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그에 따른 불평등의 대물림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다루고 있는 사회학자 아네트 라루의 '불평등한 어린시절(Unequal Childhoods, 2003)'을 북 크로싱합니다.
미국사회에서 부모의 사회적 계층과 지위, 그에 따른 경제적 수입에 따라 '집중 양육 방식'과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로 양육 방식이 나뉘고 그러한 양육 방식이 아이들이 사회 생활을 위해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출판 당시 미국에서 각종 상을 휩쓴 화제작이었는데 아쉽게도 제 기대에는 못미치는 책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실정과 맞지 않더군요.
저자가 피에르 부르디외의 이론적 모델을 실증적으로 연구했다고 밝히고 있듯이 사회학적 관점에서 불평등의 대물림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궁금한 분들에게만 추천합니다.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한 분들은 '소개글'을 참고하시고요.
이 책은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국민도서관 이용)가 적용됩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의 북 크로싱 방법에 있는 내용대로 하시면 됩니다.
* 월덴 3의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하는 방법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4122
★★☆☆☆
이미지 출처 :
YES24
얼마 전 포스팅을 통해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의 소득 불평등 이슈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사회학자 아네트 라루가 쓴 이 책은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불평등의 대물림을 다루고 있어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아네트 라루는 이 책의 구성을 크게 3부로 나눠 1부. 일상생활 속 활동, 2부. 언어 사용, 3부. 가정생활과 공공기관이라는 세 개의 영역에서 부모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아이들이 어떤 불평등에 노출되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아네트 라루는 자연주의적 관찰 기법을 사용한 연구를 통해 12가구(백인 가정 6가구, 흑인 가정 5 가구, 다인종 결합 가정 1가구)의 9세 및 10세 아동을 1개월 동안 20여 차례 방문하여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이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모습을 관찰, 기록했습니다.
아네트 라루는 이 책에서
아동 양육의 유형을 크게 '집중 양육 방식'과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 방식으로 구분하고 부모의 사회적 계층과 지위, 그에 따른 경제적 수입에 따라 양육 방식이 결정되고 그러한 양육 방식이 미국사회에서 아이들이 성장해 나가는데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는데 압도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합니다. 결론적으로 중산층 이상 부모들이 택하는 집중 양육 방식이 미국 사회에서는 아이들에게 큰 혜택으로 작용한다고 보는 거지요.
이 책은 2004년 미국사회학회의 '윌리엄 J. 구드 가족사회학 최우수도서상', '문화사회학 부문 최우수 도서상', '아동.청년기 부문 공로상'을 휩쓴 화제작인데 개인적으로는 평판에 못 미치는 아쉬운 책이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실정과 맞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집중 양육 방식을 택한 우리나라 중산층의 경우, 이 책에 나온 미국 중산층과 달리 자녀의 감정이나 의견, 생각을 이끌어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죠. 우리나라 중산층의 집중 양육 방식은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기보다는 지식의 집중적인 습득만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토론을 권장하는 문화도 아니고요. 이는 아마도 미국이 개인주의 중심의 사회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집단주의 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집중 양육 방식의 내용도 크게 다른데 우리나라는 수많은 학원을 뺑뺑이 돌리는데 모든 시간과 재정적 자원을 사용하는 반면 미국의 중산층은 축구, 발레, 수영, 음악 레슨 등 학교 밖 활동에 모든 노력을 쏟아붓더군요. 미국의 중산층은 자녀들이 개인의 권리 인식, 협동과 단결력, 창의력을 극대화할 수 있게끔 뒷바라지합니다. 우리나라 중산층은 별로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아쉬운 책이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미국 사회에서 서민층과 빈곤층 아이들이 자연적 성창을 통한 성취 양육 방식을 통해 얻게 되는 가족 구성원 사이의 따뜻한 정과 우애마저도 우리나라의 아이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절망적으로 느껴지더군요.
