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한 해 나이만 먹고 있을 뿐 심리평가에서도, 심리치료 분야에서도 전혀 고수랄 수 없는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남사스럽기는 한데 그래도 전문가 타이틀을 단 뒤로 15년 째 이 바닥에 몸 담고 있으면서 느낀 바를 임상전공 후배님들을 위해 좀 풀어볼까 합니다.
상담을 전공한 임상가들이야 수련 과정에서 최소한이라도 상담/심리치료에 대해 배우고 익힐 기회가 있지만 임상심리학을 전공하는 임상가들은 여전히 requirement를 위한 형식적인 경험만 하기 때문에(사실 그걸 지도하는 supervisor 대부분이 제대로 된 상담/심리치료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니까요) 주로 심리평가 업무만 해도 되는 안전한 병원에 남지 않고 상담을 해야 하는 field로 나가게 되면 당장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상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데도 당장 내담자를 만나 뭔가(?)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15년 전에 제가 당면한 현실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전문가 자격만 취득했을 뿐 심리치료/상담에는 완전히 초짜라고 할 수 있는 임상전공 임상가들은 어떻게든 자구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여기에 제가 했던 방법을 소개합니다.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건 병원에서 수련받을 때 수검자를 분석해야 할 하나의 케이스나 과제 취급하던 버릇입니다. 내담자는 원자료와 심리평가보고서, chart로 구성된 파일이 아닙니다. 피가 돌며 심장이 뛰고 온갖 심리적 문제와 고통을 안고 도움을 청하러 온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시각을 다시 장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심리평가를 해왔듯이 내담자가 갖고 온 문제를 내담자와 분리하여 분석하고 분해한 뒤 가장 체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한 구조적 수단을 찾기 마련입니다. 이 잘못 때문에 저는 일을 시작한 초반에 그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도박중독의 인지행동적 접근만 기계적으로 따른 나머지 상당수의 내담자를 잃었습니다.
두 번째로 버려야 할 건 시한을 정하고 단기간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조바심입니다. 심리평가의 경우 의뢰를 받을 당시부터 due date가 정해져 있고 그 기간 안에 수검자에게 orientation을 실시하고, 설득하고, 검사를 실시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해야 합니다. 기한을 어기면 치료가 늦춰지거나 함께 일하는 다른 전문가의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러니 의뢰를 받자마자 최대한 빨리 상황을 구조화하고 일정을 체크해서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하죠. 하지만 심리치료/상담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심리평가와 달리 심리치료/상담은 치료적 관계를 맺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때로는 그게 상담의 전부일 때도 있습니다) 그 치료적 관계라는 것이 보기보다 간단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내담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른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니 좀 더 넓은 시야로 보면서, 좀 더 인내심을 갖고, 좀 더 융통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버려야 할 것은 누군가에게 의지하겠다는 의존심입니다. 병원에서 수련받을 때야 본인의 마음에 들든 말든, 자질이 있든 말든 어쨌거나 상의하고 의지할 supervisor와 수련 윗년차가 있지만 전문가가 되고 나서는 본인이 온전히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해 본 적도 없는 심리치료/상담을 하게 되면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도 없고 책임지는 것도 두렵기 때문에 마음이 약해져서 누군가 의지할 대상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수련 병원, 자신의 출신 대학원 등등의 연줄로 연결된 각종 community(연구회, 협회 등)에 가입해서 의존 욕구를 충족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들로부터 심리적 위안과 객관적 정보를 얻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자신이 매일 만나는 내담자를 어떻게 심리치료/상담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질적이고 유용한 정보는 거의 얻을 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뛰어난 상담자라도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면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것과 같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외롭고 힘들더라도 초반에는 더욱 혼자 서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를 악물고요.
지금까지 초반에 버려야 할 것 세 가지를 말씀드렸고 이제는 해야 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back to basics'하는 겁니다. 그 basics라는 게 대학원 때 들었던 상담이론 수업일 수도 있고 더 뒤로 돌아가 학부 때 활동했던 심리학 동아리의 발제문일 수도 있을 겁니다. 어쨌거나 상담을 처음 익히는 사람의 자세로 돌아가 상담을 하는데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지식이 담긴 책, 논문, 발표자료를 찾아서 다시 정독하는 겁니다. 그 당시는 현장 경험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냥 닥치는 대로 지식을 익힌거라면 이제는 실제로 내담자를 만나서 한 올 한 올 옷감을 다시 짜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 때와 전혀 다른 느낌으로 읽게 될 겁니다.
