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하다 보면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는 결국 일 아니면 관계 중 하나로 귀결되고 집단주의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는 관계 문제가 한층 더 심각합니다. 일보다 관계 문제가 더 많거나 혹은 더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 블로그에도 여러 차례 올린 포스팅이 있으니 검색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관계 문제만 떼놓고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에게 섭섭하다는 감정이 깔려 있고 이 섭섭하다는 감정을 느끼는 이유를 탐색하다보면 결국 '내가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즉, 내가 give한 만큼 상대방으로부터 take하지 못했다는 생각에서 비롯하여 섭섭함, 억울함을 지나 분노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마인드가 바로 이 포스팅의 제목입니다.
'모든 관계는 사실 상 계약서 없는 비즈니스 관계이다'
이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도 감정이 해소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모든 관계가 비즈니스 관계라는 명제에 동의할 수 있다면 아래의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나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주고 있는가'
약간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식입니다. '남편이 왜 당신과 결혼 생활을 유지해야 하나', '여친이 왜 당신과 만나야 하는지 이유를 말해봐라' 등등. 상대방이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과 이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이 관계에서 상대방으로부터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앞선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어차피 상대방도 알 바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원하는 것을 모르고 있어도 문제이고 알고는 있지만 일부러 주지 않고 있어도 문제입니다. 당연히 전자가 훨씬 더 큰 문제이고요.
이제 상대방이 나에게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고 그것을 당신이 주고 있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알지만 안 주고 있다면 먼저 주세요. 상대방이 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버티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매우 높은 확률로 상대방도 똑같이 생각하면서 버티고 있을 겁니다.
가끔 긍정적인 강화를 하기 위해 품행 문제를 보이는 자녀에게 칭찬할거리를 일부로라도 찾아보라고 조언하면 칭찬받을 짓을 해야지만 칭찬하겠다고 버티는 어리석은(미성숙한) 부모들이 있습니다. 파괴적 관심 끌기를 하는 자녀에게 그런 고집을 부리는 건 바보짓이죠.
내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고 그것을 충분히 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것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1.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경우 : 직접 알려주거나 잘 안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세요.
2.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으나 일부러 주지 않고 있는 경우 : 헤어지는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상대방의 호구입니다.
갈등이 야기되는 일반적인 대인 관계를 예로 들었지만 비즈니스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비즈니스 관계에서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만 먼저 생각하면 제대로 된 결과를 얻기는 커녕 불공정 계약을 하게 되거나 최악의 경우 사기를 당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 비즈니스 관계를 통해 상대방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왜 나랑 이 비즈니스 관계를 맺으려는 걸까에 대한 자기 객관화), 내가 과연 상대방의 그 needs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윈 윈하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의 반려인과 가정을 꾸리겠다고 결심했을 때 제일 먼저 생각했던 것도 이 친구가 내게 뭘 원하는걸까, 내가 그걸 충족시켜줄 수 있나였습니다. 반려인이 원했던 건 성실함과 책임감이었습니다. 둘 다 제가 충족시켜줄 수 있는 자신이 있었고요. 나중에 물어보니 뭘 해도 가족을 밥 굶게 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승락했다고 하더군요.
그 때의 깨달음으로 저는 지금도 어떤 제안이 들어올 때 상대방이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걸 충족시켜줄 능력이 제게 있는지부터 따져봅니다. 제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는 맨 마지막에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큰 실패 없이 일을 해 온 것 같네요.
뭔가 균형이 맞지 않는 관계 문제로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이 부분을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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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어떤 분야이든 간에 한 분야에서 최고수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타고난 재능과 부단한 노력을 모두 가져야만 가능한 것이니까요. 어떤 분야를 생각할 때 그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면 가히 최고수라 불릴만한 사람이 아닐까요?
하지만 한 분야의 최고수라고 해서 다른 분야에서도 최고수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비슷한 인접 분야라고 해도 그렇죠. 체스 챔피언이 바둑에서도 그런 것은 아닌 것처럼요.
