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제가 버마 여행을 하면서 느꼈거나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한 내용입니다. 2주 동안 여행을 했다고는 하나 현지에서 오래 산 것도 아니고 그저 스쳐지나가는 여행자의 주관적인 시각으로 본 것을 정리한 것 뿐이니 버마 여행을 준비하는 분들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음식
: 지금까지 여행한 동남아시아 국가의 음식 중 가장 친숙한 맛이었습니다. 짜거나 지나치게 맵지 않으면서도 담백한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 잘 맞을 것 같습니다. 고수가 들어간 음식도 향이 강하지 않아 그다지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우리나라 한상차림 같은 백반 같은 음식이 있는데다 꼭 나물 반찬 같은 음식도 많습니다. 특히 샨족 반찬 중에 우리나라 김치 같은 음식도 있어서 우리나라 멸치국수에 김치 얹어 먹듯이 샨족 국수(샨 누들이라고 부르는)와 함께 먹을 때 궁합이 정말 잘 맞았습니다. 버마 여행을 하면서 음식 때문에 고생하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그리고 버마도 불교 국가이기 때문에 채식 인구가 많아서인지 어디를 가도 vegetarian 옵션이 있고 채식 전문 식당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대만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채식인들이 여행하기 좋은 나라입니다.
* 종교
: 거의 90%에 이르는 국민들이 불교 신자라고 하니 가히 독실한 불교 국가(개인적인 수행을 강조하는 소승불교)라고 불러도 되겠지만 제가 볼 때는 글쎄요. 그들의 신앙심이야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지만 소위 '낫'이라고 부르는 토착 신앙도 믿고 사당마다 지폐를 주렁주렁 걸어놓은 것도 그렇고 불상에 금박을 덕지덕지 붙이는 모습도 그렇고 사원마다 커다란 시주함을 여기저기 배치해놓고 시주를 독려하는 걸 보면 제게는 거의 기복신앙처럼 보였습니다. 종교에 대한 제 편견 때문에 그렇게 보였을 수 있으니 여행가시는 분들은 직접 보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 버마 사람들
: 뭐랄까요. 처음에는 표정이 별로 없으면서도 빤히 쳐다보는 모습에 속을 잘 알 수 없었지만 먼저 인사를 하거나 무엇을 물어보면 금방 환하게 웃으면서 친절 모드로 바뀝니다.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 아직 많이 개방되지 않은 나라여서 그런지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선량하고 때가 묻지 않은 느낌입니다. 먼저 다가와서 친절을 베푸는 살가움은 없지만 은근히 낯가림이 심한 저로서는 그게 더 편하고 좋았습니다. 물론 양곤에서는 굉장히 다양한 민족이 섞여 살기 때문에 알 수 없지만 만달레이나 바간, 인레 쪽으로 나가면 선량하다는 제 말이 어떤 느낌인지 대번에 와 닿으실 겁니다. 여행 중에 사기 당할까, 호객 당할까 긴장한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호객을 해도 질척거리지 않으며 거절하면 쿨하게 물러납니다.
* 인터넷 환경
: 제가 묵은 숙소가 대부분 고가의 숙소여서 그랬는지는 몰라서 숙소 내 무선 인터넷 환경은 괜찮은 편입니다. 물론 넷플릭스 동영상 재생과 게임을 두 개의 기기로 한꺼번에 하면 속도 저하가 확 느껴지는 수준이지만 간단한 검색이나 블로그 서핑 등을 하는데는 별 지장이 없었습니다. 시내에서도 대부분의 레스토랑이나 카페 등에서는 무선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고 양곤에서는 백화점 등에서도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하기 때문에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길을 다닐 때는 포켓 와이파이나 유심칩을 사용해 와이파이를 사용하는 게 빠르고 편리합니다. 저는 '도시락' 와이파이를 신청해서 갖고 다니면서 구글맵이나 '해피 카우' 같은 비건 레스토랑 앱을 사용했습니다.
* 치안
: 론플에서도 소개되어 있지만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안전한 수준입니다. 여성 혼자서 여행을 다녀도 염려할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전력 사정이 좋지 못해 밤길이 좀 어둡다는 걸 제외하면 사람을 두려워할 일이 없어서 여행 내내 편안한 마음으로 다녔습니다. 소매치기나 기타 강도 등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 환전
: 버마 여행 중 가장 불편했던 부분이 바로 환전인데 현지에서 사용하는 '짯'으로 바꾸려면 100불짜리 미화 신권을 가져가야 합니다. 아무리 깨끗한 돈이라도 구겨지거나 접힌 흔적이 있으면 환전을 거절당할 수 있고 제 경우는 완전히 빳빳한 새돈인데도 발행년도가 2016년이라고 환율을 1불 당 50짯이나 덜 쳐줬습니다(영어도 안 되는데 욕 할 뻔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수준이 있는 호텔에 묵으면서 아예 달러로 결제를 하거나 한국에서 떠날 때 완전 빳빳한 100불 신권으로만 가져가셔야 손해보거나 거절당하지 않고 환전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시내의 사설환전소가 까다롭고 양곤 시내의 은행에서는 그 정도는 아니었으니 이 점도 참고하시고요.
* 동물
: 선진국을 가면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견주를 흔히 볼 수 있지만 버마에서는 반려동물의 개념이 별로 없는 것 같고 그냥 같이 사는 느낌입니다. 거리에 개도 많고 고양이도 많고 사원 근처에는 원숭이, 까마귀, 다람쥐도 많지만 아무도 해코지 하지 않고 어디나 동물들이 먹을 수 있는 밥과 물을 준비해 놨더군요. 대부분의 동물들이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그냥 편하게 삽니다.
* 흡연
: 흡연은 자유로운 편이어서 길을 다니면 담배 연기를 완벽히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실내는 대부분 금연이라서 우리나라 수준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다닐 만 합니다.
* 교통 사정
: 만달레이, 바간, 인레처럼 지방 뿐 아니라 양곤에서도 교통 체계가 엉망입니다. 양곤의 경우는 워낙 차량과 오토바이가 많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교통 신호가 보행 신호로 바뀌어도 좌우 회전 차량이 그대로 진입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좌우를 살피지 않고 길을 건너다가는 차에 치이기 쉽습니다. 또한 현지인들은 아주 넓은 도로가 아니면 교통신호 상관없이 그냥 길을 막 건너다니기 때문에 교통 사고로 인한 사상자가 아주 많을 것 같습니다. 그나마 양곤에서는 대부분 일방도로라서 차량의 흐름을 읽기 쉽다는 게 다행일 정도입니다. 양곤에서 특히 길 건너실 때 조심하세요.
* 전력 사정
: 아직 전력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지 양곤 같은 대도시에서도 정전이 잦은 편입니다. 실제로 여행 중 정전을 자주 경험했고 그 때마다 상점이나 레스토랑에서는 자체 발전기를 가동하는데 이런 발전기의 수가 엄청나기 때문에 한번 정전이 되면 시내 곳곳에서 발전기를 가동하는데 사용하는 기름 냄새와 소음으로 난장판이 됩니다.