여기에 더해서 제가 상담을 시작하던 당시에 다시 읽은 책 중 큰 도움을 받았던 몇 권을 소개드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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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의 기술(Helping Skills)
: Clara E. Hill과 Karen M. O'Brien의 책으로 탐색-통찰-실행의 3단계 통합 모델에 따라 각 심리치료적 접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실습까지 해 볼 수 있는, 상담 입문자를 대상으로 한 최고의 자기 교습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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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면접의 기초(Introduction to Psychological Counseling Interview)
: 김환 선생님과 이장호 선생님이 함께 쓰신 한국형 상담 실전서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 책입니다. 우리나라 상담 현장에서 내담자를 만날 때 주의해야 할 세밀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아서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죠. 초보 상담자라면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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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적 심리치료
: 그 유명한 Nancy McWillams의 3부작 시리즈 중 마지막 책으로 번역판 제목과 달리 정신분석에 대해서만 다룬 책이 아닙니다. 상담자가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을 저자 본인의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어떻게 manage하는지 익힐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사실 Nancy McWillims의 3부작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소장 필독 도서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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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의 디딤돌(The Elements of Counseling)
: Scott T. Meier와 Susan R. Davis가 함께 쓴 상담 초보자용 지침서입니다. 난도가 높지 않고 상담자가 꼭 알아야 할 핵심 내용만 뽑아서 정리한 가이드북 같은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한동안 항상 들고 다니면서 읽었습니다.
위에 소개한 책들은 소개한 순서대로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이 때 중요한 건 본인은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면서 상담은 하지 않고 공부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절대로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겁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닥치는대로 상담을 하면서 공부도 병행해야 하는 겁니다. 수영 교본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정작 물에 들어가지 않으면 절대로 수영을 익힐 수 없는 것처럼 좌충우돌 실수도 하고 좌절도 하면서 공부한 내용이 실제 상담 장면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몸으로 익히지 않으면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전혀 소용없습니다.
이것이 기초를 탄탄히 하는 내공 쌓기 입니다.
이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그 다음에는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를 할 것인지 깊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를 할 것인지 본인의 취향에 따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는 다양한 치료적 접근법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다양하게 접하고 연습해 보는 것입니다. MBSR, EMDR, ACT, DBT 등의 다양한 치료법을 공부해 보는 것이죠. 초급 수준의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도전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 과정에서 각 치료적 접근법이 가진 장, 단점을 익히게 되고 그것을 자신이 일하는 현장에 적용토록 노력해야 합니다.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자신의 이력서에 한 줄을 더하기 위한 목적으로 여기저기 찔러보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는 염불보다 잿밥에 더 집중하는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죽도 밥도 아닌 상담 맹구가 됩니다.
깊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는 대개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를 하는 도중 자신에게 딱 맞는 치료적 접근법을 찾아서 더 이상의 주유를 멈추고 더욱 깊이 파고드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의 치료적 접근법을 최고 수준까지 수련하여 궁극의 내공을 쌓는 방법이죠. 특히 그 접근법이 자신이 주로 만나는 내담자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최적의 방법일 경우 성취가 극대화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깊이 파고들수록 일반화 가능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데도 근시안에 빠져 자신이 익힌 치료적 접근법을 만병통치약처럼 신봉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함정에 빠져 치료자가 아닌 교주로 전향한 분들을 꽤 많이 봤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좀 길어졌는데 핵심만 요약하면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 임상심리학 전공 상담자가 한시바삐 버려야 할 것
- 내담자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나 문제 케이스 취급하는 버릇
- 정해진 시간 내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조바심
-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
* 해야 하는 것
- 'back to basics'하면서 현장을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분투하는 것
- 넓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와 깊이를 추구하는 내공 쌓기
이 포스팅은 임상심리전문가, 임상심리사들을 위한 맞춤형 글입니다.
대형 병원에서 임상심리전문가 수련을 받으면서 상담이라고는 수련 요구 조건을 충족할 정도의 수박 겉핥기 수준으로만 접했는데 전문가가 되자마자 덜렁 중독 상담이라는 하드코어 영역으로 떨어져 맨 땅에 헤딩하면서 상담을 몸으로 익힌 제가 상담, 심리치료를 익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같잖게 보일 수 있지만 병원 장면에서 수련을 받는 임상가들은 사실 상 상담이나 심리치료에 대한 본격적인 supervision이나 교육을 받을 기회가 매우 부족하기에 제 경험이라도 도움이 되실까 하여 정리해 봅니다.
