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라도 학원에 가야 한다는 웃기지도 않는 우스개 소리가 익숙하게 들리는 시절입니다. 좁다란 골목에서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그야말로 흙강아지 소리 들어가며 다방구에 비석치기하면서 놀던 풍경은 7080 문화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게 되었지요.
놀이터에서 흙장난이라도 하는 애들을 보기가 어렵고 설사 보더라도 엄마가 멀찍이서 지켜보는 가운데 소심하게 노는 취학 전 아이들 몇몇이 전부입니다.
평일에 자녀들이 TV나 PC 앞에 앉는 걸 호환마마보다 더 싫어하는 부모들 때문에 아이들은 결국 학원에나 가야 친구들을 만나고 엄마 눈을 속이고 잠시라고 PC 방에 들르는 일탈을 감행할 수 있지요.
그래서 학원이나 과외, 학습지 등의 사교육은 아이들에게 익숙한 정도가 아니라 그냥 생활의 일부라고 해도 될 정도로 몸에 배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교육에 과잉의존하면 생기는 장기적인 문제는 만만치 않습니다. 부모들이야 미친듯이 사교육 돌려서(물론 본인들은 다들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 항변합니다. 남들이 다 시키니까 불안해서 남들 하는만큼만 하는거라고 자위하면서요) 소위 명문 대학에 보내놓고는 이제는 성인이니 알아서 하라고 손을 놓지만(물론 자녀가 성인이 되어도 계속 쥐고 흔드는 속칭 헬리콥터 부모들도 만만치 않게 많습니다만), 사교육에만 의존해서 공부하던 애들이 대학에 가면 갑자기 자기 주도성을 갖춘 성인이라도 된답니까?
대학원생을 붙여 전공 과목 과외를 받는 공대생, 전산 수강신청 하나도 제대로 못해 조교에게 (그것도 직접 못해서 부모를 시켜) 대신 해 달라고 부탁하는 의대생(개인적인 경험임)들이 생기는 것이죠.
자기 주도 학습이라는 걸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수강 계획 하나 세우는데도 며칠씩 걸립니다. 어느 정도 대학 생활에 익숙해진 다음에는 혼자서 공부하면 불안하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스펙을 채운다는 미명 하에 다시 토익, 영어회화, 고시학원 등의 학원 뺑뺑이를 다시 시작합니다. 그런다고 근본적인 불안감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죠.
초등학교부터 대학생까지 요즘 애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 "몰라요"라는 퉁명스러운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대답하기 싫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정말 모르는 애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실 학원 다니기 바빠서 그런 거 생각할 시간이 정말로 없습니다. 주어지는 정보를 쑤셔 넣기에도 시간이 모자라거든요.
그러니 안전빵으로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돈 많이 버는, 그럴싸하게 보이는 그런 직장만 찾고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른 채 그냥 저냥 삽니다.
자기 계발이라는 걸 한답시고 손에 잡는 것도 또 스펙 쌓기의 끄트머리일 뿐 그 흔하게 들리는 흥미, 적성에 맞는 건 찾아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나이 먹어서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서 후회하고 다른 인생을 살고 싶지만 모험은 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살던 인생 행로 그대로 가다 죽는거죠.
학생생활상담소에 상담하러 오는 대학생들 대부분이 호소하는 문제는 크게 학교 적응, 대인 관계 갈등, 진로 문제로 나뉘는데 그게 뭐든 간에 사교육 과잉 의존이 상당히 큰 원인 중 하나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교육 의존이 학력 과잉을 만들고 학력 과잉이 무한 경쟁을 만들고 무한 경쟁이 몰개성화와 양극화를 만드는 것이죠.
사교육 의존은 악의 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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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세상에서 우리나라 사람만큼 불쌍한 사람들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모든 일에 열심인데도 노는 법을 잊어버린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일하고 또 일하고, 휴가를 받아서 놀러가서도 일을 생각하는, 일 중독의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일이 없으면 불안하고 존재감을 상실한 것 같은 두려움에 떠는 불쌍한 민족입니다.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잖아요. 풍류를 알고 즐거움을 알고 그야말로 노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민족이었는데...
여행을 많이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제가 만나본 세계의 사람들은 얼굴색이 어떻든, 얼마나 잘 살든 간에 상관 없이 하나같이 삶의 즐거움이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일에 찌들어 살고 있습니다. 아마 일과 돈만 뺏으면 자살해 버릴 사람들이 부지기수일겁니다.