* 의사 소통
: 저 같은 여행자들은 주로 관광지를 중심으로 돌아다니고 현지인과 대화를 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의사 소통에 큰 어려움은 없지만 문제는 영어를 좀 하는 현지인들도 발음이 아주 독특하기 때문에 알아듣기가 정말 힘듭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T발음과 R발음을 뭉개면서 발음하기 때문에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소리만으로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단어 수준에서도 못 알아들은 적이 많아서 다시 확인해야 했습니다. 나름 큰 호텔의 리셉션에 있는 직원들도 대부분 그런 걸 보면 제 귀가 이상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보통 여행 초반에는 갑자기 영어를 알아들으려니 귀가 익숙하지 않아 그랬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번 버마 여행에서는 2주 내내 계속 귀를 쫑긋 세우고 긴장해서 들어야 했으니까요.
* 날씨
: 건기에는 비가 한방울도 안 내리는 것 같습니다. 2주를 여행하는 동안 비는 커녕 흐린 날 조차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버마 지도를 놓고 보면 양곤은 남부에 위치해서인지 낮 최고 기온이 33도까지 올라갔고 습도도 높아서 낮에 돌아다닐 때는 손풍기를 사용할 정도로 더웠습니다. 양곤 공항에 내리자마자 모기가 달려들더군요. 양곤에서는 모기 퇴치제와 전자 모기향이 필요하니 준비해가세요. 하지만 바간, 특히 고지대인 인레에서는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뚝 떨어져서 춥다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기온차가 크니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여름에 여행하시더라도 긴팔옷과 바람막이 등을 잘 챙겨가셔야 합니다. 낮에는 햇볕이 강하니 선글래스와 모자, 썬크림도 꼭 가져가시고요.
* 신발
: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도 그렇지만 버마에서는 사원에 들어갈 때 예외없이 무조건 맨발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흔히 말하는 헐벗은 복장도 입장 불가입니다. 입구에서 '롱지'를 빌려주는 사원도 있지만 위생 상태를 보장할 수 없으니 여성분들은 그냥 바지나 긴 치마를 입으시는 게 마음 편합니다. 사원마다 다르지만 입구에 신발을 보관할 수 있는 보관함을 두거나 유료로 맡기는 시설이 있는 곳도 있지만 가능하면 신발주머니를 하나 가져가서 자기 신발을 직접 들고 다니는 걸 추천합니다. 왜냐하면 버마 사원은 보통 동서남북으로 입구가 뚫려 있기 때문에 까딱 잘못하면 다른 방향으로 나오게 되거든요. 그러면 신발을 맡긴 입구를 찾아서 다시 들어가야 합니다. 당해보면 아시겠지만 이거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신발은 플립플랍 같은 가볍고 쿠션이 있는 샌들 종류를 가져가시는 게 좋습니다. 어차피 사원 안에서는 맨발로 다녀야 하고 사원 밖에서는 오래 걸을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무거운 신발을 가져가는 게 의미없고 짐만 됩니다.
* 공항 발권
: 양곤 국제공항은 아니지만 지방 국내공항으로 가면 미리 종이에 리스트를 적어두었다가 본인임을 확인하고 출력해 둔 항공권을 나눠주는 방식이라서(단말기가 없습니다;;;) 그냥 e-ticket을 출력해서 가져가는 것이 확실한 방법입니다.
* 공기질
: 앱으로 검색해 봐도 지방은 공기질 측정을 하지 않는지 양곤을 벗어나면 공기질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는데 일부러 들고 간 휴대용 공기질 측정기로 다니면서 수시로 측정을 해 보니 양곤과 인레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만달레이와 바간은 보통 '나쁨' 수준이고 식사 준비를 위해 나무를 때는 지 아침, 저녁으로는 항상 '매우 나쁨'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니셔야 하고 실제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금방 목이 칼칼해집니다. 지방은 포장도로도 많지 않고 건기에는 비도 내리지 않으니 공기가 좋을 수가 없습니다.
* 가난
: 동물에게도 먹을 것을 아끼지 않고 베푸는 버마 사람들이기에 가난하다고 해도 거지는 없을 것 같았는데 양곤을 벗어나 시골로 내려가면 길가에서 차가 지나갈 때마다 무기력하게 서 있으면서 손을 벌리고 구걸하는 사람들(대부분 노인들)이 많아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런 식으로 하루종일 서 있다고 해도 도움을 받을까 싶은데도 뽀빠산으로 가는 길에 제가 본 것만 줄잡아 수 백명은 되어 보였습니다. 당연하겠지만 빈곤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 건 어려운 것 같습니다.
* 도로 사정
: 양곤 시내는 도로 포장이 잘 되어 있고 외곽 도로도 포장 도로가 꽤 많은 편입니다. 물론 아직 포장이 안 된 흙길도 많지만 계속 포장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서 앞으로 점점 도로 사정이 좋아질 겁니다. 다만 충격적인 건 도로 포장을 모두 사람 손으로 합니다. 롤러 정도를 제외하면 중장비가 전혀 없습니다. 흙과 자갈을 나르는 것, 아스팔트를 녹여서 섞는 것, 그걸 바르는 걸 모두 여성 노동자들의 손으로 직접 합니다. 독한 연기가 나는데도 마스크를 쓰고 일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도 꽤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 교통 수단
: 양곤을 비롯해 어느 곳에서건 호텔에서는 택시를 불러서 이동하는 게 가장 편리(대신 가장 비쌈)하고 길을 거닐 때에는 '툭툭'을 흥정해서 타는 게 여행자들이 가장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입니다. 도시 간에는 시외 버스를 타면 되고(저는 그냥 국내 항공으로 이동했지만) 지하철이나 트램 등은 없습니다. 양곤에서는 시내 버스가 있지만 외곽 지역으로 나가면 픽업 트럭을 개조해서 짐칸에 사람이 차면 출발하는 현지인 전용 교통 수단이 있습니다. 하지만 외국인 여행자가 타기에는 의사 소통도 안 되고 무엇보다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이용을 말리고 싶습니다. 보통은 택시를 불러서 타거나 '툭툭'을 흥정해서 타고 다니게 되실 겁니다.
* 물가
: 예를 들어 외국인들이 주로 묵는 호텔 바로 옆의 레스토랑이나 바, 카페의 물가는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없지만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식당 등의 물가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쌉니다. 예를 들어 양곤 시내에서 우리나라 타임스퀘어 같은 '정션 시티' 내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려면 우리나라와 똑같은 금액을 내야 하지만 현지인 식당에서 음식 3개, 밥 추가, 음료까지 모두 합쳐도 우리 돈으로 5천 원이면 먹을 수 있습니다. 배낭 여행자가 돈을 아껴서 여행하려고만 하면 굉장히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는 곳이 버마입니다. 그야말로 돈 쓰기 나름인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위생
: 론플도 그렇고 한글판 가이드북도 그렇고, 버마를 다녀온 여행자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길거리 음식을 조심하라는 겁니다. 딱 봐도 위생 상태가 아니올시다입니다. 다 먹은 그릇을 설거지할 때 구정물 수준의 물로 씻은 뒤 깨끗한 물로 헹구는 걸 한번도 못 봤습니다. 게다가 나름 비닐장갑을 끼고 과일을 만지는 행상도 그대로 돈을 주고 받은 뒤 다시 그 손으로 과일을 만집니다. 나중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버마의 지폐는 정말 더럽기 때문에 그 돈을 만진 손으로 음식을 만지는 걸 보면 있던 입맛도 뚝 떨어집니다. 론플에서는 카페에서도 찬 음료를 먹을 때 얼음을 빼라는 주문을 하라고 할 정도입니다. 얼음의 위생 상태도 믿을 수 없다는거지요. 현지인 식당을 가실 때에도 비교적 깨끗하고 평이 좋은 곳으로 가시고 길거리 음식은 아예 제외하는 게 안전합니다.