상담/심리치료를 익히는 기본적인 방법과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본인이 상담 내지는 개인 분석을 받는다. 이건 상담 전공을 하신 임상가들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중요한데 정작 임상 전공에서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실제로 본인이 상담을 받을 정도로 힘든 상태가 아니라면 경험자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 경우는 게슈탈트 집단상담을 30시간 받았지만 개인 상담이나 교육 분석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집단 상담의 경험이 좋지 않아서(당시에는 시간 낭비라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도 수련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상담자가 반드시 상담을 받을 필요는 없겠다는 선입견만 잔뜩 생긴 것이 아닌가 후회합니다.
2)
supervisor의 지도 하에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내담자를 상담한다. 이것 역시 상담 전공자라면 당연한 수련 과정이겠지만 임상 영역에 계신 분들에게는 언감생심입니다. 왜냐하면 임상의 supervisor들도 대부분 임상 전공자라서 본인이 상담 supervision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고 무엇보다 상담을 하지도 않기 때문에 상담 supervision을 할 능력이 안 됩니다. 저도 제 supervisor가 상담 supervision을 해 줄 능력이 안 되기에 외부 상담 기관의 supervisor를 찾아가 supervision을 받았습니다. 그 분은 실력이 출중하신 분이었지만 제가 상담한 케이스의 수 자체가 너무 적어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죠.
3)
관심 분야를 찾아서 좀 더 특수하고 전문적인 치료 기법이나 상담 접근법의 자격을 취득하거나 학회, 연구회 등에 가입해서 활동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EMDR, ACT, MBSR, MBCT, 사이코드라마 등이 있는데 전문성을 배가하고 자신의 상담/심리치료 내공을 올리는 좋은 방법이죠. 저는 단체나 조직, 집단으로 뭘 하는 것 자체를 너무 싫어하기 때문에 정신병리연구회에 회비를 냄으로써 회원 자격을 유지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단체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관심과 여력이 있는 분들은 적극적으로 고려해 보시면 좋습니다.
문제는 임상 영역에서 일하는 분들에게는 이러한 순서와 방식으로 상담/심리치료를 익히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죠. 환경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결국 저처럼 self-help training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저는 어떻게 했냐 하면,
우선 상담을 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책을 읽었습니다. 임상 전공은 상담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지식도 없기 때문에 춤으로 말하자면 소위 기본 스텝을 익히는 책을 꼼꼼히 읽어야 합니다. 이 때 대학원 등에서 주로 보는 상담 이론서, 치료 이론서를 읽으면 안 됩니다. 그건 나중에 상담을 실제로 하면서 추가로 읽어도 됩니다. 지금은 춤의 원리와 이론을 익힐 때가 아니니까요.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책은 클라라 힐과 캐런 오브라이언이 공저한
'상담의 기술(Helping Skills)', 스캇 마이어와 수잔 데이비스가 공저한
'상담의 디딤돌(The Elements of Counseling)', 김환, 이장호 선생님이 함께 쓰신
'상담면접의 기초(Introduction to Psychological Interview)'입니다. 이 3권의 책만 읽어서는 절대로 안 되지만 반대로 이 3권의 책만큼은 꼭 읽으셔야 합니다. 이 정도도 안 읽고 상담을 하시면 안 됩니다.
그 다음에는
약간은 무식하게도 무조건 상담을 시작해야 합니다. 기본 스텝을 아무리 연습해도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아보지 않으면 춤을 익힐 수 없듯이 어설프고 부족하고 자신감이 없어도 내담자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담자에게 못할 짓 하는게 아니냐고 비판하실 수 있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경우는 supervisor의 도움을 받을 수 없지만 상담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에서입니다. 당연히 내담자의 치유가 최우선이죠. 하지만 임상도 그렇고 상담도 그렇고 수련 과정의 특성 상 내담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충분한 준비가 되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상태란 건 노선이 바뀌어 더 이상 오지 않는 버스와 같은 겁니다. 어찌 되었든 상담을 시작하는 게 중요합니다. 상태가 심각하지 않은 내담자부터 상담을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임상 전공자라면 이 때 내담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익숙한 심리평가를 활용할 수도 있겠죠.