저자 스스로 피에르 부르디외의 이론적 모델을 실증적으로 연구한 책이라고 밝히고 있듯이 사회학적 관점에서 미국 사회의 사회 계층에 따른 불평등이 어떻게 대물림되는지가 궁금한 분들(아마도 사회학도?)을 제외하고는 추천하기 어려운 책입니다.
닫기
* 중산층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자녀 양육의 특징 중 하나는 부모와 아이 사이의 토론이다.
* 중산층 부모들은 자녀 교육과 관련해 아이의 집중 양육을 강조하는 문화적 논리를 채택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노동자 계층과 빈곤층 부모들은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를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의 가장 큰 차이는 사회 계층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층의 차이, 그리고 이 차이를 가정생활 및 자녀 양육에서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아이들로 하여금 다른 세계와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보는 방식을 결정한다.
* 부모가 집중 양육 전략을 택한 아이들은 자기 권리에 대한 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를 지향하는 양육 전략을 택한 아이들은 자신이 경험한 교육 기관에서 거리감과 불신, 혹은 속박 따위를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 이번 연구에 참여한 교사들은 대부분 집중 양육 방식을 지지했다.
* 중산층 가정 아이들이 형제에 대한 적대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과 달리 노동자 계층이나 빈곤층 아이들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노동자 계층과 빈곤층 가정에서는 연대 의식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에 담긴 문화적 논리는 어른의 세계와 구별되는 아이들만의 자율적인 세계를 그리고 그 세계 속에서 아이들 스스로 자유롭게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경쟁력을 개발하는 과정을 인정하는 데 있다.
* 집중 양육 방식에 포함되는 '놀이 활동'은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 방식의 '자발적 놀이'에 비해 조직 사회에서 좀 더 큰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중산층 가정에서 아이들의 활동은 부모의 관심 대상이다. 집중 양육이라는 이름의 아동 양육 전략에서 부모의 참여는 중요한 요인이다. 이에 비해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의 아동 양육 전략에서는 양육 문제에 관해서는 관리와 통제가 이뤄지지만, 놀이에 관해서는 아이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차이가 있다. 이런 이유로 노동자 계층 및 빈곤층 가정에서는 어른과 아이들의 세계에 분명한 구분이 있으며 함께 놀아달라는 아이들의 요구는 불필요하거나 심지어 성가신 일로 치부되었다.
* 중산층 부모는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이 경우 부모로서의 위치)에서 비롯된 권위를 이용하기보다는 협상이라는 수단을 통해 아이의 인격을 존중하며 소통하는 방법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언어 영역에서 집중 양육 전략을 사용하는 것의 단점도 있다. 중산층 아이들은 부모에게 배운 대화의 기술을 사용해 부모의 가르침을 거스르려는 경향을 보인다.
* 중산층 가정의 엄마들은 적극적으로 아이가 겪는 문제 상황에 개입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시도 자체만으로도 자녀에게 '거절에 굴복하지 않고' 교육 기관의 요직에 앉아 있는 인물에게 압력을 행사해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방법을 직접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반면 노동자 계층 및 빈곤층 부모들은 주로 교사나 전문가에게 자녀 교육의 주도권을 전적으로 넘겨주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주도권 포기는 이 계층의 부모들이 자녀의 교육 문제에 대해서만 보이는 특징적인 현상으로, 다른 일에 대해서는 이들도 쉽사리 주도권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 역설적이게도 이 연구에 참가한, 매우 바쁜 스케줄에 따라 생활하는 중산층 아이들의 경우 자신이 참여하는 활동에 지루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잦았다. 하지만 비교적 여유로운 일정을 따르는 노동자 계층 및 빈곤층 아이들은 자신의 일정을 지겹다고 느끼는 일이 거의 없었다.
