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학교 사회학과 노명우 교수의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2013)'를 북 크로싱합니다.
이 책은 책 표지와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비혼 삶의 찌질함이나 낭만을 다루는 에세이 집이 아닙니다. 사회학의 관점에서 '1인 가구'의 문제를 다룬 학문적인 서적에 더 가깝습니다.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은 진지하게 곰씹으며 읽는 게 좋습니다.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한 분들은 '소개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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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의 북 크로싱 방법에 있는 내용대로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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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것에 대한 분석은 거시적으로는 5포 세대와 관련하여 출산률 저하에 초점을 맞추고 거기에 개인의 이기심에 대한 성토를 양념하여 개탄으로 이어지거나 아니면 미시적으로 돈 많이 버는 삶의 대척점으로 자아 성찰을 설정하고 이에 초점을 맞춰 내면을 들여다보는 세태와 인문학의 융성(?)을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히키코모리처럼 찌질하게 살면서 좁디 좁은 원룸방에서 질식해 가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조명하면서 가십거리로 소비하거나요.
이 책은 이도 저도 아닙니다. 실제로 1인 가구를 형성하고 독신 생활을 하고 있는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노명우 교수가 사회학의 관점에서 '혼자 사는 것', '독신 생활', '1인 가구'를 꽤나 건조하게 조망하는 책입니다.
그러니까 혼자 사는 것에 대한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은 분들이라면 조금 실망할 수 있겠습니다.
책 표지만 보면 힐링 에세이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학문적인 서적에 가깝거든요.
노명우 교수는 1부에서 1인 가구에 대한 통계적 분석과 고정관념, 피할 수 없는 독신들의 세상 도래를 기술하고 2부에서는 1인 가족과 그 밖의 다인 가족을 4인용 테이블과 1인용 테이블의 비유를 들며 중요한 건 구성원의 수가 아님을 역설합니다. 그리고는 3부에서 결국 다 함께 홀로 서기 위한 방법으로 행복한 개인들의 연대와 그에 따르는 주거 형태를 제안합니다.
본인이 독신인데도 1인 가구의 장점만 늘어놓으면서 억지를 부리지도, 그렇다고 1인 가구주가 맞닥뜨릴 수 밖에 없는 외로움을 과장하는 신파로 빠지지도 않고 객관성을 잘 유지한 게 장점입니다.
결국 어떤 삶의 방식을 택하든 자신에게 잘 맞고 행복하면 장땡인거지요. 다만 초고령화 사회로 가면서 누구나 언젠가는 혼자 살 수 밖에 없는 시간이 오게 마련이고 그런 의미에서 저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만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학술서적에 준하는 건조한 문체로 씌여 있어 달필임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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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사는 삶은 때로는 자유롭고, 어떤 때는 처량하고 그런 것이다.
* '혼자 사는 것'은 이미 '1인 가구'에 속한 사람이든 언젠가 '1인 가구'가 될 사람이든 상관없이 우리 가운데 누구와도 무관할 수 없는 주제이다.
* 삶의 자유란 언제나 인간에게 한 걸음 떨어져 있는 목표이지, 혼자 사는 삶에 자동으로 딸려오는 부속물이 아니다.
* 죽음처럼 어쩔 수 없이 절대적으로 혼자 맞이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피할 수 없기에 '혼자라는 것'에 대한 질문 또한 우리의 인생에 부수적인 그림자와도 같다.
* 혼자서 해야만 하는 것과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만족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우리의 삶은 쉽사리 균형을 잃어버린다.
* 혼자 사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거의 전부가 혼자 살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그 이미지들은 혼자 사는 사람에게 낯설기 그지없다. 혼자 살지 않는 사람들은 혼자 사는 사람조차 낯설어하는 상상적 이미지를 혼자 사는 사람에 관해서 만들어내고, 이 이미지에 따라 혼자 사는 사람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판단하고 참견하고 간섭하고 조언한다.
* 불행한 일이지만 1인 가구의 증가 현상이 공론화되는 경우, 사람들은 그것을 부정적인 사회 문제, 자기중심주의와 파편화의 징후, 공적 생활의 약화로만 해석한다. 하지만 혼자 살기 그 자체는 그냥 계속 증가하고 있는 보편적인 사회 현상일 뿐이다.
