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자 상담자에게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 능력으로 간주됩니다.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상담 및 심리치료적 접근 방법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이죠. 그만큼 상담에서는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 수련 과정에서 공감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애도 많이 쓰고 공감을 잘 하는 상담자는 실제 상담에서 유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공감이 잘 안되는 상담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제가 그렇습니다.
지금도 좀 그런 편이지만 제가 처음 상담을 하던 당시에도 저는 내담자가 하는 말을 들으면 내담자가 갈등을 겪은 상황이 정확하게 머리에 그려지고 왜 힘이 든건지 감이 오지만 공감만큼은 도무지 잘 되지를 않았습니다.
공감이 잘 안 되니 아무래도 내담자의 말에 반응하는 것이 서툴게 됩니다. 상담이 종결된 이후에 내담자가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한번도 안 해 주시더라는 불평 아닌 불평을 듣게 되기도 하고, 2년 이상 상담을 하고 있는 내담자가 오늘은 선생님이 제 마음을 알아주시는 것 같아서 기쁘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듣게 되기도 합니다(사실은 아직도 좀 당혹스러워요;;;).
내담자에게 공감을 잘 못하는 건 상담자에게 큰 결함이라고 배웠기에 고민을 많이 했더랬습니다. 어떻게 하면 공감을 잘 할 수 있을까.... 나도 상담을 받아 봐야 하나, 예술을 자주 접하면 마음이 좀 열릴까(실제로 이건 효과가 좀 있습니다~) 등등.
많은 내담자들이 자신의 장점을 보지 못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성격, 습관, 대인 관계 기술, 외모 등을 고치려고 집착하는 것처럼 저 또한 공감을 못하는 제 자신만을 탓하면서 많은 시간을 낭비했죠.
그러다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공감이 그렇게 안 되는데 왜 나는 내담자의 입장과 갈등의 이유, 의사 결정의 중요도와 우선 순위가 도표를 그리듯이 자동적으로 번호가 매겨지면서 정리가 되는건지.... 왜 어떤 내담자가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말끔하게 정리되고 혼란이 가라앉아서 좋아요 라고 말한 건 놓치고 있었던 것인지...
상담에는 머리와 마음이 모두 필요하지만 머리가 더 발달한 상담자가 있고, 마음이 더 발달한 상담자도 있는거지요. 머리가 발달했다고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그랬다면 상담자가 되지도 못했을 겁니다)
결정적으로 저는 제 TCI 결과표를 보고 나서 왜 공감이 잘 안 되는지, 그런데도 왜 상담자의 일을 하고 있을 수 있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 TCI 기질 유형은 LLL유형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Schizoid 유형이죠. 점수대가 39-38-35T이니 점수도 꽤 극단적인 편입니다. LLL 유형의 특성 상 다른 사람에게 별 관심이 없으니 그 사람에게 진정한 공감을 하는 게 어려운 겁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어떻게 상담이란 걸 하고 있느냐 하면 제 성격 유형이 HMH 유형이거든요. 연대감 차원의 백분위 점수가 65.4 정도 되니 관계 맺기가 어느 정도 되는 것이죠. 게다가 성격의 기질 조절 기능이 잘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Schizoid 기질이 병리적인 방향으로 활성화되지도 않고 잘 통제되고 있고요.
그래서 저는 제가 머리 80, 마음 20 정도로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담자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예 공감이 안 되지는 않으니 부족한 공감 능력은 부족한대로 인정하고 그보다 특화된 분석 능력을 강점으로 활용하는 상담자가 되어 내담자를 돕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제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인정하다보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이야기가 길었습니다만 이 포스팅에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머리와 마음을 자유자재로 잘 사용하는 균형잡힌 상담자는 그리 많지 않으니 본인이 공감을 잘 못하는 상담자라며 자책만 마시고 강점 영역을 잘 찾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내담자를 도울 수 있다는 겁니다.
저처럼 공감에 서투른 상담자 선생님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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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가 자신이 받고 있는 고통을 토로하면서 눈물을 흘릴 때 감정의 동요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 상담자는 거의 없을 겁니다.
그래서 티슈를 뽑아서 건네주고 싶기도 하고 정말 힘드실 것 같다고 위로를 건네고 싶기도 하고 때로는 상담자의 윤리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안아주거나 어깨나 등을 토닥이면서 힘을 주고 싶기도 할 겁니다.
그런데 상담자가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하는 건
상담자는 내담자를 위로하려고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모두
위로를 공감과 착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입니다.
설사 상담자가 위로를 할 수 있다고 해도 그런 어설픈 위로가 도움이 된다면 내담자는 굳이 그 아까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상담자를 찾지 않았을 겁니다. 가족이나 친구들도 그런 위로는 충분히 제공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위로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기 때문에 전문가를 찾아온 것이고 상담자는 그런 내담자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니 티슈를 뽑아서 내담자의 눈물을 닦아줄 그 시간에 마음으로는 내담자의 힘든 마음을 공감하고 마음의 흐름을 충실히 따라가면서 머리로는 냉철하고 명확하게 내담자가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된 원인,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 이러한 문제의 기저에 다양한 인지 오류나 역기능적 신념들이 있지 않는지 탐색해야 합니다.
위로는 가족, 친지, 친구, 종교인에게 맡겨두세요. 상담자가 할 일은 위로가 아니라 공감과 분석의 이중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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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에서 상담자가 내담자가 하는 말을 분석하고 어떻게 개입을 해야 할 지 방법과 시점을 찾아내는 것은 당연히 중요합니다. 상담은 단순한 수다가 아니니까요. 제대로 된 도움을 주기 위해 상담자는 항상 최대 속도로 두뇌를 회전시켜야 합니다.
거기에 내담자가 하는 말에 공감을 하려면 내담자의 감정선을 잘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오감을 곤두세우고 초집중하여 내담자의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그래서 흔히들 공감과 경청이 한 몸처럼 붙어 다닌다고 합니다.
그런데 내담자가 하는 말을 분석하는 것과 공감을 위해 내담자의 감정 흐름을 따라가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물론 둘 다 중요합니다. 숙련된 상담자는 이 두 가지 새를 모두 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background에서는 내담자가 하는 말의 내용을 분석하면서 동시에 내담자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죠. 하지만 이 경우에도 감정에 대한 공감이 먼저입니다. 즉 background에서 감정에 공감하고 전면에서 인지적으로 내용 분석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앞에 앉은 상담자가 자신의 말을 분석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내담자도 자신이 하는 말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검열하게 됩니다. 그러면 진정한 소통이 일어나지 않고 상담자가 내담자와 전략 싸움을 하게 됩니다. 소모적인 밀고 당기기의 시작이죠.
특히 분석과 공감을 한꺼번에 할 수 없는 초보 상담자는 분석보다는 공감에 더 치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초보 상담자는 자신감이 부족한 상태에서 내담자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걸 줘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분석만 하려고 애씁니다. 상담 경험이 부족한 초보 상담자가 분석에만 치중하게 되면 나타나는 전형적인 결과는 임의 탈락입니다.
그러니 분석과 공감을 한꺼번에 하는 것이 어려울 땐 공감만 붙잡으세요. 경험이 쌓이면 분석은 자연스럽게 하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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