 활동으로서의 조력을 구분하게 된다. 결국 초자아에서 자아가 되어야 한다.
* 슈미트바우어는 이 책에서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남을 돕다가 급기야는 조력활동에 중독되는 조력자들의 독특한 정신구조를 '조력자증후군'이라 이름 붙였다. 그는 이 성격특성의 원인을 자기애적 장애로 보고 그것이 직업 활동과 사생활에서 어떻게 표출되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밝혔다. 어린 시절 자기애적 만족이 거절당하면, 부모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일이 즉, 초자아와의 경직된 동일시가 아이에게는 유일한 선택지가 된다. 그 아이는 성장하여 자신이 그토록 원하고 그리워했던 것을 자기 자신에게는 주지 못하고 '이타적'으로 다른 사람을 통해 실현하려 한다.
덧. 이 책은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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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일이지만 아동/청소년 상담에서 부모-자녀 관계가 건강하기 때문에 아무런 개입도 필요없는 가정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단순한 부모 교육이나 당부 등으로 개입 수준을 한정할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심하면 현재 가정의 부모-자녀 문제 뿐 아니라 부모 각자의 원가정에서부터 문제가 있고 그것이 현재 가정에 대물림되어 재현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누구의 잘못을 따질 것도 없이 이미 부모-자녀 관계가 너무 심하게 악화되어 있어서 상담자가 곧바로 개입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담자는 일단 아동/청소년이 상담을 받으러 오면 부모-자녀 관계 갈등도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없다면 참으로 다행이겠지요.
많은 경우 부모-자녀 관계 갈등이 폭언이나 폭행 등으로까지 나타나면 심각도는 높지만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보기는 상대적으로 쉬운데 현장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는 건 대화가 단절되어 아동/청소년과 부모의 보고가 상반되기 때문에 상담자가 감을 잡기 어려운 경우입니다.
그래서 제 경우는 상담 초기부터 아동/청소년에게는 실시 가능한 범위 내에서 JTCI, MMPI-A, SCT를, 부모에게도 각자 TCI, MMPI-2, SCT를 실시해서 그 결과를 면밀히 분석해 부모-자녀 관계 역동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분석하고 상담 목표를 설정하곤 합니다. 이 작업만 충실하게 해도 상담 회기의 수를 많이 줄이고 실제 개입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거든요.
심리평가를 통해 아동/청소년과 부모의 기질/성격, 정서 상태, 대인 관계 양상을 파악하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건 당연히 도움이 되는데 그 밖에 부모를 파악해야 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바로
부모-자녀 관계에서 부모가 아동/청소년을 대하는 언행 패턴을 상담 장면에서 상담자가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상담을 받으러 부모가 자녀를 끌고 상담실로 오는 경우라면 이미 자녀의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개인적인 결론을 내린 경우가 많고 MMPI-2 등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으로 자신의 문제를 faking good하거나 방어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그래서 궁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부모의 변화를 유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자녀에게 어떻게 대해왔는지 그 패턴을 알게 되면 상담자는 그 잘못된 패턴을 피할 수 있고 아동/청소년과 조금 더 쉽게 라포를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
좀 더 일반적인 용어로 설명하자면,
상담자가 부모를 파악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부모를 변화시키기 위해서가아니라 상담자가 부모와 달리 행동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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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을 상담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상담자 선생님들을 위해 제가 생각하는 아동/청소년 상담의 포인트를 몇 가지 정리해 봤습니다.
* 부모(보호자)가 보고하는 문제가 실제 주 문제인 경우는 거의 없다
: 문제 양상을 파악하기 위해 하나의 정보원도 아쉬운 상담자는 가능하면 많은 정보를 모으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아동/청소년 상담의 경우 라포 형성 전까지 내담자가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드물고 많은 아동/청소년들은 대개 자신의 문제를 조리있게 이야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변 인물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활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사례에서 부모-자녀 관계 문제가 나타나고 관계 갈등의 주 대상이 부모인 경우도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부모는 객관적인 관찰자가 아니며 주관에 의한 왜곡과 윤색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에 의해 보고된 정보는 생각보다 정보가가 높지 않습니다. 또한 아동/청소년의 문제라고 보고하는 내용들이 실제로는 부모의 욕구나 기대가 투사된 경우 또한 많기 때문에 부모가 보고하는 문제가 실제로 상담에서 해결해야 하는 주 문제인 경우는 거의 없다고 가정하는 게 오히려 실수를 줄이는 방법입니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자면, 자신의 자녀가 학교에서 또래 관계가 좋지 않고 아무래도 왕따를 당하는 것 같다고 부모가 보고할 때 상담자가 우선적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또래 관계 양상이 아닙니다. 가정 내에서 부모, 형제자매, 친척들과의 관계는 어떤지를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소위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새는 경우이거나 부모-자녀 관계 갈등에 대한 문제때문에 쌓인 불편감을 밖에서 호소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자면, 이보다 더 흔히 부모가 보고하는 주요 문제로 자신의 자녀가 통 공부에 집중을 하지 못해 속상하다는 게 있는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주의 집중력의 문제(예를 들어 ADHD)가 주요 문제인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불안과 같은 심리적 불편감 때문에 주의가 분산되는 게 관찰되는 것 뿐입니다. 정말 ADHD라면 주의가 산만해서 수업 시간에 앉아 있지 못한다든가 하는 눈에 띄는 행동 문제를 주로 호소할 겁니다.