* "실용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1인 가구의 증가에 대해 경계하는 사람들은 그 원인이 되는 사회적 변화들(개인의 부상, 여성의 지위향상, 도시의 성장, 통신기술의 발달, 생활주기의 확장)이 역진될 가능성이 낮음을 직시해야 한다"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의 말이다. 1인 가구의 증가는 이타주의의 몰락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나 익숙해져 있던 가정중심성이 약화되는 징후에 불과하다.
*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서로 교통하지 못하는 자족성을 경고하는 것이지, 자족성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도, 집합주의적 세계관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 서양 언어에서 '사회'가 한편으로 '사교'와 '교제'를 뜻하는 뉘앙스를 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회적'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정의해보면, 그것은 강요된 집단주의처럼 '집단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이 상호작용은 집단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고 자율성을 지닌 개인을 전제할 때 가능하다. 전근대적 전체주의나 스탈린적 사회주의는 이런 의미에서 '사회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적'이라는 단어는 반드시 '집단'을 주어로 삼지 않는다. 개인화는 사회의 몰락이 아니라,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는 중요한 형식과 제도가 변화했다는 뜻이다.
* 일반화된 타자의 과잉 역할이 문제되는 만큼이나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일반화된 타자의 부재가 큰 문제로 떠오른다. 혼자 사는 사람은 외부에서 역할을 가르쳐주는 일반화된 타자 없이 모든 것을 자기가 궁리하고 자기 힘으로 해내야 한다.
* 우리의 사고 습관은 개개인이 처한 구체적 모습이 아니라 가족관계라는 유일한 기준에 의해 사람의 행복과 불행을 판단한다.
* 역할에 대한 만족도는 역할 행동이 거짓이기 때문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역할에 대한 만족도의 차이는, 역할의 진정성의 차이에서 온다. 역할의 진정성은 모든 형태의 자기 연출을 부정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연출을 스스로 설정할 수 있는 자기 결정력이 강할 때 온다. 역할이란 그것이 사회적 관계인 한 연출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만족도의 차이는 거짓과 진실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역할의 내용을 스스로 결정했는지 혹은 외부에 의해 수동적으로 결정되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 역할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이 던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모든 역할 가면을 벗어던지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자기관계'와 '타자관계'의 균형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 "한 개인이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은 어떤 누구에게도 환원될 수 없는 개별적인 행위다. 먹을 것을 가져다줄 수 있고 잠을 잘 수 있도록 배려해줄 수 있지만, 아무도 남을 대신해서 먹어줄 수 없고 잠을 자줄 수 없다. 이것은 모두 한 개인의 신체를 통해 가능하다. 이러한 존재 방식을 레비나스는 '향유'라 불렀는데, 향유는 하나의 개체가 개체로서 '나의 나 됨' 즉 자기성을 확보하는 과정이다.
* 기꺼이 혼자가 되어 홀로서기를 꾀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세계로부터 고립시키려는 자폐의 의지가 아니라, 우리가 자신에 대해서 갖고 있는 편견을 끊임없이 주입하는 과잉화된 '일반화된 타자'와 거리를 두는 능력의 획득을 의미한다.
* 혼자라는 것은 같이 있다는 것에 비추어보면 분명 결핍이다. 같이 있다는 것은 혼자 있다는 것에 비추어보면 충족이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틀에 비추어보면, 행복은 혼자 있을 때와 같이 있을 때 어느 한쪽과 일방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 행복이란 혼자이기에 발생할 수 있는 결핍에서 벗어날 때, 그리고 같이 있을 때 발생하는 과잉 충족으로 인한 질식에서도 동시에 벗어날 때 가능하다.
* 타인들에 의해 아예 무관심한 영역에 방치되어 있는 사람은 왕따가 아니다. 그는 단지 혼자 있는 사람이다. 왕따는 혼자 있는 사람이 아니다. 왕따는 같이 있되, 같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는 사람이다. 관계가 왕따를 만드는 것이지, 고립이 왕따를 만들지 않는다.
* 취미는 개인의 자유의지와 기호에 따라 결정된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취미는 자기밀도를 크게 높일 수 있는 영역이다. 자기밀도가 높은 사람은 대체로 취미를 가진 경우가 많다. 자기밀도는 높은데 취미조차 갖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밀도가 매우 낮은 사람들은 의외로 취미가 없으면서도 삶을 그럭저럭 살아간다. 취미가 있는지 혹은 취미가 없으면 견딜 수 없는지는 자기밀도를 측정할 수 있는 일종의 바로미터이기도 한 셈이다.