여러분은 '논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부적응', '실패자', '백수'처럼 부정적인 단어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아니면 '즐거움', '재미', '기쁨', '활력'과 같은 긍정적인 단어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저는 단연코 후자에 가깝습니다. 경제적인 여건만 되면 저는 평생 놀고 싶습니다. 놀거리도 많아요. ^^
저는 중학교에 올라가기 전까지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만 던져놓고는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놀러 다녔습니다. 서울에 살았는데도 동네 형들과 함께 뒷산으로 칡을 캐러 다녔고 싸리나무를 일정하게 꺾은 뒤 패를 갈라 칼싸움을 했으며 비석치기,
나이 먹기, 딱지치기 등을 하면서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놀았습니다. 보통 때에는 다방구, 짬뽕(짬뽕공을 갖고 하는 손야구)을 하면서 놀았고 겨울에는 매일 눈싸움을 하면서 놀았습니다.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근심 걱정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즐거운 놀거리가 있었으니까요. 꼬붕도 했고 동네 골목대장도 해 봤습니다. 제 사회 기술과 리더십, 조직화 능력, 상대방의 감정을 읽는 능력,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 창의력은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때 모두 형성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스튜어트 브라운 박사는 정신과 의사로 평생을 놀이 연구에 매달려 온 사람입니다. 그는 몇 달을 굶은 흰곰이 식욕을 누르고 썰매개와 노는 모습, 1966년 텍사스 대학교의 무차별 학살자였던 찰스 휘트먼이 평생 놀이에서 격리된 삶을 살았다는 점 등에 착안해 놀이 연구를 시작했고 그 결과로 현대인의 행복과 성공이 놀이에 달려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로 100% 동의합니다.
이 책에는 놀이가 단순히 시간 때우기가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기술을 익히기 위해 필요한 절대적인 연습이며, 창의력의 원천이며,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는 주장을 아주 설득력있게 하고 있습니다.
놀이를 멈추게 되면 행동은 고정되고 새로운 것과 색다른 것에 관심이 없어집니다. 그러니 당연히 주변 세계에서 즐거움을 얻을 기회도 점점 더 줄어들게 되죠. 일찌기 아이작 아시모프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과학에서 가장 흥미로운 말이자 새로운 발견을 예고하는 말은 '유레카!'가 아니라 '재미있는데?'라고요.
놀이는 그 자체가 목적이고,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입니다. 고유의 매력이 있으며 놀이를 하다보면 시간 개념에서 자유로워지고 자의식이 줄어듭니다. 언제든 즉흥적으로 바꿀 수 있고 한번 빠지면 계속 하고 싶어지죠. 이것이 놀이의 특징입니다.
그렇다면 어른이 된 우리는, 놀이를 잊어버린 우리는 어떻게 다시 '놀 수' 있을까요. 브라운 박사는 다음과 같은 7가지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1) 자신의 놀이 역사를 정리해보자.2) 자신을 놀이에 노출시키자.3) 자신에게 놀이를 허락하고, 초보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 말자.4) 항상 재미있는 일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자.5) 몸을 움직이자. <- 요거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6) 두려움을 떨쳐내자.7) 놀이에 양분을 공급하자.
개인적으로 올해 읽은 심리학 관련 책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미도 있고요.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옛날에 하고 놀았던 놀이들을 떠올리면서 행복했습니다. 언젠가 사람들과 엠티라도 가게 되면 나이 먹기를 다시 해 보고 싶습니다. ^^
놀이를 통해 행복해지고 싶은 모든 분들께 추천합니다. 이 책은 월덴지기의 강력 추천작입니다.
덧. 이 책은 흐름 출판에서 제게 선물한 책입니다. 이 소개글을 작성하는데 있어 아무런 사전 교감도 없었고 댓가도 받지 않았습니다. 제가 책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선물한 것 뿐입니다. 100% 순수한 의도로 작성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흐름 출판에서 선물로 받은 책들에 대해 별로라는 소개글만 올리다가 모처럼 호평을 하게 되니 마음이 좀 가벼워지기는 합니다. 모처럼 대박을 치시겠네요. ^^
덧2.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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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4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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