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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걸출한 정신분석가 앤서니 스토의 역작인 이 책은 고독의 미덕을 알려주는 고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맥이 곧 능력이며, 대인 관계 맺기는 사회 생활의 기본이고, 폭넓은 관계가 아니면 문제 있는 걸로 보는 요즈음의 사회에서 스토는 고독이야말로 창의성의 원천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제가 기대했던 책은 아니었습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고독은 'A Return to the Self'의 필수 조건이며 외로움이라는 것이 모든 인간이 반드시 느끼게 되는 감정이 아니라는 걸 역설하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스토는 수많은 정신분석학자, 예술가, 철학자들이 말년에 고독 속에서 자신의 일에 열정을 쏟아붓고 몰입하면서 행복을 느꼈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고독의 가치가 창의적 결과물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스토가 고독을 변명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고독은 자신과의 대화이고 그 대화를 통해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해주는 통로인데 스토는 그런 시각으로 고독을 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초반부에서 다루었던 '지금 우리가 고독해야 하는 이유', '혼자 있는 능력', '혼자서만 느낄 수 있는 충족감' 정도만 다루었으면 좋을 법한 책이어서 더욱 아쉽습니다.
기대와 많이 달라서 그런지 마음으로 추천드리기는 어렵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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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융은 자기 분석 과정을 통해 청년의 임무는 가족에게서 벗어나 세상에서 자리를 잡고 자신의 차례가 되면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인 반면, 중년의 임무는 한 개인으로서의 자신만의 특성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것임을 확신했다.
* 위니캇은 아이가 처음에는 엄마가 가까운 곳에 있는 상태에서, 그 다음에는 엄마가 가까운 곳에 없는 상태에서도 혼자 있는 능력을 키울 때 자기 내면의 진짜 느낌과 접촉하고 그것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능력 또한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엄마가 가까운 곳에 있을 때 그리고 나중에는 엄마가 없을 때도 스스럼없이 아이가 편안하게 혼자 있을 수 있어야만 다른 사람의 기대나 강요에 관계없이 자신이 정말로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혼자 있는 능력은 자아 발견과 자아실현, 즉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욕구와 느낌과 충동을 인식하는 것과 관련된다.
* 매슬로우는 창의적인 태도와 절정 경험을 하는 능력이 다른 사람에게서 자유로워지는 것, 그리고 신경증이라는 문제로부터, "어린 시절의 오랜 여파"로부터, 구속과 의무와 두려움과 희망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는 것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 나는 '치료의 개념'이라는 글에서 정신분석을 할 때 신경증 환자의 회복을 앞당길 수 있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요소는 환자가 자신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사고 체계를 갖추는 것이며, 두 번째 요소는 환자가 다른 사람과 유익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두 가지 요소 모두 우리 삶의 일부이지만, 성향에 따라 어떤 사람들은 주로 인간관계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 하며 또 다른 사람들은 흥미, 믿음, 사고의 형태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 한다.
* 원시 사회에서는 개인적인 의견이나 다양한 견해가 좀처럼 고려되지 않았다. 집단 연대 유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집단에서는 독창성이 질식당할 수 있다. 브루노 베델하임은 키부츠(이스라엘의 생활공동체)에서 자란 이스라엘의 청소년들을 연구했고, 집단 감정의 공유에 높은 가치를 두는 환경이 창의성을 해친다는 결과를 얻었다.
* 융은 프로이트의 태도에 대해 주체가 객체를 찾고 객체를 향해 움직이는 것으로 인식하는 외향적 태도라고 명확하게 설명한다. 반면 아들러는 주체가 자율과 독립을 확립할 필요가 있고 따라서 주체는 객체에게서 멀어진다고 생각하는 내향적 태도를 취한다.