* 관계로부터 단절을 꿈꾸는 사람은 민첩하게 행동해야 한다. 자기에의 몰두에 대한 충동이 강하게 느껴지는 그 순간을 놓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삶을 이루지 못한 채 마음속의 꿈으로나 간직하며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 누구나 이타심을 칭송하지만, 이 칭송의 대상이 실현될 수 있는지 혹은 그 이타심이 실현될 때 어떤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이타심을 실행하기 위해 한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자기 포기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나쁜 것으로 간주되는 이기심의 반사적 대당으로 이타심을 무조건적으로 칭송하는 분위기는 때로는 은밀히 개인을 궁지로 몰아간다.
* 자기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알아야 한다. 자기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을 배려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다. 이타주의의 강박에 물든 사람은 자기를 이해하는 최소한 시간조차 가져보지 못했기에 자신의 진정한 욕구조차 알지 못한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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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포스팅을 통해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의 소득 불평등 이슈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사회학자 아네트 라루가 쓴 이 책은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불평등의 대물림을 다루고 있어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아네트 라루는 이 책의 구성을 크게 3부로 나눠 1부. 일상생활 속 활동, 2부. 언어 사용, 3부. 가정생활과 공공기관이라는 세 개의 영역에서 부모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아이들이 어떤 불평등에 노출되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아네트 라루는 자연주의적 관찰 기법을 사용한 연구를 통해 12가구(백인 가정 6가구, 흑인 가정 5 가구, 다인종 결합 가정 1가구)의 9세 및 10세 아동을 1개월 동안 20여 차례 방문하여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이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모습을 관찰, 기록했습니다.
아네트 라루는 이 책에서
아동 양육의 유형을 크게 '집중 양육 방식'과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 방식으로 구분하고 부모의 사회적 계층과 지위, 그에 따른 경제적 수입에 따라 양육 방식이 결정되고 그러한 양육 방식이 미국사회에서 아이들이 성장해 나가는데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는데 압도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합니다. 결론적으로 중산층 이상 부모들이 택하는 집중 양육 방식이 미국 사회에서는 아이들에게 큰 혜택으로 작용한다고 보는 거지요.
이 책은 2004년 미국사회학회의 '윌리엄 J. 구드 가족사회학 최우수도서상', '문화사회학 부문 최우수 도서상', '아동.청년기 부문 공로상'을 휩쓴 화제작인데 개인적으로는 평판에 못 미치는 아쉬운 책이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실정과 맞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집중 양육 방식을 택한 우리나라 중산층의 경우, 이 책에 나온 미국 중산층과 달리 자녀의 감정이나 의견, 생각을 이끌어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죠. 우리나라 중산층의 집중 양육 방식은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기보다는 지식의 집중적인 습득만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토론을 권장하는 문화도 아니고요. 이는 아마도 미국이 개인주의 중심의 사회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집단주의 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집중 양육 방식의 내용도 크게 다른데 우리나라는 수많은 학원을 뺑뺑이 돌리는데 모든 시간과 재정적 자원을 사용하는 반면 미국의 중산층은 축구, 발레, 수영, 음악 레슨 등 학교 밖 활동에 모든 노력을 쏟아붓더군요. 미국의 중산층은 자녀들이 개인의 권리 인식, 협동과 단결력, 창의력을 극대화할 수 있게끔 뒷바라지합니다. 우리나라 중산층은 별로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아쉬운 책이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미국 사회에서 서민층과 빈곤층 아이들이 자연적 성창을 통한 성취 양육 방식을 통해 얻게 되는 가족 구성원 사이의 따뜻한 정과 우애마저도 우리나라의 아이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절망적으로 느껴지더군요.
저자 스스로 피에르 부르디외의 이론적 모델을 실증적으로 연구한 책이라고 밝히고 있듯이 사회학적 관점에서 미국 사회의 사회 계층에 따른 불평등이 어떻게 대물림되는지가 궁금한 분들(아마도 사회학도?)을 제외하고는 추천하기 어려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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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산층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자녀 양육의 특징 중 하나는 부모와 아이 사이의 토론이다.