상담을 하다보면 당연히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데 중요한 건 실수에서 배우는 겁니다. 모든 상담을 철저히 복기하고, 놓친 부분을 챙기고, 다시 실수하지 않기 위해 정리해 놓아야 합니다. 좌절 상태에서 무기력하게 밀려드는 내담자를 기계적으로 만나는 것만큼 내담자에게 해가 되는 행동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춤사위를 보여주는 안무가는 없으니까 좌절할 시간에 더 공부하고 더 노력하세요.
예약한 상담 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가슴이 뛰고, 내담자와 눈을 맞추는 것이 힘든 시기가 지나가고
어느 정도 여유를 갖고 상담 시간을 맞이할 수 있게 되면 이제 중요한 건 깊이를 추구하는 겁니다. 춤으로 따지자면 익히기 쉬운 스윙으로 시작했지만 탭 댄스로 갈 것인지, 탱고로 갈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에도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상담에서도 generalist 역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내담자의 문제에 좀 더 전문적으로, 좀 더 깊이, 좀 더 세심하게 접근할 수 있는 전문 기술을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로 상담하는 내담자의 유형이 대상 관계 이론의 틀로 접근할 때 잘 보인다면, 그리고 그러한 틀이 본인에게도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면 본격적으로 대상관계이론과 그에 따른 기술을 공부하는 겁니다. 앞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좀 더 적극적으로 연구회나 모임에서 활동할 수도 있겠죠.
제가 드린 설명이 임상 전공이면서 상담 영역에서 일하고 있거나 일하고 싶은 모든 분들에게 딱 들어맞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선험자 입장에서 몸으로 체득한 조언이니 가끔은 유용한 조언도 있을 겁니다.
Clara Hill이 제시한 탐색-통찰-실행의 3단계 상담 모델에 따른 상담 기술을 요약해 보았습니다. 상담 기술은 대표적인 것들만 꼽아도 상당히 많기 때문에 무작위로 익히는 것보다 3단계 모델에 따라 배우면 좀 더 쉽고 체계적으로 익힐 수 있습니다.
그 전에 우선 상담 모델의 각 단계를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 탐색 단계
: Rogers의 내담자 중심 이론을 이론적 기초로 하며 내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라포 및 치료적 관계를 형성하고 감정과 사고를 탐색하도록 촉진하는 단계입니다.
-> 주로 사용하는 상담기술 : 개방형 질문하기, 재진술하기, 감정 반영하기
* 통찰 단계
: 정신분석이론을 이론적 기초로 하며 특정한 고민이 내담자의 문제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어떻게 치료적 관계를 통해 대처하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계입니다.
-> 주로 사용하는 상담기술 : 도전, 해석, 자기 개방, 즉시성
* 실행 단계
: 행동주의이론을 이론적 기초로 하며 내담자가 어떻게 변화하고 싶은지 결정하도록 돕고, 변화된 것을 어떻게 실행으로 옮기는지 도와주는 단계입니다.
-> 주로 사용하는 상담기술 : 직접 안내하기(조언과정, 지시)
* 실행 단계에서 상담자가 내담자를 위한 가장 좋은 행동 계획들이 무엇인지를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담자는 지지적 환경을 제공하고,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결정하는 데 촉진적 역할을 하기만 하면 됩니다.
* 실행 단계의 진행
: 행동 탐색 -> 내담자가 전에 시도했던 것을 평가하기 -> 구체적인 목표 설정하기 ->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가능한 방법 토의하기 -> 다른 가능성 탐색하기 -> 행동으로 결정하기 -> 행동 실행하기 -> 경험의 기초를 바탕으로 행동 수정하기 -> 피드백 주기 -> 지지 전달하기
닫기
* 주의집중
: 신체적으로 내담자를 향하는 것
* 경청하기
: 언어/비언어적이거나, 명확/불명확한 내담자의 이야기 도중에 메시지를 이해하거나 포착하는 것
* 재진술(Restatement)
: 내담자의 진술 내용이나 의미를 반복하거나 바꾸어 말하는 것.