* 돈
: 예전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동전을 사용하지 않고 지폐만 사용합니다. 단위는 '짯'이고 환율은 제가 여행하던 당시 1,000 짯이 750~800 원 수준이었습니다. 지폐는 50, 100, 200, 500, 1,000, 2,000, 5,000, 10,000 짜리가 있습니다. 500 짯 이하는 주로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단위이고 외국인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지폐는 1,000 짯 짜리입니다. 현지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만큼 많이 돌아다녀서인지 소액 지폐의 상태가 아주 좋지 않습니다.
* 시차
: 우리나라보다 2시간 30분 정도 느리기 때문에 시차 적응에 아주 유리합니다. 현지 시간으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시간인 7시나 8시 쯤이면 한국은 9시 30분이나 10시가 되기 때문에 슬슬 졸릴 시간이죠. 씻고 바로 자면 숙면을 취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6시나 7시가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지기 때문(한국 시간으로 8시 30분이나 9시이니)에 일찍 움직이기에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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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한눈에 봐도 딱 나와 비슷한 취향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안타까운 관계의 사람도 있고, 주는 거 없이 미워서 가능하면 안 보려고 애서 피하게 되는 사람도 있죠.
자신의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세요.
1.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 뿐이고 그들 모두를 좋아하며 내 생활이 만족스럽다 -> 이 포스팅 미대상자. 통과!
2. 나와 굉장히 다른 성향의 사람들 뿐이고 그들 모두가 비슷한데 나는 그들이 별로이다. -> 혹시 착취당하고 있나요?
3.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도 서로서로 굉장히 다르다. 아는 사람이 많아서 좋을 듯 하지만 난 여전히 외롭다. -> 마저 읽어주세요.
이 포스팅은 3번에 해당하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나와 맞지 않는 각기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내 주변에 많은 이유가 혹시 내가 나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지 않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이야기하지 못하고 카멜레온처럼 만나는 사람의 취향과 스타일, 분위기에 맞춰 연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세요.
그렇게 사는게 재미있고 활기차다면, 그래서 행복하다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헤어져서 혼자가 되었을 때 금방 외롭다고 느끼고 마음이 허전하고 공허하며 자신의 생활이 뭔가 방향을 잃고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이 지속적으로 든다면 당신은 자신의 색깔을 아직 모르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자신의 색깔과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건 에너지를 방전시키기만 할 뿐 입니다(당신이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인간형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서).
나만의 색깔이 분명한 사람에게는 색깔이 다른 사람이 함부로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설사 호기심이 생긴다고 해도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죠. 접점을 찾아야 하니까요. 반면에 무채색인 사람에게는 의도가 어찌되었든 일단 접근하기 쉽고 결과는 지금의 그런 모습일 수 밖에 없습니다.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면 나와 색깔이 같은, 죽이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가 클럽에 놀러가면, 야구장에 관람을 하러 가면, 한강변에서 나처럼 자전거 출근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금방 말문이 트이고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유는 서로의 색깔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오고 난 뒤에는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색깔이 무엇일지만 탐색합니다. 왜냐하면 무리 속에서 괴짜라고 불리거나 그로 인해 따돌림 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삶이 집단 속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는 있어도 삶의 재미와 행복을 보장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안전을 지향하는 삶은 호기심과 활력을 억누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남은 삶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색깔은 그 사람의 가치관, 인생관, 성품 등을 반영하는데 그걸 극명하게 드러낼수록 서로를 충전시킬 수 있는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 달라보이는 걸 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신과 같은 색깔을 가진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들도 자신의 색깔을 감추고 있을 뿐이니까요. 당신이 먼저 내면의 색깔을 드러내면 그들도 호응할겁니다.
마음 읽기하려고 애쓰지 말고 자신의 색깔을 펼쳐 보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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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는 (제가 기억하는 한) 처절한 외로움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걸 밝혀 둡니다(아무런 고통 없이 평탄하고 행복하게 살아왔기 때문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이 정말로 외로워서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분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으며 그 분들의 고통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미리 말씀드립니다.
외로움을 전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은 게 군 생활을 할 때 계급이 낮을 때는 혼자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분명 있었거든요. 다만 그것이 외로움인지, 당장은 도달할 수 없는 익숙한 사회 생활에 대한 동경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역을 하고 나서부터는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없거든요.
특히 상담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된 이후로는 더더욱 그런 것이 사람에 치여서 그런지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좋아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심할 정도로 개인화된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혼자 밥 먹는 사람을 불쌍히 보고, 혼자 있는 것을 비정상이라 생각하고, 혼자 있는 사람은 외로움에 몸부림쳐야만 되는 것처럼 여깁니다. 여전히 우리는 어떻게든 이성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누군가와는 함께 있어야 외롭지 않은 존재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려고 합니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따돌림을 당해 친구가 없을까봐 염려하고, 일을 하게 되면 직장 내에서 외톨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사회에서는 인맥을 관리해야 한다는 불안에 시달리고, 성인이 되면 배우자를 찾아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리고, 아이를 낳지 않으면 노년에 외롭다는 협박아닌 협박에 떨고....
그런데 정말 우리는 외로운걸까요?
뭉치지 않으면 맹수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원시시대의 생존자들도 아니고 대체 왜 우리는 혼자 있는 것에 외로움이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요?
제가 상담을 하면서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친구가 필요하다며, 너무나 외롭다며,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며, 상담자와 관계를 맺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많은 내담자들이 하나같이 혼자 있던 그 오랜 시간 동안 자신과는 깊은 대화를 해 본 경험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자신이 얼마나 취약하고, 문제가 많으며,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일 뿐 다른 어떤 의미도 부여되지 않는, 그저 없어야만 하는, 어떻게든 피해야만 하는 그런 고문 같은 시간이더군요.
저는 상담자로 일을 하면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혼자 있는 사람은 비정상이며, 홀로 있으면 외로움을 느끼게 되고 그 외로움은 고통을 유발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제 자신이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가 되지 않았고 이해가 되지 않으니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찾아올 때마다 제 자신과 대화를 많이 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이 나를 편안하게, 행복하게 만드는지 제 자신에게 묻고 내면에서 들려오는 그 말에 귀 기울이고 필요한 건 곧바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래서 여행도 시작하고, 고양이도 입양하고, 채식도 하게 되었죠. 이 글을 쓰고 있는 블로그 운영도 마찬가지 이유로 시작한 겁니다.