* 중산층 부모들은 자녀 교육과 관련해 아이의 집중 양육을 강조하는 문화적 논리를 채택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노동자 계층과 빈곤층 부모들은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를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의 가장 큰 차이는 사회 계층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층의 차이, 그리고 이 차이를 가정생활 및 자녀 양육에서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아이들로 하여금 다른 세계와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보는 방식을 결정한다.
* 부모가 집중 양육 전략을 택한 아이들은 자기 권리에 대한 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를 지향하는 양육 전략을 택한 아이들은 자신이 경험한 교육 기관에서 거리감과 불신, 혹은 속박 따위를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 이번 연구에 참여한 교사들은 대부분 집중 양육 방식을 지지했다.
* 중산층 가정 아이들이 형제에 대한 적대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과 달리 노동자 계층이나 빈곤층 아이들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노동자 계층과 빈곤층 가정에서는 연대 의식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에 담긴 문화적 논리는 어른의 세계와 구별되는 아이들만의 자율적인 세계를 그리고 그 세계 속에서 아이들 스스로 자유롭게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경쟁력을 개발하는 과정을 인정하는 데 있다.
* 집중 양육 방식에 포함되는 '놀이 활동'은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 방식의 '자발적 놀이'에 비해 조직 사회에서 좀 더 큰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중산층 가정에서 아이들의 활동은 부모의 관심 대상이다. 집중 양육이라는 이름의 아동 양육 전략에서 부모의 참여는 중요한 요인이다. 이에 비해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의 아동 양육 전략에서는 양육 문제에 관해서는 관리와 통제가 이뤄지지만, 놀이에 관해서는 아이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차이가 있다. 이런 이유로 노동자 계층 및 빈곤층 가정에서는 어른과 아이들의 세계에 분명한 구분이 있으며 함께 놀아달라는 아이들의 요구는 불필요하거나 심지어 성가신 일로 치부되었다.
* 중산층 부모는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이 경우 부모로서의 위치)에서 비롯된 권위를 이용하기보다는 협상이라는 수단을 통해 아이의 인격을 존중하며 소통하는 방법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언어 영역에서 집중 양육 전략을 사용하는 것의 단점도 있다. 중산층 아이들은 부모에게 배운 대화의 기술을 사용해 부모의 가르침을 거스르려는 경향을 보인다.
* 중산층 가정의 엄마들은 적극적으로 아이가 겪는 문제 상황에 개입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시도 자체만으로도 자녀에게 '거절에 굴복하지 않고' 교육 기관의 요직에 앉아 있는 인물에게 압력을 행사해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방법을 직접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반면 노동자 계층 및 빈곤층 부모들은 주로 교사나 전문가에게 자녀 교육의 주도권을 전적으로 넘겨주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주도권 포기는 이 계층의 부모들이 자녀의 교육 문제에 대해서만 보이는 특징적인 현상으로, 다른 일에 대해서는 이들도 쉽사리 주도권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 역설적이게도 이 연구에 참가한, 매우 바쁜 스케줄에 따라 생활하는 중산층 아이들의 경우 자신이 참여하는 활동에 지루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잦았다. 하지만 비교적 여유로운 일정을 따르는 노동자 계층 및 빈곤층 아이들은 자신의 일정을 지겹다고 느끼는 일이 거의 없었다.
* 전문 용어를 불완전하고 부정확하게 이해하는 모습은 우리가 관찰한 여러 노동자 계층 및 빈곤층 가정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이는 이들 계층 가정의 부모가 교사나 의사 같은 전문가의 설명과 지시를 수동적으로 따르게 하는 주요인 중 하나였다.
* 노동자 계층이나 빈곤층 가정의 부모가 학교의 정책에 불만을 가지고 있음에도 공개적으로 항의하지 않는 데에는 한층 복잡한 이유가 있다. 학교는 아동 문제와 관련한 정부 정책을 대변하는 공식 기관이고, 이러한 권한에 기초해 그들은 특정 학생이 가정에서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판단될 경우 문제에 개입해 부모와 아이를 떼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계층에 따라 아동 양육 방식에 차이가 나는 요인으로는 첫째. 부모의 경제력 차이를 들 수 있다. 둘째. 교육적 자산의 차이 역시 중요한 요인이다. 셋째. 부모의 직업과 일하는 조건(특히 업무의 복잡성 같은 요인)도 그들이 아동 양육과 관련해 특정한 시각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 부모 자신의 사회적 계급이 변화하면 양육에 대해 갖는 그들의 생각이나 방식도 달라진다.