* 부모와 달리 접근해야 한다
: 저는 상담 초기에 항상 부모의 양육 태도와 훈육 방법을 확인하는 편인데 그것이 자녀와의 상호작용을 상당 부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자기 방을 잘 치우거나 깨우지도 않았는데 일어나서 알아서 학교 갈 준비를 하는 것 등의 행동은 당연하게 생각해 칭찬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것만 지적하고 잔소리를 하거나 심하게는 체벌을 하는 부모라면 부모와 자녀 관계가 건강할 리 없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아동/청소년이 보기에 상담자도 부모와 같은 어른이므로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이러한 역기능적인 관계 양상을 상담에서 그대로 재현하는 겁니다. 맨날 부모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잘못한 것에 대한 지적을 당하는 것에 익숙한 아동/청소년은 상담자에게도 그런 반응을 기대하고 그런 반응을 촉발하는 행동을 골라 하게 됩니다. 그러니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방식을 파악한 뒤에는 부모와 달리 행동해야 합니다. 전이-역전이 분석은 필수이며 부모와 의도적으로 다른 식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초기에는요. 물론 라포가 형성된 이후에는 이 부분을 다룰 수 있어야겠지요. 굳이 어려운 용어를 사용할 필요도 없이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명된 방법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죠.
* 호기심을 가져라. 취조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 상담자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 지금의 위치에 왔건 간에 자신이 살아온 궤적에 대한 가치관을 내담자인 아동/청소년에게 대입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선행 판단과 선입견으로 인해 상담이 아닌 취조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요즘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꼰대질이 되면 상담은 하나마나한 일이 되고 맙니다. 자칫하면 상담자가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담자는 어떻게 해야 자신의 가치관을 중립화하면서 상담을 진행할 수 있을까요. 저는 가장 중요한 게 호기심이라고 봅니다. 상담자들은 사람의 마음에 대한 호기심을 간직하고 공부해 온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서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상담자가 되고 나니 자신의 공부를 지탱해오던 호기심을 팽개치고 갑자기 자신의 좌절된 욕구를 내담자에게 투사하려는 분들이 있는데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됩니다. 자신을 상담자가 되게 만든 호기심을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온통 게임에만 몰두하고 학교에 가는 것 조차 거부하는 아동이 좋아하는 게임이 마인크래프트라고 한다면 그게 무슨 게임인지, 그 게임은 어떻게 하는건지, 그 게임을 왜 좋아하는건지, 그 게임에서 충족되는 욕구가 무엇인지를 궁금해 해야지 게임만 하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 졸업을 할 수 없고 상급 학교에 진학할 수 없어서 결국은 패배자가 되고 말거라는 기성 어른들의 논리만 읊조린다면 치유적 상담이 가능할 리 만무합니다. 그러니 판단은 뒤로 미루고(없앨 수 있으면 더욱 좋고) 본원적인 호기심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 길을 잘 따라가기만 해도 라포 형성이 되고 치유적 변화가 절로 따라옵니다.
* negative한 건 중요하지 않다. positive한 부분에 초점을 맞춰라
: 많은 상담자들이 빠지는 함정 중 하나는 상담자가 내담자의 문제를 해결하는(또는 해결을 돕는) 사람이라는 믿음입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 당연히 아동/청소년의 문제가 무엇인지,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고 그런 문제를 자신이 없애려 하거나 아동/청소년이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하려고만 애쓰게 됩니다. 하지만 상담자가 해결사가 되려고 마음 먹으면 상담은 대결의 장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소중하다고 느끼는(혹은 이차적인 이득을 가져다주는) 것을 지키려는 내담자와 이를 빼앗으려는 상담자의 대결 말이죠.