-> 보다 적은 수의 단어를 사용하고 내담자 진술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함. 직접/간접적으로 표현 가능
-> 감정적으로 순응된 내담자보다는 인지적으로 순응된 내담자에게 더 적합
-> 사용법 : "~하게 들리는데요", "내가 이해하기로 ~님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 주의 사항
1) 절대로 내담자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가정하지 말 것
2) 내담자의 말 중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에만 집중할 것
3) 되도록 짧고 간략하게 할 것
4) 서둘러 반응하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지지적인 태도로 할 것
5) 내담자가 다른 사람에 초점을 두더라도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초점을 둘 것
6) 감정은 재진술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할 것. 재진술의 초점은 사고에 맞추는 것.
7) 반복적인 반응은 줄이고 내담자의 언어 구사 스타일을 따를 것
8) 내담자가 생산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에는 이야기를 멈출 때까지 기다릴 것
* 개방형 질문
: 내담자로 하여금 사고나 감정을 탐색하도록 물어보는 것
-> 내담자가 같은 것을 반복해서 말하고, 문제에 대해서 진정으로 탐색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때 유용
-> 주의 사항
1) 짧고 간단할 것
2) 몇 개의 질문을 한꺼번에 하지 말 것
3) 내담자에게 계속 집중할 것
4) 내담자가 과거의 경험이나 사건에 강한 감정이나 반응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현재에 집중하도록 할 것
5) "왜?"라는 질문을 하지 말 것. 대신 "무엇"이나 "어떻게"라고 표현할 것
* 감정의 반영(Reflection)
: 내담자의 감정을 강조하며 진술을 반복하거나 부연 설명하는 것. "당신은 ~때문에 ~을 느끼는군요"와 같이 감정과 함께 감정의 원인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하는 것이 중요함.
보기)
내담자 : "이 문제를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현재로서는 나에게 벅차요"
상담자 : "당신에 대해 확신이 없고 이 문제로 감당하기 힘들어하는군요"
-> 주의 사항
1) 내담자가 가장 강렬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찾을 것
2) 과거 경험보다는 현재 경험을 반영할 것
3) 완벽한 감정 단어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 단지 적절한 감정 단어를 사용하도록 노력할 것
4) 내담자가 진술한 모든 것을 포착하려고 노력하기보다 그 순간에 가장 중요하고 강렬한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반영할 것
5) 반영은 짧고 간결하게 유지할 것
6) 공감적인 어조를 사용할 것. 관심을 전달하며 상담자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줄 것. 내담자를 섣불리 판단하지 말 것.
7) 부드럽게 천천히 말할 것
8) 내담자가 이해할 수 있는 감정 단어를 사용할 것
9) 반영하기 전에 깊은 숨을 쉴 것
10) 내담자가 고정되어 무엇을 말할 지 생각할 수 없을 때에는 순간적 감정을 반영할 것
닫기
* 도전(또는 직면)
: 모순이나 부정, 방어, 내담자가 자각하지 못하거나 달가워하지 않거나 도전할 수 없는 비합리적 신념(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완벽해야 한다 등)을 지적하는 것
-> 문제의 이유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각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목적이다.
-> 자주 사용하는 상담 기술은 아니다.
-> 내담자의 모순적 행동 직후에 이루어져야 한다.
보기)
1. 한편으로는 ....하나 다른 한편은 ....군요.
2. 당신은 .....라고 이야기하지만, 비언어적으로는 ....처럼 보이는군요.
3. 당신은 .....라고 이야기하지만, 또 ......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는군요.
내담자 : "나는 너무나 보잘 것 없이 느껴져요. 제대로 되는 게 없어요. 학교를 관두는게 나은 것 같아요"
상담자 : "시험을 한 번 망쳤다고 학교를 그만두겠다고요?"
-> 주의 사항
1) 도전할 때는 공격적이고 비난하기보다 따뜻하고 공감적이 될 것
2) 도전을 할 때는 내담자의 문화적 배경을 고려할 것
3) 도전할 때, 판단하거나 해석하지 말 것
4) 진술할 때 일반적이거나 포괄적인 것보다 도전의 증거로서 특정한 예를 사용할 것
5) 방금 일어났던 것들의 예를 들 것
6) 도전을 전달하기에 앞서 사과하거나 그것의 가치를 축소시키지 말 것
7) 도전에 대하여 어떻게 느끼는지 질문할 것
8) 도전 후에는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고, 내담자가 그것으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남겨둘 것
9) 도전 뒤에는 감정의 반영과 감정에 대한 개방적 질문을 사용할 것
* 해석(Interpretation)
: 내담자로 하여금 새로운 방법으로 문제를 볼 수 있도록 행동과 사고, 감정의 새로운 의미와 원인, 설명을 제공하는 것
-> 혼란스럽고 두서 없고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경험에 이름을 붙임으로서 해석은 안도와 지배력, 자기 효능감에 대한 내담자의 감각을 증가시킨다(Frank & Frank, 1991).
