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월덴 3의 새 책 북 크로싱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선생님의 유고작인 '상실 수업(On Grief and Grieving, 2005)'입니다.
이 책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소개글'을 참고하세요. 사랑하는 이를 잃었던 경험이 있는 분들, 앞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두려움에 떠는 분들, 슬픔을 어떻게 다룰 지 몰라 혼란에 빠진 분들께 추천합니다.
저도 언제 필요할 지 몰라 나중에 다시 보려고 고이고이 모셔 두었습니다. 그래서 새 책으로 북 크로싱합니다.
이 책은 월덴지기가 강력히 추천하는 심리학 관련 서적입니다.
이 책은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국민도서관 이용)가 적용됩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의 북 크로싱 방법에 있는 내용대로 하시면 됩니다.
* 월덴 3의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하는 방법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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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YES24
이 책은 죽음 연구의 대가(비록 본인은 그렇게 불리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의 유고작이자 3부작의 마지막 저서입니다.
'죽음의 순간(On Death and Dying)'이 첫 번째 저서였고 두 번째 저서는 2000년에 출판된
'인생 수업(Life Lessons)'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이 마지막 대미를 장식한 책입니다.
각 장의 제목만 일별해도 내용이 얼마나 좋은 책인지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1장. '신은 감당할 만큼만 고통을 준다'2장. '슬픔에게 자리를 내어주라'3장. '눈물의 샘이 마를 때까지 울라'4장. '떠나간 이가 해왔던 것, 그것을 하라'5장. '사랑을 위해 사랑할 권리를 내려놓으라'6장. '몸이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주라'7장. '슬픔에 종결은 없다는 것을 알라' 8장. '상실의 밑바닥까지 발을 디뎌보라'9장. '신의 이해를 구하지 마라'10장. '상실은 가장 큰 인생의 수업'
우리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듯이 사랑하는 이를 잃는 상실 또한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그런 일이 닥치지 않을 것처럼 세상을 살아가고 상실감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에게 흔해빠진 인사나 던지고 있습니다.
이 책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그런 슬픔을 앞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좋은 책입니다.
모든 분들이 꼭 한번 읽어보셨으면 하는 책입니다. 너무나 훌륭한 책이기에 더 이상의 소개가 필요없습니다.
강력히 추천 드립니다.
덧.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2004년 8월 24일 저녁 8시 11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녀가 항상 하던 말대로 육체로부터 해방되어 은하수로 춤추러 갔을 거라고 믿습니다.
덧2. 이 책은 월덴3의 새 책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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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이 겪는 죽음의 다섯 단계만 생각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이들 역시 그가 죽기 전 겪는 이 다섯 단계를 똑같이 통과한다.* 예감이 가져다 주는 슬픔은 실제로 일어날 사건만큼이나 강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상실의 예감에서 오는 슬픔은 죽음 이후에 느끼는 슬픔과는 별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상실의 예감은 앞으로 마주해야 할 고통스런 과정의 전주곡이며, 궁극적으로는 치유되어야 할 이중의 슬픔이다. * 부정은 슬픔의 감정이 몰아닥쳐오는 속도를 더디게 해준다. 이처럼 부정 안에는 자비가 숨겨져 있다. 그것은 인간이 감당할 만큼만을 허락하는 신의 방식이다. * 이제 어떤 일이 생겨도 끄떡하지 않을 것처럼 충분히 안정을 되찾았을 때 분노가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대개 분노는 슬픔, 공포, 아픔, 외로움보다 먼저 다가오며 더 강하게 일어난다. * 분노는 사랑의 강도를 나타내는 또 다른 표시이다. * 분노하고 있다는 것은 치유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판단하지 말고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고 분노 그대로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 누구든 당신의 분노를 비난하도록 두지 말라. 심지어 자신이라 할지라도. * 우리 사회는 합당한 슬픔을 치료가 요구되는 우울증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 끝나길 원했던 것은 그의 끝없는 고통이기에 그의 죽음에 다소 후련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자 혼란이 찾아온다.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후련함과 슬픔이 복잡하게 뒤섞인다. * 바라던 모든 것을 끝마칠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다 끝마쳤다고 느끼는, 더구나 그것을 잘 이루었다고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 정작 피해야만 하는 일은, 쏟아내어야 할 눈물이 충분히 빠져나오기 전에 울음을 억지로 멈춰버리는 것이다. 흘리지 못한 눈물은 슬픔의 샘을 훨씬 더 깊게 채운다. 30분 동안 울어야 할 울음을 20분 만에 그치지 말라. 눈물이 전부 빠져나오게 두라. 그러면 스스로 멈출 것이다. 마지막 눈물 한 방울까지 흘리고 나면 기분이 홀가분할 것이다. * 눈물은 종종 가식적이고 너무 감정적이며 약함의 표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내적 고통을 외부로 표현하는 하나의 길이다. * 종종 우리는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 어느덧 사랑한 이의 역할들을 떠맡는다.* 그 사건에 대해 계속해서 언급하는 것은 본인에게는 자연재해와 다를 바 없는 그 큰 충격적인 사건으로부터 서서히 치유되고 있는 과정이다. * '이야기하는 것'은 사랑한 이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이다. * 슬픔과 상실을 도외시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상실을 나누는 방법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말하지 않고 억누르는 것은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소모시킬 뿐이라는 것을 결국 알게 될 것이다. * 고통과 슬픔이 갑자기 찾아왔을 때 단지 슬픔 곁에 앉으라. 슬프면 자신이 그 슬픔을 느끼게 하라. 분노와 실망에게도 이같이하라. 하루 종일 울어야 한다면 그렇게 하라. 상처를 억누르거나 또는 표현할 정도로 충분히 아물지도 않았는데 인위적으로 꺼내려고하는 것만 피하면 된다. 여기서 얻어야 할 것은 고통을 느끼고 난 후 찾아오는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다. * 인간이 슬픔을 회피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회피하길 원하는 건 상실의 고통이다. * 우리들 삶의 가장 큰 문제점들은 해소되지 않고 치유되지 않은 슬픔에서 생겨난다. 슬픔을 통과하지 않는다면, 영혼과 정신 그리고 마음을 치유할 기회를 잃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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