그렇게 채워져 충만하게 된 제 마음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스스로 발생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외로움은 내가 동의할 때만 느끼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우리가 지금까지 외로움이라고 착각했던 많은 감정들이 사실 각종 결핍은 아닐까요?
답은 저도 모릅니다. 저는 제가 경험한 내용만 갖고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제가 모르는,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처절한 외로움이 어디에선가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진정한 외로움과 짭퉁 외로움을 분명하게 구분하려면 우선 철저히 혼자가 되어 내면의 자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철저히 고독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때가 되면 평소 내가 혼자 있을 때 느꼈던 감정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좀 더 잘 알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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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경우 도박 중독자들이 전문적인 치료 기관이나 GA와 같은 자조 모임을 찾아 도움을 구하게 되는 것은 대체로 재정적인 문제가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시점입니다.
그만큼 돈 문제는 도박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도박자가 계속 도박을 하게 되면 재정적인 문제가 가족들의 미래를 위협하게 되니 가족들은 절망에 빠질 수 밖에 없지요. 그래서 도박자도 이 빚만 갚으면, 그동안 잃어버린 돈만 찾으면 언제든 도박을 그만둘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희망도 없는 도박에 계속 매달리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도박 중독 때문에 생기는 문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돈 문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돈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사이의 관계 문제입니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신뢰가 무너지는 문제입니다.
쉽지는 않지만 도박 때문에 생긴 재정적인 문제는 도박 중독자가 정신을 차리고 도박을 그만두면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쨌거나 회복될 수 있습니다. 도박자에 따라서는 도박하기 이전의 경제적 풍요를 금방 되찾기도 합니다. 많은 도박자가 성실하고 열정적이기 때문에 도박에 쏟아붓고 있던 에너지와 열정을 경제적인 부분으로 돌리면 사정이 빠르게 나아집니다.
하지만 사람이 곁을 떠나고 고립되는 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한번 신뢰가 무너지면 다시 회복되기 매우 어렵습니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는데도 그렇게 사랑하고 아끼던 배우자도 신뢰가 무너지면 그 신뢰를 회복하느라 굉장히 힘들고 먼 길을 가야하니까요.
게다가 이 신뢰는 돈이 많다고 금방 쌓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말과 행동의 일치, 그것을 꾸준히 일관되게 지키는 것이 수반되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니 도박 중독의 가장 큰 피해는 돈을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떠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 사람이라도 더 곁에 남아 있을 때 도박 문제를 공개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떠난 사람을 돌려놓는 것은 황금으로 가득찬 수레를 끄는 황소들로도 어려운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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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다섯 번째 발간을 한 지식 e 시리즈 다섯 번째 책의 키워드는 '사람'입니다.
전 국가인원위원회 위원장인 서울대 안경환 교수의 권두언을 보니 '인권, 시대의 상식'이 제목입니다. 인권침해가 상식이 되버린 이 엄혹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참 씁쓸한 권두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책은 다른 책들과 달리 20개의 '사람' 이야기를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싣고 있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관련있는 사람들의 인터뷰로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이야기는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텐징 노르가이와 에드먼드 힐러리경(제시 순서 주목!!)의 이야기인데 뒤이어 우리나라의 고산 거벽 등반 전문산악인 김세준씨의 인터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축구저널리스트 서형욱, 팝아티스트 낸시 랭, 판화가 이철수, '노리단' 퍼포머 강희수, 마임이스트 유진규, 공연연출가 탁현민, 진보네트워크 활동가 장여경,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 도법 스님, 뮤지션 한대수, 친환경에너지 발명가 황성순, '미디어몽구' 운영자 김정환, 뮤지션 신해철, 용산 철거민 참사 유족 김영덕, 성공회대 연구교수 보노짓 후세인, '슬로 라이프 운동' 지도자 쓰지 신이치의 인터뷰를 싣고 있습니다.
낸시랭과 신해철은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인데 인터뷰 기사를 보니 생각 외로 다른 면도 있어서 선입견을 조금이나마 깰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저는 제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깨 주는 책을 참 좋아라 합니다.
전에 소개한 적이 있는
'행복의 경제학'을 쓴 쓰지 신이치씨를 다른 지면에서 만날 수 있어 반가웠고요.
역시나 강력한 메시지를 마음의 울림과 함께 전하는 완소 서적, 지식 e 5권입니다.
강력 추천합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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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
옷을
너무 자세하게 그리는 경우는 자기정체성의 불확실성을 과시적인 행동을 통해 과잉보상하고자 함을 반영한 것일 수 있습니다.
* 자세
사람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그리는 경우, 그
움직임이 능동적이고 난폭한 움직임을 묘사하는 것일 경우 피검자의 자기 개념이 다소 공격적이고 자기주장적임을 시사합니다. 다만, 이러한 행동이 권투 시합처럼 사회적으로 수용가능한 행동일 경우에는 피검자가 자신의 내면의 적대감을 통제할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머리는 옆모습이고, 몸은 앞모습으로 그리는 등 자세가 통일되어 있지 않은 경우 또는 몸이 기울어지거나 어디에 기댄 모습을 그리는 경우 또한 자기정체성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정감, 우울감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 남자와 여자 그림의 관계
일반적으로는 동성의 인물을 먼저 그리지만 7세 이하의 아동들은 대상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어머니이기 때문에 흔히 여자를 먼저 그립니다.
1. 그림의 순서와 키
예를 들어 남자 피검자가 남자를 먼저 그리고, 여자 그림보다 아주 크게 그렸을 경우 성정체감에 대한 불확실성을 과잉보상하기 위한 시도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대로 여자 그림보다 아주 작게 그렸을 경우, 성정체감에 대한 양가감정과 열등감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여성 피검자의 경우도 유사하게 해석합니다.
2. 성적 외모
남자를 여자처럼 보이게, 또는 여자를 남자처럼 보이게 그린 경우, 성정체감에 대한 양가감정, 모호성, 불확실감이 있고 반대성에 동일시하고 있거나 이성관계에서 정체성 문제와 관련된 갈등을 겪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출처 : 그림을 통한 아동의 진단과 이해(신민섭 외, 학지사) 중 발췌,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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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신체의 윤곽은 그 사람의 내적인 조화감, 즉 자기(self)가 얼마나 잘 통합되어 있느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균형이 깨어지게 되면 전체 신체의 부위 중에 과장되거나 또는 결핍되는 모양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모양을 살펴보면 피검자가 어떤 방식으로 보상적이고 방어적인가, 또는 어느 부분이 부족하고 갈등적인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정신지체이거나 어린 아동을 제외하고 전반적인 신체 비율이 너무 맞지 않을 때는 현실 지각의 장애가 있거나 심한 경우 사고장애나 신경학적 장애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1. Stick Figure
: 사람을 막대기 모양으로만 그리는 경우,
내적으로 자기부적절감과 불안정감이 강하고 이로 인해 이차적으로 적대적이고 거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2. 윤곽만 있는 사람
: 속은 비워놓은 채로 윤곽만으로 사람을 그리는 경우,
세상과의 상호작용에 대한 심한 회피나 위축, 또는 공허감이 수반되는 우울장애나 자기성취감 부족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3. 기하학적인 모양 사용
: 사람을 그리면서 네모나 동그라미 등 기하학적인 모양을 사용하는 경우는 대부분 현실지각의 손상, 신경학적 장애, 혹은 정신지체의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청소년의 경우 성별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을 그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피검자가 성 정체성에 대해 양가감정이나 혼란을 느끼고 있음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으며,
성인 피검자가 어린아이의 모습을 그렸다면, 자율성과 독립성의 수준이 미성숙함을, 아주 어린 아기를 그렸다면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한 퇴행적인 욕구나 유아적 의존욕구를 반영할 수 있습니다.
