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저는 도박 중독이 고칠 수 없는 병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씀부터 드려야겠습니다.
도박 중독은 분명히 힘든 싸움을 해야 하는 병이고 치유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당뇨병처럼 평생을 조심하며 살아야 하지만 결코 불치병은 아닙니다.
그러니 도박은 손목을 잘라도 못 끊는다는 일반적인 속설이나 어디서 주워들은 주변 사람들의 실패 경험만 믿고 도박 중독은 가망이 없는 병이라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비전문가들의 말은 전혀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특히
'도박 중독은 과연 불치병인가'라는 글에서 강조해서 말씀드렸듯이 도박 중독이 나을 수 없는 병이라고 생각하는 치료자는 도박 중독자와 그 가족에게 더 이상의 해악을 끼치지 말고 한시라도 빨리 이 바닥을 떠나시기 바랍니다. 그런 약해빠진 정신 상태로는 도박 중독과 싸울 수 없으니까요.
어느 정도 도박 충동과 싸우는데 익숙해지고 일상 생활도 복구가 된 도박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도박 중독이 치유되었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지?'
치유되지도 않았는데 혼자 착각해서 상담을 중단했다가 재발하면 어쩌나 싶어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렇다고 평생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언젠가는 상담을 종결해야 하는데 대체 그 시점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가족들이라면 도박 중독의 가장 큰 특징 두 가지인 '거짓말'과 '무책임'이 도박자에게서 사라져서 매사에 진실하고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면 어느 정도 도박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걸 알 수 있겠지요.
그런데 도박자에게도 그걸 알 수 있는 몇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첫째. 도박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도박 중독은 도박자의 기억 깊은 곳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도박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도박 생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것을 기대하면 안 됩니다. 대신
도박 생각을 유발하는 도박 관련 자극이 없으면 도박 생각이 나지 않는 상태는 가능합니다. 상담을 종결하고 몇 달 만에 추후 상담을 받으러 온 도박자는 그 동안 전혀 도박 생각이 나지 않다가 상담 예약한 날짜가 되니 도박 생각이 나더라고 보고하곤 합니다.
둘째. 도박에 심하게 중독되었던 당시에는 도박 생각이 나면 도박을 하고 싶은 강한 갈망에 시달리고 그 갈망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도박을 하곤 했지만 도박 중독이 치유되면
도박 생각이 나더라도 충동이 거의 일어나지 않고 갈망이 생겨도 아주 손쉽게 이겨낼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쉽게 말하자면 도박을 할까 말까 하는 갈등이 생기지 않는 것이죠.
셋째. 치유 이전 혹은 치유 과정 중에 있는 도박자라면 가족의 의심이나 잔소리, 간섭에 의해서도 감정이 쉽게 흔들리고 에라 모르겠다 이렇게 의심받으면서 사느니 차라리 도박을 하면서 내 맘껏 살아보자 하는 고민을 잠시라도 하겠지만 도박 중독이 치유되면
가족이나 주변 사람의 어떤 말과 행동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초연합니다.
세 가지 기준 모두 마음의 평정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세요. 도박 생각이 나지 않는 것도, 도박 충동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도, 가족의 의심이나 간섭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도박 중독 치유의 기준이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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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자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마음으로만 미루어 짐작하는, 정작 도박자의 가족이 상담자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도박 중독이 과연 나을 수 있는 병인가요?"입니다.
대중 매체는 연신 도박 중독이 불치병이며 몇 십년이 흘러도 재발하는 무서운 병이라고 도박 중독의 폐해를 강조하는 선정적인 나팔을 불기 바쁩니다. 단도박 모임에서도 완치라는 말을 쓰는 걸 두려워합니다. 도박 중독은 평생 관리해야 하는 병이니 단도박 모임을 절대로 빠지면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하물며 도박 중독이 과연 나을 수 있는 병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는 치료자들도 있습니다.
심리학에는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라는 것이 있습니다.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와 반대의 개념으로 사용하는 용어인데 희망을 잃거나 더 나빠질 것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실제로 병이 더 악화되거나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는 걸 말합니다.
도박 중독 치료에도 어김없이 노시보 효과가 작용합니다. 당연히 완치된다고 생각해도 치료하기 쉽지 않은 병이 도박 중독인데 절대로 완치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제대로 된 치료 효과가 나타날 리 만무하죠.
단도박 모임에서 자만심을 경계하기 위해 도박 중독을 완치가 없는 병이라고 이야기하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초심자와 그 가족을 좌절시키고 싸워보기도 전에 자포자기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아셔야 합니다. 첫 단도박 모임에서 절망적인 이야기를 듣고 더 좌절했다고 보고하는 가족들이 생각보다 많거든요.
제가 볼 때 단도박 모임을 그렇게 오래 다니면서도 여전히 불안하고 자신을 믿지 못하는 협심자는 단도박 모임의 효과가 없어서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 도박 중독이 절대로 나을 수 없는 병이라고 단정짓고 지레 겁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에 다른 글(
'단도박이 아니라 탈도박이다' 참조)에서 저는 단도박이 아니라 탈도박이라고 부르자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도박 중독 치유는 도박을 하지 않는 단도박 기간을 단순히 연장하거나 도박을 하기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관과 마음가짐으로 무장한 전혀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탈도박하게 되면 더 이상 재발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정한 치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도박 중독은 절대로 불치병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도박 중독은 분명히 나을 수 있는 병입니다. 재발에 주의해야 하는 병임에는 틀림없지만 두려움에 떨고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도박 중독이 불치병이라고 믿는, 그래서 평생 재발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치료자는 도박 중독자와 그 가족을 상담해서는 안 됩니다. 구원이 없다고 믿는 목사가 구원에 대해 설교하면 되겠습니까? 자살 관련 분야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 Paul Quinnett이 한 말, "자살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상담자는 자살하려는 사람을 상담하지 마라"는 말은 도박 중독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도박 중독이 나을 수 없는 병이라고 믿는 치료자는 도박 중독자와 그 가족을 상담하지 마세요! 그것이 오히려 도박자와 가족을 돕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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