* 전문 용어를 불완전하고 부정확하게 이해하는 모습은 우리가 관찰한 여러 노동자 계층 및 빈곤층 가정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이는 이들 계층 가정의 부모가 교사나 의사 같은 전문가의 설명과 지시를 수동적으로 따르게 하는 주요인 중 하나였다.
* 노동자 계층이나 빈곤층 가정의 부모가 학교의 정책에 불만을 가지고 있음에도 공개적으로 항의하지 않는 데에는 한층 복잡한 이유가 있다. 학교는 아동 문제와 관련한 정부 정책을 대변하는 공식 기관이고, 이러한 권한에 기초해 그들은 특정 학생이 가정에서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판단될 경우 문제에 개입해 부모와 아이를 떼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계층에 따라 아동 양육 방식에 차이가 나는 요인으로는 첫째. 부모의 경제력 차이를 들 수 있다. 둘째. 교육적 자산의 차이 역시 중요한 요인이다. 셋째. 부모의 직업과 일하는 조건(특히 업무의 복잡성 같은 요인)도 그들이 아동 양육과 관련해 특정한 시각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 부모 자신의 사회적 계급이 변화하면 양육에 대해 갖는 그들의 생각이나 방식도 달라진다.
* 미국인은 자신들이 계급으로 철저히 나뉜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대부분의 미국인이 자신을 '중산층'으로 여기는 이유다. 사회 분화에 대해 물어보면 많은 사람이 곧바로 인종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만, 정작 '사회 계층'이라는 단어는 대다수 미국인의 사전에는 없는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옛날과 달리 요즘은 빈곤을 퇴치해야 한다는 생각이나 사회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 부르디외는 서로 다른 사회적 위치에 놓인 개인은 서로 다른 방식과 형태로 사회화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회화는 아이들에게 (훗날 성인이 되어서까지) 무엇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인지에 대한 기준이 된다. 부르디외는 이를 '습관(habitus)'이라는 용어로 정의했다.
* 인종이라는 요인은 분명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 방식은 사회 계층이라는 요인이 미치는 영향만큼 구체적이지 않았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 책으로 향후에 국민도서관에서 대여하실 수 있습니다.
태그 -
노동자 계층,
불평등,
빈곤층,
사회 계층,
사회학,
아네트 라루,
인종,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 방식,
자연주의적 관찰 기법,
중산층,
집중 양육 방식,
피에르 부르디외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4093
★★★☆☆
이미지 출처 : YES24
제목만 보면 왜 80%의 노동자 민중이 20%의 자본가들에게 지배당하는지 그 이유를 명쾌하게 알려줄 것만 같은 이 책은 세상을 바꾸는 글쓰기를 이야기하는 전직 버스기사이자 이 책의 대표저자인, 안건모 선생의 글 중 일부를 책 제목에 사용했을 뿐 사실 상 월간 <작은 책>이 창간 12주년, 87년 노동자 대투쟁 20년을 기념하여 기획한 '작은 책 스타'라는 제목의 강좌 내용을 엮은 책입니다.
역사(박준성), 여성(이임하), 글쓰기(안건모), 경제(정태인), 교육(홍세화), 노동(하종강) 등, 여섯 개의 글 꼭지를 갖고 사회 노동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고수들이 수려한 말빨(?)과 그에 못지 않은 진심과 열정을 담아 강의한 내용을 한데 모았습니다.
강의 내용을 그대로 모아놓은 것이기 때문에 입말 그대로 풀어놓아 읽기가 참 편하고 쉽습니다. 읽는 족족 눈에 착착 붙습니다. 그리고 참 재미있습니다. 제목만 보면 왠지 빨갱이물이 줄줄 흐를 것 같은 이 책은 읽다보면 귀중한 내용들이 많아서 왜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 목록에 들어갔는지 이해가 확실히 가는 책입니다. 역시~
정태인, 홍세화 선생은 그래도 좀 눈에 익은 분들이지만 다른 분들은 처음 보는데 다들 각 분야에서 한 자락 하는 분들임에는 틀림 없어 보입니다. 특히 하종강 선생의 글은 정말 일독의 가치가 충분합니다.