-> 정신 분석적 상담자들은 전이를 해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해석이라고 함.
-> 정보처리 이론의 관점에서는 해석의 정확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순이 있다는 것과 내담자가 그 모순을 줄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 먼저 내담자에게 해석을 요구함으로써 시작하는 것이 좋다. 내담자의 현재 통찰 수준을 평가할 수 있고, 내담자가 스스로에 대하여 생각하도록 자극하며, 모든 해석을 상담자가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 하나의 해석이 자동적으로 새로운 행동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내담자는 이해하고, 통찰을 사용하기 전에 많은 반복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 해석을 발전시키는 풍부한 자료의 원천은 내담자가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내담자가 이야기하는 것들 사이의 연결을 만드는 것이다.
보기)
내담자 : "난 정말 학교 성적이 엉망이에요. 공부를 도대체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요즘 남편과 자주 싸우고 있어요"
상담자 : "남편과의 문제로 인해 학교 일도 집중하기 힘든 건 아닐까요?"
-> 주의 사항
1) 문제가 철저히 탐색될 때까지 기다릴 것. 내담자가 들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될 때에만 해석할 것
2) 내담자가 해석을 위한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단서
- 문제에 대한 명확한 진술
- 이해의 부족에 대한 진술
- 이해하기를 바라거나 갈망하는 것
- 해결에 대한 압력과 관련하여 느끼는 높은 수준의 감정적 고통
3) 해석을 임시적이고 공감적으로 전달할 것. 가능한 해석을 하고 내담자의 시각을 요구할 것
4) 해석을 한 후에는 개방적 질문(이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나요?)과 감정의 반영(당신은 지금 두려워하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하네요)을 할 것
5) 해석에서 판단은 하지 말 것
6) 해석을 짧게 유지할 것
7) 한 과정에서 너무 많은 해석을 제공하지 말 것
8) 해석 후 내담자의 반응을 살필 것
* 자기 개방화
: 상담자가 어떤 통찰을 획득했던 개인적 경험(즉각적 관계에서가 아니라)에 대한 표현을 언급하는 것
-> 내담자가 막혀있거나 자신에 대한 깊은 수준의 자기 이해를 성취하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유용
-> 내담자가 자신을 덜 위협적인 방법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
-> 정신 분석적 상담자들은 중립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전형적으로 자기 개방화를 하지 않는다.
-> 자기 개방화를 할 때에는 자신의 경험에 대한 시시콜콜한 부분을 회상하는 것보다는 경험으로부터 얻게 된 통찰에 초점을 유지시켜야 한다.
-> 자기 개방화를 사용하는데 있어 하나의 위험성은 상담자가 자신의 감정이나 반응을 내담자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보기)
내담자 : "나는 내일 그이의 어머니를 만나요. 나는 이제까지 남자 친구의 어머니를 만나본 적이 없어요"
상담자 : "나라도 긴장이 될 것 같네요"
-> 주의 사항
1) 자기 개방화를 제공하려는 의도에 대하여 신중하게 생각할 것
2) 개방화는 짧게 유지할 것
3) 개방화를 한 후 초점을 내담자에게 돌려놓을 것
4) 개방적 질문(나의 개방화에 대한 당신의 반응은 무엇입니까?)과 감정의 반영(내가 유사한 경험을 가졌다는 것에 놀라는 것 같군요)을 개방화 다음에 할 것
5) 개방화 다음에 내담자의 반응을 살필 것
6) 자기 개방화는 이따금만 사용할 것
* 즉시성
: 내담자와의 관계에서 상담자, 내담자, 혹은 치료적 관게에 대한 즉각적인 감정을 상담자가 표면화하는 것
-> 상담자가 개인적 감정과 반응 혹은 경험을 드러내기 때문에 자기 개방화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다.