제가 도박 중독 분야에 일가견이 있다고 해도(일가견도 없지만) 도박 중독 분야에서 사용하는 상담 기법이나 전문 지식을 아무 상담이나 심리학 분야에 적용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 될 수도 있고 자칫하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엉뚱한 착각을 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적용'과 '일반화'를 할 때는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프로파일러인 표창원 교수(이렇게 불리는 것을 본인이 원하는지 모르겠지만)의 책인 숨겨진 심리학은 그런 면에서 저는 좀 아니었습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범죄학 강의 콘서트'나 '콘텐츠 강의 워크숍'과 같은 색다른 교육 과정, 그리고 각종 기업 및 단체의 강연 경험을 통해 프로파일링이 반드시 범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님을 배웠고 심리전이 필요한 비즈니스 상황에 적용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저는 솔직히 그런 자신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궁금했습니다.
우선 이 책의 장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부터 먼저 말씀드리면,
현장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백전노장에게서만 풍겨나오는 포스가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단순히 이론적인 내용의 나열이 아니라 실전에서 체화되어 하나가 된 그런 느낌입니다. 단순한 반복 동작의 연마로 '금강불괴'가 된 무림고수처럼 심리학 일반의 기본 이론을 말 그대로 현장에서 구르면서 갈고 닦았기 때문에 나타날 수 있는 높은 완성도가 느껴진달까요.
그래서 프로파일러가 되고자 하거나 혹은 일반 상담자가 되고 싶은 분들에게도 기본적인 상담 기술을 습득하는데 분명히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만 해도 제 생각이 옳은 것임을 확인시켜주는 여러가지 구절들을 통해 도움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다다익선이 아닌 오직 오염되지 않은 원료만을 고집할 것',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습득할 때는 반드시 객관적인 사실, 확인된 사실과의 비교가 병행되어야 한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등등
그러나 출판사가 선전하듯이 이 책이 읽는 이를 비즈니스 현장의 설득과 협상의 달인으로 만들어 줄 수 있냐고 물으신다면 제 답은 글쎄요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범죄 현장에 최적화되어 있을 뿐 내용 자체는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 기술이나 상담 기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일반적인 내용들입니다. 솔직히 협상과 전략 분야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이 정도도 모를거라 생각되지도 않고요.
저는 임상 심리학자가 되기 전에 조직 심리학을 전공했던 사람인데 이 책의 내용은 학생이었던 당시의 제게도 익숙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총탄이 빗발치고 포성이 난무하는 기업 전쟁터에서 이런 정도의 전략이 먹힐거라고요? 별로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CJ그룹의 홍보부사장과 삼성테크윈의 전무가 추천사를 썼던데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정말 이 책에 있는 내용이 기업 전략 측면에서 협상 전략으로 활용할 가치가 충분하냐고.
차라리 이 책의 내용을 좀 더 다듬어서 범죄 프로파일러 양성 교재로 특화시켜 만들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을 저자의 생각인지, 출판사의 판매 전략인지 모르겠지만 일반인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기술 훈련 지침서로 만들어서 좋은 내용을 망쳤습니다.
심리학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이 보면 분명 '오~' 할 수 있는 내용들이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이 책을 열심히 읽는다고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대가가 될 수도 없고 오히려 섣불리 비즈니스 전략, 협상 분야에 써 먹었다간 주화입마에 빠져 살아남기 어려울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책을 추천하는 대상은 범죄 프로파일러와 상담자 지망생들입니다. 한번쯤 읽으면 상담이나 커뮤니케이션 기술 분야의 감을 잡으시는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다만 임상 현장에서 일하는 전문가에게는 특별히 추천하지 않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더더군다나요.
덧. 이 책은 토네이도 출판사에서 읽어보라고 제게 보내준 책입니다. 토네이도 출판사와는 전혀 이해 관계가 없으며 풍림화산님이 저를 균형잡힌(이건 제가 생각해도 전혀 아닙니다;;;) 서평자로 추천을 해 주셔서 엉겁결에 받았습니다. 출판사의 담당자와 통화를 해 보니 읽고 느낀 그대로 이야기 해 달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만 믿고 제가 느낀 그대로 독후감을 올립니다.
덧2.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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