하종강 선생의 강의 중 인상 깊은 대목 하나를 소개합니다.
"남보다 좋은 직장에 취업하거나 일찍 승진한 사람들이 '인생에 승리했다'는 자부심을 느낄지언정 죄 없이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는 것에 대해 열등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그것은 옳은 게 아닙니다"
추천 대상은 그 잘난 대한민국 1%에 들 가능성이 전혀 없으면서도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불쌍한 서민들입니다.
덧. 그런데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 지 아세요? 제 생각에는 둘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20에게 완전히 세뇌되어 (주제넘게도) 자신이 이미 20이라고 믿거나 입 닥치고 주변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살면 20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 하나요, 다른 하나는 자신이 80인 것은 알고 있으나 20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누군가 희생해야 하는데 그 댓가를 잘 알고 있고 자신이 치르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20에게 굴복하면서 구차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경우일 겁니다.
덧2.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1616
★★★☆☆
이미지 출처 : YES24
나이를 먹어가면서 저도 모르게 점점 정치적, 사회적 인간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런 고전을 읽게 될 줄은 추호도 생각 못했거든요. ^^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기본적으로 평등하게 태어나는 인간이 왜 불평등에 시달리게 되었는지에 대해 루소가 쓴 논문을 책으로 출판한 것입니다.
루소는 이 논문의 1부에서 평등하게 살았던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고 나서 2부에서는 인간이 자연을 떠나고 인위적인 힘이 개입되면서 불평등하게 되어가는 과정을 기술합니다.
루소에 따르면 인간이 홀로 자급자족을 하던 세상에서는 자신의 생명을 지속적으로 보존하려는 자연스러운 충동과 같은 종의 구성원이 고통받는 것을 보고 느끼는 측은지심(연민)이라는 두 가지 특징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개체의 수가 늘어나고 공동체가 생기면서 위계구조와 욕심, 착취가 생기면서 불평등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불평등은 1단계. 법과 소유권의 설정(네 땅 내 땅을 구분하는 시대), 2단계. 행정권력의 제도화(보호를 받으려면 세금을 내라고 강요하는 사회), 3단계. 합법적인 권력에서 독단적인 권력으로 변화하는 과정(왕권주의와 세습)을 통해 진행된다고 합니다.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에 의한 종속 단계가 더 추가될 수 있겠지요.
이 논문의 약점은 루소가 자연인이 사회적인 존재로 변한 원인을 우연으로 돌리고 있다는 점인데 말미에서 루소가 한번 잃어버린 순수성은 다시는 회복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우연에 기대는 것 외에는 불평등을 되돌릴 방법이 없다는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게 됩니다.
간단히 생각한다면 아나키스트처럼 모든 정부와 사회제도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것이 자연인 시대로 돌아가는 방법이 될 수 있겠습니다만 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 옳은 방법 같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불평등을 타파할 수 있을까요? 루소는 그에 대해 특별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고 논문을 읽는 독자 모두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예상했지만 역시나 답은 없네요. ㅠ.ㅠ
역자 중 한 사람이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진영 대표로 출마했던 주경복 교수입니다. 주경복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릅니다만 이 책을 번역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은 마음 속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
분량이 200페이지에 달하지만 문고판이라서 읽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습니다. 사상서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번역이 잘 되어 있어 읽는데 크게 무리가 없네요.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더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자료들을 소개하고 있는 점도 마음에 드는군요.
덧.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나 인간이란 종은 모이기만 하면 조금이라도 잘난 놈이 못난 놈을 억압하고 손쉽게 욕심을 채우려는 탐심이 발동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각각 따로 떼어 놓으면 평화롭고 아무런 문제도 못 일으키는 것을... 역시나 혼자가 편해요(결론이 왠지 이상하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1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