-> 주된 목적은 통찰의 촉진이며 상담 과정을 방해하는 치료적 관계에서의 문제 표현과 감정 파악, 강렬화도 목적의 하나임.
보기)
내담자 : (상담자의 말을 끊으며) "그게 아니에요. 당신은 틀렸어요. 나는 괜찮아요"
상담자 : "당신이 내 말을 매번 끊을 때마다 거슬리는군요"
-> 주의 사항
1) 즉시성을 사용함에 있어 예의바르게 할 것(그러나 미안해하지는 말 것)
2) 즉시성의 진술은 짧게 유지하고 관계에 초점을 맞출 것
3) 즉시성 중재 후에 일어날 감정을 이야기하고 처리할 준비를 할 것. 내담자에게 즉시성에 대한 그들의 반응을 요구할 것
닫기
* 정보 제공
: 자료, 의견, 사실, 자원,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공하는 것. 상담 과정에 대한 정보주기와 내담자에 대한 피드백도 포함
-> 내담자에 대한 피드백은 상담자가 내담자의 행동에 대한 개인적 관찰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라는 명확한 이해와 함께 주의깊게 주어져야 한다.
-> 평가적 표현보다는 묘사적 표현을, 약점보다는 강점을, 변화시킬 수 없는 것보다는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내담자가 피드백을 듣는 것을 쉽게 한다.
* 직접적 안내
: 정보 제공이 사실이나 자료를 전달하지만 내담자가 취할 행동을 제안하지 않는 것에 비하여, 직접적 안내는 내담자가 해야 한다고 상담자가 생각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
* 상담 회기의 진행 간단 요약
1. 첫 상담 회기의 다음 상담에 우선 상담자는 조용히 앉아서 내담자가 이야기를 할 때까지 기다리거나, 그 날 내담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할 수 있습니다.
2. 상담자가 내담자가 전에 말했던 주제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를 하거나, 이전 회기에서 가졌던 감정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짐작해서는 안 됩니다.
3. 초점을 전개하기 위해서 지금 현재 내담자를 괴롭히는 것에 관해서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4. 처음에 상담자는 비밀보장에 대한 규정과 상담기간, 비용에 대해서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5. 회기 종료 5~6분 전에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이번 회기가 곧 종료된다는 것을 말해야 합니다. 회기 종료를 언급하는 것은 내담자로 하여금 상담을 마칠 수 있는 준비를 하게 하고 그동안 다룬 것에 대한 정리를 하게 합니다. 어떤 내담자는 회기 종료 바로 전에서야 비로소 중요한 문제를 꺼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6. 상담을 마치며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오늘 상담이 어떠했는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7. 내담자가 모두 다 좋았다고 하면 오히려 의문을 가져봐야 합니다. 상담자는 긍정적, 부정적 측면 모두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8. 내담자에게 회기 내에 배웠던 것을 요약해보라고 시키기도 합니다. 요약은 성취 결과를 강화하는 작용을 합니다.
9. 상담을 마치며 상담자는 악수를 청하거나 인사말을 건네기도 하는데 이는 내담자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전환의 역할을 해 줍니다.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책
Clara E. Hill과 Karen M. O' Brien의 <Helping Skills : Facilitating Exploration, Insight and Action, 1999>을 덕성여대에 재직중이신 주은선 선생님이 2001년에 번역한 책입니다.
이 책은 저자들이 제시한 탐색-통찰-실행의 3단계 통합 모델을 기초로 각각의 단계에 다양한 심리치료적 접근법들을 배치해 이론적으로 탄탄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장은 핵심적인 내용을 요약한 summary와 연습문제, 게다가 직접 실습을 할 수 있는 실습 시나리오까지 제공하고 있어 익힌 상담 기술을 연습할 수 있도록 활용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부록으로는 상담일지와 시험 문제까지 수록하고 있어 상담 분야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는 최적의 자기 교습서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들이 제시한 3단계 모델을 굳이 따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제목처럼 이 책에서 소개하는 상담 기술만 제대로 소화한다고 하더라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임상/상담 심리학 전공의 대학원생에게는 필독 도서(분량이 좀 많아서 진도가 잘 안 나가니 각오는 단단히 하시고)로 강력 추천드리고, 임상 현장에 계신 전문가들에게도 일독을 권합니다. 특히 대학원에서 상담 관련 과목을 강의하시는 선생님들에게 아주 좋은 교재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강력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