* 다른 사람들에게 과잉 적응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외향적인 사람은 고독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회복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또한 어린 시절의 분리되고 고립된 경험 때문에 제대로 내면의 성장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위안을 얻는다는 얘기도 했다. 이제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창작 과정은 개인이 우울증에 짓눌리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도 할 수 있음을 말하려 한다. 창작 과정은 상황을 자신의 힘으로 지배한다는 느낌을 되찾게 해주며, 사별로 자아에 상처를 입거나 인간 관계에서 자신감을 잃고 우울증에 빠질 때 어느 정도는 회복할 수 있게 해준다.
* 다카우와 부헨발트의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었던 베텔하임은 그곳에서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삶을 포기하고 죽은 수용자들은 개인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포기한 사람들, 그들의 인간성을 박탈하고 그들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이들의 목적에 굴복한 사람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 애정 어린 유대 관계를 이루어가는 것 뿐만 아니라 대상에 관심을 갖는 것도 단순히 성 에너지와 목표의 파생물이나 부산물은 아니다. 관심사 역시 세상에 존재하는 대상을 인지하고 정서적인 고리를 형성하는 선천적인 성향의 표현이며 인간 발달의 중요하고 독립적인 면이다.
덧. 이 책은 e-book으로 읽었기 때문에 북 크로싱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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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정신분석 강의를 들을 때 이용승 선생님이 추천하신 책 중의 한 권입니다.
프로이드는 미국 번역자의 의도된, 혹은 의도되지 않았으나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인해 완전히 잘못 알려졌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제입니다.
너무나 많은 정신분석의 개념들이 오역됨으로써 프로이드가 얼마나 위대한 휴머니스트인가를 후대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워 쓴 책이라고, 이 책을 쓴 브루노 베델하임(이 사람 이쪽 분야에서는 상당히 알려진 사람이에요. ^^)은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프로이드 영역본의 문제 중 하나는 정신분석을 지적인 구성체계로 간주함으로써 자신에게가 아니라 타인에게만 적용하는 객관적인 참조 체계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프로이드가 '내성'이 정신분석의 전부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분석을 받는 사람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죠.
프로이드가 만들어낸 '정신분석'이라는 용어 자체도 '영혼'이라는 의미로 지극히 인간적이고 비과학적인 'psyche'와 상반되며 과학적인 검토의 의미가 있는 'analyse'가 결합된 것이죠. 그런데 영역본에서와 달리 프로이드가 사용한 정신분석의 개념은 엑센트가 '분석'이 아니라 영혼을 의미하는 psyche에 놓입니다. 프로이드가 과학이 아니라 영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에서 베델하임은 oedipus complex, id, ego, superego, 꿈, 방어, 억압, 자유연상, 본능 등의 용어들이 얼마나 프로이드가 의미했던 바와 달리 잘못 번역, 이해되고 있는지를 충분한 지면을 사용하며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습니다.
프로이드는 생전에 이런 오역의 문제를 알고 있었으며 정신분석을 정신의학의 하위 범주로 묶으려는 미국의 의사들에게 상당한 혐오감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다고 하네요.
정신분석에 대한 선입견을 깨 부수기에 적절한 책이라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번역의 문제를 다룬 이 책의 번역조차 엉망이라는 겁니다.
정신과 의사가 심리학 전공인 자신의 딸과 함께 번역을 했는데 직역 정도가 좀 심하다 싶을 정도입니다. 12장의 일부(135p)를 따 왔습니다. 한번 보시죠.
"영어 제목과 부제로 만들어진 형태는 프로이드가 어느 정도 주저함을 내보이는 곳에서 확실성을 주장한다. 그의 설명을 따르기가 좀 더 쉬워지고 그의 시도가 독자한테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주저함인데, 그 독자는 자신이 읽고 있는 것이 어려운 문제들과 부딪쳐 보려는 시도라고 느낀다..."
저는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더군요. 그래도 초반에는 좀 나은데 후반부로 가면 거의 대부분 위와 같은 수준입니다. 게다가 오, 탈자도 상당히 자주 눈에 걸리는 것이 교열도 제대로 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의학사는 유익한 책을 많이 내놓는 전문출판사인데 quality 관리를 너무 안 해요. 170페이지 밖에 안되는 분량의 책 값이 8,000 원이라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원서를 읽으시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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