* 미국인은 자신들이 계급으로 철저히 나뉜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대부분의 미국인이 자신을 '중산층'으로 여기는 이유다. 사회 분화에 대해 물어보면 많은 사람이 곧바로 인종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만, 정작 '사회 계층'이라는 단어는 대다수 미국인의 사전에는 없는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옛날과 달리 요즘은 빈곤을 퇴치해야 한다는 생각이나 사회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 부르디외는 서로 다른 사회적 위치에 놓인 개인은 서로 다른 방식과 형태로 사회화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회화는 아이들에게 (훗날 성인이 되어서까지) 무엇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인지에 대한 기준이 된다. 부르디외는 이를 '습관(habitus)'이라는 용어로 정의했다.
* 인종이라는 요인은 분명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 방식은 사회 계층이라는 요인이 미치는 영향만큼 구체적이지 않았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 책으로 향후에 국민도서관에서 대여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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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베레비의 'Us and Them Understanding Your Tribal Mind(2005)'는 제목 그대로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무리짓기'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유유상종'이라 하여 서로 비슷한 사람들이 한 패가 되고 그렇게 무리를 짓고 나면 우리 무리가 아닌 사람을 배제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먼저 한 패가 되고 나면 그 다음에 서로 비슷해진다는 걸 진화심리학, 뇌 과학, 인류학, 사회학 연구를 통해 다각적으로 증명하는 책이죠.
진화심리학 뿐 아니라 사회심리학, 집단역학 등 심리학 연구 결과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심리학 서적으로 분류해 포스팅합니다.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베레비는 왜 인간들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 못할까, 왜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국가, 인종, 민족, 종교적 전통, 이데올로기 속에서 살고 죽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 궁금해하다 이 책을 쓰게 되었는데 뇌와 마음의 과학이 이 문제에 대해 연구한 수많은 결과들을 통해 앞에서 이야기 한 상식에 반하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심리학도라면 익숙한 심리학 연구 결과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내용에는 친숙할 수 있으나 번역의 문제인지, 저자가 글을 쉽게 쓰지 않는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속한 내집단과 그 밖의 외집단을 굉장히 쉽게 구분하고 분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뇌와 마음의 과학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상황에 따라,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그런 구분과 분류 기준은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쉽게 권력이나 기득권층에 의해 조작되는지도요.
이러저러한 기준에 의해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들과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게 얼마나 허망한 착각이었는지, 사실은 그들과 자신이 다를 바 없이 똑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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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식에 따르면 우리는 타인들의 실제 모습을 보고 민족, 종교, 국가라는 실제 범주에 따라 분류하지만, 우리 마음에 작용하는 진짜 원인과 결과는 그와 다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게 만드는 원인이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당신 주위에서 무엇을 보고 그것을 자신과 어떻게 연관짓는가-임을 말해준다.
*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상황에 의거해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남'에 대한 이해는 범주에 의거해 설명하려고 한다. 나는 일이 고되어서 늦잠을 잤지만 당신은 지중해식 문화 때문에(혹은 게으른 세대여서, 혹은 성격이 무사태평이어서) 늦잠을 잔 것이다.
* 문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 부류가 무엇이냐가 아니라, 우리 '마음'에 존재하는 인간 부류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 '정상'이란 말은 결국 자기 부류의 사람들에게 통한다고 배운 방식으로 보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 인종이나 종족에 관한 본질주의자들은 사람들 간에 아무 차이도 없다는 회의론자들의 주장을 비난한다. 하지만 그러한 비난은 핵심을 비껴간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 간에 차이가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왜 다른 차이는 무시하고 피부색이나 언어 한 가지 유형의 차이에만 본질주의적 신념을 고수하는가 하는 것이다.
* 인간 부류는 사람들 간의 관계로부터- 더 정확히 말하면, 그 관계에 대한 인식으로부터-생겨난다.