너무 마르고 허약하거나 여윈 모습으로 그린 경우 강한 우울감, 무기력감을 느끼고 있음을, 비만하거나 뚱뚱한 사람을 그릴 경우 자기 경멸감과 우울감을 나타낼 소지가 있습니다.
출처 : 그림을 통한 아동의 진단과 이해(신민섭 외,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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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는 우리가 바라는 곳을 향해 다가갈 수 있게 하고, 위험으로부터 도피하게 해주며, 자신을 지탱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다리를 어떻게 그리는가를 유심히 살펴보면 그 사람의 심리 상태의 많은 부분을 알 수 있습니다.
1. 다리를 그리지 않은 경우
:
한쪽 다리를 제대로 그리지 않는 것은 세상에 대처하는데 있어 자신감 부족, 부적절감 등을 의미합니다. 다리를 모두 그리지 않은 것은 이러한 무력감과 자신에 대한 부적절감이 매우 심한 것을 나타냅니다.
2. 다리의 크기와 모양
:
다리를 너무 길게 그린 경우는 자율성, 독립성에 대한 욕구, 과잉행동성 등을 통해 자신의 부적절감을 과잉보상하려는 욕구를 나타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다리를 너무 굵게 그린 경우는 세상을 지나치게 통제함으로써 과잉보상하려는 욕구를 나타냅니다.
다리를 흔들리는 모양으로 그리거나 선 하나로만 나타낸 경우는 대처및 통제와 관련하여 부적절감이 심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두 다리의 크기가 지나치게 달리 그려진 경우는 신경학적 장애나 정신증적 상태, 정신지체 등을 의심해야 합니다.
3. 다리의 자세
:
다리를 딱 붙인 모습은 융통성의 부족과 경직된 성격 경향을 반영하며
두 다리를 교차시키고 있을 경우는 성적인 불안감과 억제 경향성을,
다리를 지나치게 넓게 벌리고 있는 자세로 그리면 반항적 자세를 취함으로써 내면의 불안정감을 과잉보상하려 함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몸통에서 다리가 완전히 떨어지게 그리는 것은 현실지각의 왜곡이나 해리장애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발은 땅과 직접적인 접촉을 하는 부분이며 몸의 균형을 잡게 해주는 부분이므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자율성을 나타내줍니다. 따라서
의존성-독립성의 연속선 상에서 피검자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1. 발을 그리지 않은 경우
: 두 다리를 모두 그렸으면서
발을 그리지 않은 경우는 자율성과 독립성을 성취하는데 양가감정이나 심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한쪽 발을 옷 등으로 가리게 그린 경우는 의존과 독립의 갈등에서 회피하고 싶은 욕구를 반영합니다.
2. 발의 크기와 모양
:
발을 너무 크게 그린 경우는 자신의 독립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자율성에 대한 부적절감을 과잉보상하려함을, 반대로
너무 작게 그린 경우는 자율성에 대한 부적절감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발이나 신발을 단순화시켜서 동그란 모양으로 그리는 것은 자율성의 발달 미숙을,
발끝을 뾰족하게 그린 경우는 자율성의 성취와 관련해 적대감과 공격성, 억압된 분노감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3. 발의 자세
:
두 발이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키도록 그린 경우 성격적으로 매우 우유부단한 모습을 반영할 수 있습니다.
발이 종이의 모서리에 거의 닿도록 그린 경우는 내적인 불안정감을 보상하기 위해 타인으로부터 지지와 격려를 원하는 욕구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4. 발을 자세하게 그린 경우
: 발을 지나치게 자세하게 그리거나 정교하게 그린 경우는
의존과 독립의 갈등, 자율성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5. 벗은 발을 그린 경우
:
환경에 대해 거부적인 행동을 보이거나 과시적이고 비순응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반영합니다.
출처 : 그림을 통한 아동의 진단과 이해(신민섭 외,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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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은 우리가 하고자 하는 바를 수행하며 외부 환경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부위입니다. 따라서
팔을 어떻게 그렸는가 하는 것은 피검자가 환경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를 살펴보는데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1. 팔을 그리지 않은 경우
:
팔을 하나만 그리지 않았을 때에는 세상과 관계를 맺고 싶지만 내적인 갈등이나 양가 감정으로 인해 부분적인 억압이 일어나고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지만, 둘 다 그리지 않았을 때에는 지각의 왜곡이 일어나고 있거나 너무 우울하여 현실에서 지나치게 위축되어 있을 가능성을 점검해야 합니다.
2. 팔의 크기와 모양
: 피검자가
팔을 너무 길게 그렸다면 세상과 교류하는 능력에 대한 부적절감을 과잉보상하려 함을,
너무 굵게 그렸다면 세상과 타인을 지나치게 통제하거나 지배하려는 경향성을, 특히 근육질의 팔을 그렸다면 주장적, 공격적 태도를 통해 환경과의 교류 능력을 과시적으로 강조하려함을 의미합니다.
그려진 팔의 크기에 차이가 너무 심하면 신경학적 장애나 정신지체, 정신증적 상태 여부를 의심해야 합니다.
3. 팔의 자세
:
가슴 부분에서 팔짱을 낀 모습을 그리는 피검자가 종종 있는데 이는
세상과 타인에 대한 의심 및 그 기저의 적대감, 위험한 세상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욕구 및 방어적인 태도를 시사합니다.
팔이 몸통과 분리되어 있거나 팔이 어깨가 아닌 몸통 중간에서, 또는 머리에서 시작되는 경우는 역시 정신지체, 신경학적 장애, 사고 장애를 동반한 정신증적 상태를 의심해야 합니다.
