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병원도 그렇지만 요새는 클리닉이나 상담 센터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게 바로 분노 폭발을 보이는 아동/청소년들입니다.
가볍게는 자주 짜증을 내는 것에서부터 temper tantrum, 욕설, 심하게는 부모를 때리는 것에 이르기까지 행동의 spectrum도 꽤 넓은 편입니다. 그대로 두면 더 심한 행동 문제로 발전할 지 몰라 두려운 부모가 데려오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예전에는 소아기 양극성 장애를 의심받았고 DSM-5가 나온 뒤로는 Disruptive Mood Dysregulation Disorder(DMDD)로 진단 받곤합니다.
DMDD는 우울 장애이니 분노 폭발을 보이는 아동/청소년을 소아기 우울 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결론내리는 것이죠. 진단이야 어쨌든 그냥 항우울제만 먹여서는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분노 폭발을 보이는 역동이 생물학적 기전으로만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여러가지 환경적인 요인에 의한 영향이 더 크죠.
그래서 분노 폭발이 주 호소인 아동을 case formulation 할 때 점검해야 할 사항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1. 지능(특히 언어성 지능)이 낮지 않은가
지적 제한, 특히 언어성 영역의 지체가 있어 의사 표현이 자유롭지 않은 아동/청소년의 경우 손쉽고 익숙한 행동화에 의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이 부적절한 방식으로 강화되면서 패턴화되면 분노 폭발처럼 보이는 것이죠.
2. 만성적인 욕구 좌절을 경험한 건 아닌가
불안정 애착 문제와도 관련이 있을 수 있는 PCRP입니다. 기질적으로 또는 환경적으로 충분한 욕구 만족 경험이 없고 반복적으로 기본적인 욕구가 좌절되고 이러한 문제가 만성화되었을 경우 분노가 내재화되어 있다가 관련 자극에 노출되면 표출되는 경우입니다. 대개는 욕구 좌절을 야기한 대상에 국한되지만 일반화된 경우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도 즉시적인 욕구 만족이 되지 않으면 쉽게 분노 폭발을 보이게 됩니다.
3. 비전형적인 ADHD는 아닌가
일반적으로 ADHD는 분노 폭발로 인해 야기되는 행동화 문제가 두드러지지 않지만 간혹 비전형적인 ADHD는 잦은 분노 폭발을 보일 수 있습니다. 충동성 문제와 더불어 당연히 주의 집중력, 과잉 행동 문제도 함께 나타납니다.
4. 간헐성 폭발성 장애는 아닌가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의심받지만 실제로는 가장 가능성이 낮은 경우가 바로 간헐성 폭발성 장애(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입니다. 이 진단은 성인의 경우에도 가장 마지막에 변별해야 하지만 아동/청소년의 경우에는 더욱 가능성이 작아서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만 그래도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에 앞에서 제시한 문제들 중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으면 한번쯤은 진단 기준을 고려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네 가지 점검 사항이 서로 배타적이 아니라는 겁니다. 즉 중복되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죠. 비전형적인 ADHD면서 동시에(또는 그렇기 때문에) 만성적인 욕구 좌절을 경험하게 되는 아동도 있을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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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효율성이 우선시되는 사회가 되어서 그런가 몰라도 최근에 상담자와 심리평가자를 분리하는 기관들이 늘고 있습니다. 내담자를 담당하는 전담 상담자가 심리평가를 진행하지 말고 심리평가를 전문으로 하는 임상가에게 맡기라는거지요.
그렇지 않아도 많은 기관에서 심리평가 해석 상담을 전담하는 상담자를 따로 두는 바람에 내담자가 상담자와 해석 상담자를 따로 만나는 혼란을 겪어야 하는데 거기에 심리평가자까지 따로 둔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상담자와 심리평가자를 분리하는 이유에 대해 모르긴 몰라도 아마 상담 센터에 근무하는 상담자들의 심리평가 실력을 신뢰할 수가 없어서이거나 상담자가 심리평가를 진행하면 선입견이나 편견에 의해 객관적인 평가가 어렵다고 생각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전담 상담자가 심리평가를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심리평가는 심리치료 및 상담의 과정 중 일부로 포함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내담자가 최초 상담을 받겠다고 찾아오거나 연락해 올 때의 접수 면접을 제외하고는
심리평가, 해석 상담, 본 상담의 모든 과정을 한 명의 상담자가 전담해서 진행해야 제대로 치유할 수 있습니다.
심리평가를 전담하는 임상가를 따로 두는 경우 그 사람은 주관적인 정보의 영향 없이 심리검사 결과만 갖고 객관적으로 내담자를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과연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쉽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내담자는 내담자대로 또 다른 상담자에게 해석 상담을 받아야 하고 전담 상담자는 심리평가 보고서만으로는 내담자의 심리상태를 완벽하게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으니 결국 원자료를 다시 확인해야 할테고 결국 상담자와 심리평가자를 분리하려는 이유인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종합병원 급 현장에서 team approach를 한답시고 각종 직능의 전문가로 팀을 꾸려 환자를 manage하는 이유는 그게 효율적이라서가 아니라 각 직능이 지나치게 세분화, 전문화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임상심리학자가 도저히 작업 치료까지는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제대로 된 심리치료 및 상담을 진행하려면 심리평가의 실시, 분석, 해석 상담까지 상담자가 커버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 방법입니다.