저는 아동/청소년 내담자가 보이는 모든 증상은 임상적으로 병리적인 것이 아니라면 사실 상의 문제가 아니며 반드시 이차적인 이득이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 이차적인 이득을 건강하게 충족할 수 있게 도와주지 않는 한 그 증상은 모양을 바꾸면서 계속 변형될 것이고 그러한 증상의 변화와 숨박꼭질을 하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설사 겉으로 보이는 그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해도 궁극적인 변화를 유발하는 것은 아동/청소년의 positive한 측면입니다. 그게 상담자가 내담자와 함께 다루어야 할 기본 재료인 것이죠.
재미있는 건 자신의 자녀가 가진 장점과 미덕에 대해 물어보면 거침없이 대답하는 부모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negative한 측면만 바라보는 것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에) 그래도 흐믓한 표정으로 장점을 이야기하는 부모의 자녀들이 훨씬 더 쉽게 문제를 해결하는 걸 경험하면서 상담의 포인트를 negative한 측면이 아닌 positive한 측면에 맞추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걸 믿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를 두서없이 말씀드렸습니다만 한번쯤 심사숙고해 보시라고 정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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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여담이지만 저는 아이 문제로 심리평가나 상담을 받으러 온 부모의 문장완성검사에서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우리 아이들을 ~~~하게 키우는 것'이라는 응답을 발견하면 주의하는 편입니다. 경험적으로 부모-자녀 관계가 문제인 가정이 많았거든요.
문구 자체만 놓고 보면 자신의 아이를 제대로 키우겠다는 부모의 자기 다짐처럼 느껴지기에 별 문제 없어 보이지만 사실 저 문장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우선 아이의 기질, 아이가 바라는 것, 아이가 되고 싶어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없습니다. 아이가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내 아이를 이렇게 저렇게 키우겠다는 다짐 속에는 아이가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욕구와 희망과 꿈이 들어갈 자리가 거의 없는거지요. 아이가 원하는 것을 알았다손쳐도 부모의 기준에 부합해야만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모의 기대와 욕심이 먼저, 아이의 욕구와 꿈은 나중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자칫 아이의 행복이 우선적인 기준이 아닌 자신의 대리 만족을 위한 욕구의 투사 대상으로써 아이를 바라보게 됩니다. '내가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해서 하고 싶은 공부를 맘껏 못했으니 우리 아이는 그런 걱정 안 하고 마음껏 공부를 할 수 있게 하자'고만 욕심낸다면 정작 아이가 공부 대신 다른 것을 하겠다고 했을 때 흔쾌히 허락하고 지원하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내 대신' '내가 못한' 공부를 해야 하니까요. 이런 투사는 아이와 부모 모두를 병들게 합니다. 정말 불행한 일이죠.
다음으로는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이라는 질문은 내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 넓게는 나에게 삶의 의미가 되는 것이라는 포괄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 아이를 어떻게 키우겠다는 다짐이 가장 바라는 것인 부모는 자신에 대한 바로 그것이 없습니다.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없고 나와 다른 존재인 내 아이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기대'를 하게 되고 제가 예전에 했던 포스팅(
관계는 '기대' 때문에 망하고, 불행은 '비교' 때문에 느낀다)에서처럼 부모-자녀 관계를 망치게 됩니다.
칼릴 지브란이 자신의 시(
'자녀는 부모가 키우는 분재가 아니라 스스로 크는 소나무이어야 합니다' 포스팅 참고)에서 말했듯이 부모가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까지 줄 수는 없으므로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원하고 응원하는 것이 참 부모의 역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내 아이가 나와 다른 생각, 다른 꿈, 다른 희망을 품고 있다면 세계적인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 말처럼 다른 북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나와 같은 북 소리를 듣고 같은 박자에 흥을 느끼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다른 리듬을 타는 내 아이를 보는 것도 즐겁고 보람된 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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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도 아라타의 역작 '영원의 아이(永遠の仔, 1999)'를 북 크로싱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읽은 심리 문제를 다룬 소설 중 단연코 최고라고 생각하는 책입니다. 하드 커버로 된 두 권짜리 소설인데 분량이 어마어마하지만 굉장히 빠르게 읽히는 책입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속도감있게 다루면서도 진지함을 잃지 않은 보기 드문 작품이죠.
부모-자녀 관계로 상처받은 분들과 이런 분들을 현장에서 만나는 임상가들은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이 책이 어떤 책인지 궁금하신 분은 '소개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국민도서관 이용)가 적용됩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의 북 크로싱 방법에 있는 내용대로 하시면 됩니다.
* 월덴 3의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하는 방법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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