손은 세상과의 교류,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한 행동, 현실에서의 대처 행동을 보다 정교하게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신체 부분으로 손에 대한 그림을 통해
환경에 대한 통제 능력 및 방식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1. 손의 크기와 모양
:
손가락을 그리지 않고 손을 원 모양으로만 그리는 경우는 환경과의 교류, 통제, 대처와 관련된 부적절감과 무력감을,
이러한 원 모양이 너무 강한 필압으로 그려졌다면 내적인 분노감과 공격성을, 손은 원 모양으로 그리고 직선을 그려 손가락을 나타낸 경우 공격적이고 조절되지 않은 행동을 충동적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장갑을 낀 손을 그리는 경우 이는 세상과 직접적으로 교류하지 못하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상호작용하고 싶어함을, 특히 벙어리 장갑을 낀 모습을 그렸다면 이러한 상호작용 자체도 매우 미숙하고 단순한 수준임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2. 손의 자세
:
손으로 무언가를 잡고 있는 모습을 그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환경에 대한 통제를 못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외적인 것을 잡고 지탱함으로써 보상하고자 하는 시도를 의미합니다. 이 때 무슨 물건을 잡고 있는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3. 손가락의 수와 손톱
:
손가락을 다섯 개보다 더 적게 그렸다면 세상에 대한 통제감을 얻는데 있어 부적절감을 느끼고 있음을, 더 많이 그리면 이러한 통제감을 얻기 위해 과행동을 보이고 이로 인해 충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출처 : 그림을 통한 아동의 진단과 이해(신민섭 외,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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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검자가 사람 그림을 그릴 때, 와이셔츠의 여밈 부분이나 넥타이를 통해 몸통의 중앙선을 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고
지나치게 강조해서 그리는 경우 가슴과 몸통 부분이 의미하는 힘이나 유능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1. 단추
: 발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단추를 채우는 것은 시각-운동 협응 능력이 미성숙한 단계의 아동이 곤란을 겪는 과업입니다. 따라서
단추는 안정감을 얻기 위해 타인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2. 단추의 크기, 숫자, 모양
: 단추를 너무 많이 그리고, 특히 크게 그린 경우, 안정감을 얻기 위한 욕구에 집착하고 있음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또한 너무 정교하게 단추를 그리는 경우 의존 욕구를 충족하고자 할 때, 과시적이고 강박적인 행동을 주로 보이는 스타일임을 시사할 수 있습니다.
3. 수직선이나 목걸이 등
:
몸통 부분에 수직선을 그리는 경우는 그 선의 질이나 음영이 불안정한 경우, 자신의 내적인 힘이나 유능감과 관련하여 불안하고 긴장되어 있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남자의 경우 넥타이를 그리는 것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느낌을 강화하려는 욕구를 반영할 수 있습니다. 여자의 경우 큼지막한 목걸이를 늘어뜨린 모습을 그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자신의 부적절감을 보상하려 함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가랑이 부분은 성기와 가까이 있는 부분으로,
성적인 능력이나 매력과 관련하여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적절감과 관련됩니다.
1. 가랑이 부분을 그리지 않은 경우
: 두 다리를 몸통에서 따로따로 이어지게 그리고 가랑이 부분을 서로 연결하여 그리지 않았다면 이는 성적인 영역에서 심한 불안을 느끼며, 이로 말미암아 성적 행동에 대한 회피와 억제가 일어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남자의 경우, 바지의 지퍼 부분이나 두 다리가 이어지는 부분의 선의 질, 그리고 음영이 진하거나 불안정할 경우, 성적인 영역에서의 불안감, 긴장감, 부적절감, 성적 능력이나 매력에 대한 불확실감을 의미합니다.
2. 성기를 그린 경우
:
매우 드문 경우이며 자아 기능이 붕괴한 정신증적 상태에 있음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성적 능력에 대한 극심한 불안감, 성 정체성의 불안정성을 시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성을 그리면서 성기를 그렸다면 관음증적 경향성을 반영한 것일 수 있습니다.
3. 성기의 크기
: 성기를 너무 크게 그렸다면 자아 통제력이 매우 약화하고 정신증적으로 퇴행하였음을, 너무 작게 그렸다면 성적인 부적절감으로 인해 과도하게 위축되어 있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출처 : 그림을 통한 아동의 진단과 이해(신민섭 외,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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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그림에서
유방(breast)은 성적 매력과 관련이 있으며 모유를 공급하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의존욕구 및 애정욕구와 관련됩니다.
1. 유방을 그리지 않은 경우
: 대부분 옷을 입은 사람을 그리기 때문에 유방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인 여자를 그린 그림에서 유방을 그리지 않는 것이 때로는 의존욕구의 좌절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특히 남자 아동이 그렇게 그렸다면 자신의 의존욕구를 강하게 부인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여자 아동이 그렇게 그렸다면 성적으로 성숙한 여성 표상에 대해 부적절감을 느끼는 것일 수 있습니다.
2. 유방의 크기
: 유방을 너무 크게 그렸다면 성적인 능력이나 매력을 지나치게 강조하고자 하거나 의존욕구 충족에 대한 불안감을 과잉보상하고자 함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유방을 너무 작게 그린 경우에는 이러한 성적인 매력에 대한 자기부적절감을 실제로 강하게 느끼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허리는 성기 바로 위의 부분으로 성행위와 관련된 중추적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허리를 어떻게 그렸는가가 피검자가 자신의 성적 행동을 어떻게 통제하는가 여부나 정도와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1. 허리를 그리지 않은 경우
: 옷의 형태에 따라 허리가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런 옷차림이 아닌 경우 허리선의 위치를 표현하지 않았다면 성적인 행동을 지속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지만 이를 외면하고 회피하고자 함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2. 허리의 크기와 세부묘사
: 허리를 너무 크게 그렸다면 성적 행동을 하는 것과 관련된 불안감이 있지만 이를 과잉보상하려 함을 나타낼 수 있으며 너무 정교하게 묘사했다면 이러한 보상행동이 강박적인 방식을 통해 드러날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출처 : 그림을 통한 아동의 진단과 이해(신민섭 외,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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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그림 검사에서 몸통은 어깨 바로 밑의 쇄골에서 가랑이까지의 부분에 해당하는데 여기는 그 사람의 내적인 힘을 보유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을 스스로 얼마나 유용하고 적절하다고 평가하는가를 반영합니다.
1. 몸통을 그리지 않은 경우
: 매우 드문 경우로 퇴행이 심하고 사고 장애가 있음을 의미하거나, 정신지체 또는 신경학적 장애가 있음을 의심해야 합니다.
2. 몸통의 크기와 모양
: 몸통을 너무 길게 그렸다면 내적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과잉보상하려는 시도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몸통을 너무 넓게 그렸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요구를 많이 하거나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내적 힘의 결핍을 과잉보상하려 함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너무 작게 그린 경우, 이는 스스로의 힘과 관련하여 부적절감을 느끼며 억제된 행동을 함을 시사합니다. 지나치게 필압을 낮게 그렸다면 자신에 대한 부적절감으로 인해 대인관계에서 위축되어 있음을 시사합니다. 몸통을 너무 짧고 굵게 그렸다면, 화가 나면 매우 난폭해지는 경향이 있음을 의심해야 합니다.
남자 그림에서의 가슴 부분은 자기 자신의 능력이나 힘에 대해서 주관적으로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를 반영할 수 있는데 피검자의 성별이 무엇인지, 그린 대상이 자기인지 아닌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집니다.
1. 가슴의 크기
: 가슴을 너무 넓게 그린 경우 타인에게 요구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결핍감이나 무능력감을 과잉보상하려 함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너무 좁게 그린 경우, 자신에 대한 부적절감으로 인해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을 나타냅니다. 웃옷을 입지 않고 웃통을 벗은 채로 그렸다면 이는 이러한 무능력감을 과시적인 방식을 통해 보상하려 함을 시사할 수 있습니다.
출처 : 그림을 통한 아동의 진단과 이해(신민섭 외,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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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 머리에서 일어나는 사고와 감정 등의 인지적 활동과 몸에서 일어나는 신체적 반응을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목이 적절한 구실을 할 때 스스로 통제감을 느끼고 편안할 수 있습니다.