상담 수요는 폭증하고 모든 것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고수의 수는 부족한데다 공급을 흡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니 얼핏 보면 일석 삼조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내담자의 치유는 물 건너 갈 가능성이 커진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상담자, 심리평가자, 해석상담자를 분리하는 접근 방식은 재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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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도움을 청하고 심리평가를 받을 것인지 결정하는 스스로 하는 성인과 달리 우리나라 아동과 청소년들은 대개 부모의 강권에 의해 심리평가나 상담을 받습니다.
미리 본인의 의사를 물어보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 센터에 데려갈 때에도 충분히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냥 데려옵니다.
그러니 심리평가를 받는 것에 대해서도 상의를 할 리가 만무하지요. 그냥 부모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결정하고 자녀는 무조건 따르라는 식입니다.
그러다보니 검사 당일에도 알리지 않아서 영문도 모른 채 방문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아이들의 경우에는 불만이 있어도 밖으로 표출하지 않고 부모가 시키는대로 따르지만 중학생만 되어도 노골적으로 적대감과 불만을 드러내거나 최소한 수동-공격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심리검사라는 도구가 기본적으로 피검자가 최선을 다해서 수행을 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필요로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행동하거나 비협조적인 검사 태도를 보이면 검사 결과를 해석할 때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청소년(중학생, 고등학생)에게 심리검사를 실시하는 평가자는 반드시 검사 전에 검사 사실을 알고 왔는지를 확인해야 하며 사전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경우
심리검사가 무엇이고 본인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합니다. 이것 때문에 상당한 검사 시간을 할애한다고 해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검사를 받을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선택/거부권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검사를 거부하면 보호자에게 이 사실을 알릴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억지로 심리검사를 할 의무는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건 피검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측면에서도, 검사 결과의 해석 신뢰도를 보장하는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검사 거부권을 보장하고 그럼에도 이 검사가 본인의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도움이 될 지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듣게 되면 청소년들은 심리적으로 훨씬 안정된 상태에서 검사를 받겠다고 수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자율성을 침해당한 청소년 피검자를 억지로 검사하지 마시고 충분한 검사 rapport를 형성한 뒤 진행하도록 노력하세요. 검사 rapport를 형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심리검사의 선택/거부권을 제공하고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덧. 이미 심리평가비를 수납했기 때문에, 환불하는 것이 절차 상 어렵기 때문에 검사를 그냥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임상가들이 혹시라도 있다면 제발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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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 심리평가에서 '주요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의 정보원(source)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외래 진료 시 작성토록 하는
'부모용 설문지'인데 발달력을 포함해 다양한 정보를 망라해 수집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 굳이 면담을 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당연히 부모 면담을 통해 직접 물어보는 것이죠. 대부분 두 가지 방법을 병행해서 일단 질문지를 작성토록 하고 작성한 질문지의 내용을 토대로 핵심적인 내용만 좀 더 심층적으로 물어보는 방법을 많이 씁니다.
이 때
평가자가 주의깊게 고려해야 할 사항은 아동/청소년을 정신과내지는 상담 센터에 데려오는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상담 센터나 (특히) 정신과에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있는 어르신들이 많은 것을 감안해 볼 때
자식을 정신과에 데려간다는 부담에서 자유로운 어머니는 별로 없습니다. 자식의 양육과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만큼 문제도 가장 빨리 느끼기에 해결하려는 노력을 먼저 기울인 것 뿐이지만 가족 성원들이 이를 제대로 고려해 줄 리 만무하거든요. 시선이 고울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만약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는 경우 그 책임을 몽땅 뒤집어 쓸 위험성도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상당히 혼란되고 복잡한 감정으로 정신과 및 상담 센터에 자식을 데리고 오게 됩니다.
별 문제가 없을거라는 근거없는 낙관과 기왕 어려운 걸음을 한 것이니 제대로 치료를 받자는 마음이 혼재되어 있죠.
그래서 전자의 마음이 강한 어머니들은 KPRC(KPI-C), K-CBCL 등의 자기 보고형 질문지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방어적으로 기입하는 경우가 많으며 후자의 마음이 강한 어머니들은 반대로 온갖 문제가 잔뜩 있는 것처럼 과장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동/청소년 심리평가를 진행하는 임상가들은 반드시 부모용 MMPI, SCT로 부모의 심리상태를 파악하고 faking-good, faking-bad 경향성을 탐지해서 보고한 내용의 신뢰도를 검증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검증과정을 통과해 부모의 보고 내용을 믿을 수 있다고 할 때, 너무 많은 증상과 문제 행동을 보고하는 경우는 주요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면담이나 부모용 질문지에서 가장 먼저 보고되는 내용이 핵심 문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어떻게 왔느냐고 물으면 가장 아픈 곳을 가장 먼저 이야기하듯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을 먼저 보고하게 마련이죠.
거기서부터 출발하면 됩니다. 가장 먼저 보고된 문제에서부터 가지를 쳐 나가면서 가설을 세워보는 것이죠. 무리없이 연결이 된다면 주요 문제에서 파생되는 문제일테고 전혀 엉뚱한 증상이라면 부모가 과잉보고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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