* 우리는 인간 부류의 코드가 사람들에 관한 사실에 근거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그들을 범주화할 당시에 그들과 어떤 관계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기대하며 무엇을 두려워하는가-에 근거한다. 우리 마음의 코드는 마치 인간 부류가 이런저런 특질을 지녔고 시간이 지나도 지속되는 것인 양 해석한다. 그러나 코드를 작동시키는 것은 대상 자체에 관한 정보가 아니라 행동-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관련해 우리가 하고 있거나 하려는 행동-에 관한 정보이다.
* 지배자들은 그저 피지배자들이 지닌 인간 부류의 코드를 원하는 방향으로 조정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한 코드만 제대로 조정하면 지배층은 나쁜 사람들이자 실은 '우리'가 아닌 사람들 위에 군림할 수 있다. 보통의 피지배자들은 자신들과 다를 바 없는 저들을 왜 인간 취급하지 않느냐고 묻지 않을 것이며, 그들처럼 나쁜 부류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지배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천대받는 지위로 격하시킴으로써 처벌할 수도 있다.
덧. dung님께서 꽤 오래전에 북 크로싱 요청하신 책인데 이제서야 다 읽고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ㅠ.ㅠ
덧2.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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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지성계의 이방인 게오르그 짐멜을 다룬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2005)'를 북 크로싱합니다.
철학, 사회학, 심리학, 미학을 아우르는 모더니티 이론의 대가입니다만 지금까지 평가 절하되어 온 숨은 천재입니다.
이 책이 어떤 책인지 궁금한 분들은 '소개글'을 참고하세요. 난이도가 상당히 높으니 게오르그 짐멜을 좀 아는 분께만 추천드립니다.
이 책은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국민도서관 이용)가 적용됩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의 북 크로싱 방법에 있는 내용대로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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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YES24를 포함해 대형 온라인 서점에서 리뷰가 하나도 안 달려 있는 책이라는 건 대개 두 가지 경우 중 하나입니다. 최신간이거나 독자층이 아주 얇은 '어둠의 책'이거나.
이 책은 단연코 후자입니다. 최신간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내용을 읽어보면 어떻게 2쇄를 찍었는지 의문이 갈 정도의 난이도를 자랑합니다.
제가 앞에서 '어둠의 책'이라고 이야기한 이유는 이 책의 저자인 게오르그 짐멜이 그야말로 어둠의 세계를 주름잡는 독일 지성계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입니다.
1858년 독일에서 부유한 유태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게오르그 짐멜은 전방위 사상가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서 방대한 저술을 남기고 활발하게 강의 활동을 한 사람인데 철학, 사회학, 심리학, 미학을 아우르는 모더니티 이론을 추구하고 있으나 시대를 잘못 만나 그 당시 모든 분야에서 배척을 당하다시피 했고 주목받지 못하고 사라진 천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게오르그 짐멜의 대표적인 저술 중에서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좋은 것(전혀 아냐!!)들을 역자들이 가려 모아 추린 것으로 1부. 현대의 단면들(돈, 대도시, 유행, 장신구), 2부. 미학의 문제(레오나르도 다빈치, 손잡이, 얼굴, 알프스 여행), 3부. 사회적 상호 작용의 유형들(식사, 감각, 감사, 신의, 편지), 4부. 인간의 내면적 삶과 형이상학(모험, 부끄러움, 비밀, 분별, 다리와 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평소 사용하지 않는 두뇌 부위를 가차없이 자극하는 날카로운 독서였기는 했지만 역자들도 후기에서 근대 독일어를 현대 한국인이 읽기 쉽게 번역하는 일이 너무나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토로하고 있듯이 짐멜의 사유의 깊이에 번역글의 난이도까지 더하여 각 장이 매우 짧게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힘든 독서였습니다.
KO는 당하지 않고 완주했지만 아직도 수많은 단어들이 헝클어진 두뇌 속에서 정처없이 날아다니고만 있습니다. 지적 고문을 당하고 싶은 분들만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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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추장'인 고병권 박사가 쓴 사회 비평 에세이(?)입니다.
이 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소개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정보와 재미, 삶에 대한 고민과 성찰까지 한 권에 담아낸 훌륭한 책입니다. 저도 책에 대한 선호가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선택한 다른 분들도 저와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지는 장담 못하겠습니다만 그래도 좋은 책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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