1. 목을 그리지 않은 경우
: 인지적 활동과 신체적 반응에 대한 통제력 모두가 약화해 있는 상태로 뇌기능장애, 해리 장애, 사고 장애일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2. 목의 크기와 모양
: 목을 너무 길게 그리는 경우, 그만큼 생각과 행동 간에 거리를 두고자 함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충동 통제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에 과도하게 행동을 억제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고 이렇게 억제된 욕구를 혼자만의 공상에 몰두함으로써 해결하려고 시도할 수 있습니다.
목이 굵으면서도 너무 짧다면 자신의 통제력이 부족하여 때때로 충동적으로 감정을 표출하거나 행동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목을 너무 작게 그렸다면 자신을 통제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으나 이러한 의지에 압도되어 지나치게 억제되고 위축됨을 의미합니다.
선 하나로만 목을 표현했다면, 스스로 충동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자괴감, 부적절감을 느끼고 있을 수 있습니다.
3. 머리와 몸에 목이 연결된 모양
: 목이 머리에는 연결되지만 몸과는 떨어져 있게 그렸다면 상징적으로 자신의 이성과 사고가 행동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 반대는 충동 통제에 필요한 인지적 자원, 즉 내적인 태도나 공상활동 등이 충분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연결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지나치게 떨어져 있는 경우, 이는 사고장애를 시사합니다.
어깨는 짐을 지거나 무게를 지탱하는 능력을 나타내므로,
상징적으로 책임(responsibility)을 지는 능력과 관련될 수 있습니다.
1. 어깨를 그리지 않은 경우
: 5~6세 이하의 어린 아동이 아닌 경우, 신경학적 장애, 정신 지체를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몸과 목, 팔을 바로 연결하여 그린 경우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에 대해 매우 자신없어 하고 책임지는 상황을 회피하고자 함을 시사합니다.
2. 어깨의 크기와 모양
: 어깨를 너무 크게 그렸다면 책임감이 너무 강하고 그렇기 때문에 상황을 지배하려고 하거나 권위를 내세우려는 의도가 있음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너무 작게 그렸다면 자신감이 부족하고 위축되고 수동적 자세를 취하려는 경향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어깨를 날카롭게 각이 진 모양으로 그린 경우 책임지는 행동과 관련된 상황에서 경직되고 확고한 태도를 취하려 함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출처 : 그림을 통한 아동의 진단과 이해(신민섭 외,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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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 선은 경험적으로 자기 주장성과 관련됩니다.
1. 턱을 그리지 않은 경우
: 있는 듯 없는 듯 턱을 강조하지 않고 얼굴을 그린 경우는 자기 주장성이 부족하고 대인 관계에서 수동적인 사람임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2. 턱의 크기
: 턱을 너무 강조해서 그린 경우는 공격적으로 행동하거나 반대로 자기 주장적 행동을 하면 남들이 싫어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과잉 보상하고자 하는 시도를 의미합니다.
머리카락을 어떻게 그렸는지 살펴보면 타인이 자신의 외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관심과 정도를 알 수 있습니다.
1. 머리카락을 그리지 않은 경우
: 어린 아동의 경우는 특별히 해석하지 않지만 때로 외모에 대한 자신없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2. 머리숱의 정도
: 머리숱이 너무 많고 진하게 강조해서 그린 경우는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태도를 반영할 수 있습니다. 심한 경우 자기애적 성격이나 히스테리성 성격을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출처 : 그림을 통한 아동의 진단과 이해(신민섭 외,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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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은 세상과 직접 의사소통을 하는 부분이며 동시에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사람을 생존케 하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따라서 입을 그리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생존, 심리적인 충족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정서적인 문제들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1. 입을 그리지 않은 경우
: 애정의 교류에서 심한 좌절감이나 무능력감, 위축감, 양가감정 등을 의미할 수 있으며 부모와 같은 일차적 양육자와의 관계에 있어 상당한 갈등이나 결핍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2. 입의 크기
: 입을 너무 크게 그린 경우, 타인과의 정서적 교류에 있어 불안감을 느끼지만 이를 보상하기 위해 오히려 공격적인 태도를 보임을 시사합니다.
반대로 입을 너무 작게 그렸다면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정서적 상호 작용을 회피하거나 타인의 애정을 거절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3. 입의 모양
: 가로선 하나로 입을 표현한 경우 타인과의 정서적 교류에 무관심하거나 냉정한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또는 입 모양이 마치 비웃음을 띤 것처럼 보인다면 적대감, 공격성이 내재하여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입을 지나치게 벌린 모습은 대인 관계 상호작용에서 무기력감과 수동적인 태도를 의미합니다.
4. 입에 다른 물건을 물고 있는 모습
: 스스로 혼자서도 충분히 내적 충족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밖으로 과시함으로써 타인의 거절에 대한 불안감을 보상하려는 시도일 수 있습니다.
이를 그리는 경우는 사실 그리 흔하지 않으나 5세 이하 아동의 경우 행복감이나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이를 그려 넣기도 하므로 정서적인 문제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이를 매우 자세하게 그렸다면 정서적인 욕구, 애정 욕구 충족에 있어 발생한 불안감을 강박적인 태도나 행동을 통해 보상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이를 뾰족하게 그렸다면 공격성과 내면의 불안감을, 이를 하나하나 그린 것이 아니라 치열의 윤곽선만 그렸다면 정서적인 욕구를 수용하고 표현 하는데 있어 불확실성과 주저함을 의미하며, 이를 한두 개 정도만 그렸다면 정서적 교류에서 미성숙한 태도와 행동을 보임을 시사합니다.
출처 : 그림을 통한 아동의 진단과 이해(신민섭 외,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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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마찬가지로 귀도 타인으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는 통로가 되므로 귀를 어떻게 그렸는지 살펴 보면 피검자가 정서 자극을 수용하고 이에 반응하는 양식을 알 수 있습니다.
1. 귀를 그리지 않은 경우
: 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서적 자극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불안하고 자신이 없음을 반영합니다. 다만,
아동의 경우는 귀를 그리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해석에 예외를 두어야 합니다.
2. 귀의 크기
: 귀를 너무 크게 그린 경우는 정보를 지나치게 민감하게 받아들이려 하는 것으로 대인 관계 상황에서 예민할 수 있습니다. 너무 작게 그린 경우는 정서적 자극을 피하고 싶어하는 경향성을 나타냅니다.
눈과 마찬가지로 귀를 너무 강조하여 그렸다면 감정 교류에 대한 불안감과 긴장감, 타인의 의도에 대한 불신이나 의심, 자신을 방어하고자 하는 욕구 등을 반영합니다.
3. 귀고리를 그린 경우
: 피검자가 외모에 대한 관심이 많거나 혹은 너무 자세하고 정교하게 그렸다면 타인에게 자신을 과시하고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는 자기애적 욕구, 혹은 대인관계 불안감을 강박적으로 보상하고자 하는 욕구를 시사할 수 있습니다.
코는 얼굴의 중앙에서 눈 다음으로 가장 눈에 띄기 쉬운 위치에 있으므로 외모에 대한 관심의 정도나 역시 환경으로부터의 정서적 자극에 대한 수용 태도 등을 반영합니다.
1. 코를 그리지 않은 경우
: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매우 예민하고 두려워함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2. 코의 크기
: 코의 크기 해석은 귀와 동일합니다. 그런데
가끔 콧구멍을 강조해서 그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대인 관계 상호작용에서 매우 미성숙한 태도나 공격적인 행동을 시사하는 반응입니다.
출처 : 그림을 통한 아동의 진단과 이해(신민섭 외,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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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받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의 태도나 기분을 드러냅니다. 따라서 집 그림의 창문처럼, 눈은 그 사람이 정서적 자극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해 줍니다.
1. 눈을 그리지 않는 경우
: 두 눈을 모두 그리지 않는 경우는 매우 드물게 나타나며 타인과 감정을 교류하는데 극심한 불안감을 느끼고 이를 회피하고자 하는 시도를 반영합니다. 때로는 사고 장애의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한쪽 눈만 그린 경우는 접근과 회피의 양가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나타낼 수 있으며, 머리카락이나 모자로 눈을 가리었다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타인의 감정을 수용하는 데 있어 매우 위축되어 있음을 반영할 수 있습니다.
2. 눈의 크기
: 눈을 너무 크게 그린 경우는 타인과 정서적 교류에서 지나치게 예민함을, 너무 작게 그린 경우는 사회적 상호 작용에서 위축되고 회피하고자 하는 시도를 의미합니다.
눈을 너무 진하게 그리거나 강조하는 경우는 이러한 감정적 교류에 있어서 불안감과 긴장감을 느끼고 있거나 의심이나 방어적인 태도, 편집증적인 경향성이 있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3. 눈의 모양
: 간혹 눈동자를 그리지 않고 눈의 윤곽만을 그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상징적으로 내적인 공허감을 반영할 수 있으며 타인의 감정에 관심이 없고, 자신의 감정을 노출하고 싶지도 않음을 의미합니다.
눈을 점 또는 가느다란 선으로만 표현한 경우, 감정 교류 소통의 채널을 좁혀버린 것으로, 스스로 어떤 제약이나 한계를 느끼고 있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눈꺼풀이나 속눈썹을 그려넣는 경우는 타인과 정서적으로 교류하는 것에 과민해져 있거나 집착하는 경향성을 반영할 수 있으며, 특히 아주 정교하게 그려넣은 경우에는 강박적인 성격, 히스테리적인 성격, 자기애적인 경향성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4. 눈썹
: 눈썹의 모양이 코를 향하여 기울어진 모습이라면 내면의 적대적인 태도를, 반원의 아치 모양이라면 경멸적인 태도를, 진하게 그렸다면 공격적인 태도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출처 : 그림을 통한 아동의 진단과 이해(신민섭 외,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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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무의식적이고 심층적인 자기 개념이나 핵심 감정이 투사되는 나무와 달리, 사람 그림에는 그 사람의 의식적인 수준에서 가지고 있는 자기 표상, 자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나 감정들이 투사됩니다.
특히 아동의 그림에는 여러 가지 정서적 측면뿐 아니라 발달적 성숙의 징후들이 반영되어 나타나므로 이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사람 그림에서
머리는 상징적으로 인지적 능력 및 공상 활동에 대한 정보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1. 머리를 그리지 않은 경우
: 이는 매우 드문 경우로 사고 장애나 신경학적 장애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2. 머리의 크기와 형태
: 머리를 너무 크게 그린 경우는 자신의 지적 능력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지만 이를 과도하게 보상하고자 하는 욕구를 반영하거나 내적인 소망을 충족하려는 공상에만 과도하게 몰두할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6세 이하의 아동의 경우는 몸에 비해 머리를 크게 그리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머리를 너무 작게 그렸다면 자신의 지적 능력 및 공상 세계와 관련된 부적절감을 느끼고 있으며 지적인 표현과 관련하여 수동적이고 위축된 태도를 보일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머리를 둥글게 그리지 않고 세모, 네모와 같은 도형 모양으로 그리는 경우 사고 장애나 신경학적 장애 여부를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1. 얼굴의 어느 면을 그렸는가
: 때로 얼굴을 그리지 않고 뒤통수를 그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세상과 직면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옆얼굴을 그리는 경우도 자신감 부족을 상징합니다.
출처 : 그림을 통한 아동의 진단과 이해(신민섭 외,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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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살아가면서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끊임없이 상대방을 평가하고 평가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필연성을 무시하고 "나는 절대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아. 그 사람의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할거야" 라고 주장한다면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겠습니다만 현실감은 좀 떨어지는 이야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각설하고 저는 어떤 사람을 평가하거나 평판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반드시 그 사람의 아랫사람(또는 아랫사람이었던 사람)을 찾아서 물어봅니다. 그 사람이 교수라면 조교에게, 박사과정생이라면 석사과정생에게, 과장이라면 대리에게, 등등...
사람들은 흔히 어떤 사람을 고용하거나 일을 부탁하려고 할 때, 그 사람 윗사람(또는 상관이었던 사람)의 추천을 받거나 평가를 알아보는데 저는 그 반대로 움직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윗사람에게는 입속의 혀처럼 굴면서 아랫사람은 함부로 대하고 착취하는 인간이 의외로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랫사람을 인간적으로 대하는 사람 중에 무능력한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그 사람이 끼치는 피해는 전자에 비해 훨씬 미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마음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리더의 구실을 할 수 없는 사람이죠.
제가 사용하는 평가 방법을 사용하면 겉으로 보이는 것과 전혀 다른 평가를 받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에 크게 놀라게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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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나와 비슷한 점이 많은 것이 동질감을 주고 편안해서 좋아하기도 하고, 내가 갖고 싶지만 나에게는 없는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배울 점이 많아 좋아하기도 하고, 나와는 다른 여러 가지 측면이 신선해서 좋아하기도 하고, 때로는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냥 좋기도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에도 나름의 이유와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좋아하던 사람에게 실망하게 되는 이유도 각각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랑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비슷했기 때문에 좋아하던 사람이 어떤 특정한 부분에 대해 나와 상반된 견해를 보이면 우리는 그것을 그 사람과 나의 작은 차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어떤 기대를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상처를 받았다고 느끼게 되고 그 상처의 크기가 자신의 허용 기준을 넘어서게 되면 그 사람을 더 이상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나게 됩니다.
사람은 자라온 환경에 따라, 받아온 교육에 따라, 만나온 사람들에 따라, 겪어 온 경험에 따라 다양하게 성장하고 아무리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도 분명 어딘가에서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미 알면서도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이죠.
우리는 그렇게 헤어진 사람에 대해서도 미운 사람으로만 기억하면서 잊으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시간이 흐른 뒤 헤어지기에는 아까운 사람이었다고 회상하면서 아쉬워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인식 없이 그냥 그렇게 헤어진 채 바쁘게 살다가 잊기도 합니다.
그렇게 만나고 그렇게 헤어집니다.
그걸 잘 알지만...
사람과 사람의 사이는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어도 그건 좀처럼 쉬워지지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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